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66화 (167/448)

7권-16화

통신을 끊은 이진운의 얼굴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 판국인데, 이런 일까지 겹치다니.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이게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서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거지.’

웜홀의 시공간 터널이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1년 내내 워프 항법으로 우주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게나마 경험하곤 했다.

그렇지만 아르페인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얼굴로 연락을 해온 걸 보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정도의 불안정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이진운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리스티와 리클도 따라 일어섰다.

“너희들은 왜?”

“아시잖아요. 제 능력이 어떤지? 무슨 문제가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 물음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리스티였다. 이진운도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리스티의 천재성만큼은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리클 너는?”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뭔가 심상찮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리클. 그건 마치 터널의 불안정에 대해 나름대로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이진운도 더 이상 묻진 않았다. 본인도 확신할 수 없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말한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물어 봤자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확인하고 싶다면 따라오도록 해.”

이진운은 두 사람을 데리고 곧장 메인 브릿지로 향했다. 이진운이 들어서자마자 좀 전보다 한층 더 어두운 기색의 아르페인이 그를 맞이했다.

“오셨군요, 사령관님.”

“그래, 상황은?”

“자, 일단은 눈으로 직접 보시죠.”

이진운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아르페인은 여러 말 할 것 없이 곧바로 화면부터 띄웠다.

“이게 지금 웜 홀의 상황인가?”

이진운은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홀로그램 스크린 위에 뜬 웜 홀의 상태는 마치 폭풍의 한 가운데 들어선 것 마냥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터널 형태로 이루어진 필드가 수축했다 팽창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설명하기라도 하듯, 오퍼레이터의 보고가 잇따랐다.

[조타가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필드의 흔들림이 중력장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조타에 미치는 허용 수치를 넘어서고 있어요.]

[전방의 웜 홀 필드 수축! 병목현상입니다. 필드 붕괴 발생! 터널이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함대가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태는 점점 갈수록 심각해졌다.

워프 항법에서의 웜 홀이란 동떨어져 있는 두 좌표를 잇는 일종의 터널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선 공간을 뒤틀어 열 수 있는 강력한 중력장은 물론,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변수를 제어할 수 있는 변동중력필드로 터널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필드가 무너지게 되면 시공간의 미아가 되거나 흔적도 없이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이진운은 생각나는 대로 즉시 물었다.

“출력을 올려서 변동 중력장을 강화하는 방법은?”

[안 됩니다. 수축력이 너무 강합니다! 제네레이터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려도 무립니다! 시공간의 경계면이 흔들리면서 불확정 면이 형성되고 있어요.]

갈수록 절망적인 말들뿐이었다. 이대로 웜 홀의 불안정 현상이 계속된다면 인피니티 킹덤이라 하더라도 끝장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때,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리클이 무언가를 발견한 건지 돌연 침음하듯 입을 열었다.

“이건!? 역시··· 그랬었나?”

“왜 그러지? 혹시 이 현상에 대해 아는 바 있나?”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이진운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리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모를 리가 없지요.”

그리고는 잠시 주저하던 리클이 곧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건 공간봉쇄입니다. 공간의 균형을 흩트려서 길목을 막는 수법이죠.”

“길목을 막는다고? 그리고 수법이라면, 이게 자연적인 게 아니라 뭔가 인위적으로 발생했다는 말인데···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예, 이건 절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인위적인 결과물이죠. 그리고 이에 대해선 아마도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 우주에서 단 둘만이 아는 수법이니까요.”

“그 말은···.”

단 둘이라는 말에 이진운은 그 의미를 알아챘다. 그가 자신을 포함해 둘 뿐이라 말한다면, 나머지 한 사람은 더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아마도 제 형의 솜씨일 겁니다. 이 수법은 저와 형이 세상을 떠돌면서 용병 일을 하다가 만들어낸 수법인 [공간의 늪]이니까요.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규모도 커지고 운용 방식도 더 고도화되긴 했지만, 기본이 되는 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공간의 늪이라. 정확히 어떤 수법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공간을 일그러뜨려 길목을 차단하는 수법이죠. 용병일을 하다가 위험할 때는 이 수법으로 적의 발목을 붙잡아서 목숨을 건진 적이 꽤 많았습니다.”

그것은 공간의 균형을 어그러뜨려서 특정 지역에만 왜곡 현상을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리클은 그것을 응용해 상대가 가고자 하는 길목을 전부 틀어막아버림으로서 추적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사용해 왔다.

“그렇다면 위험성은? 우리가 이대로 필드가 붕괴되어 매몰되진 않겠지?”

“본래 길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수법이라서 웜 홀 전체를 붕괴시킬만한 힘은 없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길목을 차단하는 게 고작이지요. 물론 이대로 계속 전진하는 건 위험합니다. 필드가 수축하면서 생기는 불완전 경계면에 닿기라도 하면 시공간의 혼돈에 먹히게 될 겁니다.”

“역시 그런가?”

이진운은 무겁게 중얼거렸다. 웜 홀 전체가 붕괴하지 않는다는 건 천만 다행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축면은 리클이 말한 것처럼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으니까.

“···이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이 너머로 나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군요.”

“음, 그건 곤란해. 라인트라의 울레이브에서는 지금도 연합의 명운이 걸린 전투를 계속하고 있어. 우리가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하면 대패할지도 몰라.”

리클은 되돌아갈 것을 권유했지만, 이진운은 그럴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위상전환 때문에 계속 고전하고 있는 연합이었다. 그나마 그랜드 급을 비롯한 천외오천들의 힘으로 전선이 겨우 유지되고 있는 판국이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인피니티 킹덤이 도착하지 못한다면 이번 전쟁에서 벌어질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리클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저라 해도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소싯적에 만든 정도의 규모라면 모를까, 이 정도의 규모로 전개된 [공간의 늪]은 해제할 수도 없어요. 게다가 저와 형이 떨어져 산 세월만 해도 무려 20년입니다. 형이 만든 공간의 늪은 이제 제가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서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웜 홀 전체가 붕괴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어요.”

“······.”

웜 홀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말에, 이진운도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연합의 승리가 중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능성 없는 일에 도전했다가 자신을 비롯한 인피니티 킹덤의 승무원들 전체를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허나 그렇다 해도 이대로 선수를 돌리기에는 여러모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스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 홀로그램 화면 너머를 뚫어지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화면으로부터 시선을 뗀 리스티가 리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다짜고짜 요구를 해왔다.

“리클, 혹시 그 공간의 늪이라는 거 운용 방식이 어떤지 알려줄 수 있어요?”

“공간의 늪을요?”

“예. 지금 당장요!”

갑작스런 요구에 리클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당신은 공간제어능력자가 아니라서 쓸 수 없을 텐데요.”

“그걸 내가 사용하려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시공간에 간섭하는 건지, 원리를 분석해보려는 거니까 빨리요.”

리스티가 재촉하자, 리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공간의 늪의 운용방식을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굳이 운용방법을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리스티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의 두뇌를 풀 가동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현재의 상황과 공간의 늪의 기본 원리를 동원해서 그 현상에 대해서 철저히 분해하고 분석하고 있었다.

그것은 현실의 모든 현상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두 눈을 뜬 그녀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답을 알았어요.”

리클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냈다.

“뭐라고?”

“놀랄 것 없어요. 기본 원리를 아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아주 간단하더라고요.”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 내뱉은 그녀의 말에, 리클은 경악에 찬 얼굴이 되었다.

“말도 안 돼! 그걸 지금 그 시간동안 분석해 알아냈다고?”

그녀가 프론사이드 가문에서도 천재로 이름난 존재라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헌데 고작 한 번들은 운용법 가지고 답을 도출해 내다니! 심지어 그것도 그녀의 전문 분야조차 아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리스티와 운송 일로 거래를 해왔지만, 그녀가 지금같이 괴물처럼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리스티가 이진운을 돌아보며 불렀다.

“아저씨, 자 일어나요. 아저씨의 힘이 필요해요.”

“내 힘이?”

이진운은 조금 뜻밖이란 얼굴이 되었다. 공간 능력과 전혀 관계없는 자신의 힘이 필요하디니.

“예. 전에 아저씨가 말해준 것들 전부 진짜 맞죠? 그 뭐라더라, 천룡무상검법? 그 이상한 이름의 수법으로 발휘할 수 있는 효과도요.”

“그래. 전부 진짜지.”

전에 무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가르쳐줄 때,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설파하느라 자신의 무공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리스티는 그때 했던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요해요. 필드의 수축력과, 그것에 간섭하고 있는 구심점을 한 번에 날려버리기 위해서는요.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요. 그 정도 제어력과 정밀성을 가진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어요.”

“그래, 알았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이진운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리클을 향했다.

“리클, 당신도 일어서요. 당신도 도와야 해요.”

“저 말입니까? 이진운 씨의 힘이 필요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선행되어야 할 문제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걸 위해선 리클의 공간제어력이 필요해요. 제가 마법으로 공간을 제어하긴 힘드니 저 대신 당신이 힘을 써야죠.”

“그렇군요.”

리클도 납득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묻고 싶었다.

“그런데···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

조심스럽게 확률을 묻는 리클의 말에, 리스티는 당돌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두 분이 제가 계산한 대로만 따라준다면 100%요.”

“······.”

자신에 찬 그녀의 목소리에, 일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단순 허세인지, 아니면 진짜 자신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허세 따윈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확신이란 언제나 철저한 계산을 근거해 나오는 거였으니까.

“절대 틀릴 리 없어요. 지금까지 전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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