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11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오퍼레이터는 이진운이 내린 명령에 따라 즉시 바이트 함대로 연락을 취했다.
그 덕분에 현재 도이벤 행성의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수 있게 된 오콜로스는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그렇다면 설마 도이벤 행성에 있던 아군의 전력이 모두 괴멸이라도 했다는 건가?]
“전멸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상 데이터에 숨겨진 비밀 기지의 좌표가 첨부되어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그곳으로 대피해서 항전을 준비하고 있겠지요.”
아르페인의 그 말에 오콜로스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렇다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우리 입장이 좀 곤란하게 됐군.]
“그렇지요. 일단 이곳에서 1차적으로 정비를 마친 후에 이곳을 기점으로 근방 주역을 정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정작 도이벤 행성이 이 꼴이 되었으니······.”
현재 함선의 스크린 위에 비치는 도이벤 행성의 모습은 처참했다. 행성 곳곳의 기지들 중 상당수가 파괴된 상태였다. 오콜로스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 사태는 지금으로선 수습할 길이 없어 보이는군. 인드라의 그물조차 통하지 않는 놈들을 상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야.]
“더 큰 문제는 저 밑에서 하이브가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겠죠. 이대로 놔두면 도이벤 행성을 완전히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할 겁니다.”
손을 써야 한다는 아르페인의 말에, 오콜로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우리가 가진 전력이 적은 편은 아니자만, 놈들의 저 기묘한 기술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잖은가. 나는 차라리 이 상황을 먼저 관리국에 보고한 뒤에 지침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는데.]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도이벤 행성에 남은 사람들은 얼마 못가서 고사되어 대부분 죽게 될 겁니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리다가 우리가 보유한 전력까지 다 허공에 날릴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자넨 애꿎은 희생자를 더 늘리고 싶은 겐가? 자넨 어떨지 몰라도 난 그럴 생각이 없네.]
오콜로스의 태도는 단호했다. 도이벤 행성에서 고사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비정한 결정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함대의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그의 판단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르페인은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다면 저희에게 놈들을 격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뭐라고? 가능성이 있다고? 대체 어떻게!]
오콜로스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도 도이벤 사령부가 남긴 영상을 통해 인베이더들의 위상전환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기술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걸 타파할 수 있다고?
아르페인은 침착하게 대답해주었다.
“놈들이 선보인 위상전환 기술을 일부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이 저희에게 있으니까요.”
[그게 정말인가?]
“예, 사실입니다. 완벽하진 않아서 사용 방법이 제한적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승산을 논하기에는 충분하지요.”
[으음··· 가능성이 있다라.]
하지만 오콜로스는 그 말에도 기뻐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르페인은 그 점을 좀 이상하게 여겼지만, 뭐라 묻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의 결단을 촉구했다.
“예, 그 가능성을 실제 승리로 만들려면 조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바이트 함대가 필요하다는 말이겠군.]
“예, 바이트 함대의 협력은 필수고, 현재 도이벤 행성에 남아 있는 전력도 가능하다면 동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야 승산이 높아질 테니까요.”
[그 가능성이란 게 생각만큼 높은 편은 아닌 모양이지?]
“예, 솔직히 말하자면 위험성이 큰 편이죠.”
[일단은 방법부터 듣지. 결정은 그 뒤에 내리고.]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이번 제안에 대해선 더 이상 고려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아르페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인피니티 킹덤에서 세운 작전을 그에게도 전해주었다. 두 함대가 인베이더들을 상대로 미끼 역할을 하는 사이, 이진운과 일행이 놈들의 위상공간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서 위상전환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전함을 격침시키겠다는 내용의 작전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오콜로스의 안색이 대번에 달라졌다.
[난 그런 무모한 작전에 동참할 생각이 없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어. 우리의 공격이 통하지도 않는 다른 위상에 존재하는 인베이더 함대를 상대로 시간 끌기라고? 터무니없는 짓이지. 나는 내 발로 죽을 자리로 들어가는 짓은 절대 못하네.]
“계획대로 되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작전입니다. 생각보다 희생도 적을 테고요. 그런데도 포기하실 겁니까?”
[가능성이야 있겠지. 하지만 내가 판단할 때 그 작전은 너무 위험해 보여. 어쩌면 함대의 절반 이상이 희생되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굳이 싸울 이유가 있나? 차라리 관리국에서 지원 병력을 보내거나 위상전환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할 걸세.]
“제 계산으로는 아군의 희생될 비율은 최대한 많이 잡는다 해도 2% 미만입니다. 위상전환이 대단하긴 해도, 그게 놈들의 화력 자체를 높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 아군의 포격이 통하지 않을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치고 빠지는 식으로 놈들의 신경을 건드려 가며 방어에만 집중한다면 시간을 버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거절하지. 자네의 제안은 못들은 걸로 하겠네. 처음 보는 기술을 상대로 괜히 무모한 짓을 할 생각은 없어. 신중이 가장 우선이네.]
아르페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오콜로스는 단호히 제안을 뿌리쳤다. 아니 애당초부터 그는 도이벤 행성의 사태에 개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의 성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아르페인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기에 두 눈을 치떴다.
‘이 작자, 이런 상황이 되니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비겁자 오콜로스라더니 역시 소문대로였다. 언제나 자기 안전을 가장 우선시해서 제아무리 위험한 전장에서도 불사신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작자다운 결정이었다.
아예 위험한 물에는 발을 들이지 조차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에, 아르페인은 어쩔 수 없이 이진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협상이 실패했으니, 남은 것은 사령관인 그의 몫이었다. 제아무리 아르페인이 함대의 전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함대의 실질적인 주인은 이진운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아르페인을 대신해 통신화면에 얼굴을 들이민 이진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로 이번 작전에 동참하실 생각이 없습니까?”
[흥, 이제야 얼굴을 보이는군. 이진운 사령관. 자네도 날 설득할 생각이겠지만, 방금 전 함장에게 말했던 대로일세. 나는 그 작전에 찬동 못하네. 아니, 이 도이벤 행성 자체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어. 자네도 괜히 나대다가 함대만 말아먹지 말고, 관리국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하길 기다리게나. 그게 현명한 일일세. 괜한 만용으로 나서봐야 목숨만 날릴 뿐이야. 지금까지 그런 경우를 숫하게 봤어. 승산? 어떤 전장에서도 승산은 분명 있지, 그게 0.001%라고 해도 말이야. 그런 승산에 자기 목숨을 걸어봐야 뭐가 나올 것 같은가? 아니, 그냥 개죽음일세.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욕설뿐이지. 왜 무모한 짓을 해서 자기 함대까지 떼죽음하게 만들었냐고 말이야. 나는 그런 경우를 숫하게 봐 왔네. 그러니 자네도 냉정을 되찾게. 이런 가능성도 희박한 작전을 한답시고 나서지 말고, 지금은 조용히 기다리는 게 수야. 물론 도이벤 행성에 남은 사람들의 죽음은 안타깝겠지만 젊은 혈기에 나섰다간 같이 죽을 뿐이네. 그러니 지금은 신중하게 지켜볼 때일세. 게다가 위상전환이라는 터무니없는 기술까지 등장한 이런 상황이라면 관리국에서도 우리에 대해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을 테지.]
“······.”
말은 구구절절하게 길었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이번 사태에 나서긴 위험하니 너나 나나 모른 척 하자, 이 말이었다.
하긴 인피니티 킹덤이 도이벤 행성을 위해 싸우러 나섰는데도, 바이트 함대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묻자는 말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서 지금 이진운을 이렇게 설득하고 있는 거였다. 도이벤 행성 사태에 나서지 말고 함께 공범이 되어 책임을 회피하자고.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그래도 오콜로스를 상대로 형식적인 예를 지켜왔던 이진운도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저들이 죽는 모습을 당신과 함께 사이좋게 지켜보자고요?”
[으음, 물론 마음이 불편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싸워온 경험에 근거한 것이니, 자네도 내 결정을 따라줬으면 좋겠군.]
이진운은 더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 짧게 욕설을 내뱉었다.
“개소리!”
[뭐? 지금 그 말 내게 하는 말인가?]
난데없는 욕설을 듣게 된 오콜로스가 일순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잘못들은 게 아닌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차갑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럼 나하고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당신 외에 누가 또 있지? 방금 개소리라는 말 당신한테 한말 맞아.”
[이놈이 지금!]
“왜, 나한테 욕을 듣고 나니 기분 나쁜가? 뭐, 기분은 나쁘겠지. 하지만 저 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그런 욕을 할 틈조차 없이 죽어가고 있어. 그런데도 외면하자고? 그냥 우리만 살면 된다고? 우리가 조금만 위험 부담을 하면 저들을 다 살릴 수 있는데도? 그런 게 바로 개소리라는 거다. 오콜로스. 넌 더 이상 내게 존중받을 이유가 없어.”
대놓고 무시하는 그 말에, 오콜로스의 얼굴도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도 주변에서 자신을 두고 뭐라 하는지는 이미 알만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면전 앞에서 대놓고 말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가 곧 일그러진 얼굴로 노성을 토해냈다.
[건방진 녀석. 젊은 혈기에 마구 날뛰는군. 그렇게 사지로 향하고 싶나? 하긴 그럴만한 나이긴 하지. 그게 만용인줄도 모르고. 뭐 좋다. 그렇다면 네 맘대로 해라. 하지만 나는 절대 돕지 않을 거다. 저 아래로 내려가서 도이벤 사람들과 같이 죽든 말든 알아서 해라.]
“역시 비겁자의 본성을 드러내는군, 오콜로스. 젊은 혈기 운운하면서 자신의 비겁한 심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고 하다니. 역시 명성다운 모습이야.”
[무모한 일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함대의 전력을 보전하는 것도 사령관이 해야 할 일이다. 너처럼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날뛰는 게 잘하는 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럼 이걸로 연락을 끊지. 앞으로 뭘 하든 알아서 하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신을 중단하려던 그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잠깐!”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레이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삐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통신 끊지 마시지, 비겁자 아저씨. 내가 당신한테 할 말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자 오콜로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 황당한 나머지 이젠 화를 낼 기운조차 없어서였다.
[···하, 정말이지 인피니티 킹덤에는 건방진 놈들이 많군. 감히 어린 녀석이 한 함대의 사령관한테 막말을 하다니. 위계질서가 엉망이군.]
그렇지만 오콜로스는 레이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신경 쓰는 것조차 싫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으니 여기서 끊겠다. 어린 녀석이나 잘 단속하도록. 감히 사령관들이 나누는 대화에 끼어들다니. 이에 대해서도 상부에 반드시 보고가 올라갈 거니까 각오하도록 하게.]
그렇지만 이진운은 그 엄포에 외려 비웃음을 던졌다.
“뭐 그건 당신 좋을 대로 판단할 일이지. 하지만 저 아이는 나도 어쩔 수 없는 경우라서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도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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