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06화
예, 잘만 하면 이 전쟁의 전국을 뒤엎을만한 패라고 할 수 있지요.”
[으음······.]
그 말에 베네트 국장은 잠시 침음했다.
혹시나 싶어 건네주었던 핫라인 코드로 연락이 와서 혹시나 싶었는데, 설마 전쟁의 승패를 언급할만한 무언가를 가져왔을 줄이야.
혹시나 싶어 주변을 살핀 베네트 국장이 곧 입을 열었다.
[기밀유지는 확실하다고 내 장담하지. 이 회선의 존재는 자네와 나밖에 몰라. 내 부관도 알지 못할 정도니 말이야.]
그 말에는 이진운도 조금 놀라고 말았다. 국장이 가장 신뢰한다는 부관인 필리스 조차 알지 못할 정도라면 이 회선의 기밀유지는 확실하다고 봐도 좋았다.
만일 이래도 기밀이 유출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베네트 국장 본인이 실수로 누설하거나 혹은 그가 본래부터 인베이더의 간자였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국장님을 믿고 말하지요.”
이진운은 리스티가 말해준 그대로 설명했다. 인베이더들이 사용하는 위상전환의 정체가 무엇이고, 그 원리를 이용해 어떤 식으로 파훼할 수 있는지도.
다 듣고 난 베네트 국장이 조용히 감탄사를 터뜨렸다.
[호오, 그게 사실이라면 자네 말처럼 전국을 확실히 뒤엎을만한 패겠군.]
“리스티가 장담했으니 그렇게 될 겁니다.”
[역시··· 프론사이드 가의 두 천재라 이건가?]
리스티와 그 오빠라는 가이란 프론사이드의 명성이 어지간히 대단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마다 둘이 함께 언급되는 걸 몇 번이나 경험한 이진운은 가이란이 어떤 사람일지 조금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그 파훼법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뭔가?]
“총 세 가집니다. 하나는 이 상극의 원리를 적용한 술식이고, 또 하나는 이 술식을 탄환이나 미사일 등에 부여하는 거지요.”
[흐음, 이렇게 두 가지를 제안한 걸 보면 나름 장단점이 있겠군.]
“예, 술식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사용하기가 좀 어려운 편입니다. 고위 술사가 아니면 좀체 다루기가 어렵지요.”
[어느 정도인가?]
“적어도 7위계 이상 입니다. 흔히 마이스터라고도 하지요.”
[역시 쉽지 않군.]
연합이 보유한 마이스터 급의 마법사가 적은 건 아니지만, 그들만으로 라인트라에서 설치고 있는 인베이더 함대의 위상전환을 파훼한다는 건 역부족이었다. 실력고하는 둘째 치고라도 머릿수부터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진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곧바로 다음 차선책을 제시했다.
“그래서 미사일에 술식을 부여하는 방식을 생각한 겁니다. 효과는 직접 술식을 발휘하는 거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적어도 양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요. 물론 고위 술사가 없어도 된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사일 쪽이 낫겠군. 하지만 쉽지 않을 거야. 그만한 물량을 생산하려면 설비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기밀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거든.]
인베이더 놈들에게 확실하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게 기밀유지였다. 하지만 위상전환을 해제하는 미사일을 공식적으로 양산한다면, 분명 인베이더 놈들의 귀에 들어갈 게 분명했다.
그때, 이진운이 또 다른 제안을 던졌다.
“나름 방도가 있습니다.”
[뭔가?]
“젠다인 대장에게 부탁해볼 생각입니다. 도이벤 행성의 군수생산설비를 일정 기간 동안 빌리면 가능하겠지요.”
그 말을 듣고서야 베네트 국장도 일리 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이벤 행성이 어떤 곳인지를 다시금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아, 그곳이라면 가능하겠군. 인베이더 때문에 많은 게 부서졌다고 하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지?]
“부서진 것은 대부분 군사시설이었습니다. 그중 과반수가 인드라의 그물이었지요. 생산 설비나 공장 등은 대부분 무사한 편입니다.”
도이벤 행성은 최전선인 라인트라의 전진 기지이자, 그곳에서 싸우는 함대가 필요로 하는 군수 물자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군수요새였다. 그곳이 설비만 무사하다면 미사일의 양산은 충분히 가능했다.
“도이벤 행성을 위기에서 구해준 공이 있는 만큼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 그곳에서라면 기밀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겠군. 특히 설비를 일정 기간 동안 빌려서 사용하는 방식이라면 더더욱······.]
물론 미사일을 생산하는 과정이나 이유는 전부 극비로 붙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설령 젠다인 대장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젠다인 대장이 묻거나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내 이름을 언급하도록 하게. 그러면 막지는 않겠지.]
“예, 일이 어렵게 되면 그러도록 하지요.”
[그러면 조만간 다시 보지. 아마도 다음 만남은 전쟁터에서겠군.]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준비가 갖춰지면 나도 라인트라로 향할 테니, 자네도 그때까지 조심하게.]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종료되었다. 이진운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닫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계획은 섰는데, 공장 설비를 빌리는 게 문제군.”
빌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빌리는 이유와 목적을 말하지 않고 어떻게 빌리느냐였다. 젠다인 대장이 제아무리 이진운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공장을 아무런 이유조차 듣지 않고 빌려주진 않을 터.
‘우선 만나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할수록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에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이건 오래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 * *
라인트라의 최전선 중 하나인 울레이브 주역.
이곳에서 인베이더 대함대와 연합의 함대가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다.
하지만 치열하다고 하기엔 표현이 맞지 않았다. 연합의 함대는 필사적으로 방어에 집중하고 있었고, 인베이더 대함대는 거의 일방적이라 할 만큼 공세를 퍼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베이더들이 들고 나온 위상전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술 때문이었다. 연합 함대가 제아무리 포화를 쏟아내어도 통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전투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이렇게 방어를 굳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함대가 버티는 사이, 위상전환을 무시할 수 있는 실력자가 적진으로 뛰어들어서 피해를 주고 빠지는 방식으로 간신히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연합의 노림수를 알아챈 인베이더들이 곧바로 고위 인베이더들을 대적자로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선두에 선 자는 연합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자였다.
그 이름은 루클라 바이빌란.
추정되는 실력은 무려 그랜드 급, 아니 인베이더의 표기 방식으로 말한다면 신화 급으로 추정되는 인베이더였다.
그 자가 움직일 때마다 무수한 오버러들이 쓰러졌다. 연합에서도 나름 강자라고 힘주던 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하하! 참으로 하찮구나! 역시 버러지들! 이 정도 공격도 감당 못하면서 나섰는가.]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자, 연합에서도 결국 비장의 수를 내놓았다.
검은 갑주를 입은 자가 루클라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빛을 빨아들일 듯한 칠흑빛 갑주에, 하얀 뼈로 만들어진 해골 가면을 쓴 사내.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에서는 푸른 기화가 타올랐다.
그는 바로 천외오천 중 일인인 용성군이었다. 그가 쥔 검 끝이 루클라를 가리켰다.
[참으로 성가신 자로다. 어째서 순리를 거스르는가.]
저 무저갱으로부터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에, 루클라가 일순 흥미를 보였다.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 풍기고 있었다.
[호오, 제법 상대할 만한 녀석이 나왔군. 생김새를 보니 네가 바로 그 천외오천인가 뭔가 하는 놈들 중 하나구나!]
[나는 하산.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줄 자니라.]
그 말을 끝으로 용성군의 전신으로부터 칠흑빛 기운이 폭발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명을 가진 자라면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죽음 그 자체였다.
하지만 루클라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오히려 자신의 양 주먹을 맞부딪치며 호승심을 드러냈다.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는 그만하고 어디 싸워보자! 천외오천이란 이름이 과연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말이다!]
선공은 먼저 루클라로부터 시작되었다. 놈이 주먹을 내뻗는 순간 눈부신 섬광이 닥쳐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응수하는 용성군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전신을 둘러싼 기운이 한 자루 창처럼 응집되더니 그대로 공간을 꿰뚫었다.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굉음과 충격파가 이 일대 주역을 강하게 뒤흔들었다. 얼마나 강력하던지 함대의 대열마저 크게 흔들릴 지경이었다.
“세상에······.”
“이게 바로 그랜드 급의 전투인가?”
“진짜 괴물들이군.”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루클라와 용성군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우주공간을 질주하며 맞붙는 그 둘의 전투는 가히 신화의 영역에 있었다. 칠흑빛 기운과 붉은 기운이 서로 충돌하면서 무시무시한 여파를 흩뿌렸다.
그야말로 백중지세!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았다.
그렇게 격돌하던 중 루클라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영력이 주변을 가득 메우더니 곧 해일 같은 기세로 번져나갔다.
그것은 이전에 연합의 함대를 일거에 쓸어버렸던 그의 수법 중 하나였다.
대섬멸기(大殲滅技)
폭류파(爆流波)!
쿠콰콰콰콰!
어지간한 행성조차도 갈아버릴 듯한 압도적인 폭력! 그 앞에 모든 이들이 전율했다. 일부 사람들은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공격이 자신들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에 맞선 용성군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죽음의 기운 멸사기가 검신 위로 극한까지 압축되더니, 곧 횡소천군의 궤적을 따라 검은 물결이 되어 퍼져나갔다.
이것이 바로 용성군의 절기 중 하나인 멸세의 격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검은색 격랑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닿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생명이든 물질이든 존재 자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힘이다.
쿠구구구!
붉은 해일과 칠흑빛 해일이 충돌! 하지만 그 승패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그 둘의 힘은 거의 대등해서 어느 한쪽도 쉽게 열세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헌데 그때, 용성군의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루클라와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지금은 놈의 공격을 피하고 흘리면서 조금씩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자 루클라가 더욱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덤벼들었다.
[하!? 뭐냐? 이제 힘이 달리기 시작하는 거냐!]
그렇지만 용성군은 묵묵히 그 공격을 막고 받아내면서 버텨나갔다. 그리고 그런 형국이 대충 10분정도 유지되었을 때, 드디어 용성군의 반격이 이루어졌다.
검 끝에서 시작된 기운이 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되어 루클라를 강타한 것이다. 바로 이전에도 이진운 앞에서 한번 선보인 적 있던 수법 흑천의 포효였다.
[컥! 이런!]
루클라는 자신의 몸을 밀어내는 충격파 앞에 신음을 터뜨리며 물러섰다. 공격 자체가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예기치 못하게 허를 찔리고 말았던 것이다.
조금 거리를 두고 물러선 루클라가 사납게 으르렁대었다. 방심하다 한 방 먹은 게 창피해서였다.
[이 자식이! 아직 이빨이 다 안 빠졌다 이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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