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62화 (163/448)

7권-12화

레이첸이라면 2법 정도는 성취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부동심결을 더욱 갈고 닦다 보면 수년 내에 가능할 거라 예상했을 뿐, 불과 3일만에 도달할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물론 레이첸이 평범한 또래의 아이들과 달리 많이 힘든 경험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뭔가 특별한 변수가 있지 않고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레이첸,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

이진운이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물었다. 그러자 레이첸도 더 숨길 생각이 없었는지 순순히 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이야기를 다 듣고난 이진운이 무겁게 중얼거렸다.

“카르테인이라, 그 존재가 결국······.”

“뭐 위험한 고비는 있었지만, 덕분에 얻은 건 많았어. 부동심결도 꽤 늘었고, 다룰 수 있는 힘의 크기도 비교할 수 없이 커졌어. 전에 비한다면 거의 2배 이상일걸?”

지금의 성취를 기뻐하는 그 모습에, 이진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넌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아직 잘 모르는군.”

“내 왜 몰라, 그걸. 나도 목숨을 걸고 시도한 거야. 어차피 이런 식으로 수명이 줄어드느니 빨리 부동심결을 성취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해서 시도한 거였어.”

물론 반박하는 그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레이첸의 자질이 제법이긴 했지만 부동심결의 성취 속도보다는 수명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랐을 테니까.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레이첸이 카르테인의 시련을 받아들인 게 얼마나 위험한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목숨만 오가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영혼 그 자체를 저당 잡힐 수도 있는 그런 문제였어.”

“영혼이?”

레이첸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혀 짐작조차 못한 모양이었다.

“만일 네가 시련에 실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죽을 거라 생각했지, 달리 생각해보진 않았어.”

이진운은 내심 혀를 차고 말았다. 생각이 어느 정도 깊은 줄 알았더니, 예상 외로 단순한 녀석이었다.

“그 시련은 네 정신과 영혼을 시험하는 시련이었다. 실패했다면 네 정신과 자아는 완전히 말살됐겠지.”

“그 정도는 나도 각오하고 있었어. 그래서 죽게 되는 거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진운도 그게 레이첸의 죽음으로 끝나는 문제였다면 이렇게 붙잡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다. 네 정신은 죽었겠지만, 육체는 멀쩡히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잖아. 자아가 사라진 네 육체는 아마도 카르테인이 조종할 수 있는 인형으로 탄생됐을 거다.”

“뭐? 그 말 정말이야?”

“그래, 초월자들이 종종 잘 써먹는 방법 중 하나지. 특히 마왕과 계약한 흑마법사들이 말이야. 원한이 골수까지 파고든 작자들은 자기 자신을 바쳐서 완성되는 게 바로 마왕 강림이고.”

그 말을 듣고서야 레이첸도 무슨 소린지 대충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강을 건넜었는지도 새삼 알 수 있었다.

“특히 너희 혈족은 카르테인이라는 초월자와 계약까지 맺어진 상태니 더할 나위 없었겠지.”

물론 이진운이 살았던 전생 시절에는 마왕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마선이나 요선들은 존재했다.

놈들은 접신을 통해 인간을 유혹하고, 그들의 영혼과 육체를 손에 넣어 움직였다. 그리곤 인간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그래도 레이첸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카르테인에게서는 그런 악의는 느껴보지 못했어. 인간에 대한 증오는 있었지만, 그것도 애증에 가까웠고.”

“정말 뭘 모르는군. 그런 애증이 더 무서운 거다. 차라리 그냥 인간을 싫어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이진운도 카르테인의 속내가 어떤지는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레이첸의 말이 사실이라면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애증이라니···’

인간에게 애증을 품은 존재가 당장은 바이우드 가문에 힘을 빌려주고 있다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던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레이첸 너, 오늘부터 내 제자해라.”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레이첸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도이벤 행성으로 거대한 수송함 한 척이 진입해 들어왔다.

이미 이진운에게 기별을 받은 도이벤 사령부에서는 수송함이 강하하는 것을 통과시켜 주었다.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앉는 수송함의 모습에 아리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김새가 아주 특이하네요. 수송함 맞아요?”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특이하다고 해도, 이진운이 그걸 알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본 것은 대부분 전함이었고, 아는 수송함은 몇 종류 되지도 않았다.

그러니 저게 특이한 건지 아닌 건지 구별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리스티가 대신 입을 열어 말해주었다.

“개조되어서 그래. 저건 보통 수송함이 아니거든.”

“개조된 거라고?”

이진운도 궁금한 듯 되묻자, 리스티는 수송함의 형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 보세요. 생김새가 아주 날렵하잖아요. 그리고 추진 제네레이터도 그렇고요. 고속형에나 쓸 법한 제네레이터를 대형화 시켜서 달아놨어요.”

“흐음, 그런 차이가 있었군.”

그 말을 듣고서야 이진운도 그 차이가 비로소 눈에 보였다. 일반적인 수송함은 많은 적재물자를 나르는 데에만 치중되어 있다면, 저 함은 보다 빠르게 기동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래도 의문을 다 풀지 못했는지, 아리엔이 계속해서 물어왔다.

“그런데 왜 그런 개조를 하는 거야? 저 정도 규모의 수송함을 개조하는 비용도 사는 것과 거의 맞먹을 것 같은데 말이야.”

“호위함 없이 단독으로 수송한다고 생각을 해봐. 어떤 위험이 있어도 저 한 척으로 극복해야 한다면 저런 개조는 당연하지 않겠어? 해적이든 뭐든 나타났을 때 얼른 뿌리치고 달아나려면 빠르기라도 해야지.”

“아, 그렇구나.”

마침 수송함이 정박 도크에 완전히 착륙하였다. 리스티는 그 수송함을 향해 시선을 둔 채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 수송함은 아주 특별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송함의 해치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헬멧과 고글을 쓴 젊은 사내였다.

그자는 해치에서 뛰어나오자마자 특이한 포즈를 취하더니 모든 사람이 들으라는 듯 외쳤다.

“400년 전통 배달 서비스! 전쟁터든 어디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배송해 드립니다!”

과장된 몸짓과 구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조차 없는지, 태연스럽게 호객 행위를 해댔다.

“혹시라도 귀중품이나, 아주 위험한 곳에 배달할 일이 있다면 저를 불러주세요.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물론 안전수당이나, 위험수당은 따로 부가되니 그점은 고려 해주세요. 라이트닝 배달 서비스! 번개처럼 달려가겠습니다.”

“······.”

도크 주변을 지키는 병사들조차 다들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그만큼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배달 서비스? 저런 것도 다 있었어?”

이진운도 일순 기가 막혀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구에도 퀵 서비스가 있긴 하지만, 이건 퀵 배달함이라니··· 우주 스케일이라서 그런지 적응이 안 되는군.”

마침 이곳에 나와 있던 젠다인 대장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어왔다.

“저건 대체 뭔가? 뭔 저런 황당한 게······.”

“리스티가 부른 겁니다. 이번에 생산한 것들을 싣고 갈 외주 수송함이죠. 저도 자세한 건 모르니 물어보셔도······.”

이진운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그의 심정도 젠다임 대장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먼저 리스티가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를 알아본 사내가 환히 웃는 얼굴로 얼른 달려왔다.

“어서 오세요. 빨리도 왔네요. 거리가 거리인데. 일주일만에 온다고 하더니 진짜로 올 줄이야.”

“저희는 약속이 신용 아닙니까. 특히 리스티 님의 주문이라면 얼른 달려와야죠. 큰손이 부르는 데 달려가지 않을 사람 있나요?”

그녀를 큰 손이라 부르는 걸 보면 그녀가 소레디안 컨퍼니의 주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녀를 대하는 모습만 봐도 그러했다. 저 사내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게 틀림없었다.

리스티는 사내에게 푸념하듯 불만을 표했다.

“네네. 뭐 다 좋은데, 등장 문구와 포즈 좀 어떻게 안할 순 없나요? 부른 사람이 더 민망하잖아요.”

“에이, 남들과 차별화 된 게 필요한 시대잖아요. 개성이죠 개성. 이걸 빼면 저희에게 남는 게 있나요.”

“그것도 어느 정도지······.”

하지만 더 불평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전에도 이야기 했었지만, 고쳐지지 않는 걸 보면 고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으니까.

“아무튼 날라야 할 물건이 뭡니까? 절 부르신 걸 보면 꽤 귀하고 위험한 물건인 모양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자세한 건 알 거 없고요. 일단 실어 날라만 주세요.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최단 경로를 좀 안내해 주셨으면 하네요.”

그 말에 사내의 두 눈이 번뜩였다.

“라인트라 최전선 울레이브 주역까지 말입니까?”

“그래요. 좀 부탁드려요. 최대한 빨리 가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리스티의 요청에, 사내가 갑자기 밴더의 홀로그램 창을 열더니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단순 배송이 아니라, 길안내까지 해야 하다니··· 요금이 더 나오겠는데요? 추가요금이 꽤 많이 부가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밴더의 창에 떠오른 금액을 내비치는 사내. 거기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적혀 있었다. 단순 배달에 길안내 비용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비쌌다.

하지만 리스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상관없어요. 그 정도 돈 낼 능력은 있으니까.”

“역시 소레디안 컴퍼니의 주인다우시군요. 뭐 좋습니다. 저야 큰 돈 벌고 좋지요. 최대한 빠르고 안전한 길로 안내해 드리지요.”

“그럼 시작하세요. 실어 날라야 짐부터 싣죠?”

“예,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리스티의 말에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는 사내. 그가 몇 가지를 원격 조작하자 곧바로 수송함 안에서 대량의 로봇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자를 함에 탑재하는 수송 전문 로봇이었다.

그것들은 리스티가 알려준 곳에 쌓인 물자들을 빠른 속도로 수송함 안에 적재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일반적인 수송용 로봇들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옆에 있던 이진운이 리스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믿어도 괜찮은 거냐?”

“예, 하는 행동은 경박해도 믿을 수 있어요. 400년 역사 운운이 허튼 소리가 아니거든요. 정말로 그 정도로 오래 됐어요. 전쟁터든 어디든 배달 100%의 성공률을 자랑하거든요. 이 계통에 대해 아는 분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서비스에요.”

“···그래?”

너무 가볍고 경박해서 당최 믿음이 가질 않았지만, 리스티가 그렇다고 하니 일단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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