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15화
하지만 안에 갇혀 있는 수감자들을 찾는다는 게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았다.
어딜 가 봐도 빈 곳 천지였다. 분명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은 남아 있는데, 정작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텅 빈 수감시설을 몇 군데 돌아본 아리엔이 리스티를 심각한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거의 다 텅 비었어. 그럼 여기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이미 죽었거나 어디론가 끌려갔겠지. 이건 어디까지 내 짐작이니까 아직 확실한 건 없어. 일단 더 살펴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리스티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는 아니지만 분명 몇 군데에선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산 흔적이 있었어. 대체 사람들을 가둬두고 뭘 어떻게 한 거야?’
그녀가 세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은 인체실험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다수의 사람들을 이런 곳에 장기간 가둬 둘 이유가 없었다.
‘이것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베이더들이 인도주의에 물들어서 범죄자들을 잡아다가 갱생시키느라 이런 시설을 만들었다는 그런 가설보단 더 신빙성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왜 인베이더들이 이런 곳에서 사람을 가둬서 인체실험을 했냐는 것이다. 아니, 인체실험도 아직 확실한 게 아니니 벌써부터 단정 지을 순 없었다.
‘그건 그렇고··· 여러모로 수상한 곳이야. 정말 인베이더가 만든 게 맞아?’
처음부터 눈여겨 살펴봤지만, 이곳의 대부분의 시설들은 인간에게 맞춰져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베이더보다는 인간이 만든 거라고 보는 게 옳았다.
단순히 인간을 수감하기 위한 거라면, 인베이더들이 굳이 인간의 편의에 맞춰서 수감시설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리스티가 의심하는 부분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내가 해킹했던 문의 방범 시스템. 그것도 분명 인간의 손길이 닿아 있었어.’
다만 시스템의 구성 체계는 조금 복잡했다. 아르탈 행성 연합은 물론 메세니아 연방 공화국과 론데니움 제국의 방식까지 전부 융합된 형태였다.
거기에 인베이더의 독자적인 체계까지 섞인 이 방범 시스템은 분명 인간이 주도해 만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다.
‘아마도 인베이더와 협력하는 작자들이 세운 거겠지. 여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 중에서 가장 짚이는 자는 바로 가면인과 그 배후자들이었다. 인간과 지성체를 배신하고 인베이더에게 협력하는 자들.
그자들이라면 인베이더의 하이브 근처에 이런 시설을 만들어놓고 뭔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해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깊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사방을 뒤지던 아리엔이 문득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리스티, 저기 저쪽 봐.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져.”
“그러네. 그쪽에서 작지만 생명반응이 감지되고 있어.”
리스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탐지마법에도 분명 작은 생명력의 흔적이 감지되고 있었다.
“역시 맞구나. 처음에는 내가 잘못 느낀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럼 일단 확인해보자.”
두 소녀는 재빠르게 달려갔다. 그곳은 아주 구석진 곳에 자리한 수감시설이었다. 다른 곳보다 더 외진 곳에 있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한 인영이 보였다. 아리엔은 그 인영을 보고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엘프?”
“흐음, 아인종이었네.”
리스티는 조금 뜻밖이란 표정이 되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아인종도 실험에 사용된 건가?’
물론 아인종이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엘프는 좀 희귀한 종족이었다. 인간에 비한다면 엄청 길게 장수하는 일족이긴 했지만, 번식력이 무척이나 떨어져서 공화국에서도 철저히 보호를 받는다.
‘그렇다면 공화국에도 가면인의 배후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네.’
리스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쓰러진 엘프의 상태부터 살폈다.
꽤나 수척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외엔 별다른 부상이나 병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옆에서 초조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 아리엔에게 리스티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상태는 괜찮은 편이야. 그냥 정신을 잃은 것뿐이니 걱정할 것 없어. 잘 먹고 하면 기력을 되찾을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네.”
처음 보는 타인인데도 자신의 일인 것처럼 걱정하던 아리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런 모습이 참 너답긴 하네.’
리스티는 그런 아리엔이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말해 좀 이기적인 성격을 가진 자신이 아리엔과 어울리게 된 것도 바로 저런 성품 때문이었다.
아리인이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주지 않았다면 절대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기감으로 주변을 다시 훑어본 아리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그건 그렇고 이 안에 남은 사람은 이 엘프 한 사람 뿐일까? 내 기감으론 더 이상은 안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진작 철수한 모양이야. 내 탐색마법에도 이젠 걸려드는 게 없어.”
그렇기에 더 의문스러웠다. 시설 전체를 거의 비워두었으면서, 왜 이 엘프는 남겨두고 떠난 걸까?
물론 별다른 가치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리스티는 다른 가능성에 초점을 두었다.
‘혹시 함정?’
엘프는 보기 드문 종족인 만큼 무척이나 귀했다. 그런 엘프를 일부러 놓고 간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다. 놈들이 일부러 의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칫! 난 왜 이 생각을 못했던 거지?”
리스티는 입술을 깨물며 즉시 벽 쪽에 자신의 오른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생성된 영력이 마치 회로처럼 번져나가 벽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우우웅!
“무슨 일이야?”
평소와 달리 다급해하는 리스티의 모습에 아리엔이 놀라 입을 열었다.
하지만 리스티는 대답해줄 새가 없었다.
“역시 함정이었어!”
“함정?”
리스티는 자신이 뿌린 영력의 회선을 통해 이 설비의 방범 시스템을 철저히 분해해서 읽어나갔다. 아까는 단지 문을 열기 위해 그 부분만을 해킹했을 뿐이지만, 지금은 시스템 전체를 읽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엘프를 구하는 시점에서 이곳을 자폭시키려 했다 이거지?’
시스템을 장악해 모든 것을 읽어 들이자, 그곳에서 악의로 가득 찬 함정의 전말이 그대로 드러났다.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발견될 경우 모든 것을 묻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 엘프를 이곳에 남겨둔 것은, 오랜 세월 장수하는 엘프의 생명력과 영혼을 이 설비의 자폭을 위한 술식의 기축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만일 그랬다면 아마도 이 일대가 통째로 날아갔을 거야.’
이마 위로 식은땀이 절로 흘러내렸다. 아마 그렇게 됐다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리스티가 판단했을 때 최악의 경우, 행성방위군은 물론, 인피니티 킹덤까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을 만큼의 폭발력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엘프, 보통 인물이 아니었잖아?’
물론 이 엘프가 누군지는 아직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보통 신분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히 깨달았다.
일반적인 엘프보다 더 막대한 생명력과 그 내면에서 감지되는 영혼의 크기.
이 정도면 자신이 아는 한 하이 엘프라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리스티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 가면인 작자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떻게 하이 엘프를 납치해 온 거지?’
하이 엘프는 엘프들 중에서도 거의 왕족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다. 다른 엘프들보다 철저히 보호받는 위치에 있는 하이 엘프를 대체 무슨 수로 납치해 올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어지간한 행성정부의 수반을 납치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짓이었다.
“휴우······.”
리스티는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든 이곳의 자폭만큼은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기운을 전부 소진한 사람처럼 주저앉는 리스티의 모습에 아리엔이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
“함정이라더니 대체 무슨 일이야?”
“말 그대로 함정이었어. 저 엘프를 매개로 해서 이곳을 통째로 자폭하게 만드는 함정이더라고.”
“뭐?”
깜짝 놀라 당황하는 아리엔에게, 리스티는 괜찮다며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미 자폭은 내가 막았으니까. 그걸 막느라 너무 집중해서 기운이 빠진 거였거든. 정말 힘들었어.”
“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지만 자폭을 막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리스티는 골치아프다는 듯 말했다.
“그건 그렇고 저 엘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 같아.”
“응?”
“아무래도 중요한 아인종 같아. 보통 엘프가 아니라 하이 엘프였어.”
“하이 엘프라고? 이 엘프가?”
아리엔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 엘프를 바라보았다. 엘프는 어쩌다 한번씩 봤어도 하이 엘프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리스티는 힘겹게 말했다.
“우선 아저씨에게 연락을 해줘. 중요한 인물이니까 철저히 보호해 달라고 해.”
“그래.”
그렇게 연락을 취하고 나자 이진운이 바로 찾아왔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그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잘했어. 자폭을 막았다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죠.”
리스티의 푸념 같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 이진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그놈들, 이런 곳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었던 거지? 인베이더 놈들하고도 서로 손을 잡은 것 같던데 여기서는 또······.”
하지만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엘프의 입에서 마침 작은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불편한 듯 얼굴을 찌푸리던 엘프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금발에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눈을 뜬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다.
“여긴······?”
그녀는 이진운과 리스티, 아리엔을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져왔다.
“누구시죠?”
“저희는 아르탈 행성연합 이능관리국 소속 인피니티 킹덤에 소속된 자들입니다.”
“아르탈 행성 연합? 인피니티 킹덤?”
소속을 밝혔는데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엘프 여인. 이진운은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어떻게 해서 여기 오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당신을 발견했을 땐 정신을 잃은 채로 이곳에 갇혀 있더군요.”
“이곳에 갇혀 있었다고요? 제가요?”
“예. 저희는 적들의 비밀기지를 공격했다가 당신을 발견한 겁니다.”
이진운은 대략적으로 상황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엘프 여인은 여전히 모르겠다며 혼란스런 표정을 내비쳤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갇혀있었다니, 전 어쩌다 갇히게 된 걸까요?”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당신이 알고 있겠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어요.”
그런 엘프 여인의 대답에, 이진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억이 말소된 건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놈들은 이 엘프 여인을 자폭의 기축으로 사용했지만, 그것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기억을 지웠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리엔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름은 기억이 나시나요?”
“이름··· 내 이름은······.”
눈매를 살짝 찡그리며 고민하던 엘프 여인이 곧 어렵사리 입을 뗐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제이나··· 제이나라고 불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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