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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49화 (150/448)

6권-24화

화아악!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모순된 기세의 폭풍이 사방으로 몰아닥쳤다. 어찌나 강렬하던지, 위상전환을 일으키고 있는 코어 함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창 싸우고 있던 이진운과 카룬다임조차 갑자기 휘몰아치는 이 무시무시한 기운 앞에 잠시 멈춰서고 말았다.

“이 기운은!”

[으음. 이건!?]

그들 둘의 시선이 똑같이 이 기운이 느껴지고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푸른 불길을 전신으로 피워 올리고 있는 레이첸의 모습이 있었다.

“레이첸 녀석, 대체 무슨 짓을?”

그게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이진운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가진 역량 이상의 힘을 발휘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할 터.

레이첸이 저만한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을 감수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는군.]

심지어 적인 카룬다임조차 그 모습에 혀를 찼다. 그도 레이첸이 어떤 상태인지를 바로 알아챈 것이다.

[바이우드 혈족의 어린 것아. 네 역량에 걸맞지 않는 힘을 끌어올리다니. 스스로 자멸을 자초하는구나.]

“내 목숨 하나로 네놈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수지맞는 일이지. 그게 일곱 성좌 중 하나인 당신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그렇게 외치는 레이첸의 기운은 점점 더 거세져 갔다. 이젠 그 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크게 위협적이라 여기지 않는 건지, 카룬다임은 오히려 딱하다는 듯 말했다.

[우습구나. 필멸자의 견식으로 나를 재단하지 마라. 나는 그저 본체에서 갈라진 정신적 단말일 뿐. 내가 이곳에서 쓰러진다고 해서 내 본신에 무슨 위해라도 갈 성 싶으냐? 그냥 네 수명만 축날 뿐이다. 괜한 헛수고는 그만 하는 게 어떨까?]

“그걸 내가 모를 것 같아? 너무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나는 바이우드 가의 장자다. 그런 이면의 진실들을 모를 리가 없잖아.”

[호오, 그건 좀 뜻밖이군. 알면서도 그런 리스크 큰 수법을 쓴다 이건가?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모양이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슴없이 힘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에, 카룬다임은 오히려 놀라워하는 표정이 되었다.

“고작 내 목숨 하나를 아까워해서 여기서 물러설까? 인베이더를 멸하는 건 우리 가문에 얽힌 숙명! 그건 나뿐만 아니라 바이우드 혈족이라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

고오오오!

레이첸의 전신에서 분출되던 막강한 힘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단지 힘을 끌어낸 정도라면, 이제는 그 힘을 가공하여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게 어떤 수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거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레이첸이 목숨을 걸 정도인 만큼 그 위력도 단말에 불과한 카룬다임 정도는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룬다임의 태도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설령 이곳에 있는 단말이 소멸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후후후··· 정말이지 한치 앞밖에 보지 못하는 부나방 같구나. 고작 그런 이유로 아까운 목숨을 던진다고? 너의 그 재능과 실력이 참으로 아깝구나.]

“그럼 당신은 날 여기서 살려 보낼 생각이었어? 어차피 지금 네놈을 쓰러뜨리지 못해도 내 목숨이 위험한 건 마찬가지잖아!”

[······.]

레이첸이 되받아 친 그 말에, 일순 카룬다임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곳에 침입해 온 이상 어느 누구도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코어 함을 침몰시키지 못하면 도이벤 행성을 쑥대밭으로 만들 텐데. 날 더러 그걸 두고만 보라고? 차라리 단말에 불과한 너라도 없애고 죽겠다!”

그렇게 핏발 선 목소리로 외친 순간, 끝없이 고조되어가던 힘이 드디어 정점에 이르렀다.

레이첸을 중심으로 들끓던 기운은 이제 완벽하게 제어된 형태로 그의 두 손 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정말 무시무시하군.’

이진운조차 그 기운의 압도적인 크기에 전율을 느꼈다. 저 정도면 카룬다임이라 해도 소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일까? 카룬다임의 표정도 조금은 가라앉은 듯 변했다. 더 이상 여유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 사라져버려!”

레이첸의 손을 떠난 푸른 구체가 카룬다임을 향해 쏘아졌다. 일직선으로 공간을 관통하는 그것은 실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목표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그렇지만 카룬다임은 그것을 피해 옆으로 크게 뛰었다. 무려 십여 미터를 넘는 거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은 엄청날 정도로 빨랐다. 어찌나 빠른지 대기가 파열하면서 충격파가 발생할 정도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던 주제에 회피를 선택했기 때문일까. 푸른 구체는 카룬다임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음을 보면서도 레이첸은 외려 차갑게 웃었다.

“피하겠다고? 소용없어! 이건 당신이 어디로 가든 반드시 맞게 되어 있으니까.”

그 순간, 이 일대에 어떤 이지러짐이 생겨났다. 그것은 마치 시공간을 유지하는 섭리 자체가 반전되어 뒤틀리는, 그런 이질스런 감각이었다.

카룬다임도 깜짝 놀라 외쳤다.

[인과역전!?]

분명 빗나갔던 푸른 구체가 카룬다임 앞에 나타났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아니 본래 거기 있어야 당연하다는 듯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할 여지조차 없던 카룬다임을 그대로 직격하고 말았다.

고오오오오!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거나 하지 않았다. 레이첸의 푸른 구체는 어디까지나 다음 공격을 위한 촉매일 뿐이니까.

적중된 순간, 카룬다임을 중심으로 거대한 진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입체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진 매우 정묘한 술진이었다.

[이건!? 카르테인의······!]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된 카룬다임이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이미 때늦은 뒤였다. 그를 가둔 거대한 진에서 일어난 열기와 냉기가 서로 상생 상극을 반복하면서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기 시작했으니까.

카이아 프로이트<청마빙염진靑魔氷炎陣>

콰아아아!

진 안을 휘도는 푸른 격류가 카룬다임의 거체를 태우고 얼리면서 그를 소멸로 이끌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아무리 그가 초월자의 단말이라 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진운도 금세 이유를 알아챘다.

‘그렇군. 저 힘은 본질 그 자체를 소멸시키는 거군.’

단순히 힘이 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었다. 애당초 저 힘의 근간이 상위 차원의 영역에 존재했기에 본질을 사를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무공에서 말하는 의념과도 일맥상통했다.

이대로 간다면 카룬다임의 소멸은 기정사실이 될 테지만, 이진운도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려웠다. 저 진을 유지하면 할수록 레이첸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창백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건방진 녀석이긴 해도 이대로 죽게 놔둘 순 없지.’

이진운은 재빨리 레이첸의 옆으로 다가가 그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됐다. 그쯤 해둬라. 그 이상 하면 정말로 죽게 될 거다.”

그러자 진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하던 레이첸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이봐, 아저씨.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여기서 멈추면 저 녀석은 다시 살아난다고! 그런데 멈추라고? 제정신이야?”

“그래도 괜찮으니까 멈춰. 지금도 많이 무리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넌 반드시 죽는다.”

그 말 속에서 자신에 대한 염려를 읽은 걸까. 레이첸이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라도 날 막을 수 없어! 어차피 아저씨 힘으로는 저 녀석을 이길 순 있어도 본질 자체를 없앨 순 없잖아. 그러니 내가 해야 해! 설령 내가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카룬다임의 단말을 없애고 말겠다는, 각오 어린 그 말에 이진운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손을 썼다.

그의 오른손 검지에 기운이 맺히더니, 마치 섬광처럼 뻗어나가 레이첸의 전신을 두들겨나갔다. 바로 점창의 절학인 일양지였다.

투두두둑!

일양지의 점혈 수법에 당한 레이첸의 전신이 그대로 굳어졌다. 평소라면 이렇게 쉽게 제압당할 리 만무하지만, 카룬다임에게 정신을 집중하느라 방심한 게 문제였다.

그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의 얼굴에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더 이상 뒀다간 죽을 것 같아서. 이 다음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넌 거기서 지켜보고 있어라.”

자신이 상대하겠다고 말하는 이진운의 모습에, 레이첸의 얼굴 위로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이런 미친! 이 정신 나간 인간아! 내 목숨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해? 날 이렇게 두면 저 카룬다임이 다시 살아난다고! 그럼 나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 아니 이 행성 째로 전부 죽는다고!”

그렇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다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카룬다임은 레이첸이 진을 유지하지 못하는 틈을 타 구속을 부수고 있었으니까.

진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외부에서 확연히 포착되고 있었다.

그래도 이진운은 레이첸을 풀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검 한 자루 쥔 채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카룬다임을 구속하던 진이 굉음과 함께 부서졌다.

콰아앙!

얼고 태워지면서 꽤나 타격이 컸던 걸까? 카룬다임이 형편없는 모습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말이지··· 카르테인 그 자가 설마 이런 힘까지 빌려줄 줄은 몰랐다. 인과역전이라니··· 초월을 엿보지도 못한 필멸자에게 그런 힘을!]

카룬다임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지금 당한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고작 벌레처럼 여기던 필멸자에 의해 자신이 이렇듯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는 거였다.

물론 레이첸과 연결된 초월적 존재의 개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버러지 같은 필멸자에 한 방 먹었단 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 이 치욕감! 확실히 갚아주지. 그냥 죽이지 않고 확실히, 모든 고통을 맛보며 죽게 해주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고작 한방 먹었다고, 그렇게까지 부들거리다니. 초월자 주제에 너무 값싸고 비루해보이잖나.”

이진운은 치를 떠는 카룬다음의 모습에 비웃음을 던졌다. 좀 전의 초월자다운 위엄은 온데간데 없어서였다.

[이 버러지가 함부로 떠드는구나, 하루살이만도 못한 것들이!]

콰아앙!

이젠 더 볼 것도 없다는 걸까! 다짜고짜 카룬다임이 힘을 해방하였다. 그가 손을 뻗는 순간, 무지막지한 영력이 이진운이 서 있던 공간을 짓눌러 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공간을 접기라도 하듯, 어느새 카룬다임의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것을 뒤늦게 알아챈 카룬다임도 깜짝 놀라 외쳤다.

[네놈 대체!?]

이진운은 차가운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면서 냉소적으로 고했다.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이제부터는 최선을 다해서 네놈을 사냥하기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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