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39화 (140/448)

6권-14화

모함으로 귀환한 이진운은 아르페인이 올린 보고에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젠다인 대장이란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헌데 그 사람, 신뢰할 만한 사람이긴 한가?”

“예, 제 스승님과의 인연도 꽤 깊었었죠. 제자인 저는 그냥 조금 아는 정도지만 말입니다.”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이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따로 조사를 해볼 생각입니다만, 곧 있을 작전을 생각하면 여의치가 않더군요. 아무래도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당장은 조사가 어렵다는 말이었다. 이진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처음부터 워낙 거슬리는 작자였는데, 괜한 골치를 썩게 만드는군.”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해 봤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못미더운 인간이라 해도 엄연히 한 함대의 사령관이었다. 게다가 한 척의 전함조차 아쉬운 지금, 바이트 함대를 완전히 배제한 채 작전을 진행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아르페인에게 의견을 구했다.

“믿을 수 없는 아군은 적보다 더 무서운 법인데, 뭔가 대책은 있나?”

“저 혼자라면 조금 어렵습니다만··· 리스티 양이 조금 도와준다면 방법이 있을 듯도 합니다.”

“리스티의 도움이? 흐음, 무슨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거지?”

리스티가 여기서 언급되자,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진운. 아르페인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예, 저 혼자서도 어느 정도 가능은 합니다만, 그래도 실패할 확률은 최대한 줄이는 게 좋겠지요.”

“그래, 그럼 말은 해두지. 하지만 이번 작전에는 리스티도 참여하게 되어 있어. 혹시 이 일이 작전에 차질을 빚게 하진 않겠지?”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리스티 양이 함의 시스템을 조금 손봐주면 끝나는 일이니까요.”

“그래. 그렇다면 됐고.”

그것이 과연 어떤 방법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이진운은 굳이 묻진 않았다. 그만큼 아르페인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되겠지. 나는 위상전환 시스템을 가진 전함만 격파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진운은 메인 브릿지에서 나와 아리엔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인피니티 킹덤과 바이튼 함대, 그리고 도이벤 사령부와 협의 끝에 정해진 작전 개시 시각은 내일 오전 9시.

이진운은 그 사실을 일행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먼저 아리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내일 9시에 작전 개시라니··· 꽤 서두르는군요. 조금 더 철저하게 준비한 뒤에나 시작할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서 그래. 인베이더 놈들 때문에 도이벤 행성에 남아 있는 각종 설비와 기지들이 하루가 다르게 박살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일주일도 못 되서 남는 게 하나도 없게 될 지경이지.”

도이벤 행성의 가치는 바로 대량의 군수물자 생산과 부대정비에 필요한 각종 설비에 있었다. 그 덕분에 라인트라에서 싸우고 있는 함대들에 별 탈 없이 싸워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지원행성의 기반에 완전히 박살난다면, 앞으로 라인트라에서의 전쟁이 더욱 어려워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을 무사히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작전 개시일을 조금이라도 당길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러니까 다들 철저히 준비해둬. 내일 9시가 되면 곧바로 작전이 시작될 거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미리미리 챙겨두고.”

이진운의 말에 다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

그리고 옆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자 아리엔들과 달리 조금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레이첸의 모습이 그 자리에 있었다. 뭔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레이첸, 아까부터 계속 날 쳐다보고 있던데,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할 말이 있으면 해봐라.”

이진운이 말을 걸자, 레이첸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 말은 무슨. 그냥 보고 있었던 거지.”

“말은 그렇게 해도 네 표정은 그렇지가 않더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상대의 속내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이진운의 시선에, 레이첸도 계속 아니라고 우길 수도 없었다.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나도 이런 말 꺼내기는 조금 미안하긴 한데··· 아저씨한테 한 가지 물어보겠어. 이 녀석들을 전부 데려가겠다는 거 진심이야?”

“그래, 전부 함께 가기로 했지. 왜, 무슨 문제라도 되나?”

이진운이 오히려 그렇게 되묻자, 레이첸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런 위험한 작전에 쟤들을 데려가겠다고? 정말로? 내가 볼 땐 그냥 방해만 될 텐데.”

“뭐야? 방해라고!?”

아리엔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진운은 분명 자신들의 전력을 다 감안해서 이번 작전 멤버를 결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데려가 봐야 방해만 된다니! 이건 레이첸이 자신들의 실력이 수준 이하라고 폄하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뭐라 따지려 들던 아리엔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진운이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해! 일단 말을 들어보고 결정하지.”

그러자 쥐죽은 듯 조용해진 가운데, 레이첸이 그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무 고깝게 듣진 마.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된 건 바로 며칠 전의 일 때문이니까. 그때 아리엔이란 저 애의 실력을 확인해 봤었어. 물론 그 나이 대 오버레들에 비한다면 상당한 편이긴 했지. 그래도 내가 볼 땐 이번 작전처럼 위험한 일에 나설 정도는 아니었어. 그리그 그 옆에 있는 저 꺽다리와 꼬맹이는 그보다 더 못했고.”

꺽다리와 꼬맹이는 바로 클레브와 엘레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실력을 폄하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는 그 행태에 클레브와 엘레나는 약간 화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진운이 한 말이 있는 만큼, 이 상황에서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저 녀석이 무슨 소릴 하는지 잠자코 듣고 있기로 했다.

“그런데도 저 녀석들을 데려간다고? 옆에 있는 프론사이드 가문의 차녀야 위상전환 문제 때문에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머지 녀석들을 데려가 봐야 짐만 될 뿐이야. 게다가 재들 아저씨 제자라며? 설마 일부러 데려가서 다 죽일 셈이야? 그게 아니라면 나와 아저씨 둘만 가는 게 좋을 거야.”

꽤나 제멋대로이고 거칠기 짝이 없었지만, 이것도 레이첸 나름대로 아리엔들의 안위를 생각해서 꺼낸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진운의 말도 조금은 온화해졌다.

“그건 걱정할 거 없다. 이제 저 녀석들도 나름대로 강해졌거든.”

“뭐, 강해져? 이봐 아저씨, 지금 제정신이야? 그때부터 고작 며칠이나 지났다고 뭘 얼마나 강해져!?”

레이첸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라인트라까지 오는 동안 아리엔들이 이진운과 함께 아주 힘든 수련을 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떤 수련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매일같이 거의 녹초가 되어 수련장에서 나오는 것을 목도했었으니 보통 수련은 아닐 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수련법이라 해도 불과 2주 정도에 불과한 시간 동안 강해질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그 녀석들은 네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해졌다. 절대 짐이 되진 않을 거라고 내 이름을 걸고 보장하지.”

“으음······.”

레이첸은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진운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상위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 그가 이름을 건다고 말할 정도면, 고작 요 며칠 새에 뭔가 확실한 성과를 얻었다는 말인데···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아저씨가 정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더 이상은 걸고넘어지지 않기로 하겠어. 하지만 이건 분명히 알아 둬. 나는 이 일에 대해 책임 못 진다는 걸. 그러니까 저 녀석들이 잘못되어도 난 몰라. 데려가지 말라고 난 분명히 말했으니까.”

“그래, 무슨 일이 생겨도 네 책임이 아니니 그쯤 해두지?”

“치잇!”

그렇게 자신이 책임이 아니라고 확답을 받아 놓고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는 레이첸. 굳이 위험한 작전에 제자들을 데려가려는 이진운의 심리를,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들 스스로가 바라는 일이니 더 이상 말해봐야 괜한 쓸데없는 참견만 될 뿐이다. 게다가 자신은 어디까지나 이 함대의 정식 소속이 아닌 외부인이었고,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한 상황.

그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 뒤에도, 내일 작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몇몇 부분이 변경된 만큼 다시 숙지할 필요가 있었다.

작전 하달이 끝난 뒤, 이진운이 리스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리스티, 잠시 시간 있지?”

“무슨 일인데요, 아저씨?”

“아르페인이 너에게 도와달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메인 브릿지로 가 봐라. 내일 작전 때문인 모양인데, 시스템을 조금 손봐 달라고 하더군. 오래 걸리진 않을 문제 같던데.”

“그 아저씨가요? 별일이네요, 날 다 찾고. 카멜롯의 시스템은 제가 만든 거라서 그다지 손볼 게 없을 텐데. 무슨 일이래? 알았어요. 시간은 충분하니까 공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들러 볼게요.”

리스티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알았다고 답했다.

“그럼 작전 하달은 이걸로 마친다. 각자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도록. 내일 작전 시간만 준수하면 되니까 편히 쉬는 게 좋을 거다. 내일은 말 그대로 지옥이 될 테니까.”

이진운의 그 말과 함께 모두들 해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난 것은 리스티였다. 그녀는 곧바로 아르페인이 찾는다는 메인 브릿지로 향했고, 그 다음엔 아리엔들이 응접실을 나섰다. 그 뒤를 따르던 레이첸이 아리엔들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너희들 진심이냐?”

“무슨 소리야? 그게?”

그 말에 아리엔들이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레이첸을 돌아보았다.

“내일 굳이 작전에 참가하겠다고 하니, 다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지금 묻고 있는 거다.”

“죽을 각오? 아니, 그래서 넌? 우리가 죽을 거라고 벌써부터 단정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데? 아예 죽으라고 악담을 하지, 그래?”

상황이 이쯤 되니 아리엔의 입에서도 고운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짜증어린 말투로 받아치자, 레이첸이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단정하는 게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지. 불과 이주만에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네 실력이라면 어림도 없어.”

“정말 오만하네, 넌. 내 실력이 그동안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도 안하고 확신하는 거야?”

“수련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해 봤어. 가문의 비전 수련법도 수없이 겪어봤었지. 하지만 고작 이주 만에 실력이 완전히 달라질만한 수련법은 없어.”

“그래서 확신하는 거구나. 우리 실력으론 내일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이야.”

이쯤 되니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표정과 눈빛을 보니 레이첸은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도 대충 납득이 갔다. 레이첸은 그 나름대로 자신들을 걱정하고 배려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이런 일방적인 배려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리엔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야. 네가 아는 상식과 달리 우린 강해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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