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26화 (127/448)

6권-01화

그 순간, 아리엔과 클레브, 엘레나는 심장이 멈출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전에 받아 보았던 일반적인 기세의 압박과는 차원이 달랐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살의 자체는, 그들의 영혼과 정신을 허물어뜨리는 저주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 열 수가 없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턱은 석고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고, 손발은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 부들부들 떨렸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공포! 이진운이 뿌려낸 살의 앞에 그들의 육체와 정신이 압도되고 만 것이다.

‘와··· 완전히 달라. 이건 경험해 본적도 없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진운의 실제 격은 자신들이 상상하고 있던 바를 훌쩍 넘어서 있음을.

지금 그들의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건 바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절망 그 자체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그럭저럭 버티는구나. 하지만 더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이제부터는 조금씩 기어를 올릴 생각이니까.”

‘여기서 더 강해진다고!?’

그 말에 아리엔들은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것만 해도 버티기 힘들 지경인데, 여기서 더 강해진다면 어떻게 감당하라는 말인가.

처음에는 그냥 엄포인가 싶었지만, 이진운의 살기는 정말로 조금씩 더 강해져 갔다. 1초 1초가 흘러갈수록 달라진다는 게 확연히 체감될 정도였다.

“아직도 모르겠어? 점점 강해지는 살기에 미치고 싶지 않으면 부동심결을 운용해. 어서!”

이진운의 다그침을 듣고서야 세 제자는 필사적으로 부동심결의 구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처음 배운 무공을 그리 쉽게 체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점점 강렬해져가는 살기 앞에서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이진운이 일갈했다.

“너희들을 몰아붙이는 외부의 환경에 대해 의식하지 마라. 너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각자 자신의 내면이다. 자신 외의 모든 것은 허상이라 여기고, 심상 깊은 곳에 뿌리내린 자아와 마음을 다르마(Dharma-달마達磨:법法)의 심연에 닿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부동심결의 핵심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깨닫는 바가 있었던가?

그제야 제자들이 조금 달라진 모습이 되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아리엔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오는 살기 속에서 두 눈을 감더니,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은 클레브였고, 마지막으로 엘레나가 자신의 내면세계로 빠져들었다.

“이제야 겨우 감을 잡았군.”

이진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들을 일부러 궁지로 몰아넣은 것도 바로 이것을 위해서였다.

본디 부동심결은 오랜 면벽수련을 통해 자기수양을 쌓아야 체득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필요했고, 확실히 체득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극한의 상황으로 밀어붙였다.

어떤 위기나 위험이 닥쳐도 동요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부동심. 그것이 바로 부동심결의 핵심인 것이다.

잠시 뒤, 아리엔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흐릿한 금광이 그들의 눈동자에 떠올라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이진운은 제자들의 성취 수준을 알아챘다.

‘이제야 겨우 부동심결 초입에 도달했군.’

물론 그래봐야 겨우 발을 들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부동심결은 초입을 제대로 체득만 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굴하지 않는 부동심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쥐꼬리만 한 성취만으로도 지금의 살기 정도는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었는지, 세 사람 모두 숨을 몰아쉬었다.

“휴우······”

“겨우 살 것 같네.”

“죽는 줄 알았어.”

경직에서 풀려난 아리엔들이 진저리를 쳤다. 이처럼 지독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이진운에게 받아봤던 지옥특훈보다 이것이 어떤 면에선 더 지독스러웠다.

그런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조금은 깨달은 모양이지?”

“당연하죠. 못 깨달았으면 저흰 지금쯤 숨 막혀 죽었을 걸요?”

불퉁한 표정으로 쏘아붙이는 아리엔, 그것은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만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런 극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부동심결의 초입을 습득하는 데만 적어도 3년 이상 걸렸을 테니까.”

“그 정도로 어려운 거였나요?”

“그래. 부동심결은 무공이지만 무공이 아니다. 이건 정신과 마음을 관장하는 일종의 깨달음에 해당하는 심결이지. 깨우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무공처럼 열심히 한다고 느는 게 아니야.”

“그렇군요.”

아리엔들도 나름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동심결은 무공으로 접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심결이었다.

만일 지금처럼 극한의 상황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이 정신과 마음에 관련된 부분에 대해선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부동심결도 체득을 했으니 좀 더 시험을 해 볼까?”

“엑!?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갑작스런 이진운의 선언에 아리엔들이 기겁한 표정이 되었다. 좀 전에 겪은 지독스런 경험을 또 반복해야 한다는 건가?

“당연하지. 지금 너희들이 체득한 건 말 그대로 입문 수준. 제대로 초입까지 가려면 부동심결의 1법을 완성해야 해.”

“1법이라면······?”

“정심부동.”

단호한 그 말에 아리엔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도 부동심결의 구결을 외웠기에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입문한 상태에서 곧바로 1법까지 체득한다는 건 너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이게 없어도 지금까지 잘만 싸워 왔는데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앞으로 부동심결은 너희에게도 반드시 필요해. 부동심결의 효과가 어떤지는 너희도 슬슬 체감하고 있을 텐데? 안 그래?”

“효과라면··· 아!”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를 깨달은 엘레나가 탄성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죽음의 공포를 느꼈었는데도, 지금은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강한 살기에 노출된 정신은 거의 붕괴하기 마련이지.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사람들이 PTSD증상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너희는 내 살기를 받고도 그런 증상이나 후유증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지.”

“아, 정말이네요. 방금 자고 일어난 것처럼 머리가 맑아요.”

아리엔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머리가 맑은 경우는 극히 드물 정도였다.

이진운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너희는 많은 힘든 일들을 겪게 될 거다. 그 속에서 버티기 위해선 반드시 부동심이 필요해. 부동심결이 너희를 흔들리지 않게 해줄 거다.”

세 사람은 그제야 이진운이 염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의 지독한 수련법도 다 자신들을 위해서 베풀어주는 일종의 배려였던 것이다.

물론 막상 살기가 닥쳤을 땐 원망스럽고 두려웠지만, 그게 다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걸 안 이상 더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알았어요. 스승님 말대로 할게요.”

“필요하다면 배우지요. 힘들어도 말입니다.”

“저도요.”

세 사람의 뜻이 일치하자, 이진운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곧 다음 단계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그럼 마음을 굳게 다잡아라. 조금 전보다 더 강하게 너흴 압박할 테니까.”

지금은 전생을 거치면서 예전의 경지를 되찾지 못했다곤 하지만, 그는 이미 반신의 영역을 넘봤던 초월자였다.

그런 그가 발산하는 살기는 전생 시절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칠지라도, 어지간한 초절정 고수 정도는 심력에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큼 놀라웠다.

이미 그의 무형지기는 심검의 이치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으··· 으으윽!”

“크으······.”

“아으으···!”

세 사람은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살기 앞에서 신음을 토해내었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 같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단순히 견디는 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그들이 궁구해야 할 것은 부동심결이었다. 부동심결의 정심부동에 닿지 않고서는, 오래 버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살기는 반복적으로 세기를 더해갔다. 마치 망치가 쇠를 두들겨 정련하듯,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정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리엔들이 정심부동의 이치를 깨닫지 않는 이상 이 고난의 끝은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어느 정도 지나자 의식이 점점 무뎌져갔다. 아니,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 종종 본다고 하던 바로 그 주마등이었다.

아리엔은 저도 모르게 내심 탄성을 내질렀다.

‘아!’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자라고 살아온 모든 경험과 과정들이 순식간에 뇌리로 스쳐지나갔다. 이건 마치 자신의 일을 타인의 관점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지나간 순간, 당시 자신의 겪고 느꼈던 감정들이 마치 방금 체험한 것처럼 되살아났다.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에 느꼈던 슬픔도, 몰락해가는 웰라우드 가를 되살리기 위해 발악했던 그때의 결의도,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회복되었을 때 가슴을 흠뻑 적셨던 기쁨도 모두 함께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종국에 이른 순간,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마음을 굳게 다잡나니, 어떠한 망념에도 흔들림이 없노라.

부동심결(不動心結) 제1법. 정심부동(貞心不動)

부동심결의 정심부동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자신을 옥죄던 살기에서 해방되었다.

제아무리 지독한 살기라 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한 그것이 자신을 해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헌데, 그때 또 다른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푸른 하늘이었다.

높고 고고하기까지 한 푸른 하늘!

그것이 아리엔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그 앞에서 자신의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대체 이건?’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지금 보는 이것이 환상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단지 확실한 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저 하늘을 향해 겨누었다.

그녀 스스로 의도한 게 아니었다. 이상한 끌림이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뜻 모를 동작이 저절로 펼쳐졌다. 평소에는 절대 펼쳐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깔끔하면서도 완벽한 동작이었다.

검첨이 매서운 속도로 하늘을 찌른 순간, 뇌리로 이런 단어가 들렸다.

만상개화 의검천추(萬象開化 意劍天墜)

‘뭐!?’

그 순간 아리엔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 환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눈앞에는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던 이진운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 본 것은 일종의 환상이었지만, 그것을 전부 환상으로 치부하기엔 마지막에 들린 단어가 심상치 않았다.

아리엔은 혼란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상개화 의검천추라니···. 그건 내 고유스킬 명인데, 그게 어째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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