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46화 (147/448)

6권-21화

‘놀랍군, 놀라워. 이건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잖아?’

카산드라의 힘이 아니더라도, 아르페인은 전함을 뜻대로 제어할 수 있는 본연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카산드라의 서포트가 더해지자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면서 전함에 대한 장악력이 평소보다 배 이상 뛰어올랐다.

지금이라면 예전에 불가능했던 운용방식도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정신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서둘러야겠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에 빠져 있던 아르페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 인베이더와의 일방적인 교전이 계속되면 인피니티 킹덤의 방어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좀 더 버틸 수야 있긴 하지만, 이쪽이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 저쪽의 공격은 일방적으로 통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시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작전을 포기하고 도망간 바이트 함대를 다시 인베이더 함대와 붙게 만드는 수밖에.

그의 눈앞에 수많은 영자 패턴들이 지나갔다. 그것은 그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가 카산드라 시스템을 통해 인지하고 있는 정보들이 두 눈 위로 망막 투영된 것이다.

그것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면서 기존의 데이터를 원하는 형태로 개변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건드리고 있는 데이터는 바로 다름 아닌, 바이트 함대를 총괄하는 시스템 그 자체였다.

[데이터 개변 83%··· 87%]

데이터 개변 영역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그것이 어느덧 100%이르는 순간, 아르페인은 바이트 함대의 모든 전함의 운용 시스템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었다.

[시스템 장악 완료. 지금부터 함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래, 서포트 고마웠다. 카산드라.”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에 가까운 인공 영혼이었지만, 아르페인은 녀석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마 카산드라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제 시간 안에 시스템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별 말씀을.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마치 인간처럼 겸양의 말로 화답하는 카산드라였다.

아르페인은 그런 녀석의 말투에 잠시 피식 웃고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그럼 차단된 통신회선부터 강제로 연다. 지금부터 바이트 함대에게 이쪽에서 일방적인 통보부터 해줘야겠지.”

[예, 함장님.]

물론 그가 지금부터 할 통보는 결코 바이트 함대의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들이 선택한 행동이 결과물이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지는 것이 세상사 이치인 것이다.

아르페인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맺혔다.

* * *

한편 바이트 함대는 열심히 후퇴 중이었다. 인피니티 킹덤이 인베이더 함대를 상대로 시선을 끌고 있는 이 때야 말로 후퇴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순간이었다.

메인 브릿지의 사령관 석에 앉아 있던 오콜로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마터면 이런 데서 죽을 뻔했군. 위상전환이라니··· 인베이더 놈들도 정말 터무니없는 걸 들고 나왔단 말이야.”

지금까지 경험했던 위기들이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이처럼 막막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쪽의 공격만 일방적으로 통하지 않는 기술이라니!

그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오콜로스의 머릿속에는 이미 도망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감히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바이우드 가문의 장자라니! 그런 거물이 왜 하필 인피니티 킹덤에 합류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제아무리 연합 전체를 주름잡는 가문 출신이라 해도, 그것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 만큼 중요하진 않았다.

일단 살고 봐야 영예도 누릴 수 있는 거지, 죽은 다음에 특진해 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든 이 사지에서 도망가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리고 그 끝에 나온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 상황이었다.

이미 바이우드 가문의 장자는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 일행과 함께 위상전환공간의 중심 축 안으로 진입한 상태.

바이트 함대 소속의 작전관들은 그들이 무사히 살아 돌아올 확률이 아마도 1%도 되지 않을 거라 추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피니티 킹덤을 버리는 선택을 서슴없이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베이더와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고 있는 인피니티 킹덤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오콜로스의 두 눈빛이 음험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죽은 바이우드 가문의 장자가 내게 무슨 위해를 끼칠 수 있겠어? 살아 있다면 모를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물론 이를 위해선 인피니티 킹덤도 같이 이곳에서 전멸해 주는 것이 좋았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증거란 되도록 남지 않을수록 이로운 법이니까.

그렇지만 모두가 오콜로스처럼 대범한 건 아니었다.

옆에 있던 함장이 눈치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사령관님··· 저희가 이래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바이우드 가의 장자가 저기에 뛰어들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이탈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이보게 함장.”

“예, 사령관님.”

“자, 우리 평소 하던 대로 하자. 이미 한두 번 해본 거 아니잖아. 우리는 충분히 시선을 끌어주고 물러났다. 다만 제네레이터에 기능 부진이 발생해서 제 때에 다시 교대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리고 제네레이터의 기능부진을 잡는 사이, 인피니티 킹덤은 인베이더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전멸한 것이 결과의 전부이네. 그렇게만 해두면 아무런 문제도 없어. 물론 의심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증거는 전부 없앨 것이니 의혹도 사라지겠지.”

“······.”

함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랬다. 지금까지 오콜로스를 사령관으로 모시게 된 이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던 일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오콜로스의 행태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지만, 지금은 그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지나 다름없는 전장에서 몇 번 살아 돌아오다 보니, 삶에 대한 애착은 더욱 강해졌고, 이미 몇 번이나 비열한 수단으로 살아남다 보니 양심도 무뎌진 지 오래였다.

결국 오콜로스 한 사람 뿐만 아니라, 바이트 함대의 승무원들까지 그와 같은 부류가 된 셈이다.

그들이 무언으로 동조하지 않았더라면 오콜로스라도 이렇듯 무단으로 전장을 이탈하는 무리수는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 그럼 우린 멀리서 지켜보자고. 인피니티 킹덤의 최후를. 우릴 대신해 산화하는데 적어도 마지막은 지켜봐 줘야지.”

진심인지 아니면 비웃는 건지 모를 말을 내뱉으면서 오콜로스는 영상을 지켜보았다.

이미 몇 번이나 인피니티 킹덤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왔지만, 전부 차단해 버렸다. 어차피 작전을 따를 생각도 없는데, 굳이 통신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헌데 그때였다. 인피니티 킹덤의 상황을 비추고 있던 대형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다른 영상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 사람의 얼굴 영상이었다.

“갑자기 뭐냐 이건!? 무슨 일이야?”

오콜로스가 영문을 몰라 외쳤다. 그러자 오퍼레이터가 당황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강제 접속입니다. 저희가 차단하고 있던 인피니티 킹덤 쪽의 회선이 강제로 연결되었습니다.]

“뭐라고?”

그 말은 즉, 지금 보는 영상이 실시간 통신 영상이라는 말 아닌가!

화면 속의 얼굴은 오콜로스에게도 무척이나 낯익었다. 바로 카멜롯의 함장인 아르페인이었다.

화면 속의 그가 차가운 얼굴로 오콜로스와 바이트 함대의 사람들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목숨이 아까워 아군을 버리고 작전지역을 무단이탈해 도망중인 바이트 함대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은 강제적으로 작전에 다시 참여해 주셔야겠습니다.]

“뭐, 뭐야? 그게 무슨 소리냐? 네놈이 지금!”

[당신들의 의사 따윈 관계없습니다. 무단으로 작전지역에서 이탈한 이상, 당신들의 인권은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니 말입니다.]

일방적으로 통보한 순간, 통신 영상은 곧바로 사라졌다.

오콜로스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어떻게 된 거냐? 차단했던 회선이 어떻게 저절로 연결된 거지? 지금 저 놈은 무슨 말을 한 거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차단했던 회선을 강제로 연결시킨 건 놀랍긴 하다만, 저런 말을 한다고 해서 바이트 함대가 다시 자발적으로 작전에 참여할 거라 여기는 건가?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말만 내뱉고 통신을 끊는 건 도대체 무슨 의도지?

하지만 그에 대한 의문은 곧 풀리고 말았다. 그가 상상할 수 없었던 가장 최악의 형태로.

[해··· 해킹입니다!]

“뭐야?”

[본 함대의 시스템이 외부의 뭔가에 의해 급속도로 장악되고 있습니다. 막을 수가 없어요!]

해킹이란 말을 듣고서야 오콜로스는 아르페인이 왜 그런 말을 했던 건지 전부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게 변한 그가 목청이 터져라 소리질렀다.

“어떻게든 막아! 시스템만큼은 반드시 사수해! 안 된다면 외부의 모든 회선을 물리적으로라도 차단하라고!”

[늦었습니다. 이미 모든 시스템이 장악되었습니다.]

“이런 미친! 그럼 시스템을 다운시켜! 정지시키라고!”

[안 됩니다. 모함 뿐만 아니라 본 함대의 모든 게 외부 해킹에 장악되어서 무립니다.]

털썩!

오콜로스는 저도 모르게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함대의 시스템을 장악한다는 말은 단순히 함의 제어권을 빼앗겼다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이쪽의 생사여탈권을 강제로 빼앗긴 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 저들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함 내에 있는 대기조성장치도 결국 함대의 중앙 시스템에 의해 모두 제어되는 것이니까.

저들이 대기조성 비율을 바꾸기만 해도 바이트 함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전멸이었다.

그렇지만 아르페인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그는 바이트 함대를 어떻게 이용할 지 이미 정해놨기 때문이었다.

이미 정해진 그들의 운명은 오퍼레이터의 경악성과 함께 시시각각 닥쳐오기 시작했다.

[으으··· 본 함대. 인베이더 함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피니티 킹덤은 후퇴!]

[위험합니다! 본 함대의 전 포구와 사일로가 강제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제네레이터의 에너지 모든 화기로 집중! 출력의 상당수가 함포로 집중! 이대로라면 인베이더와 정면에서 화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젠장!”

아르페인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전부 깨달았다. 놈들은 바이트 함대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인베이더와 충돌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자신이 먼저 그들의 뒤통수를 쳤으니, 이에 대해 따지거나 항변할 수도 없는 입장이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본 함대를 보호하는 필드 출력 급속 저하! 필드의 출력 중 일부가 전환되어 화기로 집중됩니다. 이러다간 10분도 채 못 버티고 침몰하게 됩니다!]

아르페인은 생각 이상으로 철저했다. 그는 바이트 함대를 단순히 인베이더와 충돌시키는 것만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절망과 분노가 치민 오콜로스가 크게 절규를 토해내었다.

“으아아아아! 아르페인 이노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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