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57화 (158/448)

7권-07화

[이 자식이! 아직 이빨이 다 안 빠졌다 이거냐?]

안 그래도 거칠게 들끓던 기세가 분노의 영향으로 더욱 광포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격전은 탐색전으로 치부해도 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루클라를 바라보는 용성군의 눈은 시리도록 냉정했다.

[어리석은 것! 전장의 흐름도 읽지 못하는 그런 편협한 시야로 내게 대적하려 하다니.]

그렇게 내뱉은 순간, 용성군의 전신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에 휘둘려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이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유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기다리는 때가 되었다.

우우우우!

용성군을 중심으로 일어난 멸사기의 폭풍으로부터 강한 파장이 맥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빠른 리듬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그것을 감지한 루클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자신의 기운을 진동시키다니, 이게 무슨 소용이라고.]

에너지를 진동시켜서 파괴력을 증폭하는 수법이야 여럿 존재하지만, 지금 용성군이 하는 짓은 별 의미가 없었다. 에너지를 한데 집중시켜서 진동시키는 것도 아니고,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전부 진동시키다니···.

그만큼 위력은 강하겠지만, 자신과 직접 닿지 않게 거리를 두고 싸운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수법이 아닌가.

그러는 사이에도 용성군이 두르고 있는 멸사기의 진폭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것이 절정에 이른 순간, 그가 갈무리하고 있던 진동파를 해방시켰다.

[무저갱으로부터 울리는 만종의 소리가 울려 퍼지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내리는 ‘절멸의 심판’이라.]

두우우우우우우우!

그것은 마치 종소리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는 들릴 리 만무한 웅장한 소리가 모두의 귓전을 격렬히 뒤흔들고 있었다.

루클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이 현상에 크게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이건!?]

멸사기에 근간을 둔 막대한 영자 공진파! 그것이 울레이브 주역의 상당수를 뒤흔드는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위상전환에 의해 완전히 현실공간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던 인베이더의 함대 중 일부가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아앙! 콰아아아!

성대한 폭발과 함께 전함 수십 척이 동시에 불길을 토하며 굉침했다. 그리고 우주 공간에 나와서 싸우고 있던 인베이더들도 마찬가지였다. 돌연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더니,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루클라는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용성군은 아무 의미 없는 합을 주고받았던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과 손속을 다투면서 끊임없이 멸사기를 이 주역에 흩뿌렸고, 그것을 한순간에 공진시킴으로서 이 사태를 촉발시켰던 것이다.

그것이 용성군의 비기 중 하나인 절멸의 심판!

멸사기를 공진시킴으로서 그 성질을 극대화하고 대기 상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죽음의 기운까지 촉발시킴으로서 다수의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이 수법 앞에서는 인베이더들이 자랑하는 위상전환조차 무력했다.

[이 자식! 감히 날 앞에 두고 이딴 수작질을!]

[네놈의 우둔함이 네 부하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자, 보라! 네 어리석음의 결과를!]

루클라는 격노한 표정으로 소리 질렀지만, 용성군은 여전히 냉정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인베이더의 수많은 함과 거기에 탑승하고 있던 적들이 침몰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절멸의 심판은 넓은 영역을 한순간에 쓸어버리는 광역 공격인 만큼 나름대로 한계가 있었다.

준대형 이상의 전함은 절멸의 심판 속에서도 건재했고, B랭크 이상의 인베이더들도 좀 타격을 입었을 뿐 생명이 위태롭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베이더의 전력이 절멸의 심판 때문에 대폭 깎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루클라가 이렇게 분노해 날뛰는 것이다.

[죽여 버리겠다!]

그의 전신에 흐르던 영력이 무지막지한 형태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싸워 왔던 것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다.

루클라는 자신이 갖고 있던 비장의 한수로 용성군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잠시 멈칫 하고 말았다. 최후이자 최강의 일격을 준비하던 그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루클라에게 불현듯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 위화감을 무시할 수 없었던 루클라는 잠시 뒤 자신이 느낀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혹시 시선인가!?’

루클라의 눈동자가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향했다. 그러자 아주 멀리 떨어진 연합의 함대 방향에서 커다란 장총으로 이쪽을 겨누고 있는 어떤 존재가 보였다.

그 존재를 중심으로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묵직한 영력! 그것은 자신이나 용성군에 결코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총구를 겨누고 있던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곳은 나의 영역. 내가 쏜 탄환이 꿰뚫지 못하는 것은 없다.”

뜻 모를 말을 되뇐 순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기운이 총신으로 응집되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특정 형태로 가공되더니 곧 성대한 기세로 총구를 떠났다.

“카오스 이레이저(Chaos Eraser).”

남보랏빛 벼락이 우주공간을 가로질렀다. 그것은 빛보다도 더 빨라서 저격을 알아챈 루클라조차 미처 저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격이 향한 방향의 끝에 있는 것은 함대의 중심축에 존재하고 있는 거대한 준대형 함! 그것이 목표 대상이었다.

인베이더 함대를 둘러싼 위상전환은 여전히 건재했지만, 남보랏빛 섬광은 그 모든 것을 무시했다. 제아무리 다른 위상에 존재하는 공간에 걸쳐있다 하더라도, 다중 차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 탄환은 절대로 피할 수 없었다.

콰우우우!

일순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그 범위 안에 든 모든 것들이 휘말려 부서졌다. 칠흑빛 소용돌이에 갇힌 이상, 산산이 부서져 소멸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렇게 준대형 함 한 척과 그것을 호위하던 십여 대의 함이 순식간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인베이더 함대를 둘러싸고 있던 절대적인 방어의 상징인 위상전환도 동시에 해제되었다.

[크··· 하필이면 코어 함이!?]

이를 목도한 루클라가 탄식에 찬 신음을 터뜨렸다. 함대를 보호하던 위상전환이 해제됐다면 그 이유는 뻔했다. 위상전환의 중추 시스템을 맡고 있는 코어 함이 방금 저격에 박살났다는 뜻이었다.

그때부터 연합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공격조차 성공시키지 못했는데, 위상전환이 해제됐다면 더 이상 문제될 게 없었다.

그동안의 울분을 쏟아내겠다는 듯 연합의 함대가 막대한 화력을 쏟아내었다. 인베이더 함대는 그 공격 앞에 노출된 나머지 방어하는 데에 급급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루클라도 더 이상 싸움을 고집하기 어려웠다. 함대를 위상전환으로 보호해주던 코어 함까지 침몰한 지금, 일단 함대를 뒤로 물린 다음 조금 시간을 두고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원독에 찬 눈으로 용성군과 저격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코어 함의 저격. 정말로 노리고 한 짓인지는 모르겠다만···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 반드시 되돌려주지.]

그 말을 끝으로 루클라는 즉시 자신의 함대 쪽으로 사라졌다. 용성군도 굳이 뒤쫓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 잠시 우세를 점하고 있다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싸우기 벅찬 것은 연합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위상전환 때문에 방어에 집중하는 동안 누적된 피해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일단 아군도 뒤로 물려서 입은 피해를 수습하고 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때, 용성군 옆으로 저격수가 다가왔다. 코어 함을 성공적으로 저격한 사내는 바로 다름 아닌, 천외오천 중 일인인 연정운이었다.

그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간신히 물러서게 만들었군. 루클라라고 했던가? 만만치 않은 녀석이군. 앞으로 상대하기 까다롭겠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베이더 함대가 열세에 처하자마자 곧바로 후퇴를 선택하는 그 결단력이 더 무서웠다.

폭급한 성격과 달리 전장에서의 상황 판단력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때, 용성군이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래 걸렸더군. 그 때문에 피해가 너무 컸다. 안 그랬으면 이 기회에 놈들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을 텐데.]

“코어 함을 찾아내는 게 쉬운 줄 알아? 눈을 부라려가며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안구가 다 아플 지경이다.”

자신을 탓하는 듯한 그 말에 연정운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투덜거렸다.

코어 함만 찾아내 저격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저 많은 함대 중에서 코어 함 하나만 찾아내는 것도 어렵거니와, 위상전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공간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공격을 가하기 위해선 엄청난 기교가 필요했다.

만일 자신이 마탄의 사수라 불릴 만큼 그 방면에 특출하지 않았더라면 성공률은 1할에도 못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어쨌든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물러나게 했는데,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네. 똑같은 수가 먹힐 상대가 아니잖아.”

오늘 본 루클라는 생각보다 더 교활한 상대였다. 지금 같은 작전에 두 번 통용될 거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러자 용성군이 입을 열었다.

[관리국에서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했다.]

“조금 더 버티라고? 버티면 뭔가 뾰족한 수가 나오기라도 한데?”

[아마도. 국장도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끄응··· 그렇다면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면서 버텨 봐야겠군.”

연정운은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며 푸념하고 말았다. 용성군 성격에 그냥 허튼 소리를 할 리도 없으니, 관리국이 뭔가 중요한 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그렇게 양측 모두가 큰 피해를 입은 채로 그날의 전투가 마무리 되었다.

* * *

라인트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이진운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베네트 국장과 연락을 마친 그는 그날 만찬이 끝나는 대로 젠다인 대장과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설비의 대여를 부탁하였다.

“설비를? 군수 물자가 부족한가? 부족하다면 내 바로 채워주겠네만. 아직 창고에 남아 있는 물자들이 상당히 있는데 말이야.”

비축하고 있던 물자를 대거 풀어서라도 부족한 양을 채워 주겠다는 그 말에, 이진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제가 생산하려는 건 그런 규격화 된 소모품이 아닙니다. 특수품이지요.”

“특수품?”

“예, 이번 전쟁에서 사용할 것들인데, 이곳에서 따로 생산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좀 급합니다.”

이진운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젠다인 대장도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흐음, 자네가 도이벤 행성의 은인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네. 특히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설비는 더더욱 그렇지. 생산된 물자를 넘겨주는 건 모를까, 그걸로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걸 생산한다는 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걸 대량으로 생산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이번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좌우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자, 젠다인 대장도 더 고민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다시 확인 차 물었다.

“지금 그 말 확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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