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64화 (165/448)

7권-14화

그러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연합의 사람 치고 크리스첸 가문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리스첸이라고!?”

“하긴··· 크리스첸 가문이라면 가능하지.”

이젠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레이첸의 바이우드 가와 리스티의 프론사이드 가문처럼 연합에서 최고 손꼽힌다는 5대 가문 중 하나였다.

특히 크리스첸 가의 공간과 차원에 간섭하는 능력은 가히 독보적이어서, 지금까지 5대 가문의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연합의 사정에 그다지 밝지 않은 이진운조차 알고 있을 정도니 얼마나 유명한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런데 왜 다른 성을 쓴 거지? 아까는 분명 데이미안이라고 했는데.”

이진운이 이상하다는 듯 묻자, 리스티가 리클 대신 첨언해주었다.

“크리스첸의 방계라서 그래요. 정식 성을 쓸 수 없거든요.”

“그렇군.”

방계라는 단어만 들어도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았다.

중원무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였다. 가문이 크고 융성할수록 직계와 방계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과 간극은 언제나 존재했으니까.

아마 리클이란 자기 성까지 바꿔가면서 외부에서 사업을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일 가능성이 컸다.

“리스티 너도 알고 있었던 거냐?”

“예. 진작부터 알고 있었죠. 크리스첸이나 저희 가문이나 5대 가문이니까요. 단지 본인이 밝히길 원치 않아서 말하지 않았던 거고요.”

리스티가 이렇게 말하니 리클에 대한 의심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하지만 아직 모든 의혹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크리스첸 가문 사람들은 다들 이 정도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요? 그랬다면 크리스첸 가문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커졌을 걸요?”

리스티가 터무니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긴 지금 리클이 보여준 능력은 단순히 웜 홀을 연 정도가 아니었다. 통상적으로는 갈 수 없는, 차원단층이 존재하는 경로에 웜 홀을 열어서 함대 전체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안정화 시킬 정도면 공간 계통에 대한 제어력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피가 흐려질 대로 흐려진 방계 출신인 리클이 어떻게 그만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그럼 리클은 방계면서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진 거지?”

“격세유전 때문이죠. 시조의 피가 하필이면 방계인 리클에게서 좀 진하게 발현된 거죠. 아마 크리스첸 가문에서도 차원단층을 통과할 수 있는 웜 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일 걸요?”

“일종의 돌연변이라 이거군.”

“뭐, 그런 셈이죠.”

이진운은 내심 혀를 차고 말았다. 그만한 인재를 방계라는 이유로 바깥으로 나돌게 하고 있다니, 크리스첸 내부의 사정도 대충 알만 했다.

“그렇다면 리클의 신분에 대해선 의심할 이유가 없다 이거지?”

“예, 그건 제가 보증할게요.”

리스티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리클의 정체에 대해선 더 이상 의심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신분에 대한 문제에 한할 뿐이다. 리클과 가면인과의 연관성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였다.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이군요.”

그제야 리클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의심을 받는 이 상황이 꽤나 곤혹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의 얼굴은 여전히 냉담했다.

“아니, 오해가 다 풀린 건 아니야. 아직도 당신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있지.”

아직도 오해의 여지가 남았다는 그 말에 리클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그리고 뒤이어서 이진운의 질문이 던져졌다.

“좀 전에 당신과 비슷한 방식의 이능을 다룬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왜 그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였던 거지?”

“······.”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주저하는 표정을 짓는 리클. 그 반응을 통해 그가 뭔가 알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 이진운은 더욱 몰아붙였다.

“나도 이렇게 캐묻는 상황이 그리 기분 좋은 건 아니야. 하지만 당신이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우린 당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

상대를 믿을 수 없다면 그 다음 결과는 뻔했다. 힘에 의한 강압적인 제제와 구속이 뒤따를 것이다.

결국 침묵을 깬 리클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분은 제 형이었으니까요.”

“형?”

“예. 제 하나뿐인 형제죠.”

리클에겐 한 명의 형이 있었다. 그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으로서, 그 이름은 리겔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런데 말이야. 리클, 당신은 우리가 말한 그 자가 어떻게 쌍둥이 형제인 리겔이란 녀석이라고 단정하는 거지?”

“차원단층이 존재하는 항로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자들 중 현재 크리스첸 가 외부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저와 형, 단 둘 뿐이니까요.”

이진운이 리스티를 향해 시선을 옮기자, 그녀도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만큼 차원단층에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연합 내에서도 아주 극소수였고, 그 대부분은 현재 관리국에서 행적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허나 그 중 유일하게 행적이 파악되지 않는 사람은 리클의 형인 리겔뿐이다.

이진운은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서 나눌 대화는 아닌 것 같군. 자리를 따로 마련해보지.”

* * *

수송함을 자동으로 맞춘 리클은 소형정을 타고 카멜롯으로 넘어왔다. 이진운은 리스티와 함께 작은 응접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들을 수 있었다.

리클과 리겔은 태어나면부터 매우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 힘은 매우 놀라워서 방계의 한계를 훌쩍 넘어 어지간한 직계마저 넘어섰다.

격세유전에 의한 돌연변이로 태어난 탓이었다.

크리스첸 가문의 원로들은 두 형제의 과도한 재능과 힘을 크게 경계했다. 그들이 직계의 위치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위험하군, 위험해. 이제 겨우 몇 살 먹지도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앞으로 성장하면 어디까지 강해질지 짐작도 안 되는군.”

“하필이면 이런 잠재력을 타고 난 게 방계라니. 이거··· 가만 둬선 안 되겠어.”

그 둘의 재능을 확인한 직계 원로들은 더없이 큰 위기감을 느꼈다.

안 그래도 직계와 방계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불만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리클 리겔 형제까지 가세해 방계의 구심점이 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두 형제를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가문에서 퇴출시켜 버렸다.

사실 그들이 가진 힘과 재능을 생각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적어도 마이스터 급, 크게 보면 그랜드 급까지 넘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을 고작 자신들의 권력과 직위 때문에 내쫓는다니.

가문 전체로 보면 매우 큰 손실이라 하겠지만, 그들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문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이 오래 유지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형제는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그들의 부모는 두 형제와 달리 아주 평범한 수준이었던 터라 인베이더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지 오래였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 상황에서, 두 형제는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야 했다. 그야말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가문의 직계들마저 경계할 만큼 막강한 잠재력을 타고나긴 했지만, 잠재력은 어디까지나 잠재된 가능성일 뿐이다. 완전히 개화하지 못한 잠재력은 지금 당장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다 보니 잠재력도 조금씩 깨어나면서 그들은 나름대로 행세할만한 실력자가 되었다. 물론 의뢰를 받아서 해결해주는 용병과 다름없는 처지긴 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것조차 힘겨웠던 시절에 비한다면 많이 나이진 편이었다.

하지만 두 형제는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보다 성공해서 자신들을 버린 크리스첸 가문이 후회하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의뢰를 받아 외출했던 리겔이 돌연 무서운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무엇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형, 나가서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리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그래, 일이 있긴 있었지. 아주 기가 막힌 일이었어.”

리겔이 자조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는 진한 원념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리클 그거 아냐? 우린 그동안 속고 있었어.”

“속다니, 뭘?”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

뜬금없이 던져진 질문에, 리클은 무슨 소린가 싶어 대꾸했다.

“전쟁터에서 돌아가셨잖아. 인베이더 때문에.”

“그래, 그랬지. 하지만 그게 전부 가문의 윗선에 의해 의도된 거라면?”

“의도됐다고? 형 지금 그 말 진짜야?”

의도됐다는 그 말에 리클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해보지 못했던 일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건가?

그러자 리겔이 끓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애당초 우리 부모님 실력으로는 갈 수도 없는 그런 위험한 전장이었어. 그런데 그곳에 버젓이 파견됐지. 그리고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하셨고.”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리클에게, 리겔이 밴더를 통해 어떤 데이터를 전송해 주었다.

“그냥 내가 과민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이건 증거도 있어.”

리클은 그 말이 무섭게 즉시 데이터를 열었다. 그리고 어떤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가문의 어른으로 행세하는 직계 원로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보호자인 부모를 위험한 전쟁터로 내몰아 제거한 뒤, 두 형제를 가문 밖으로 내보내자는 것이었다. 더 이상 놔두다간 그들 부모를 중심으로 직계에 대적하는 방계의 파벌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게 두 형제의 부모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된 이유였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들의 부모는 크리스첸 가문 사람이라 해도 고작 해봐야 C랭크도 못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전쟁터로 내몰려 죽임당해야 했다고?

온 몸이 경악과 분노로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렸다. 무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와 같은 무서운 진실을 알게 되다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리겔이 싸늘한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리클, 그게 전부가 아니야.”

“전부가 아니라면? 또 뭐가 있는데?”

아직도 뭔가가 더 남았다는 사실이 무서울 정도다. 리겔이 리클에게 다가왔다.

“잘 봐.”

리겔의 손이 리클의 몸 이곳저곳을 두들겼다. 그냥 두들기는 게 아니었다. 영력을 일정 패턴과 부위에 주입하는 어떤 수법이었다.

그러자 리클의 몸 곳곳에 기이한 술식 같은 게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게··· 뭐야? 내 몸에 왜 이런 게?”

검붉은 문양으로 빛나는 술식들이 너무도 불길하게 느껴졌다. 한 눈에 봐도 그게 자신에게 이롭게 작용하지 않을 거란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리겔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봤지. 우리 몸에는 이런 금제가 있었어. 놈들이 우리 몰래 심어놓은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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