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22화
그리고 이곳에서 벌어진 참사는 오버러들의 소속 함대인 [고드렉서]에게도 전해졌다. 상시 열려 있던 통신회선 덕분이었다.
오퍼레이터들의 보고를 받은 고드렉서의 사령관은 믿을 수 없다며 기함했다.
“뭐라고? 전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PSR-05313지점으로 출동했던 소리엔 급 5척과 31명의 오버러들이 순식간에 전멸했습니다. 생명반응조차 없는 걸 보면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리가. 그곳에서 출몰한 인베이더는 2000기도 안 되는 양산형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그밖에 다른 정보는 없나?”
[아군의 신호가 사라진 지점에서 일순 고농도 영자 반응을 포착했었습니다. 적어도 마이스터 급 이상으로 보입니다.]
“으음, 마이스터 급 이상이라니··· 그렇다면 적은 최소한 성멸 급 이상이란 말인데.”
사령관은 침음하고 말았다. 성멸 급이라면 지금의 고드렉서의 전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적이었다. 물론 총력을 다한다면 지진 않겠지만,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막심할 것이다.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올리도록. 뭔가 심상치가 않아.”
[알겠습니다. 그럼···.]
즉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오퍼레이터를 화면 너머로 바라보면서 사령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심상치가 않아.”
무려 십여 년 이상 큰 교전 없이 대치중인 상황이었다. 물론 인베이더들의 침공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최전선인 이곳 라인트라에서 성멸 급이 튀어나와 부대를 전멸 시킨 경우는 근래에는 전혀 없었던 일이다.
‘어쩌면 놈들이 드디어 십여년간의 침묵을 깨고 본격적으로 발호를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상부에서도 지금 올라간 보고가 믿기지 않는 건지 여러모로 당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무슨!? 농담이겠지? 성멸 급 인베이더가 부대를 전멸시켰다니! 10년이나 조용히 지내던 놈들이 말이 돼!?]
“사실입니다! 일단 확인부터 해보시죠. 교전 데이터부터 보내겠습니다.”
전멸한 부대와 연결된 통신회선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첨부해 보내자, 상부에서도 그제야 성멸 급으로 추정되는 인베이더가 출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알겠네. 곧 인근 함대에 연락을 하도록 하지. 아군 함대들과 합류하기 전까지는 되도록 인베이더와 접촉을 피하고 피해를 최소화 하게. 그 이후에 합류가 끝나면 성멸 급으로 추정되는 인베이더와 그 무리를 확실히 격멸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사령관은 상부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굳이 단독으로 성멸 급과 싸워서 피해를 키울 필요는 없었다. 아군 함대가 추가로 합류한다면 그들과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적들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위잉! 위이잉!
갑자기 울려 퍼지는 경보음! 오퍼레이터가 자신이 모니터링을 통해 관측한 내용을 그 즉시 전파하기 시작했다.
[고 영자 반응! 인베이더입니다. 추정 타입은 성멸 급! 아니 그 이상입니다. 영자 반응이 큰 폭으로 증대!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사령관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적이 들이닥친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대수롭지 않은 규모이긴 해도 인베이더와 교전을 벌이는 경우는 이곳에서 매우 흔한 편이니까.
하지만 갑자기 성멸 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인베이더라니!
“설마, 놈이 먼저 우릴 치기 위해 선수를 쳤다 이건가?”
사령관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총원 1종 전투대비태세! 아군 함대를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 이대로 맞서 싸운다!”
상대는 무려 성멸 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인베이더였다. 후퇴한다 하더라도 일단 맞서 싸워서 추적할 수 없는 수준까지 타격을 입힐 수밖에.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메인 브릿지는 곧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제 1급 전투 발령! 대기 중인 모든 승무원들, 지금 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갑니다.]
[전 사일로 개방! 각부의 화기, 방어 시스템 스탠바이 온라인! 색적 기능 최대!]
모든 화기가 개방되고, 휴식 중이던 승무원들까지 각자 제 위치로 돌아갔다. 함 내에 대기하고 있던 오버러들과 전투요원들도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적이 옵니다!]
[수는 약 700기. 하지만 적의 질이 상당히 높습니다. 침공 급 620기에 진멸 급 진멸급 80기. 그리고 선두에 등급이 추정되지 않는 언노운이 한 기 포착되었습니다.]
적들의 접근을 포착한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사령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언노운? 방금 전 성멸급이라던 그 녀석인가?”
[아··· 아닙니다! 놈은 성멸 급이 아닙니다. 이 영자 반응은 분명 그 이상···!]
“뭐라고? 성멸 급 이상이라면 정확히 어느 정도란 거냐?”
일순 사령관의 뇌리에 불길한 직감이 스쳐지나갔다. 좀 전에 성멸 급 이상이란 말을 듣긴 했었지만, 그래봐야 그와 동급인 S랭크보다 한 단계 위인 S+랭크 정도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의 반응을 보니 그 정도가 아닌 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퍼레이터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그 불길함을 현실로 끌어올렸다.
[지금 추정한 게 맞다면 최악의 경우··· 신화 급일지도 모릅니다.]
“신화 급!?”
“신화 급이라면 S랭크보다 더 상위라는 그랜드 급과 동급이라던···!?”
“그런 괴물이 어째서 이곳에!?”
여기저기서 경악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 급의 인베이더들은 연합에서도 최상위권 강자인 천외오천과 동급의 괴물들! 수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신화 급이 나타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헌데 하필이면 이럴 때 신화 급이라니!
사령관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꼈다.
‘적이 정말로 신화 급이라면 도망갈 수도 없겠어. 이곳이 오늘 내가 죽어서 묻힐 무덤이라 이건가.’
그는 먼저 각오를 다졌다. 성멸 급이라면 어느 정도 승산을 점쳐 볼 수 있었겠지만, 신화 급이라면 이길 확률 따윈 1푼도 되지 않을 터.
살아 돌아갈 미련 따윈 갖지 않는 게 좋았다.
그것은 오퍼레이터와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자신들이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패닉을 일으키거나 하진 않았다. 이미 최전선에 왔을 때부터 죽음 따윈 다들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인베이더와 싸우기로 결정한 그때부터 그들은 언제든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주포 준비! 상대는 무려 신화 급이다! 죽기 전에 최악의 발악이라도 하는 거다!”
[예, 주포 스탠바이!]
포구가 정면을 향했다. 그곳에는 신화 급 인베이더와 놈이 이끄는 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놈들도 고드렉서의 포격 준비를 알아챘는지 잠시 전진을 멈췄다.
그리고 그때, 인베이더 쪽에서 강대한 영언이 전달되어 왔다. 그것은 고드렉서 함대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이 일대의 우주 공간에 넓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후후후··· 제법 하찮은 반항을 하는구나. 그래, 주포로 먼저 우릴 타격하겠다 이건가?]
“이런 광범위한 영언이라니··· 정말로 신화 급이었군.”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인베이더의 가장 선두에 있는 존재가 포착되었다. 은색이 섞인 푸른 갈기를 길게 늘어뜨린 늑대 수인. 놈이 바로 신화 급 인베이더였다.
[자, 네놈들에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주지. 자, 먼저 공격을 해 봐라. 네놈들이 자랑하는 그 화력으로 한번이라도 공격해볼 수 있도록 선공을 양보해 주마.]
“뭐?”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던진 그 영언에, 사령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제아무리 신화 급이라 해더라도 준대형 전함과 함대 전체가 퍼붓는 화력은 정면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신화 급이 무서운 것은 어디까지나 전함의 속도를 초월한 기동성과, 화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지, 놈의 말처럼 정면으로 화력을 주고받는 형태라면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 속이지?’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제안한 것이 사실이라면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좋은 기회지! 자, 그럼 본 함대의 모든 화력을 집중한다! 이번 한 번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거다!”
[예!]
[제네레이터 출력 상승합니다, 78%··· 82%··· 89%]
[영자 에너지 임계치 도달! 주포의 중력자 반응, 응집도 최대!]
기함은 물론 함대의 모든 전함들이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다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고오오오오!
무지막지한 에너지 파동이 우주 공간을 퍼져나갔다. 함대 전체가 제네레이터가 터져 나가도록 출력을 끌어올리자, 넘치는 에너지가 이젠 주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출력 115%! 오버로드 상태!]
오버로드 상태까지 간 이상 함대의 수명은 정상적인 경우보다 거의 절반 이상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신화 급 인베이더를 잡을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좋아! 그럼 이대로 쏜다! 모든 전함은 기함의 타이밍에 맞춰 일제히 발사한다!”
[예, 함대의 모든 타이밍을 기함으로 인계! 기함을 중심으로 주포 발사 시퀸스 스타트! 5, 4, 3, 2, 1, 0···그래비티 블래스트 발사!]
구오오오오!
무지막지한 화력의 세례가 인베이더 무리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력한 검은 빛의 중력자 파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함대의 모든 제네레이터를 오버로드 시킨 이번 포화는 어지간한 작은 행성 따윈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였지만, 선두에 서 있던 인베이더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납게 웃으며 소리쳤다.
[좋아, 좋아! 화끈한 게 날아오는군. 어디 맛을 봐 볼까?]
놈의 전신에서 압도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감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곧 살기충천한 기운이 되어 그 주변으로 응집되더니, 곧 성난 해일처럼 분출되기 시작했다.
대섬멸기(大殲滅技)
폭류파(爆流波)!
그것은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절대적인 폭력 그 자체였다.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제아무리 신화 급이라 해도 그렇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드렉서 함대의 그래비티 블래스트는 물론 수많은 빔과 포화가 인베이더가 일으킨 격류와 같은 영력의 흐름 앞에 모두 집어삼켜졌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끝없이 삼켜버리는 블랙홀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함대의 모든 화력을 깔끔하게 집어삼킨 에너지의 격류는 멈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에너지 폭류 접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신화 급의 공격이 너무 광범위해요!]
“정말 말도 안 되는군. 고작 인베이더 한 기가 이런 재앙을 일으킨다고?”
사령관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고드렉서의 모든 화력을 집어삼킨 것도 믿기지 않는데, 그것이 이 주역의 우주 공간을 뒤덮을 만한 에너지 격류가 되어 뻗어오다니!
이런 상태에서라면 워프조차 통하지 않는다. 너무 막대한 영자 에너지로 공간 상태가 불안정해지면서 시공간에 대한 간섭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저런 괴물을 연합에서는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가지고 있는 힘을 동원한다면 신화 급 인베이더 한기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천외오천을 비롯해 다수의 그랜드 급이거나 그 이상의 오버러들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인베이더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놈들이 십여 년 간의 긴 침묵을 깨고 전쟁을 시작했다면, 뭔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터.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승산 없는 전쟁을 무턱대고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령관은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연합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쿠구구구!
모든 화력을 쏟아내고 기능 부진 상태에 빠져 있던 고드렉스 함대는 곧 격류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것은 무수한 잔해들뿐이었다.
그 흔적을 훑어본 늑대인간, 루클라는 차게 식은 표정으로 내뱉었다.
[흥, 시시하군. 쓸 만한 놈이 하나 없다니. 역시 이런 어쭙잖은 놈들 상대로는 너무 과한 짓이었나? 그래도 이 근방에 있는 놈들을 다 죽이고 나면 몸 풀기 정도는 되겠군.]
그랬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라인트라에 존재하는 연함의 함대는 모두 그의 먹잇감이었다.
[남은 놈들 중에선 제발 내 흥미를 끌만한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천외오천이란 놈들이 그렇게 유명하다지!? 이놈들을 다 전멸시키고 나면 그놈들이 나설지도 모르겠군.]
루클라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인베이더 무리를 끌고 그 주역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놈의 목표는 연합의 다른 함대들이었다. 이 주역에서 연합의 함대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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