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63화 (164/448)

7권-13화

‘하긴 능력과 개인의 성격은 별개의 문제니 그러려니 해야겠군. 실력만 확실하다면야······.’

그렇게 납득한 이진운은 그녀에게 다시 확인 차 물었다.

“그리고 길안내는···. 확실하겠지?”

“예, 저 배달 서비스가 유명한 건 바로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항로들을 많이 알기 때문이거든요. 일반적인 워프 항로와는 다른 항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거리와 시간을 아주 많이 단축할 수 있어요.”

“그런 비밀을 일개 민간 운송업체가 아는 것도 좀 이상한데.”

이진운이 의심스럽다는 듯 말하자, 리스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화답했다.

“글쎄요. 우주는 넓어서 그런지, 그런 비밀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이 꽤 있는 편이거든요. 저처럼 큰 기업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정보들이 꽤 많이 들어와요.”

“그래?”

하지만 리스티의 말을 듣고 나서도 자못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합 상층부에서도 알지 못하는 독자적인 항로를 일개 수송업체가 알고 있다니. 그들이 보유한 독자적인 노하우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엄청난 사안이 아닌가.

심지어 그런 식으로 보유한 비밀 항로가 한두 개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스케일이 워낙 우주적인 규모라서 이런 경우가 가능한 건가?’

지구의 일류 기업들도 기술력이든 뭐든 각 계열에서 독자적인 노하우를 보유하기 마련이었다. 이 운송업체도 그런 경우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비밀 항로의 가치가 너무 크긴 하지만··· 그에 대한 건 나중에 생각해 봐야겠군.’

지금은 라인트라의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어떻게든 우세로 돌리느냐가 더 중요했다. 지금도 연합은 밀리고 밀리는 연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나마 천외오천을 비롯한 강자들 때문에 그 정도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 그들마저 없었다면 위상전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술 앞에서 비참할 정도로 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전국을 뒤엎을만한 패가 나오지 않는 이상 연합의 패배는 빠르든 늦든 기정사실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라인트라의 울레이브 주역까지 예정된 시간보다 더 빠르게 도착하려면 비밀 항로를 알고 있는 저 라이트닝 배달 서비스인지 뭔지 하는 미심쩍은 운송업체를 의지하는 수밖에.

확실히 전문업체는 전문 업체였다. 그렇게나 많던 물자들이 불과 2시간 만에 다 실렸다. 전장만 무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수송함을 가득 채울 정도의 물자를 그 짧은 시간 내에 실어낸 걸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저 많던 걸 벌써 다 싣다니···. 그렇다고 로봇들의 성능이 월등히 더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런 이진운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운송업체에서 나온 그 사내가 영업맨 다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물자를 싣는 것도 철저한 계산이 필요한 법이죠. 옮겨야 하는 대상의 크기나 면적, 무게에 따른 동선의 최적화. 저희 라이트닝 배달 서비스는,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확실히 챙겼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당신 이름이 뭡니까? 뭐라 불러야 할지 애매해서 말입니다.”

이진운의 말을 듣고서야 사내는 자신을 소개했다.

“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제 이름은 [리클 데이미안]입니다. 라이트닝 배달 서비스에서 현재 CEO를 맡고 있죠.”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직책에 이진운이 깜짝 놀라 물었다.

“예? CEO라고요? CEO씩이나 되는 분이 현장에서 뛰는 겁니까?”

“평소 같으면 다른 부하 직원들을 보냈겠지만, 이번 건은 꽤 크잖습니까. 이런 건 제가 직접 챙겨야지요. 게다가 저희 같은 소규모 업체에선 CEO라고 해서 일개 직원들과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도 않은 편입니다. 저기 계신 리스티 님의 소레디안 컴퍼니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곳이니까요.”

그렇지만 이진운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준대형 수송함만 무려 수십 척을 보유한 회사였다. 연합 내에서 봐도 운송업계에선 손꼽을만한 규모인 주제에 무슨 구멍가게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다니··· 역시 영업인다운 과장이 섞여 있었다.

어쨌든 이진운은 그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울레이브 주역에 도착할 며칠 동안 함께 해야 할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리클과 악수를 나눈 순간, 이진운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영능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공간 계통의 이능이군. 그것도 꽤 상위의······.’

아마도 연합의 상층부조차 알지 못하는 비밀 항로를 다수 개척한 것도 바로 그의 능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였다.

“그럼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잘 부탁하겠습니다.”

“예. 믿고 맡겨주세요.”

어느덧 물자의 탑재가 끝나고, 인피니티 킹덤도 슬슬 떠날 채비를 갖췄다.

이진운 일행이 막 카멜롯에 탑승하려던 그때, 배웅을 나온 젠다인 대장이 자못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음 같아선 병력이라도 지원해주고 싶은데, 여기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더군. 미안하네.”

“별말씀을요. 지금 해주신 것만 해도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공단설비도 무려 일주일씩이나 빌려주셨잖습니까.”

하지만 젠다인 대장은 그래도 제대로 된 보답을 못한 것이 자못 미안한 모양이었다.

“그거야 연합에 필요해서 한 것 아닌가. 자네가 우릴 살려준 거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괜찮습니다. 지금은 도이벤 행성을 복구하는 데에만 전념하세요. 나중에 여유가 되면 찾아올 테니 그때 문전박대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이진운이 나중에 찾아온다고 하자, 젠다인 대장은 웃고 말았다.

“후후, 얼마든지 찾아오게. 그땐 내 후히 대접하지.”

이진운 일행이 함 내로 들어서자, 해치가 슬슬 닫히기 시작했다. 젠다인 대장이 이진운을 향해 마지막으로 외쳤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게. 내 힘이 닿는 만큼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네.”

그것을 끝으로 인피니티 킹덤은 일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리클이 끌고 온 준대형 수송함을 선두에 둔 인피니티 킹덤은 금세 대기권을 돌파하더니 어느덧 우주 영역에 들어섰다.

카멜롯의 메인 브릿지에 있는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리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 다들 준비됐지요? 그럼 시작합니다!]

우우웅!

그 순간, 우주 공간 위로 작은 파문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인피니티 킹덤의 워프엔진에 의해 생성되는 변동 중력원이 아니었다. 바로 리클의 수송함에서 발생되는 것이었다.

이진운은 그 순간, 이번 워프 진입 과정이 기존의 것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웜 홀을 여는 방식부터가 완전히 다르군. 기존의 워프는 시스템에 지정된 좌표와 좌표를 서로 잇는 형태라면, 이건 강제로 비집는 것 같잖아.’

물론 변동 중력원을 발생시키는 힘은 수송함의 워프 엔진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열기 위한 촉매로 작용한 것은 리클의 이능임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래, 이와 비슷한 능력을 분명히 봤었지.’

그랬다. 전에 경험해 봤던 수법이었다. 다만 지금과 달리 적으로 만났었다는 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진운이 리클을 의심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하지만 동일 인물은 아니군. 영자 패턴부터가 다르니···. 하지만 무슨 연관은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선 이능을 다루는 방식과 형태가 이렇게까지 비슷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웜 홀의 입구가 열리자마자, 수송함을 시작으로 인피니티 킹덤이 차례차례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워프와 비교하면 조금 불안정해 보이긴 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문제는 리클에게 들었었기 때문에 메인 브릿지에 있는 인원들 중 별다른 우려의 기색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고오오!

소용돌이치듯 휘도는 웜 홀의 내부를 따라 인피니티 킹덤이 빠른 속도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력필드의 흐름이 조금 흐트러지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이 항로가 공식적으로 드러난 항로가 아닌 이상 조금 불안정한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진입 성공! 앞으로 하루 꼬박 이동하면 도착하게 될 겁니다.]

리클의 그 말에 아르페인이 작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정말 대단하군요. 다른 항로로는 무려 5일이나 걸리는 거리를 하루로 단축하다니···.”

[이게 다 저희가 가진 노하우지요. 이거 따라하시면 큰일 납니다. 자칫 잘못하면 웜 홀이 무너져서 시공간의 틈새로 빠져들어 미아가 될 수도 있어요.]

“이런, 이 좌표를 기억해뒀다가 이용해볼 생각이었는데, 아예 시도도 하질 말아야겠군요.”

[그래서 저희 밥벌이가 계속 될 수 있었던 거죠. 안 그랬으면 이 항로들을 다른 업체들

한테 죄다 털렸을 겁니다.]

아르페인과 리클의 대화를 듣던 이진운이 갑자기 불쑥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긴 그렇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리클 당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거니까.”

[예? 이진운 씨?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리클은 짐짓 모른 척 그렇게 대꾸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당황이라는 감정이 여실히 떠올라 있었다. 그건 이진운이 정곡을 찔렀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난 분명 감지했었다. 시공간을 비튼 순간, 당신이 가진 이능이 거기에 작용하고 있던 것을.”

[하하··· 눈치 채시다니 대단하시군요. 그게 제 장사 수단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더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리클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진운은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나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겠지. 당신과 같은 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야. 그때 그와 비슷한 수법을 겪었지. 하필이면 적으로 만나서 좀 짜증스러웠지만.”

[뭐라고요? 저와 비슷한 능력을? 그게 정말입니까?]

그제야 웃음을 지운 리클이 심상찮은 얼굴로 물었다. 이진운의 던진 그 말에 의심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와 비슷한 능력자를 봤다고 하는 순간, 사실여부를 묻지도 않고 그 사람의 신변부터 묻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이진운은 대답 대신 그에게 먼저 추궁하듯 물었다.

“그전에 당신부터 말해! 정체가 뭐지? 그 자와 무슨 관계인지 제대로 말을 해 보시지?”

시공간을 주무르고 자유롭게 공간을 이동하던 가면인. 그자와 리클의 능력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비록 영자 패턴이 다른 만큼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연관성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지금 리클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여실히 보였다.

[······.]

리클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앞으로 나선 건 바로 리스티였다. 그녀가 이진운에게 조금 심란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하아··· 아저씨. 리클, 그 사람을 의심할 필요 없어요. 저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잘 안다고?”

무슨 소린가 싶어 그녀를 돌아보자, 그녀가 난감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예. 저도 잘 아는 가문의 사람이거든요.”

“가문이라고 언급할 정도면··· 제법 유명한 곳인가 보지?”

“예, 크리스첸 가문이니까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