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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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운 일행이 다시 함대로 복귀하는 사이, 전투는 모두 종료되었다. 위상전환을 가능케 해주는 코어 함을 잃은 인베이더 함대에게 인피니티 킹덤과 도이벤 행성의 막강한 전력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지막 항전을 위해 도이벤 행성 사령부에서 필사적으로 되살려낸 인드라의 그물은 막강했다. 비록 살려낸 것은 전체의 3할에도 채 못 미쳤지만, 그것만으로도 위상전환을 잃은 인베이더를 격멸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인베이더들을 전멸시킨 젠다인 대장은 이번 승리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피니티 킹덤을 직접 나와 맞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이진운 일행과 인피니티 킹덤의 승무원들은 도이벤 사령부의 수뇌부들과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젠다인 대장은 환하게 웃으면서 이진운과 일행을 반겼다.
“이 모든 게 자네들 공이네. 설마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정말 몰랐어. 도이벤 사령부는 오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걸세.”
“별말씀을. 이번 작전에서 저희의 비중이 크긴 했지만, 이것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이진운은 그렇게 겸양하긴 했지만,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제아무리 인베이더의 코어 함을 침몰시켰다 하더라도 놈들의 전력은 고스란히 남아 있던 상황이었다.
도이벤 사령부에서 필사적으로 인드라의 그물을 일부나마 복원하지 않았더라면 놈들을 격멸하는 데엔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솔직히 말해 이런 무모한 작전이 성공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어.”
“그럼 이번 작전에 대해 찬동해주신 이유는 뭡니까?”
“달리 방법이 없어서였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인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작전에 희망을 걸어봤던 거지.”
“그랬군요.”
이진운은 그 말에 쓰게 웃었다. 젠다인 대장이 그런 마음을 먹을 만큼 확실히 암담했던 상황이었다.
막강한 화력조차 무위로 만드는 비상식적인 위상전환 기술. 그것만 아니었어도 도이벤 행성 사령부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바이트 함대는 타격이 꽤 큰 모양이군. 이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은 걸 보면 말이야.”
“아직 소식 못 들으셨나 보군요. 지금 오콜로스 사령관과 바이트 함대의 핵심 사관들을 전부 구금해두고 있는 상탭니다. 그러니 참석 못할 수밖에요.”
“뭐? 구금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깜짝 놀라 묻는 젠다인 대장. 그도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오콜로스 그 작자가 제대로 저질러줬습니다. 소문대로더군요.”
이진운은 이번 작전 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강 설명해 주었다. 바이트 함대가 무단으로 작전지역을 이탈해 도주하려고 했던 사실을 밝힌 것이다.
“허어, 그런 일이 있었나? 우리가 본 건 바이트 함대가 무작정 돌진해서 인베이더 함대와 무모한 포격을 주고받던 모습뿐이었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중얼거리는 젠다인 대장에게, 이진운은 그 이유를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저희 쪽에서 손을 써서 그런 겁니다. 바이트 함대를 우회 회선으로 해킹해서 제어권을 빼앗았었지요. 안 그랬으면 바이트 함대는 아마도 도이벤 행성을 진작 이탈해 도망쳤겠지요.”
“하아··· 정말이지 이름값 하는군. 비겁자 오콜로스라더니, 이런 시기에 또 본색을 드러낸 건가?”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작전 지역을 이탈한 함대의 제어권을 강탈해서 적에게 강제로 돌진시킨 방식은 꽤 과격하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인피니티 킹덤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작전 지역에서 무단이탈한 바이트 함대와 오콜로스에 대한 분노만 치솟았다. 자칫 작전이 어그러지기라도 했다면, 도이벤 행성은 오늘로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상부에 말을 해 봐야겠군. 그런 작자를 아직도 함대의 사령관으로 놔두고 있다니! 대체 연합과 관리국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렇게 한탄한 젠다인 대장은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좀 있다가 전승행사를 할 걸세. 다들 힘겨운 전투로 지쳤는데, 실컷 먹고 마시기라도 해야지. 허례허식 따윈 없는, 순수한 만찬이니까 자네와 승무원들도 즐겁게 즐겼으면 좋겠구먼.”
“알겠습니다. 꼭 참석하도록 하지요.”
“그럼 그때까지 편히 쉬게.”
전투를 치르고 이제 막 돌아온 이진운 일행을 더 붙잡고 있기 미안했던지, 젠다인 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곧바로 물러났다.
그가 자리를 떠난 뒤 이진운은 일행과 함대의 승무원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다들 들었다시피 좀 있다가 전승행사가 열리게 될 거다. 그때까지는 자유 시간이니 각자 원하는 대로 편히 쉬다가 때 되면 참석하도록. 물론 참석이 필수는 아닌 만큼, 행사 시간 때에도 더 쉬고 싶은 사람은 쉬어도 된다.
“예!”
일단 불참해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참석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다들 전승행사 때 진탕 먹고 마실 생각으로 벌써부터 군침을 삼키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진운은 그런 모습에 피식 웃고는 그들을 해산시켰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뿔뿔이 흩어지는 승무원들과 달리, 아리엔들은 여전히 그의 앞에 남아 있었다.
“뭐냐, 너희들은. 가서 편히 쉬라고 말했는데.”
그러자 서로 눈치를 보던 제자들을 대신해 아리엔이 앞으로 나섰다.
“오늘은 수련 없나요?”
“뭐?”
“이 시간이 늘 있었던 수련 시간이잖아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말에, 이진운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내가 아무리 너희들을 강도 높게 몰아치긴 했지만, 이런 날까지 수련을 강요할 만큼 악덕 스승은 아니었다. 왜, 수련이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하기라도 해?”
“그런 건 아니지만··· 매일 하다가 오늘만 안하니까 뭔가 허전해서요.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엘레나와 클레브도 그래요.”
“······.”
이진운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도 이 상황에 대해선 조금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거··· 중증 수련중독인가? 단기간에 강해지도록 만들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다 생기는군.’
옆에 있던 리스티가 배를 잡고 웃었다.
“아하하하··· 아저씨 뭐에요, 이게! 수련 강박증이라니! 대체 얼마나 굴렸으면 아리엔이 저런 말을 다 해요?”
저 듣기 싫은 웃음을 강제로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잘못이 확실하다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루를 무려 1년이란 시간으로 길게 늘여서 몰아치다 보니, 이런 식의 수련 강박증이 생긴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당분간 내가 주도해 수련을 시키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수련은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하도록.”
그렇게 말하고는 억지로 해산시켰다. 안 그러면 수련시켜 달라고 끝까지 매달릴 것 같아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무 몰아치는 게 아닌데···”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강도 높게 수련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리엔들은 이번 전투에서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휴··· 일단은 나도 좀 쉬어야겠군.”
여기저기가 욱신욱신 쑤시는 게, 카룬다임과 싸우면서 무리한 부하가 닥쳐왔다. 게다가 심력 소모도 커서 머리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다시 카멜롯에 있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던 그때, 이진운은 뜻밖의 광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그보다 앞서 걸어 나가던 중 갑자기 고꾸라지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진운이 황급히 달려 나가 그 사람의 맥문을 붙잡았다. 그 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레이첸이었다.
“이 녀석!”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맥은 흔들리고 있고, 의식은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마도 카룬다임을 상대로 무리하게 힘을 끌어올렸던 부작용이 이제야 찾아온 듯싶었다.
이진운은 레이첸을 안아들고는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일단 어디 눕혀놓기라도 해야 응급처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당한 방을 찾아 급히 레이첸을 눕힌 이진운은 우선 상태를 정밀하게 살폈다. 진단을 위해 여러 가지 마법과 술법을 사용해 본 결과, 그가 아는 강신의 부작용과 거의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부작용이 일반적인 강신보다 훨씬 심하다는 건데······’
강신이 문제가 되는 건 바로, 힘을 빌리는 대상의 존재와 영격이 높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힘과 격을 빌리다보니, 자신의 혼과 영이 자연히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바이우드 가문이 겪는 문제도 바로 그와 같았다. 카르테인이라는 강대한 존재와 계약을 맺음으로서 막강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힘을 사용할 때마다 시들어가는 꽃처럼 생명을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몸을 어떻게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먹히지도 않겠어.”
이건 몸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과 정신의 문제였다. 상대의 격과 존재감에 침식당하면서 영혼이 짓눌리는 것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어지간 경우라면 술법으로 자아를 강화시키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됐겠지만, 이 경우라면 어림도 없겠지. 그렇다면······.”
자신이 아는 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걸 이 녀석에게 전수해야 하나?’
이진운은 잠시 갈등하고 말았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수하긴 했지만, 이걸 외부에 유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제자도 아닌 타인에 불과한 레이첸에게 이걸 전수하자니 조금 주저될 수밖에.
그렇지만 그는 곧 결단을 내렸다.
“너, 정말 운 좋은 줄 알아라. 이거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아니었다면 20도 못되어 단명했겠군.”
이진운은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레이첸에게 그렇게 내뱉고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그의 등 뒤에 자리한 명문혈 쪽에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노궁혈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 있던 막대한 진기가 노도와 같은 기세로 흘러들어갔다.
일반인이었다면 진기의 격류로 혈맥이 터져 죽었겠지만, 레이첸은 마이스터 급에 발을 들인 강자였다. 이 정도 진기의 흐름에 어찌될 만큼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기가 체내를 돌자 조금은 기운을 회복했던지, 조금씩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으음··· 여긴?”
주변을 돌아보고는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는 레이첸. 이진운은 그런 녀석에게 다급히 말했다.
“이제 의식이 돌아왔으면 잘 들어라.”
“아저씨? 지금 뭘 하는······?”
자신의 등 뒤에 손을 갖다 대고 요상한 행위를 하는 그 모습에, 레이첸이 당황해 했지만 이진운은 강압적으로 외쳤다.
“닥치고 들어! 널 살리기 위해 손을 쓰고 있는 거니까!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듣고 받아들여! 지금 네 몸을 돌고 있는 영력의 흐름을 읽으라고.”
“아!”
그제야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기운을 깨닫고는, 즉시 눈을 감고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이진운이 자신을 해할 이유가 없으니 일단은 그의 말대로 집중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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