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44화 (145/448)

6권-19화

고오오오!

마치 화살을 재듯 수평 상태로 든 검을 뒤로 바짝 당긴 자세. 검 끝 위로 길게 뻗어 오른 검기가 곧 화살이 되었다.

그리고 검기의 흐름 속으로 집중되는 막대한 진력!

그것은 정확하게 공진파를 사용하고 있는 이름 모를 인베이더를 겨누고 있었다.

사일검(射日劍)

역만거궁(力灣巨弓)

쿠우우우!

검강을 연상시킬 만큼 진한 광망을 토해내던 검기의 화살이 이윽고 시위를 떠났다. 얼마나 위력적이던지 음속을 아득히 넘어선 속도로 공간을 관통하는 순간, 화살의 궤도상에 존재하던 수백여 마리의 인베이더들이 그 여파에 휘말려 무참히 쓸려나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름 모를 인베이더는 달랐다. 놈의 양 손이 가슴 앞에 모인 순간, 양 손바닥의 구멍에서 일어난 공진파동이 서로 공명하면서 극대의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쿠쿠쿠쿠!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공간을 강타했다. 그것은 아리엔이 쏘아낸 검기의 화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콰아앙!

검기의 화살과 충격파가 서로 맞부딪치면서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덕분에 주변에 있던 무수한 인베이더들만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인베이더들이 폭발의 여파에 개미떼처럼 우수수 쓰러지는 가운데, 정작 충격파를 일으킨 언노운은 별다른 상처 없이 무사한 모습으로 앞으로 걸어나왔다.

하지만 놈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방금 전 기이한 화살 같은 공격을 전개한 아리엔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휘릭!

그때 들려온 아주 옅은 파공성! 그 소리를 들은 언노운이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언제 다가온 것일까? 언노온이 찾으려 했던 아리엔의 모습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마치 공간을 압축하듯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검 끝이 돌진하는 기세 그대로 내뻗어졌다.

검풍으로 대기의 마찰을 감소시켜 구현하는 극쾌의 돌진 찌르기!

급풍쾌검(急風快劍) 1식. 풍령추인섬(風靈追認閃)

비의. 광령질주(狂逞疾走)

마치 벼락이 눈앞으로 날아드는 듯했다. 대기의 마찰력까지 감소시킨 채로 돌진해온 찌르기의 속도는 언노운조차 인식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놈도 가만히 앉아 당하진 않았다. 공격이 날아온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즉시 전신을 진동시킨 것이다.

우우우웅!

맹렬한 떨림과 함께 일어난 초진동파가 놈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것이 놈이 가진 전방위 방어수단이었다. 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시 뿐이지만, 단 한번 뿐이라면 중형 전함의 함포조차 막아낼 수 있을 정도다.

그 결과, 아리엔의 검 끝도 그 앞에서 멈췄다. 아니 그녀의 검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진동파를 뚫고 들어가려 했지만, 계속해서 물결치듯 밀려나오는 파동 앞에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엔은 오히려 차갑게 웃었다. 이럴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만 끝내자.”

그녀가 내뱉은 짧은 한 마디와 함께, 검 끝으로 맹렬한 흐름이 집중되었다. 지금까지 광령질주를 위해 전신에 두르고 있던 검풍이 검극으로 맹렬히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점에 이른 순간, 검극으로부터 한줄기 섬광이 뻗어 나왔다. 그것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한계까지 압축된 검풍의 궤적이었다.

급풍쾌검(急風快劍) 제 4식. 폭렬전궁(爆裂電弓)

제아무리 초진동에 기반을 둔 공진파라 하더라도 이 일격을 막긴 어려웠다. 이미 검 끝이 일부 파동의 경계 안으로 파고든 데다, 검 끝에 집중된 이 힘도 막대한 진폭을 일으키고 있었다.

콰아아앙!

결국 파동 안으로 깊이 파고든 한 줄기 궤적이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압축되었던 검풍의 힘이 폭주하듯 해방되면서 막대한 파괴의 재액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폭발의 흔적이 가라앉은 뒤 드러난 것은 완전히 파괴된 언노운의 모습이었다.

“휴우···.”

아리엔은 숨을 내뱉으며 들끓는 진력을 가라앉혔다. 쉽게 쓰러뜨린 것 같아도 사실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안그래도 상대해야 할 적들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쓰러뜨리기 위해 조금 무리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성취감이 적지 않았다. 싸워 본 결과 이 언노운은 최소한으로 잡는다 해도 A랭크 이상 가는 고위 인베이더였다.

그런 상대를 자신이 혼자 상대해 이겨내다니. 직접 쓰러뜨리고 나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헌데 그때였다. 뭔가가 급속도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리엔은 그 즉시 반응했다. 그녀가 돌아본 순간, 시야에 비친 것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날아드는 창끝이었다.

방금 상대했던 언노운 못지않은 녀석이 그녀를 기습하듯 들이닥친 것이다.

‘···피하긴 늦었어.’

상황이 여의치 못함을 깨달은 아리엔이 자기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기운을 정돈하느라 보인 일순간의 빈틈 때문에 이런 기습을 허용하게 될 줄이야.

그녀는 곧 결단을 내렸다.

‘왼쪽 어깨라도 내줄 수밖에.’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친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검을 쥐지 않는 왼쪽 어깨를 내주기로.

물론 부상은 입겠지만, 그래도 적중하는 순간 배틀 슈트의 액티브 배리어가 가동할 테니 왼 팔을 완전히 꿰뚫리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상체를 틀면서 왼쪽 어깨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려 한 그 순간이었다.

콰쾅!

그녀의 눈앞에 벼락같은 섬광이 들이닥쳤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그것은 아주 시퍼런 색을 띄고 있었다.

-커으으으!

그제야 자신을 공격했던 인베이더를 꿰뚫어버린 그것의 정체를 보게 되었다. 아주 시푸른 냉기의 창이었다.

하지만 그 창은 모순되게도 뜨거웠다. 얼음의 창에 꿰뚫린 인베이더는 금세 불타오르더니 흔적조차 남지 않고 순식간에 소각되어 버렸다.

이곳에 온 일행 중 이런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뿐이다. 아리엔은 자신을 구해준 자의 정체를 깨닫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때, 머리 위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다 정신 놓고 있는 거야?”

“레이첸?”

대체 언제 다가온 것일까? 너무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이라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게 문제였다.

허공을 도약해 날아온 레이첸의 손에서 푸른 기운이 폭발적인 기세로 일어났다. 그것은 곧 수많은 냉기의 창이 되더니, 방금 전 인베이더를 쓰러뜨렸던 것처럼 주변에 있던 인베이더 무리를 일거에 쓸어버렸다.

단 한수로 무려 수백에 달하는 인베이더를 쓸어버린 레이첸이 아리엔에게 빈정거리듯 말했다.

“흥, 고작 한 놈 해치웠다고 해서 방심을 하다니. 조금 실력이 늘었나했는데 아직도 멀었어.”

예전이라면 상당히 불편하게 들렸을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의 손에 의해 구해지게 되자, 아리엔도 마냥 나쁘게 보기 어려웠다.

그녀는 살짝 웃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아무튼 고마워. 방금 날 구해주려고 손써 준 거 말이야.”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레이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네가 쓰러지면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이 늘어나니까 손을 쓴 것뿐이야. 딱히 널 위한 게 아니니까 괜한 소리 말고 싸우기나 해.”

아리엔은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말은 퉁명스럽게 내뱉어도, 애써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려 애쓰는 레이첸의 얼굴을.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처음엔 별로 안 좋게 생각했는데, 은근히 귀여운 애네.’

지금도 그랬다. 아리엔에게 받은 감사 인사에 당황한 자신의 모습을 떨쳐 내고 싶었던지, 그 화를 인베이더들에게 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업화와 냉기가 광범위한 영역을 쓸고 지나가자, 또다시 수백의 인베이더가 엎어져 버렸다.

이런 식이라면 이 함에 있는 인베이더 전력도 금세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단 너무 쉬워.’

잠시 위험한 순간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이건 예상했던 것 이하였다. 상대하기 벅찬 인베이더는 고작 몇 뿐이었고, 대부분이 침공급이나 양산급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아리엔이 시선을 옮기자, 믿기지 않는 활약을 하고 있는 이진운과 일행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진운이 검을 떨칠 때마다 수십 마리의 인베이더들이 죽어나갔고, 클레브와 엘레나도 상당히 활약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이 함의 주력이라 보기엔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무려 위상전환시스템이 있는 전함이야. 그런데도 이렇게 호위 전력이 허술하다고? 그럴 리가.’

이 정도 전함이라면 적어도 성멸 급 다수는 나와야 급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멸 급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얼마 남지 않은 인베이더를 검기의 폭풍으로 쓸어버린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겨우 준비운동이 끝났군.”

“준비운동이라고요?”

“그래, 적당한 간 보기였지. 이제 진짜 적이 나올 테니까.”

아리엔의 물음에 그렇게 답한 이진운의 두 눈이 전함의 한쪽 갑판을 향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직접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놈은 기운을 감출 생각이었겠지만, 나한테는 어림없지.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이런 시시한 놈들을 내보내서 우릴 관찰하겠다고?”

쿠구구궁!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함상 위의 갑판이 스르르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거인이었다. 하지만 생명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금속 덩어리를 깎아 만든 조각상 같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체처럼 입을 열었다.

[그래, 잘도 날 눈치 챘군. 일부러 기운도 감췄는데도 말이야.]

“음흉한 놈이군. 우릴 관찰해서 약점이라도 파악할 생각이었나?”

이진운이 냉소를 내뱉었지만, 되돌아온 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약점? 무슨 소리를. 싸우는 모습이 제법 신기해서 지켜봤을 뿐이지.]

“신기하다고?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진운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약점을 파악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신기해서 몰래 지켜봤을 뿐이라고?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거인이 흥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꽤나 비주류의 이능을 사용하더군. 네놈이 그 무공이라는 것을 사용한다지?]

“무공을 알아?”

이 우주로 소환된 이래로 지금까지 무공에 대해 아는 자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몸을 쓰는 무술이나 무예라면 여럿 존재했지만, 그것들도 근본을 따져보면 무공과는 차이가 상당히 있었다.

그런데 인베이더의 입에서 무공이 언급될 줄이야.

그리고 뒤이은 말은 이진운은 물론, 일행들까지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내가 모르는 건 어지간해선 없지. 신적 존재인 내가 필멸자들마저 아는 지식을 모를 리 없잖나.]

“뭐, 초월자라고!?”

그 순간, 머리끝까지 섬뜩한 오한이 치솟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초월자에 대해선 이진운도 잘 알고 있었다. 중원에서도 반선의 경지를 넘은 신선들의 경지가 바로 그 초월자와 동일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신적 존재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라니!

그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만한 존재감도, 기척도 놈에게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전생이라 해도 한번은 반선지경에 올라섰던 내가 느낄 수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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