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58화 (159/448)

7권-08화

“물론입니다. 제 이름을 걸고 장담하죠.”

이진운의 명성과 위치는 생각보다 대단한 편이었다. 물론 그 명성이 군부 쪽에 편향된 편이긴 했지만, 관리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가 자신의 이름까지 건다고 한다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튼 젠다인 대장께서는 설비만 제공해주시면 됩니다. 따로 설비를 통제해줄 인력도 필요하지 않고요. 그건 제가 알아서 충당하지요.”

“인력조차 필요 없다니? 전문 인력이 없으면 제아무리 자동화가 되어 있다 해도 시설을 가동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제아무리 첨단 과학과 마도공학에 의해 발전되었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규격화 된 물자를 생산할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자동화 설비라 하더라도, 그것의 설정이나 규격을 전문가가 따로 일일이 변경해주지 않으면 이진운이 말하는 특제품을 생산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괜찮다며 말했다.

“다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렇다면야······.”

하긴 대책이 없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납득한 젠다인 대장이 진심으로 궁금해 물었다.

“그런데 굳이 왜 이곳에서 생산하려고 그러는 겐가? 이곳 말고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그가 의문을 표하자, 이진운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대답해주었다.

“기밀 문제 때문입니다. 이번에 적의 허를 찌르려면 마지막까지 비장의 패에 대한 것은 최대한 비밀로 해야 하니 말입니다.”

기밀이란 말에 젠다인 대장도 더 이상 묻기 어려웠다. 도이벤 행성을 책임지고 있는 위치에 있는 그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기밀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딱 한 가지였다.

“비장의 패라.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숨기려는 걸 보면 관리국 최상층에서 내려온 지시인가 보지?”

“······.”

이진운은 그에 답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강의 사정을 눈치 채기에는 충분했다.

젠다인 대장은 알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 알겠네. 이 일에 대해선 함구하기로 하지. 나만 알고 있는 비밀로 하겠네. 그리고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도 이번 전투로 일부 기능이 망가져서 당분간 수리하는 걸로 처리해 두도록 하지. 그러면 접근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 자네도 일 하기가 한결 더 쉽겠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자네와 인피니티 킹덤이 해준 걸 생각하면 이 정도야 별 거 아니지.”

젠다인 대장을 설득한 이상 더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만찬이 끝난 다음날, 이진운은 곧바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단으로 향했다. 젠다인 대장이 말한 것처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헤에, 여기가 도이벤 행성의 공단이군요.”

리스티가 주변을 둘러보며 두 눈을 빛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공장들의 모습은 그만큼 압도적이었으니까. 뭔가를 연구하고 만들고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는 리스티에게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장난감은 없을 것이다.

이진운은 눈앞에 펼쳐진 공단의 모습에 놀라서 혀를 내둘렀다.

“엄청나군. 이 정도 면적과 규모면 서울 같은 도시 십여 개는 다 들어가고도 남겠는데.”

하긴 라인트라 주역에서 싸우는 연합 함대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단들 중에서도 최대 규모라 불리는 도이벤 공단이었다. 이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오늘 일을 돕기 위해 같이 동행한 듀렌 박사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동감일세. 내 지금까지 살면서 이만한 규모의 공단은 처음 봤네. 대량생산을 자랑하는 우리 아메리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역시 우주가 넓긴 넓군.”

하지만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라인트라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합과 인베이더와의 전투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 한시라도 빨리 특제 미사일을 생산해서 놈들의 위상전환을 파훼해야 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난 어디까지나 리스티 양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네.”

듀렌 박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리스티의 뒤를 따라 공단의 중앙 시스템에 접근했다.

이 공단의 모든 생산 시스템은 인력의 힘이 필요 없도록 자동화 되어 있었지만, 기존의 규격과 다른 물자를 생산하려면 전문가가 따로 설정 값을 변경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리스티는 시스템을 부팅시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설정 변경에 들어갔다.

“그럼 시작하죠. 박사님은 어제 말한 대로 해주세요.”

“그러지.”

그때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

리스티가 먼저 시스템 설정의 핵심 제어를 변경하고, 그 다음 세부 변경 사항들을 듀렌 박사가 수정하는 방식이었다.

이진운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런 눈으로 듀렌 박사를 응시했다.

‘벌써 이 정도로 적응하다니··· 듀렌 박사의 능력도 장난이 아니군.’

연합이 가진 과학기술 중 상당수를 습득한 듀렌 박사였다. 다른 지구 출신의 과학자들이 아직도 기초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천재성과 적응력은 가히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난 뒤, 리스티는 중앙 시스템에서 손을 뗐다. 그녀라 해도 1시간 동안 집중하고 있었던 건 조금 힘들었는지 작게 숨을 내쉬었다.

“휴··· 다 끝났어요. 이제 바로 생산만 하면 되요.”

“그래, 수고했다.”

“수고는요.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그렇게 말하면서 곧장 공단을 가동시켰다. 그러자 엄청난 규모의 공단의 자동화 설비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계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는 광경을 보니, 뭐라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불과 1시간도 지나기 전에 이미 10만 발이 넘는 미사일이 적재 창고에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생산해 나간다면 아마도 일주일 정도면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다 생산한다 해도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이걸 실어 나르는 것도 일이겠군.”

무려 천만 발이 훨씬 넘는 미사일이었다. 그만한 물량을 실어 나르려면 중형 전함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적어도 준대형 급 정도 되는 함이 필요했다. 그것도 전함이 아닌, 적재공간이 충분한 수송함이어야 할 것이다.

“대형 수송함도 빌려야 하려나.”

또다시 젠다인 대장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고 하니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염치없는 짓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전선인 라인트라에서 그만한 규모의 수송함을 수소문해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한 번 더 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그렇게 결정을 내린 그때, 일을 마치고 쉬고 있던 리스티가 불쑥 나섰다.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할게요.”

“네가? 어떻게?”

이진운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자, 리스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잖아요. 제가 어떤 회사들을 보유하고 있는지.”

“나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야. 대형 수송함도 물론 갖고 있겠지. 하지만 수송함이 라인트라까지 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데.”

그랬다. 이진운도 처음에는 리스티의 회사가 보유한 수송함을 대여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왜냐면 이곳 라인트라는 일반 거주 행성들이 밀집한 주역하고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워프 항법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최소한 이주일 이상, 최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한 시가 급한 상황에서 수송함 하나 때문에 그만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리스티도 그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곧바로 해법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빌리면 되죠. 가까운 곳에서요.”

“빌린다고?”

“예, 제가 보유한 기업들 정도면 인맥도 상당하거든요. 이 근처 성계에서 조금 수소문하면 대형 수송함 정도는 금방 빌려올 수 있어요.”

“그만한 규모의 수송함이라면 빌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놀고 있는 대형 수송함이 있을까?”

“물론 없겠죠. 하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르면 돼요. 대형 수송함을 운용해서 얻는 이득보다 더 큰 이득을 제시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걸요?”

“······.”

역시 생각하고 있는 스케일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그만한 수송함이라면 운송계약이든 뭐든 거래와 관련이 되어 있을 터였다.

그런 계약파기를 감수해도 될 만한 대가를 치른다는 건, 새 대형 수송함을 구입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결정하는 리스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아무리 담대한 이진운이라 해도 쉽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돈이 많으니 역시 할 수 있는 범위가 차원이 다르구나.”

그렇게 푸념하듯 내뱉는 이진운에게, 리스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벌었죠. 고작 돈 문제 때문에 연구에 차질이 생기면 좀 많이 기분 나쁘잖아요. 그래서 뭘 해도 돈 걱정 하지 않으려고 좀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이럴 때 쓸모가 있잖아요.”

“······.”

고작 연구하는 데 돈 걱정하지 않으려고 막대한 돈을 벌어서 우주에서 손꼽을만한 기업들을 사들이다니. 역시 리스티는 생각하는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이진운은 기가 막혀 혀를 내둘렀지만, 그와 달리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듀렌 박사였다.

“허허··· 나도 젊었을 적에 그랬어야 했는데. 리스티 양 덕분에 많은 걸 배우게 되는구먼.”

“연구를 하려면 지갑이 두둑해야죠. 그래야 파리들도 안 꼬이고요. 고작 쥐꼬리만 한 돈을 투자한답시고 제 연구에 간섭하려는 작자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러니까 제대로 된 연구를 하려면 자기 자본이 반드시 필요해요. 돈이 많으면 그런 날파리들을 다 쫓아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리스티는 더욱 흥이 나서 그렇게 떠들어댔다. 듀렌 박사와 공감하는 영역이 비슷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나도 그 경험 많이 해 봤지. 그래, 앞으로는 이 늙은이도 돈 좀 벌어야겠어.”

“오, 해보시게요? 그럼 초기 자금은 빌려드릴게요. 이율은 최저로 해서요. 박사님이라면 금방 버실 거예요.”

“뭐 돈이 될 만한 연구 주제로 개발에 성공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뭐 어렵지는 않겠지. 리스티 양이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네.”

“예, 제 기반도 괜찮은 편이니, 돕는 정도는 얼마든지요.”

리스티까지 돕기로 나섰으니,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듀렌 박사의 천재성이 상상 이상인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이진운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성향이 비슷해서 그런지 둘이서 아주 죽이 딱딱 맞았다.

‘이러다가 아메리칸 스타일의 기업 하나가 우주적인 규모로 탄생하겠군. 이거··· 좋게 생각해야겠지?’

과연 이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앞날이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저 좋게 되기만 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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