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37화 (138/448)

6권-12화

그제야 뭔가 심상찮다는 것을 깨달은 오콜로스의 시선이 레이첸을 향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너무도 당당한 태도. 그리고 서슴없이 지껄이는 건방진 말투.

처음에는 앞뒤 분간 못하는 시건방진 애새끼인줄 알았는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뭔가 느낌이 찜찜한데··· 관리국에서도 애지중지 하는 것 같은 저 이진운 녀석도 어쩔 수 없다고? 그럼 내가 알지 못하는 거물의 자식이라도 된다는 건가?’

함대 사령관이 된 이후 그가 오랫동안 목숨 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민한 눈치 때문이었다.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거나, 혹은 뭔가 껄끄럽다 하는 느낌이 들면 절대 발을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헌데 지금, 저 어린 녀석에게서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 결과, 레이첸을 대하는 오콜로스의 태도도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으흠, 그런가? 어쨌든 비겁자라니, 그건 좀 말이 심한 것 같군. 그래, 소년.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헤에··· 이제 와서 괜히 점잔이라도 떨고 싶은 모양이야. 아니면 저 아저씨 말 때문에 그새 간이 오그라들기라도 한 거야?”

아직도 비웃음 어린 표정으로 이죽이는 레이첸. 오콜로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애써 참아냈다.

[말조심하게, 소년. 본 사령관은 지금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어.]

“그 인내심이란 것도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데. 얼굴 벌게진 것 봐. 그 표정만 봐도 알겠어. 지금 날 때려눕히고 싶은 심정이지?”

[······.]

소년의 노골적인 그 말에도 오콜로스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관리국에서 한 함대의 사령관을 맡을 정도면 상당한 위치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눈 아래로 내리깔 수 있는 녀석이라면, 보통 배경을 가진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잠시 감정을 가다듬은 뒤, 감정을 지우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무엇 때문에 내게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 애당초 그쪽에서 제안한 작전은 너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성공확률도 낮은데 굳이 전력을 소모해가며 시도할 필요가 있을까? 난 회의적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관리국의 지원을 받은 다음 확실한 대책을 세워서 대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지. 무모한 시도로 희생자의 수만 늘리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아.]

“아하··· 핑계는 그럴 듯하네. 그래서 아저씨 별명이 불사신 오콜로스였구나. 죽을 것 같은 상황에는 아예 발을 들이지 않으니까? 캬, 기가 막히네. 누가 지었는지 아주 잘 지었어.”

[···으음.]

오콜로스의 입에서 타오르는 듯한 침음성이 흘렀다. 자신을 거듭 모욕하는 저 주둥이를 마음 같아선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전장에서 생환하게 해주었던 그 직감이 그가 경거망동 하지 못하게 했다.

곧 레이첸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결론은 간단하네. 아저씨의 바이트 함대는 참여 안하겠다 이거지?”

[그렇다. 뭐라 말해도 내 결심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확인 차 묻는 그 말에,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는 오콜로스. 상대의 배경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목숨이 위험한 일에 동참할 순 없었다.

그러자 레이첸이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이쯤 되면 알아서 길 줄 알았는데, 어지간히도 자기 목숨이 중요한 모양이었다.

결국 되도록 꺼내지 않으려던 패를 사용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내 참, 진짜··· 어지간하면 나도 가만있으려 했어. 괜히 집안배경을 들먹이는 그런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하는 짓을 보니 가만있질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이번만큼은 아저씨한테는 좀 갑질 좀 해야 할 것 같아.”

[무슨 말을······?]

“바이우드 들어 봤지? 당신 같은 모자란 작자도 들어는 봤을 거야. 하긴 남의 눈치나 보면서 사는 작자니 그런 정보에 대해선 더 빠삭하려나?”

[네가 설마··· 아니 당신이 그곳의······.]

오콜로스의 두 눈이 지금까지완 다르게 가늘게 떨렸다.

설마 바이우드 가문이라니··· 그 이름이 여기서 튀어나올 줄이야. 보통 배경을 가진 게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어린 것이 그곳과 연관이 있다면 상상 이상의 거물이라는 말 아닌가.

그제야 오콜로스는 자신이 아주 고약한 상대에게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맞아. 내가 바로 그곳 직계 장남이야. 내 아버지가 바로 바아우드 가의 가주인 바이첸 바이우드지.”

[······.]

오콜로스의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바이우드 가문의 방계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처지거늘, 심지어 가주의 장자라고!?

이건 그냥 거물 정도가 아니라 초대형 거물이었다.

그는 일순 아뿔싸 하며 속으로 외쳤다.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젠장, 똥을 밟았구나!’

하지만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 여기서 조금 더 실수하면, 진짜 시궁창까지 떨어지는 수가 있었다. 바이우드 가문이라면 한 함대의 사령관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과 힘을 갖고 있었으니까.

“이봐, 비겁자 아저씨. 꽤 시답잖은 소릴 지껄이는 것 같던데, 앞으로 그 밥그릇 내려놓고 싶지?”

[······.]

“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잖아. 당신 같은 작자가 함대의 사령관이라니. 내 참,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싸울 생각도 안하고 도망칠 생각부터 다 한데?”

여러모로 빈정거렸지만, 오콜로스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밉보인 판국에 더 밉보였다간 이 사령관 자리마저 잃는 수가 있었다.

“흥, 역시 재미없네. 우리 가문 이름만 듣고도 이런 반응이라니. 이래서 내가 가문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지 않는 거야. 다들 발바닥 핥기 바쁘거든.”

흥미를 잃었다는 듯, 냉소적인 투로 내뱉는 레이첸. 그는 오콜로스의 두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경고했다.

“어쨌든, 거기 비겁한 아저씨는 이번 작전에 동참해 줘야겠어. 도망갈 생각은 말라고. 만일 도망가거나 포기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의 사령관 권한을 박탈시킬 테니까.”

[···알겠습니다.]

비굴한 그 모습을 더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는 레이첸. 그는 이진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 이걸로 해결 됐지? 사령관 아저씨.”

“그래. 도움 잘 받았다.”

이진운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대꾸해줬다. 제아무리 바이우드 가문의 장자라 해도 그렇지, 당연히 거쳐야 할 형식절차를 다 무시하고 함대의 사령관을 갈아 치우겠다는 협박을 하다니.

상상 이상의 폭거를 저질렀지만,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흥, 도움은 무슨. 그냥 저 비겁자가 지껄이는 게 눈에 거슬렸을 뿐이야.”

쑥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돌리는 레이첸의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보였다. 역시 겉으로 드러난 태도는 좀 거칠어도, 속마음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녀석이 곧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근데, 이 작전. 정말로 승산이 있는 거겠지?”

“글쎄다. 완전히 확신할 순 없지. 변수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따진다면 3할 정도의 승산은 있다고 봐야지.”

“3할이나 꽤 희박하네.”

“지금 상황에서 3할이면 상당히 높은 확률이다. 특히 이런 전장에서는 더욱 그렇지.”

“뭐, 어쩔 수 없나.”

녀석도 물러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긴 오콜로스에게 그렇게 쏘아붙였을 정도니, 위험하다고 해서 포기할 녀석은 아니겠지.

이진운은 아르페인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가 즉시 명령을 내렸다.

“그럼 이제부터 강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우리의 첫 목표는 PE-50923a. 도이벤 행성의 사령부가 있는 곳. 그들과 합류해서 도이벤 행성 수복 작전을 시작할 것이다.”

[예!]

그때부터 오퍼레이터들이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도이벤 행성 사령부가 자리한 곳으로 최단 강하 궤도들 중에서 가장 안전한 궤도를 산출하고, 현재 침공 중인 인베이더들의 분포를 파악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대략 10분 만에 그 계산을 마친 인피니티 킹덤은 곧 강하준비에 들어갔다. 그것은 바이트 함대도 마찬가지였다.

[곧 강하가 시작됩니다. 승무원들은 충격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쿠구구구!

시뻘건 기운과 함께 함대가 대기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대기와의 마찰로 인해 생긴 열기가 화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상당한 충격에 함 내가 크게 흔들렸지만, 다들 충격에 대비하고 있는 만큼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진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순간, 무언가를 발견한 오퍼레이터가 외쳤다.

[인베이더 무리 초고속으로 접근 중! 화면에 표시합니다.]

곧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함대에 접근하고 있는 인베이더의 모습이 비쳐졌다.

비행형 중에서도 상위 급인 드레이크였다. 용종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인데, 상당히 강력했다. 발 디딜 곳이 없는 공중전에서는 이만큼 상대하기 껄끄러운 녀석이 없었다.

결국 이진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가 강하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겠다 이거군. 내가 나가겠다. 그러니 다들 자리를 지키고 있어.”

“예, 그럼 무운을.”

이진운의 실력을 잘 아는 아르페인은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가 해치까지 나서자, 그때 옆으로 따라붙는 이가 있었다. 바로 레이첸이었다. 이진운이 그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또 왜 따라왔지?”

“이런 위험한 일에 아저씨 혼자 보낼 순 없잖아.”

“쓸데없는 걱정이군.”

항상 되바라진 얼굴로 투덜대는 주제에 자신을 걱정해서 따라오다니. 이진운은 생각보다 여린 그 속내에 피식 웃고 말았다.

위잉!

곧 해치가 열렸다. 이진운은 뛰어내리기 직전, 레이첸을 향해 말했다.

“따라오는 건 자유지만, 그 전에 잘 생각해라. 널 지켜줄 생각은 없으니까.”

“쓸데없는 소릴! 누가 누굴 지켜줘!?”

도발적인 그 말에, 레이첸이 발끈하며 외쳤다.

“나는 바이우드의 장자야! 누가 감히 날 지켜준다는 거야? 건방지게!”

그 말과 함께 레이첸이 해치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곧 발동한 배틀슈츠의 플로트 윙의 기능이 발동되면서 금세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어리군.”

이진운은 조용히 웃고는 마찬가지로 해치 아래로 뛰어내렸다.

구오오오!

플로트 윙을 전개한 상태로 저 아래로 내려가자, 빠르게 접근하고 있던 인베이더들의 모습이 보였다. A+랭크인 드레이크 타입 둘에, 다수의 인베이더들이 보였다.

“하아아!”

레이첸이 기합과 함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푸른 기운이 폭발적인 형태로 번져나왔다.

그것은 무척이나 기묘했다.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기운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였다.

‘신기하군. 푸른 색으로 이루어진 열과 냉기가 공존하고 있는 힘이라니······.’

이런 기묘한 것은 무림에서도 보지 못했다.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힘이었다.

‘그때 바이첸 가주가 그랬었지. 그가 강신에 대해 언급했던 걸 보면··· 저것도 그런 종류의 일종인가?’

하지만 강신 분야에 대해선 깊이 파고들질 않았기 때문에, 레이첸의 힘이 강신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렇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지금 저 힘을 발휘하는 레이첸은 충분히 S랭크에 첫발을 디딘 수준으로 강하다는 것을.

쩌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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