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17화 (118/448)

5권-17화

연락을 받고 다시 발터와 만나게 된 이진운은 그로부터 한 가지 데이터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정말 어렵게 찾아냈습니다. 혀를 내두를 만큼 철저하게 감춰뒀더군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어지간히도 고생을 했는지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나오는 그의 모습에 이진운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수고랄 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요.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지독스러운 작자들입니다. 자신들의 행적을 은닉하기 위해 별의별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더군요.”

“그렇습니까?”

이진운은 그 즉시 모듈밴더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열고는 그가 준 데이터를 대강 훑어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발터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이브 근처에서 발견된 비밀시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아십니까? 일종의 무한반복 하청 형태로 지어졌더군요. 하청에 하청을 반복해서 무려 145회의 재하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정작 하청을 준 최초의 회사는 이름뿐인 유령회사였지요. 찾아내고 난 뒤에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릅니다.”

“기가 막히는군요. 145번의 재하청이라니······.”

“더 기가 막힌 건 비밀시설을 짓는데 동원된 그 자들이 전부 외노자들이란 사실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행성인들이었지요.”

그렇게 말한 발터의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조사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타행성에서 유입된 취업 노동자의 숫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진운의 눈에도 데이터에 기록된 그래프가 보였다. 얼마나 많은 타행성 노동자들이 유입되었는지 알아보기 쉽게 표기되어 있었다.

“물론 외노자의 유입 증가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사회현상입니다. 아이틀란의 경제 전반이 크게 활성화 되거나 건축과 공단산업이 호황일 경우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시기에는 그럴만한 계기나 이유가 없었습니다. 경제도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넘어 침체기 상태였고요. 외노자들이 몰려들 이유가 없는데 늘어난다니··· 그래서 더 의심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외노자들이 그 시설을 짓기 위한 노동력으로 불려왔단 사실을 확인하게 됐지요.”

발터가 이걸 조사하게 된 계기는 바로 비밀수감시설에 있었다. 그만한 규모의 지하시설을 지으려면 막대한 물자와 인력이 필요했을 터. 그 흔적을 차근차근 추적해나가면 뭔가 작은 단서라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시기를 기점으로 타행성 노동자들이 늘어났으며, 그들이 반복하청을 통해 비밀시설을 건축하는 데에 동원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허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흔적을 추적해 올라가던 그는 놀라다 못해 경악할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이 시기에 들어온 외노자들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는데, 아이틀란에서 나간 기록은 단 한사람도 없다는 거였지요.”

“그 말은 설마······.”

“예, 전부 실종 처리된 모양이더군요.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비밀시설 근처의 땅 속에서 대량의 유골과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유전자 검사 끝에 실종되었던 외노자들이라는 사실도 확인했지요.”

이 사실에는 이진운도 꽤 놀라고 말았다. 비밀시설을 짓는 데에 외노자들을 동원하고,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죽여 묻었다?

물론 중원무림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우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무려 수만 명의 인명이 그 시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해되어 묻힌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사실이 지금까지 한 번도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진운이 끓어오르려는 감정을 억누른 채 물었다.

“그런 사실이 여태껏 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실종되면 분명 말이 나왔을 텐데요.”

“놈들은 아주 주도면밀하고 철저했습니다. 놈들이 불러들인 외노자들은 하나같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도 주변에서 누구 하나 신경 쓸 사람 없는 하층민 낙오자들이더군요. 때문에 그들의 실종에 아무도 관심을 갖질 않아서 지금까지 그냥 묻혀 있었던 겁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지요.”

통탄스럽다는 듯 내뱉는 그 말에 이진운은 마찬가지로 분노하는 한편,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놈들의 수법에 섬뜩함을 느꼈다.

‘생각 이상으로 무서운 놈들이군. 그런 부분까지 철저히 고려해서 외노자들을 선별해 데려온다고? 이거야말로 진짜 악마의 발상이군.’

그렇기에 더더욱 놈들을 찾아내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한 가지만큼은 간신히 알아낼 수 있겠더군요. 놈들의 끈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말입니다.”

이어지는 발터의 말에, 이진운이 귀를 기울였다.

“외노자들을 아이틀란으로 연결시켜 준 브로커 집단을 알아냈습니다. 물론 놈들 입장에서는 그 브로커 놈들도 적당히 이용한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놈들을 족치다 보면 사소한 정보라도 얻는 게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신이 언급한 브로커에 대한 단서를 이진운에게 공개했다.

그것을 확인한 이진운이 심각한 표정이 되어 되뇌었다.

“···메세니아 연방공화국?”

* * *

조사 결과를 획득한 이진운은 인피니티 킹덤과 함께 바로 귀환길에 올랐다. 인베이더도 전부 일소한 이상 더 아이틀란 행성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돌아가는 와중에도 이진운의 머릿속은 여러모로 복잡했다.

‘메세니아 연방공화국이라니······.’

그 정도로 크게 놀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가면인의 세력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하필 조사해야 할 대상이 소속된 세력이 문제였다.

메세니아 연방공화국은 아르탈 행성 연합과 비견되는 우주의 3대 세력 중 하나다. 현재 이진운이 아르탈 행성 연합 내에서는 그럭저럭 잘 나가고 있다곤 하지만, 메세니아 연방공화국 내에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발터 대장도 메세니아 연방공화국에 있다는 브로커집단까지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조사를 강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개 행성정부의 군 장성 따위가 우주적인 세력 앞에 나설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건 이진운도 마찬가지였다. 만일 브로커들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가, 그것이 외교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마찰이라도 빚기라도 하면 입장만 곤란해진다. 그나마 어렵게 얻은 독립 라이선스까지 몰수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접근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물론 메세니아 연방공화국이 범죄에 대한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대응하는 곳이었다면 이진운도 어느 정도 그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도 생각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범죄에 대한 협동조사나 범죄자 인도 같은 건 어림도 없지. 상대는 메세니아 연방공화국이야.’

그랬다. 메세니아 연방공화국은 우주의 3대 세력임과 동시에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경제력은 높은 편이지만 그 이상으로 부패지수가 매우 높았으며,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다. 만일 정치가들이나 관료들이 그 브로커들에게 돈이라도 받아먹었다면, 역공당하는 건 오히려 이진운이 될 것이다.

‘그나마 연방수상은 정의롭고 괜찮은 사람이긴 한데··· 실권이 거의 없는 허수아비군.’

현재 연방공화국의 연방수상은 이사트 베이노아. 부패한 연방공화국을 되돌리자는 의기를 품은 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의용조직 레이스컬에서 배출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올곧은 뜻은 생각만큼 관철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연방수상의 자리까지 올라가긴 했지만, 그를 둘러싼 정관계의 인물들은 그의 올바름을 배척했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연방 수상이라 해도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고 진행할 수는 없는 법. 주변에서 그의 뜻을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식물수상이란 별명까지 붙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수상이 된지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그가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수상 이사트 베이노아에게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그랬다간 오히려 연방공화국의 정치인들과 부패한 관료들을 적으로 돌리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그건 이진운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은 관리국장부터 직접 만나 봐야겠군. 관리국을 통해 말해 봐야 가면인들의 끄나풀들에게 정보가 새어나갈 위험이 더 커.’

되도록 관리국장에게 신세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지만, 가면인과 그 배후 세력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그에게 신세를 지느니 마느니 하는 걸 일일이 고려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의 골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놈들의 비밀 수감시설에서 구출한 하이엘프 제이나. 그녀의 신변 문제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정말이지 누군지 조사해 봐도 나오질 않는군.”

기억을 잃기 전의 제이나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지만, 알아낸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엘프의 사회는 무척이나 폐쇄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타인종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데다가, 사회 구성원들이 누가 있는지조차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즉, 같은 엘프가 아닌 이상 그 내부 사정을 외부인으로서는 거의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고민하길 포기한 이진운은 제이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 제이나는 리스티와 아리엔, 엘레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 이진운을 발견한 제이나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아, 사령관님이시네요. 식사하러 오셨나요?”

“아, 예.”

“그럼 제가 챙겨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이나는 이진운의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고 잽싸게 달려갔다. 그리곤 식판에 몇 가지 종류의 음식을 담아오더니 이진운에게 건네주었다.

“자, 그럼 맛있게 드세요.”

“······.”

이진운은 식판을 받아든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엘프답게 식단은 전부 채소로 꾸며져 있었다. 고기 한 점 없는 풀밭 투성의 식판을 내려다본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녀는 나름대로 이진운에게 계속 신세지는 게 마음에 걸려서 뭐라도 할 생각으로 식사를 가져다 준 것이었다. 물론 식판에 담은 음식들이 전부 엘프 식성에 맞춰져 있긴 하지만, 이걸 매정하게 거절하기도 그랬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진짜로 비건이 되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식사를 시작하였다. 처음 하는 채식이었지만, 고기 한 점 없는 식사는 끔찍할 정도였다.

말이 채식이지, 이건 거의 생식이나 다름없었다. 되도록 익히거나 데치지 않은 채소를 적당한 소스에 버무린 음식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나마 사용된 소스도 자극을 최소화 한 것들인지라, 채소의 독특한 풀냄새가 목구멍을 넘어 콧속까지 계속 풍겨오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이진운은 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앞으로는 식사를 대신 갖다 준다 해도 무조건 거절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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