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65화 (166/448)

7권-15화

* * *

“금제라니···.”

리클의 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온 금제의 존재에 리스티조차 일순 아연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도 서출인 만큼 방계가 겪는 서러움이 어떤 건지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상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프론사이드 가문도 제법 문제가 많긴 했지만, 크리스첸 가문이 한 악랄한 짓과 비교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무슨 금제지?”

이진운이 그렇게 묻자, 리클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에게 듣기론 저희들의 재능을 빼앗는 그런 류의 금제더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금제라기보다는 어떤 대법에 가까웠지요.”

“재능을··· 빼앗아!?”

이진운이 불신에 찬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까지 재능을 빼앗는 그런 대법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 전 분명 그렇게 들었습니다. 저희 형이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니 아마도 맞겠지요.”

확신에 찬 그 대답에 이진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할까? 타인의 재능을 뺏는다니 이 무슨······.’

재능은 바로 태어날 적부터 타고나기에 재능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임의적으로 빼앗을 수 있다면 연합 내의 재력가나 기득권층 사람들은 전부 그랜드 급 이상의 강자들로만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다.

믿기 어려워하던 이진운과 달리 리스티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리클의 그 말에서 뭔가 느낌이 온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재능을 빼앗는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식이죠? 장차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강탈한다는 건가요? 아니면 리클 아저씨가 가진 공간제어능력 자체를 빼앗는다는 건가요?”

“음, 단순히 잠재력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능력 째로 강탈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형이 더욱더 분노한 거고요. 헌데 더 기가 막힌 건, 그들이 저희 형제를 죽이지 않고 가문에서 추방한 것도 철저히 계획적인 짓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의미지?”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겁니다. 그들은 저희가 세상 풍파 속에서 성장해가면서 미숙한 능력을 제대로 개화시키길 기다린 거죠.”

“뭐!? 설마······!”

그 말속에서 짐작되는 사실에 이진운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너무도 잔혹한 이야기였다.

“애당초 저희 두 형제를 죽이지 않고 가문에서 추방만 했던 것도 그런 목적이 있어서였습니다. 말 그대로 사육되는 돼지나 다름없었죠. 자라나 살이 찌기만 하면 언제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도축용 가축 취급이라니.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요?”

“······.”

“그래서 저흰 어릴 때부터 항상 감시당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죠. 그들은 항상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놈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그리고 언제쯤 대법에 써먹어야 할지를 계산하고 있었겠죠.”

어지간한 광경을 봐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던 리스티조차 그 고백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당신의 형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거기에 대해선 일절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알 필요 없다면서 입도 뻥끗 하지 않았죠.”

“그래?”

하지만 그게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 크리스첸 가문에서 은밀히 주도하는 일을 일개 개인이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심지어 금제의 존재는 물론, 그것이 어떤 대법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사실까지 알아낸다는 건 적어도 그와 비슷하거나 더 큰 세력일 때에나 가능한 일이니까.

“어쩌면 그 사실을 알아온 대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날 이후로 형이 제 앞에서 사라지게 된 것도요.”

리겔은 그 즉시 리클의 몸에 새겨진 금제를 해주(解呪)시켜 주었다. 대체 어떻게 해주 방법을 알아왔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리겔은 말해주지 않았다. 금제를 풀어준 즉시,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던 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전부 죽여 버린 게 그가 본 전부였다.

그리곤 말했다.

“리클, 이제 난 떠날 거다. 아마 앞으로 다시 보긴 힘들겠지.”

“떠난다고? 왜! 그 작자들이 우릴 노리니까, 찾지 못하게 숨기라도 하려고?”

하지만 형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고작 그런 이유로 내가 떠날 것 같아? 숨는다고? 어림없는 소리.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입가에 맺힌 살기 어린 미소. 리클은 그 섬뜩함에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가만 두지 않을 거다. 그놈들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어! 부모님을 죽게 한 것도, 우릴 가축처럼 키워서 잡아먹으려 한 것도! 그 모든 걸 다 용서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렇게 분노를 토해낸 리겔의 전신에는 짙은 살기만이 남았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질식할 것만 같은 그런 살기였다.

“이제 알겠지? 난 복수하러 간다. 그 놈들을 더 이상 살려둘 생각이 없어.”

그제야 형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도 무모하단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살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던 입을 억지로 뗐다.

“형, 그 심정은 나도 이해해. 복수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고. 하지만 무리라는 건 잘 알잖아. 형 혼자서 크리스첸 가문을 무슨 수로 상대하려고?”

“그래, 네 말처럼 크리스첸 가문은 크고 강하지. 그래서 나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다. 그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악랄한 게 무엇인지 보여주지.”

리클은 더 이상 말려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형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라도 다시 살아 돌아오신다면 모를까, 그 전에 그를 말린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나는? 나 혼자 두고 가겠다고?”

동생의 그 목소리에 복수심에 불타던 리겔도 잠시 누그러진 얼굴이 되었다.

“휴··· 리클, 미안해. 하지만 그래도 난 가야 돼. 그러니까 너는 어디든 가서 숨어서 살도록 해. 이름도 바꾸고, 신분증도 다 새로 바꿔. 형과 함께 하면 위험해질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리겔은 리클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던지 붙잡을 새도 없었다.

리겔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직전, 그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너무 걱정하진 마. 지금의 너라면 크리스첸 가문 놈들이라도 널 쉽게 찾기 힘들 테니까.”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지만, 조금 뒤에야 알게 되었다.

금제가 해주 된 리클의 능력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준에 올라 있었다. 대법을 위해 새겨놓은 금제가 그동안 그들 형제의 능력을 반 이하로 제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리클은 강해진 능력으로 혼자 자립해 나갔다. 이름과 신분증을 바꿨으며, 크리스첸 가문의 눈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이주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감시자들이 리겔의 손에 죽는 바람에, 크리스첸 가문도 그를 추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디지털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모았던 돈 중 상당수를 허비해야 했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만 했다.

그리고 아주 먼 성계에 도착한 이후 그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금제가 풀린 이후 강해진 능력을 분석한 결과, 이걸 사업에 응용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라이트닝 운송 서비스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이 날이 갈수록 번창하면서 바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아저씨, 이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아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리스티가 이진운을 돌아보더니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이진운도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눈으로 직접 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핵융합 능력을 가졌던 로일라의 이능을 글랙스에게 이식했던 가면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투적인 능력을 갖지 못했던 글랙스가 하루 아침에 로일라의 핵융합 능력을 휘두르던 그때의 광경은 꽤나 충격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첸 가문의 직계들이 사용하려 했다는 대법이 그와 연관성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너무 비약적인 추측인 것일까?

하지만 그는 나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가면인은 리겔 본인이겠지. 그러니 그 대법에 대해서도 잘 알 테지. 해주법까지 알아냈을 정도니까.’

“그래, 그 자가 바로 리클의 형이겠지.”

그렇게 둘이 주고받는 그 말을 들은 리클이 반응했다. 그가 간절한 얼굴로 매달렸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대체 형을 어디서 보신 겁니까?”

“···이야기가 좀 복잡해.”

이진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면인을 어떻게 만나게 됐으며, 그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다 듣고 난 리클은 아연한 얼굴로 넋을 잃었다.

“형이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다고요?”

“그래.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저질렀지. 왜 그런가 했는데 아무래도 복수심 때문이었나 보군.”

그 말을 듣고서도 아직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희 형이 어떻게 그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그 자가 네 형일 거라는 건 가정일 뿐, 확인된 건 아니니까.”

“···아마 맞을 겁니다. 저희가 다루는 이 힘의 운용방식은 크리스첸 가와 상관없는, 독자적인 거예요. 저와 형 둘이서 맨 바닥에서부터 만들어간 것들이니까요. 그 가면인이 형이 아니라면 누구도 알지 못해요.”

“그렇군.”

이로서 가면인이 리겔이라는 확신은 더욱 짙어졌다. 문제는 왜 리겔이 크리스첸 가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인베이더와 결탁해서 우주를 지옥으로 만드는 데에 동참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진운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쩌면 크리스첸 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 전체가 원망스러웠던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그 속내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세 사람 모두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하던 그때, 함 내가 크게 흔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멜롯 전체가 진동하고 있었다.

현재 카멜롯과 인피니티 킹덤은 웜 홀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절대 이런 진동이 일어날 리 없었다.

이진운이 다급히 밴더의 통신망을 열었다. 그리고는 메인 브릿지의 아르페인과 연결했다.

“무슨 일이야? 이 진동은 또 뭐지?”

[좀 일이 생겼습니다.]

“일이 있는 건 말 안 해도 알아! 대체 무슨 일인데?”

[통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웜 홀의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해야겠죠.]

“통로가? 원인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뭔가 간섭이 있다고밖에···.]

아르페인의 무거운 대답에, 이진운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웜 홀이 흔들린다는 것은 보통 위험한 게 아니었다. 잘못하면 함대 전체가 공간 붕괴에 휘말려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되는 수가 있었다.

아르페인을 추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진운은 짧게 통신을 끊었다.

“알았다. 그럼 내가 직접 메인 브릿지로 가보지. 가서 확인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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