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42화 (143/448)

6권-17화

이번에는 이진운 쪽에서 물음을 던졌다. 그의 시선이 레이첸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 몸 상태는 조금 나아진 모양이지?”

“조금은······.”

아직도 온 몸은 물론, 정신까지 욱신거리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별 것 아니라는 듯 오기를 부리는 그 모습에 이진운이 슬쩍 우려의 기색을 내비쳤다.

“조금이라. 그런 상태로 내일 작전에 참여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군.”

“쓸데없는 걱정 마셔, 아저씨! 내일 작전 개시 시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컨디션을 완벽하게 회복시켜 놓을 테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쓸데없이 간섭받는 건 사양이야.”

그 나이대의 사춘기 소년처럼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레이첸의 모습에, 이진운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너에겐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번 작전에는 도이벤 행성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러니 나로선 최대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칫! 알았어. 내 몸 관리는 알아서 잘 할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도 돼.”

그렇게까지 말하니 레이첸도 더 이상 신경질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가 한결 누그러진 투로 대답하자, 이진운도 더 이상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런데 그 부작용, 그냥 육체에 부담이 가는 그런 형태인 건 아닌 것 같군. 힘을 빌려오는 대상으로부터 영혼과 정신이 압박을 받거나 침식되는 그런 종류의 부작용으로 보이는데······.”

“아니, 그걸 어떻게!? 아저씨 전문 분야가 그 쪽이었어?”

이제 그만 발걸음을 떼려던 레이첸이 깜짝 놀라 이진운을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그 정도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전문이라 할 정도는 아니야. 나도 그와 비슷한 경우를 몇 가지 알고 있어서 짐작한 거니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볼 것 없어. 강신과 관련된 문제라면 대부분 비슷하더군.”

“그래?”

레이첸이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레이첸은 곧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런 레이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진운이 조금 무겁게 중얼거렸다.

“강신이라···.”

바이우드 가문의 혈족들이 겪는 부작용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 이제야 조금 감이 잡혔다.

초월에 이른 상위의 존재가 가진 격과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런 존재의 힘을 일개 필멸자가 끌어다 쓰게 되면 자신의 자아와 혼이 조금씩 마모되어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힘을 빌려주는 초월적인 존재가 필멸자를 배려해준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신적 존재들이 일개 필멸자를 일부러 배려해 줄 것 같진 않았다.

특히 레이첸이 힘을 사용할 때마다 언뜻 드러나는 기운의 성질만 보더라도, 바이우드 가문과 연결된 초월자의 성향이 어떤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어째서 바이우드 가문은 저런 위험한 존재의 힘을 받아들인 거지?”

이진운이 내뱉은 마지막 의문이 복도 안을 조용히 울렸다.

* * *

예정된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다음날 정오가 된 순간, 바이트 함대와 인피니티 킹덤은 예정된 위치에서 곧바로 작전 개시에 들어갔다.

이번 작전은 아주 간단했다. 두 함대가 좌우 양 쪽에서 번갈아가며 인베이더 무리를 공격해 치고 빠지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이진운과 그 일행이 탄 소형 고속함이 위상전환의 기축이 되는 함을 다운시켜서 놈들을 위상공간에서 끄집어내야 했다.

이번 작전을 위해 특별히 개조된 고속함에 탑승하면서 이진운은 아리엔과 일행들에게

“과정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이 작은 고속함 하나만 믿고 적진 안으로 뛰어드는 격이니까. 물론 두 함대와 도이벤 사령부의 병력들이 놈들의 시선을 끌어주기로 했지만, 그것만 무작정 믿고 있을 순 없는 일이지. 이런 전장에서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항상 경계하도록 해라.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서로를 의지하도록. 위기에 처한다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 옆에 서 있는 동료들뿐이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옆에서 레이첸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지만, 다들 그러려니 했다. 그동안 녀석이 삐딱한 태도를 보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저건 레이첸의 본래 성격이 나쁘다기보다는 그냥 일종의 말버릇이나 다름없어서, 이젠 신경도 안 썼다.

고속함에 탑승하자마자, 내부의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아르페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조금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건네 왔다.

[이제 곧 1분 후 작전에 들어갑니다. 사령관님, 그럼 무운을 빕니다.]

“그래,”

그렇게 작전 직전의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은 뒤, 드디어 고속함에 시동이 걸렸다.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리스티가 조종석에서 몇 가지를 조작하며 말했다.

“일단 최대한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도록 개조해 놨어요. 그래봤자 소형함이라서 한계는 있었지만, 어지간해서는 아주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는 들키지 않을 걸요?”

광학적인 비가시화 모드는 물론, 센서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스텔스 기능까지··· 이 모든 것을 리스티 혼자서 도맡아 해결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전함이라면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기능들이긴 했지만, 리스티는 이것들을 불과 반나절 사이에 거의 최상위 스펙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개조해냈다.

“수고했어.”

“수고는요, 뭘.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어차피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고요.”

크게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리스티, 이진운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 1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드디어 두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피니티 킹덤과 바이트 함대는 각각 북서부와 남동쪽에 위치한 상황.

이들이 포문을 연 채로 접근하기 시작한 이상, 하이브를 구축하느라 조용히 있던 인베이더들도 더 이상 가만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의 반응이 나타났다. 먼저 인피니티 킹덤이 다가서자마자, 인베이더 함대가 드디어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놈들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있던 오퍼레이터가 보고를 올렸다.

[옵니다! 인베이더 함대 급속접근 중! 인베이더 개체 총 수 25878! 그중 전함이라 할 만한 것들은 432체입니다.]

“그래, 그냥 접근했을 뿐인데도 과하게 반응해주는군. 그럼 우린 계획대로 물러나 줘야지.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치고 빠지면서 시간을 끄는 것 뿐이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린 아르페인이 즉시 명령을 내렸다.

“그럼 놈들이 다가오는 만큼 거리를 벌린다. 그래도 무작정 물러나면 놈들이 의심해서 접근을 꺼려할 수도 있으니, 필사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화력을 퍼부어. 어떻게든 놈들의 관심사를 이쪽으로 끌어 모은다!”

[예, 전함 주포를 제외한 전 포문 개방! 제네레이터 출력 65%]

그때부터 인피니티 킹덤에서 쏟아진 막대한 포화가 인베이더 함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적중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놈들이 보유한 위상전환 기술이 그 공격들을 그대로 투과해 지나가도록 만들었으니까! 그러자 오퍼레이터들의 안색이 변했다.

도이벤 사령부가 제공한 데이터를 통해 이런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현실로 닥치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역시 통하지 않습니다!]

“당황할 것 없다. 이 정도는 다들 예상하고 있던 일이잖아. 그냥 통하지 않더라도 더 많이 퍼부어! 그럴수록 놈들은 우리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거다.”

침착하게 지속적인 화력 투사를 명령한 아르페인. 그의 눈동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냉정했다.

위상전환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술 덕분에 이쪽이 다소 불리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황인 건 아니었다.

인피니티 킹덤의 공격이 일방적으로 통하지 않는 건 좀 곤란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베이더들의 공격이 예전에 비해 달라진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화력은 기존과 거의 비슷했다. 그렇다면 이쪽도 배리어 강도의 출력을 높여서 버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네레이터 출력의 반 가까운 양을 디스토션 필드를 비롯한 방어 수단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 출력을 배리어에 추가로 집중시킬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 유동성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쿵! 콰아앙! 쿠구구구!

인베이더들이 쏟아낸 포화가 드디어 인피니티 킹덤이 있는 곳까지 쏟아졌다. 격렬한 진동이 함체를 크게 흔들고 있었다.

[적 포화에 필드 출력 저하. 현재 출력 2% 감쇄!]

오퍼레이터의 보고가 들려왔지만, 아르페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뭐, 아직까진 상정 이내로군. 필드의 내구 출력이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도록. 우리는 지금 이 전투에서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야.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버티는 것이다.”

[예, 필드 출력 상한 유지.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필드에 작용하는 충격량이 상당합니다만 아직까진 버틸 만 합니다. 하지만 방어에 집중한다 해도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한계에 도달할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선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 이제 곧 바이트 함대가 우리의 바턴을 이어받을 테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북동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바이트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정했던 대로 인피니티 킹덤은 슬슬 빠지고, 그쪽에서 인베이더들을 자극해서 유인할 때였다.

콰아앙!

바이트 함대에서 쏟아진 포화가 인베이더 함대 주변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놈들도 그쪽으로 타깃을 바꿨다. 이제 슬슬 화력을 줄이기 시작한 인피니티 킹덤보다는, 막 거센 화력을 퍼부어대기 시작한 바이트 함대 쪽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인피니티 킹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진운 일행이 탄 고속함이 드디어 출발했다. 인베이더들의 관심이 바이트 함대에 집중된 지금이라면 존재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 그럼 목표물까지 최단거리로 날아갑니다! 울트라 스텔스 작동!”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소형 고속함은 리스티가 설치한 각종 스텔스와 비가시화 모드가 작동하면서 허공에 녹아들 듯 완벽하게 그 모습을 감췄다. 심지어 날아가면서 발생하는 파공성조차 지워버리는 고성능인 터라 제아무리 인베이더들이라 해도 이 함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성능에 대해 자못 불안해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레이첸이었다.

“어이! 너 리스티라고 했지? 이거 안전하긴 한 거지?

“당연하지! 내가 직접 손본 작품인데. 물론 시간이 촉박해서 몇 가지 첨부하지 못한 게 있긴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잠시 사용하기에는 넘치고도 충분해.”

하지만 그 말로도 레이첸은 안심하지 못했다. 오히려 잠시라는 말에 더 불안해하는 표정을 드러내었다.

“이봐, 잠깐! 잠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고? 그럼 소요시간이 조금 길어지면 들킨다는 말이잖아!”

정확히 10분 동안은 안전하다는 그 말에, 레이첸이 발작하듯 소리 질렀다.

“이런 미친! 애당초 작전부터가 제정신 아닌 것 같더라니!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네 말대로 그 10분이라는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어떤 변수라도 생간다면 우린 끝장이야!”

“걱정 마. 이 함 꽤 고속함이라서 말이야 접근하는 데는 5분도 채 안 걸려. 이제 1분 지났네. 조금만 기다려 봐. 금방 갈 테니까.”

여전히 태연스러운 리스티의 모습에, 레이첸은 더 이상 말할 기운조차 잃은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제기랄, 내 평생 가장 긴 5분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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