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52화 (153/448)

7권-02화

콰아아앙!

조금 전까지 카룬다임과 사투를 벌였던 코어 함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성대한 폭발과 함께 파편화 되어 추락하고 있는 그 광경을, 이진운 일행은 그곳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고속함 내에서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코어 함이 침몰하면서 위상전환이 해제된 탓인지, 인베이더들은 혼란에 빠져 이진운 일행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물론 리스티가 고속함을 개조한 각종 스텔스 기능의 성능이 상상 이상으로 잘 먹혀든 덕분이기도 했다.

인베이더 함대와의 거리가 벌어진 뒤에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이 정도면 이번 작전은 그럭저럭 성공이라 봐도 되겠어.”

이진운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아리엔이 한탄하듯 말했다.

“대신 하마터면 죽을 뻔 했잖아요. 설마 성좌 급이나 되는 존재가 직접 지키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그러게 말이다. 그런 거물이 행차할 줄 누가 알았겠냐? 나도 처음엔 설마 했다.”

“이 사실이 위에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네요.”

물론 본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만한 거물이 직접 나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연합의 수뇌부들도 크게 들썩일 것이다.

헌데 그때, 전함을 조종하고 있던 리스티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전함의 운용을 자동항법으로 설정해둔 뒤 이진운들을 보러 들어온 것이다.

“몸들은 좀 어때요?”

“뭐 당장은 죽지 않을 정도?”

이진운이 그 답지 않게 농담조로 대꾸해줬다. 리스티는 픽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정도면 멀쩡하네요. 성좌 급이 나왔다면서요?”

“그래, 그 덕분에 죽는 줄 알았다. 본체에서 나뉜 단말이라던 데도 무시무시하더군. 그래서 조금은 무리를 했지.”

“아무튼 다행이에요. 아저씨와 여러분들의 활약으로 위상전환은 확실하게 해제됐어요. 그래서 우리 함대와 도이벤 행성군이 작전대로 지금 맹공을 퍼붓는 중이고요.”

리스티가 즉시 홀로그램 화면을 띄웠다. 거기엔 인피니티 킹덤과 도이벤 행성의 병력들이 위상전환이 벗겨진 인베이더 함대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포화를 쏟아내고 있는 장면이 비쳐지고 있었다.

그 결과 전황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보호하던 위상전환이 갑작스럽게 해제되는 바람에 인피니티 킹덤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금세 끝나겠군.”

“아마 2시간 안으로 끝날 거라 봐요. 위상전환 하나만 믿느라고 저것들 지금 실드 하나 못 쳤잖아요. 이 정도면 완전 무장해제당한 벌거숭이나 다름없죠.”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이진운은 조금은 긴장을 푼 얼굴로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댔다. 이제 자신이 전투에 나설 차례는 더 없을 거라 생각되어서였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바이트 함대는?”

“함대 전력의 반을 상실했어요. 남은 것들도 그다지 무사하지 못하고요.”

바이트 함대가 그만한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에 이진운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조차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작전대로 됐다면 절대 입을 수 없는 규모의 손실이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지?”

“왜긴 왜겠어요? 또 비겁자 본능이 발동한 거지. 방금 전에 연락이 들어왔는데, 먼저 미끼 역할을 한 오콜로스 사령관이 우리 함대와 교대한 이후 슬그머니 전장을 이탈하려고 했다더라고요. 그래서 아르페인 함장님이 바이트 함대 전체를 해킹해서 인베이더 함대와 강제로 맞붙게 했데요.”

리스티가 그녀답지 않게 냉소적으로 대답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레이첸이 눈매를 짜증스럽다는 듯 일그러뜨렸다.

“흥, 그래서 그 꼴이 난 거군. 건방진 작자 같으니. 감히 우리 가문의 이름으로 경고를 했는데도 그걸 무시했어?”

말은 그 정도로 했지만, 내심 화가 치미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돌아가기만 한다면 가문의 힘을 써서라도 그 비겁자인지 불사신인지 하는 작자를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가문의 이름으로 내건 경고를 무시한 작자를 그냥 놔둔다면, 앞으로 어느 누구도 바이우드 가문를 경시하게 될 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야 했다.

레이첸이 오콜로스를 어떻게 조져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이진운은 리스티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대충 사정은 알겠군. 그래서 그 뒤에는 어떻게 됐지?”

“그 덕분에 시간 끌기는 꽤 성공적이었나 봐요. 하긴 바이트 함대가 죽어라 달려들었으니 인베이더 함대 쪽에서도 별다른 의심을 할 여지도 없었겠죠.”

“···그랬군.”

그 정도만 들어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르페인도 겉으로 보기엔 점잖고 순하게 보이지만, 꽤나 강단 있는 녀석이었다.

아마 바이트 함대가 입은 실질적인 타격은 리스티가 표현한 것 이상으로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들은 일단 접어둔다 해도, 도이벤 행성을 공략해온 인베이더들의 위상전환은 아주 큰 골칫거리였다.

이진운도 거기에 생각이 미쳤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가 걱정이야.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다음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위상전환이라니··· 이건 정말 거짓말 같은 기술이군.”

인베이더놈들도 바보들만 모인 것은 아닐 것이다. 똑같은 수에 두 번씩 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위상전환이었다. 현실의 위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격이 먹히지 않게 하는 그 기술부터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연합은 놈들에게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때, 리스티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내놓았다.

“그 문제는 제가 해결했는데요?”

“뭐라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무슨 소리야? 지금 뭐라고 했냐고! 다시 한 번 말해봐!”

이진운 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녀와 데면데면 했던 레이첸조차 침착하지 못한 얼굴로 추궁하듯 묻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리스티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위상전환 해제할 방법을 찾았다고요.”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재확인하게 된 그들은 이것이 현실인가 싶어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나마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아리엔이었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온 덕분에 리스티의 이런 행동에 대해 나름 내성이 있어서 그나마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것이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좀 전까지만 해도 겨우 소형함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 만드는 게 전부였잖아.”

“아까와 지금은 다르지. 너희들이 열심히 싸울 때 여기 남아서 계속 분석하고 있었잖아. 그래서 방법을 찾아냈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정말?”

“난 이런 걸로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잖아. 과학과 영능은 절대 거짓이 없거든.”

“···그래, 그랬었지.”

단호한 그 말에, 아리엔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다른 것에 대해선 몰라도, 연구에 대한 게 관련되면 리스티는 결코 허튼 소릴 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리스티는 일행을 돌아보고는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인베이더들이 사용한 건 진짜 위상전환이 아니에요. 일종의 유사 위상전환이지.”

“유사··· 위상전환?”

이진운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위상전환이면 위상전환이지, 거기에 유사가 붙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러자 리스티에게서 그에 대한 추가 설명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동전의 앞뒤가 서로 맞닿지 않는 것처럼 같은 공간좌표에 존재하면서도 절대 닿을 수 없는 이면의 공간과 치환하는 게 위상전환의 원리죠. 하지만 인베이더들은 여기에 약간의 편법을 썼어요. 바로 이거요.”

리스티가 띄운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길쭉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건 무슨 갈색의 막대기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진운이 그것의 정체를 물었다.

“그게 뭐지?”

“세계수의 가지요.”

“세계수의 가지?”

“예, 아저씨도 전에 봤던 그 세계수에서 잘라온 물건인데요. 여기에는 정령계의 힘이 담겨 있어요. 그걸 이용해서 일정 공간을 유사 정령계로 만들어서 위상전환과 유사한 형태로 만드는 거에요. 쉽게 말하자면 정령계와 비슷한 패턴의 파장으로 공간을 변조시킨 뒤, 그것을 정령계와 동조시켜서 일정 공간을 이계처럼 그러니 현실에서 쏟아내는 공격이 안 먹힐 수밖에요.”

“허··· 그럴 수가!”

이진운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이제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 정체를 알게 되어서였다.

설마 세계수의 일부를 이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걸 잘도 알아냈네.”

옆에서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갸웃하던 아리엔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듯 리스티를 바라보았다.

“뭐, 평소에 이쪽에도 관심이 있어서 금방 알게 된 거야. 위상전환보다는 차원전환 쪽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한 뒤 그녀의 시선이 이진운을 향했다. 이제 그 모든 것을 이해한 이진운도 리스티 못지않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녀석들이 세계수를 매개로 위상전환을 구현했다는 건 그런 뜻이겠지?”

“예, 아저씨의 짐작 대로에요. 아직은 인베이더들도 실용화 단계는 아니라는 거겠죠.”

“그렇다면 약점은 뻔하겠군.”

그 구체적인 원리만 안다면 파훼법을 찾아내는 것도 금방이었다. 이진운도 금세 깨달은 듯 보이자, 리스티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역시 아저씨는 금방 알아채시네요. 맞아요. 약점은 뻔해요. 유사 위상전환은 세계수의 가지 힘으로 구현되는 거죠. 일종의 자연력을 이루는 속성간의 상생에 의한 구현일 거예요. 그렇다면 우린 속성의 상극화를 일으키는 거죠.”

“각 속성들이 서로 충돌하게 만든다 이거지?”

“예, 아저씨가 말해준 오행의 원리가 조금 도움이 되었죠. 오행상극이라면 아시겠죠.”

“그래. 잘 알고 있지.”

이진운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승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선 오행상생과 상극의 이치를 체득하는 건 기본이었다.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고선 제대로 된 무공에 입문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다면 잘만 하면 놈들의 허를 찌를 수 있겠군.”

“예, 중요한 시점에 이걸 잘 이용해야 해요. 그래야 위상전환만 믿고 방심하는 인베이더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죠.”

“아주 좋은 패가 생겼어.”

오행상극의 이치를 이용한 파훼법으로 놈들의 위상전환만 걷어낼 수 있다면, 인베이더들의 우위는 단숨에 날아갈 터.

이를 중요한 전국에서 사용한다면, 놈들을 라인트라에서 단숨에 몰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확실한 힘이 필요했다. 제아무리 중요한 패를 쥐고 있어도, 이걸 활용할만한 위치와 권력이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이진운은 머릿속으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조만간 국장과 연락을 취해야겠군. 이건 절대 누설되어선 안 되는 비밀이니 말이야.”

“예, 저도 그때까지는 함구할게요.”

확실히 입을 다물겠다는 듯 마치 자신의 입을 지퍼로 잠그는 흉내를 내는 리스티. 이진운은 그녀 외에도 아리엔과 일행들을 엄중한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너희들도 잘 들었을 거다. 지금 들은 이야기들은 아주 중요한 기밀이니, 어디 가서 누설하는 일 없도록 입조심들 하도록.”

“예.”

일행들도 사안의 중요성을 잘 아는 만큼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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