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35화 (136/448)

6권-10화

고오오오!

하늘이 무너질 듯한 굉음이 행성 전체에 퍼져나갔다. 하긴 이만한 막대한 중력자들이 요동치고 있으니 행성 자체에까지 영향이 가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행성의 자전축이 뒤틀리거나 공전궤도에서 이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애당초 인드라의 그물을 고안할 당시부터 그런 문제들을 모두 고려해서 설계된 것이었다.

물론 큰 진폭이 발생하면서 해일이 일어나고, 대기가 불안정해진 정도는 인베이더의 침공에 비한다면 아주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바아아앙!

공간을 뒤덮을 정도의 중력파포들이 저 우주공간을 향해 밀려나갔다. 그 목표는 도이벤 행성으로 접근하고 있는 언노운, 즉 인베이더들을 향해서였다.

그렇지만 놈들은 피하지 않았다. 지금 인드라의 그물의 화력은 도이벤 행성보다 배 이상 큰 행성이라 해도 단숨에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의 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 거지? 설마 이만한 물량을 내놓고 그냥 버리는 패로 쓰겠다는 건가?’

그 순간 젠다인 대장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놈들의 주력은 어디 있다는 거지?’

하지만 그 예측은 한참 빗나가 버렸다. 인드라의 그물에 노출된 인베이더 함대는 그냥 버리는 패가 아니었다.

단지, 인드라의 그물의 막강한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기에 피하지 않고 전진을 택한 것이었다.

“이런 미친!?”

“저게··· 뭐야?”

상황을 관측하고 있던 오퍼레이터들의 입에서 비명과 같은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온갖 실전을 다 경험해본 백전노장이라 하더라도 눈앞의 광경을 보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인드라의 그물이 쏘아낸 무수한 중력파포들은 놈들이 마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그냥 투과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목도한 젠다인 대장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어떻게 저런! 인드라의 그물이 놈들을 그냥 투과하고 지나가?”

믿기지가 않았다. 놈들의 존재가 그냥 허상이라면 이해가 가련만, 그것도 아니었다. 센서에 관측된 인베이더의 함대는 분명 실제하고 있었으니까. 함대의 질량으로 인해 주변에 미치는 중력 반응조차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할 시간은 없었다. 도이벤 행성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인드라의 그물이 이런 식으로 뚫린 이상, 이제 남은 것은 행성에 있는 전력을 동원해 직접 맞서 싸우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인드라의 그물뿐만이 아니라 다른 전력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토··· 통하지 않습니다!”

“저희 쪽의 공격이 다 투과해 버리고 있어요!”

절망적인 결과만 속속 보고되어 올라왔다. 내용은 다 한결같았다. 이쪽에서 퍼붓는 공격은 단 한 가지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놈들은 정말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그 모든 것을 무시해 버렸다. 정말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체 놈들이 무슨 마법을 부린 거란 말이냐?”

절망감에 젖어 부르짖던 그 순간, 젠다인 대장의 머릿속으로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전에 언뜻 스쳐지나가면서 들은 이야기였는데, 이 지경이 되고서야 기억이 명확해졌다.

“설마···위상전환인가?”

손바닥과 손등이 같은 자리에 존재하면서도 서로 맞닿을 수 없는 것처럼, 현실의 시공간과 서로 맞닿아 있는 이면에 존재하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이라면 연합에서도 최근 한창 연구 중이라고만 들었었는데, 인베이더 놈들은 그것을 놀랍게도 실용화 단계까지 끌고 온 것이다.

자신의 가설을 사실일 경우를 염두에 둔 그는 곧 판단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승산이 없군. 최후의 플랜을 꺼내는 수밖에.”

그가 꺼낸 최후의 플랜이란, 도이벤 행성 각지에 마련해둔 각 처의 기지들을 중심으로 항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항전할 수 있는 준비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놈들은 전에 없던 신기술을 실용화해서 들고 나왔다. 이쪽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는데, 저쪽은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상식적인 대비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이 행성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잠시 뒤, 도이벤 행성 전체에 경보가 울렸다. 그것은 최후의 항전을 알리는 그들의 발악이었다.

* * *

도이벤 행성이 인베이더에게 침공당한 지 불과 4시간 뒤. 인피니티 킹덤과 바이트 함대는 도이벤 성계 주변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들이 보게 된 것은 이미 반쯤 초토화 된 도이벤 행성의 모습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르페인도 예측하지 못한 이 사태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최전선에 있는 전선행성이 인베이더의 침공당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 다만 그 상황이 상상 이상으로 처참하다는 게 문제였다.

아르페인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이 일대의 회선을 경유해서 남겨진 통신 데이터를 찾아 봐. 도이벤 행성에서도 우리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 그렇다면 분명 뭔가 연락을 남겼을 테니까.”

이게 워프 항법의 단점이었다. 중력변동원으로 웜 홀을 열어 이동하는 워프 항법은 이동거리를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외부와 완벽히 격리되는 만큼 모든 통신이 차단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도이벤 행성이 이 꼴이 되고도, 연락 한번 받지 못했던 것이다.

오퍼레이터는 이 일대의 통신망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도이벤 행성의 사령부에서 남긴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령관인 이진운과 그 일행까지 한 자리에 모인 상황에서 아르페인은 그 데이터를 공개했다.

그것은 도이벤 행성에서 벌어진 상황을 담아낸 영상 데이터였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인베이더와, 인드라의 그물의 발동.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들어와 도이벤 행성 곳곳을 초토화 시키고 있는 인베이더 함대.

그것이 전부였다.

“······.”

너무 충격적인 영상 내용에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단지 인베이더 함대의 규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베이더와 싸우다 보면 저 정도의 함대는 흔치 않다 해도 적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놈들이 사용한 정체불명의 기술이었다. 이쪽의 공격을 전부 무효화하다니.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군의 포화를 전부 투과해 버렸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때 잠자코 있던 리스티가 입을 열었다.

“위상전환이네요.”

“위상전환?”

“예, 말 그대로 위상을 전환하는 거죠. 같은 공간에 겹쳐 있는 다른 차원의 위상과 전환하는 거죠. 동전 뒤집기하고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동전 앞뒷면이 공존하고 있어도 서로 명백히 다르잖아요.”

간단한 그 설명에 다들 납득하고 넘어갔다. 다른 위상의 차원과 어떻게 전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쪽의 공격이 왜 통하지 않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응 방법은?”

“당장은 없죠. 관리국에서도 한창 연구 중인 기술인데요. 그런데 인베이더들은 그걸 실용화 했네요.”

실로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대응책이 없다니. 그럼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렇지만 뒤이은 리스티의 말이 그들에게 작은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하긴 아직 일러요.”

“뭔가 방법이 있나?”

“예, 위상 전환 자체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아까 영상을 보니까 이 기술 자체가 완벽한 게 아니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리스티는 홀로그램 스크린 안의 영상을 되돌렸다. 그러자 인베이더 함대 중에서도 가장 뒤에 존재하고 있는 전함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것을 가리켰다.

“위상전환 상태가 된 면적과 3차원 기축을 분석해 본 결과, 아마도 이 전함이 위상전환의 핵심일 거예요. 이것만 어떻게 처리할 수 있다면 놈들의 절대방어는 완전히 무너지겠죠.”

아주 간단한 논리였다. 위상전환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을 발동시키고 있는 전함을 침몰시킬 수밖에.

하지만 아리엔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데 저 전함을 어떻게 부수지? 우리 공격 자체가 저놈들에게 아예 통하질 않는데.”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가능한 방법이 있으니까 꺼낸 말이야.

자신의 친구에게 그렇게 대꾸해준 리스티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우리가 직접 가서 저 전함을 부수는 거죠.”

“으음, 위상전환 상태라서 닿지 않는 거 아니었어? 영상 데이터만 봐도 공격만 안 닿는게 아니라 접근해도 그냥 투과하고 말던데.”

아르페인이 그렇게 묻자, 리스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사실 그렇긴 해요. 그렇지만 위상전환을 해제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거든요. 여기서는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당장 해결할 수 없어서 문제지.”

사람들은 새삼스런 눈으로 리스티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놀람과 경악이 서려 있었다.

오늘 처음 본 위상전환을, 당장은 어려워도 시간과 준비만 된다면 얼마든 해결할 수 있다니. 그녀가 천재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단 소수의 인원이라면 저들의 위상 차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제가 다른 위상 차원을 열 수 있거든요.”

“그게 가능하다 이거지?”

“예, 하지만 말 그대로 열 명 안팎이에요. 제 힘이 닿는 한도가 그 정도거든요. 함대가 침투할 수 있을 만큼 열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죠.”

그 말을 들은 이진운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위험하겠군.”

고작 십여 명의 인원만 침투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위상전환 시스템을 갖춘 전함을 격파할 때까지 저 많은 적들을 상대로 버텨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 중 상당수는 양산형이겠지만, 그래도 숫자의 폭력은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다.

이진운은 한숨 섞인 투로 물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겠지?”

“그렇죠. 이대로 놔두면 라인트라 전체가 물자부족으로 패할 걸요?”

리스티의 말 대로였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여기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전선인 라인트라에서 마땅한 거점 없는 상태로 도망쳐봐야 결과는 좋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럼 어떤 작전으로 나갈까? 우리가 무작정 놈들의 함대 안쪽으로 침투한다는 건 너무 가능성이 희박해.”

아무런 대응책 없이 십여 명의 인원으로 인베이더 함대에 뛰어드는 건 죽음을 자처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건 이진운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생의 힘을 다 되찾았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 물량을 모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리스티도 그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은 시선을 끌어야 해요. 놈들이 경각심을 가질만한 전력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거죠.”

“미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군.”

“정확히 말하자면 함대가 미끼가 되어줘야 해요. 그래야 놈들도 관심을 보이겠죠.”

리스티와 이진운의 시선을 동시에 받게 된 아르페인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들이 언급한 미끼가 무엇인지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전은 이쪽의 위험부담이 크군요.”

“그래도 하는 수 없지. 누가 시선을 끌어주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 작전이니 말이야. 그래도 그 부담을 조금은 나눌 수 있지.”

이진운은 판단이 서자마자 오퍼레이터에게 말했다.

“바이트 함대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해. 적어도 우리가 침투할 때까지는 시선을 끌어야 하니까. 본 함대와 바이트 함대가 서로 좌우에서 밀고 당기듯 놈들을 유도하면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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