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50화 (151/448)

6권-25화

그러자 카룬다임의 얼굴 위로 일순 어처구니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일개 필멸자에게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될 줄이야.

[건방지구나!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감히 날 상대로 사냥을 운운해? 제법 무공을 다룬다기에 조금 손을 섞었더니,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그렇다면 확실히 보여주마! 네놈이 얼마나 비루한 존재인지 말이다.]

당장이라도 손을 쓸 것처럼 기세를 끌어올리는 카룬다임의 모습에, 이진운이 비웃듯 말했다.

“그 전에 자신의 상태부터 살피는 게 어떨까?”

[뭐?]

털썩!

바로 그 순간, 어느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카룬다임의 멀쩡하던 왼쪽 어깨 어림에 긴 줄이 생기더니, 왼팔이 잘려나가면서 그대로 함상 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내 팔을 잘랐다고? 대체 언제!?]

그제야 자신의 팔이 잘렸음을 인지하게 된 카룬다임이 그답지 않게 당황하며 외쳤다. 고통 따윈 없었지만, 일개 필멸자에게 자신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아리엔들도 이 광경에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긴. 당신 옆으로 다가갔을 때 이미 베었던 거지.”

이런 결과를 내고도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는 이진운.

카룬다임의 두 눈에 혼란의 감정이 떠올랐다.

‘어떻게 된 거지? 고작 필멸자 따위의 움직임을 내가 못 읽었다고?’

직접 경험하고서도 이 현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물론 초월자라 하더라도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본체가 아닌 단말 상태로 존재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발휘할 수 있는 본연의 능력에도 수많은 제한이 있었고, 그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도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아직 그랜드 급에도 이르지 못한 필멸자의 공격을 미처 인지 못하는 상황이 오다니!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이 정도일 줄이야.’

그제야 이진운이 가진 위험성이 어떠한지를 깨달았다. 이런 녀석이 마음껏 활보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의 계획이 번번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이놈만큼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런 카룬다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이진운이 이죽거리듯 말했다.

“그래, 이제야 조금은 내 존재를 위협으로 느낀 모양이지. 이 정도로 강렬한 살기를 내보이는 걸 보면 말이야. 날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찬 게 그대로 느껴져.”

그 말처럼 카룬다임의 살기는 전에 없이 강렬했다. 단지 살기 하나만으로도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에 있는 평범한 존재들을 소리 없이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살기의 중심에 선 카룬다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놈만큼은 인정하지. 우리의 계획을 위해선 절대 존재해선 안 될 놈이라는 것을 말이야.]

오히려 그 말에, 비웃기만 하던 이진운의 얼굴이 진지하게 변했다.

상대는 무려 초월자였다. 그런 존재가 필멸자인 자신을 인정하겠다고 했다면, 그건 더 이상 방심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죽여주마.]

카룬다임이 오른손을 들어 올린 순간, 무수한 인형들이 생겨났다. 그것들은 코어 함의 함상 갑판이 뭉쳐서 만들어진 일종의 인형이었다.

이진운은 그동안 교육을 통해 배웠던 지식 속에서 그와 비슷한 것을 떠올렸다.

“고렘?”

[고렘 따위가 아니다. 이것들은 또 다른 나 자신. 내가 어째서 무생의 성좌라 불리는지 어디 똑똑히 경험해 봐라.]

쿠오오!

하나같이 카룬다임과 흡사한 형태로 만들어진 금속인형들! 하지만 풍기는 존재감이 고렘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지간한 S랭크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이진운은 작게 혀를 내둘렀다.

“카룬다임 하나만 해도 골치 아픈데, 이거 숫자가 잔뜩 늘어나 버렸군.”

두려움 하나 없는 표정으로 그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갔다. 아니, 쏘아졌다는 말은 옳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공간 자체를 접듯 금속인형들 앞에 도달해 있었다.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그의 검 끝에서 펼쳐진 온갖 절학들이 놈들을 철저하게 유린하기 시작했다.

관일창(貫日槍)

제 4식. 구곡낙성(九曲落星)

제 6식. 역상회류도(逆商回流道)

분광십팔수검

분뢰영천(分雷靈泉)

회풍무류사십팔검

천하도괘(天下導罫)

동풍난설(凍風亂雪)

사일검

반마만궁(反魔萬宮)

사양무광(射陽無光)

······

···.

그가 체득하고 있던 무수한 절학의 절초들이 불을 뿜듯 쏟아지면서 금속 인형들을 쓸고 지나갔다. 하나같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가 펼치는 절초에 실린 위력은 이미 마이스터 급을 아득히 넘어선 상태. 조금 전 카룬다임을 상대로 싸울 때와는 모든 게 판이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카룬다임조차 경악한 눈으로 이진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금속인형들이 이렇게 무력하게 쓸려나갈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제아무리 지금 다룰 수 있는 능력에 제한이 있다곤 하지만, 거의 마이스터 급에 버금가는 금속인형들만 무려 기백이었다. 그런 숫자를 혼자서 쓸어버리다니! 이게 말이 될 법한 소린가!

게다가 방금 전 금속 인형들 앞으로 이동할 때 보여준 움직임은 또 뭐란 말인가! 자신의 팔을 베었던 그때처럼 정확히 인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초월자인 카룬다임의 눈에도 이젠 이진운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로서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생물 같았다.

‘그래 언젠가부터 놈에 대한 인지가 흐려졌다. 누군가의 간섭? 아니면 놈이 가진 무언가가 내 눈을 흐리고 있는 건가?’

금속인형들은 삽시간에 전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카룬다임 하나뿐이었다.

이진운이 검 끝으로 카룬다임을 겨누면서 말했다.

“제법 괜찮은 인형들이었지만, 생각보다 큰 의미는 없었군. 이제 당신이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은데.”

[그래 좋다. 어디, 네놈이 죽을 때까지 싸워 보자!]

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룬다임의 육체가 무시무시한 탄환이 되어 날아들었다. 이제는 다루는 힘에 제한을 둘 생각이 없는지, 그가 아는 수많은 영능들이 이진운을 향해 전개되고 있었다.

콰콰콰콰!

각종 마법과 사법, 그리고 물리법칙을 희롱하는 종류를 세기 힘든 초상능력들이 대거 발휘되면서 이진운을 압박해왔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이 복잡하고 다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검 한 자루에서 시작된 수많은 변화도 결국 한 사람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카룬다임의 공격도 결국 그 이치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싸우면 싸울수록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자신이 대체 누군가! 바로 인베이더를 이끄는 7대 성좌 중 하나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자신 앞에서 대적하고 있는 일개 필멸자를 어쩌지 못하고 있다니!

심지어 놈은 자신의 모든 공세를 검 한 자루로 전부 파해하면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운도 그렇게까지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시간이 없다. 더 이상 이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워!’

사실 지금 그가 발휘하는 힘은 본신의 역량을 크게 넘어선 것이었다.

역기충혈대법과 만유합원신기로도 부족하다고 여긴 그는 다른 것에 손을 뻗었고, 지금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놈을 서둘러 해치우지 못한다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 될 것이다.

‘이번 한 번에 확실히 몰아쳐 끝장을 낸다.’

그때부터 이진운의 공세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카룬다임도 크게 당황해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놈이!? 대체 무공도 아닌 것을!?]

이진운의 검 끝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으로부터 무수한 공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무공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공 외의 수많은 종류의 영능이었다.

그 중에는 마법도 있었고, 정령술도 있었으며,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종류의 다양한 이능과 초상능력도 존재했다.

대체 한 사람에게 이렇게나 많은 영능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이해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컥! 크···!]

거듭된 공격에 카룬다임이 패퇴하면서 물러섰다. 이젠 더 이상 이진운의 공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더욱 몰아쳤다.

상대는 결코 죽지 않는 존재. 본질을 소멸시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스승님이 무공 말고도 저렇게 많은 영능을 알고 계셨어?”

아리엔이 혼란스럽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클레브나 엘레나도 그 말에는 다들 답을 하지 못했다. 혼란스런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저 아저씨, 정체가 뭐야?”

레이첸은 눈앞의 믿기지 않는 광경에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저 괴물 같은 카룬다임을 상대로 이토록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다니.

그럼 좀 전에 싸울 때 보였던 실력은 다 뭐였단 말인가! 그때는 진짜 전력을 다하지 않았었다는 건가?

그렇지만 이진운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긴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이진운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가 배우고 익힌 것, 그리고 그가 체득한 것들 중에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점창의 무학 외에도 터득한 수많은 중원 유수 문파들의 무공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떠오르거나 체득된 지식과 영능들.

뭔가 익숙하질 않아서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런 상황이 된 이상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결과, 카룬다임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놈은 그 지경이 되어서도 자신의 종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크크크··· 그래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네놈이 날 상처 입힌다 해도 본질을 해하지 못하는 한 결국 다시 되살아날 뿐이니까.]

그 말처럼 놈의 전신은 빠르게 복원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뒤로 되감은 듯 회복되는 육체는 더 이상 부상이란 말을 담지 못할 정도로 건재한 모습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거란 건 이미 진작부터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하지만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거다. 그런 네놈을 위해서 지금까지 준비한 게 잇으니까.”

그 순간, 이진운의 검 끝이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카룬다임과 아리엔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하늘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저··· 저건!?]

거대한 무언가가 저 하늘 위에 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구체!

그것이 이진운의 검 끝의 궤도 상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널 위해 특별히 준비했지. 이게 바로 네가 보고 싶어하던 무공의 진수! 어디 한번 잘 맛보면서 죽어라!”

그의 검 끝이 카룬다임을 가리킨 순간, 태양 같은 구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속도가 붙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거대한 한 자루 화살로 화해 있었다.

저 하늘마저 관통할 것 같은 거대한 화살의 현현에, 카룬다임조차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이 카룬다임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관일창(貫日槍) 제 8식. 관일여명섬(貫日黎明閃)

극의. 탄천일광현현시(嘆天日光顯弦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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