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43화 (144/448)

6권-18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5분 동안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인베이더들은 이진운 일행이 탄 고속함을 마치 인식조차 못하는 듯 그냥 지나쳐 갔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레이첸은 초조한 얼굴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전함이 먼저 격추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하고 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레이첸이 혼자 욕지기를 터뜨렸다.

“젠장,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에 다시 참가하면 성을 간다!”

그렇지만 무사히 도착했다고 해서 안심할 때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부터 더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고속함의 조종을 담당하던 리스티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제 도착했어요. 저기 보이시죠?”

그녀가 띄운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목표인 적 함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 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우리 목표에요. 이제부터 저 함이 숨어 있는 위상공간 안으로 진입할 거니까 다들 긴장하세요.”

“놈들의 동태는?”

“아직 저희를 발견 못한 상황이에요. 그래도 여기서 조금 더 지체하면 들킬 걸요?”

“그렇다면 서두르는 게 좋겠구나.”

이진운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데리고 함을 나서려던 그때, 리스티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잠시 할 말이 있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에요.”

평소의 리스티 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에 이진운은 잠시 들어보기로 했다.

모두의 시선이 리스티를 주목하는 가운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들 잘 들어요. 저 안으로 진입한 다음에 제가 따로 손을 쓰게 될 텐데요. 그렇게 되면 위상공간에 변화가 생길 거예요.

“변화?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아리엔이 의아한 투로 묻자, 리스티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위상공간이 둘로 분할될 거야.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전함과 인베이더가 서로 분단되는 거지.”

그러자 이진운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그게 가능하다고? 그건 계획을 세울 때 없었던 이야기잖아.”

“조금 성과가 있었거든요. 위상공간에 진입하는 걸 넘어서 약간 간섭하는 게 가능해졌다고나 할까요? 방금 전까지 계속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서 실제 사용할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어요.”

“뭐?”

그 말에 이진운 뿐만 아니라 다들 놀라우면서도 기막혀 했다. 위상전환에 대해 아무런 대책조차 없는 상황에서, 리스티는 불과 며칠 사이에 그에 대한 대응수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마 수많은 연구원들이 포진하고 있는 본성의 관리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프론사이드 가문의 천재라더니··· 이건 상상 이상이잖아.’

레이첸도 내심 혀를 내둘렀다. 리스티에 대해선 그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정통 직계혈통이 아니라서 프론사이드 가문에서 내놓다시피 한 천재. 하지만 내놓는 결과물마다 세상을 뒤흔들 만큼 대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항시 주목하고 있기도 했다.

헌데 위상전환에 대한 대응 수단까지 불과 이틀도 못되는 짧은 시간동안 개발해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지만 그 사실에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진운은 그녀가 말한 분단에 대한 의미를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런데 분단된다는 말은 서로 간섭을 못하게 된다 그거겠지?”

“예, 맞아요. 저희는 분단된 공간 안에 고립된 한 놈만 패면 되는 거죠.”

지금부터 침몰시켜야 할 전함을 상대로 팬다고 표현하는 리스티의 당돌함에, 이진운은 쓰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위험부담이 많이 적어지겠군. 적들에게 둘러싸일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봐야 제한 시간은 20분이에요. 그 동안 저 함 안에 있을 적들을 전부 격파하고 후퇴해야 해요.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면 우린 적지 한복판에서 둘러싸여 죽게 될 걸요?”

죽는다는 불길한 표현을 서슴없이 잘도 입에 담는 리스티였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정말 위상공간을 분단할 수 있다면 이번 작전의 성공 확률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될 테니까.

물론 20분이라는 촉박한 시간제한이 존재하긴 하지만, 아예 그런 조건조차 없었던 것보단 지금이 훨씬 나았다.

이진운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잘 들었을 거다. 우린 이제부터 적함을 20분 내에 떨어뜨려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이 정도면 해 볼 만한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예, 아무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낫지요. 그 전에는 정말로 죽으러 가는 거 아닌가 싶었으니 말입니다.”

피식 웃으며 대꾸하는 클레브의 말에, 다들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확률이 다소 올라갔다 하더라도 실패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특히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적 함대의 한복판. 여기서 까딱 잘못해서 20분이란 제한시간을 넘기게 되면 자칫 인베이더들에게 둘러싸여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중에서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이제 나가도록 하지. 다들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서로 도우면서 최선을 다하도록.”

“예.”

이진운의 격려에 그들은 힘 있게 답하면서 곧바로 해치 쪽으로 향했다. 입구가 열리면서 외부 상황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게 위상 공간······?”

엘레나가 실감나지 않는다는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눈앞에 비치는 전함의 모습은 유령처럼 반투명하게 떠올라 있는 형국이었다.

굳이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홀로그램 입체 영상이 허공에 비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제부터 저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플로트 윙 전개!”

이진운의 말에, 다들 서둘러 배틀 슈트의 플로트 윙을 전개했다. 이런 상공에서 적 함에 뛰어들려면 오버러의 유일한 비행수단인 플로트 윙은 필수였다.

한 쌍의 광익이 전개된 순간, 리스티가 가장 먼저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진운과 그 일행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휘오오오!

뺨을 스치고 가는 격렬한 바람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험난한 공중전까지 경험해 본 그들에게 이 정도 낙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기 그 경계로군.’

위상공간의 경계면이 눈에 들어왔다. 현실과 위상의 공간을 나누고 있는 비현실적인 경계.

이진운이 시선을 돌리자, 리스티가 즉시 앞으로 나섰다. 플로트 윙의 날개에 가속이 붙더니, 그녀의 손이 위상공간의 경계에 닿은 것이다.

우우웅!

그 순간, 그녀의 손길이 닿은 경계가 사방을 울리는 공진과 함께 허물어졌다. 그것은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진 벽의 일부가 녹아버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허물어진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이진운 일행이 지나가기에는 충분했다.

“자, 지금이에요!”

리스티의 목소리에 다들 속도를 높여 위상공간 안으로 진입하였다. 그리고는 그들이 목표로 하는 전함을 향해 강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준대형 규모의 전함이었다. 생긴 것은 마치 상어를 닮은 형태였는데, 그래서 임의로 타깃의 코드 네임도 죠스라 붙여졌다.

일행은 죠스의 함상 위로 무사히 착함했다. 그리고 그 순간, 리스티가 막대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럼 시작합니다.”

고오오오!

그녀를 중심으로 들끓어 오르는 마력이 죠스를 둘러싼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죠스가 일으키고 있는 위상전환에 간섭해서 그것을 변형시키고 있었다.

끄그그긋!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인베이더 함대와 죠스 사이에 반투명한 격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함대와 죠스를 분단하는 위상의 경계였다.

같은 위상 공간 내에 또 다른 경계를 세움으로서 외부의 간섭을 완벽히 차단해 내버린 것이다.

그제야 지금 벌어진 이변을 알아챈 인베이더 함대에서 수많은 적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개미떼처럼 흔해 빠진 양산형은 물론 오버러들조차 쉬이 상대하기 어려운 고위 인베이더들까지, 인베이더 전시장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놈들 중 어느 누구도 이곳으로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죠스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은 놈들에게 있어 완벽히 격리된 이계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급해진 인베이더들이 마구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헛되이 투과해 지나가고 말았다. 도이벤 사령부에서 경험했던 상황을 이번에는 놈들이 거꾸로 답습하게 된 것이다.

“이걸로 성공! 자, 지금부터 20분 카운트다운이에요.”

리스티의 외침에 일행도 전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녀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이미 반응하고 있었었다.

인베이더 함대는 위상공간을 분단시켜 떼어냈지만, 죠스 내부에 탑승하고 있던 인베이더전력들은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치잇! 떼거지가 따로 없군.”

함상 위로 그득하게 차오르는 인베이더들을 보면서 레이첸이 투덜거렸다. 전함 한 척안에 있는 인베이더만 해도 이 정도인데, 함대 전체의 인베이더들을 상대해야 했다면 아마 끔찍했을 것이다.

이진운은 제자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그럼 다들 침착하게 상대해라. 감당하기 어려운 녀석은 내게 맡기고.”

“예!”

“명심할게요!”

그때부터 전투가 시작되었다. 인베이더들의 수는 많았지만, 그 대다수는 양산형이었다. 그들의 실력이라면 거의 학살이나 다름없는 속도로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인베이더가 그런 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강력한 녀석은 더러 존재하고 있었다.

“우웃!”

갑자기 측면에서 밀려온 공격에 아리엔이 낮은 신음을 터뜨리며 물러섰다. 기이한 파동이 그녀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로봇을 연상케 하는 인베이더가 그곳에 있었다. 놈의 손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방금 전 파동을 쏘아낸 듯 보였다.

랭크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얼핏 느껴지는 존재감으로 볼 때 진멸 급 중에서도 거의 상위 권에 달하는 녀석이었다.

‘처음 보는 타입인데······.’

하지만 상대할 자신이 없진 않았다. 상대는 근접전보다는 원거리에서 이상한 파동을 쏘아내는 것이 주 능력인 듯싶었으니까.

그녀는 적에 대해 간단한 분석을 마치자마자 몸을 튕기듯 쏘아냈다. 활처럼 몸을 튕겨서 쏘아낸다는 궁신탄영의 한 수였다.

한 줄기 섬광이 된 그녀의 신형이 수십 미터의 공간을 일시에 단축해 들어갔다. 그러자 인베이더가 갑자기 입을 벌렸다. 놈의 벌려진 입은 마치 스피커를 연상케 하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쿠콰콰콰!

입이 열린 순간, 그곳에서 거대한 파동이 발생되었다. 전면의 공간을 완전히 초토화하는 파괴의 공진.

그렇지만 아리엔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놈이 입을 벌린 그 순간부터, 공격이 날아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점창의 절학 중 하나인 응조칠식경공으로 빠르게 공중으로 도약한 그녀의 검 끝에서 한 줄기 검기가 맺혔다. 그것은 마치 한 줄기 화살의 형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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