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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12화 (113/448)

5권-12화

제아무리 행성 그 자체에서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하이브라 하더라도 비축량이 무한대인 건 아니었다. 행성방위군 함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반격하느라 상당량의 에너지를 사용한 이상, 다시 행성으로부터 에너지를 충당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하이브에서 솟구친 중력파 포가 형편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인베이더 쪽에서도 모든 출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게 말처럼 단기간에 될 리 없었다.

결국 하이브의 중력파 포를 집어삼켜버린 그래비티 이레이저는 지상 위에 작열하고 말았다.

콰우우우!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유사블랙홀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공허! 그것은 일반적인 배리어 따위론 견뎌낼 수 없는 종류의 공격이었다.

마치 얇은 유리를 박살내듯 파고 들어간 공허가 하이브의 첨단부터 빠른 속도로 집어삼켜나갔다.

로베트라의 오퍼레이터들도 다들 할 말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그 카멜롯의 주포라고? 말도 안 되는 출력이군. 중력파포를 밀어버린 것도 모자라 하이브까지 단숨에 삼켜버리다니······.”

발터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신음하듯 내뱉었다. 같은 준대형 급 전함이면서도 새로 건조된 신예함 카멜롯은 로베트라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이건 연식의 차이 문제가 아니라, 도입된 기술 자체가 격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정도면 관리국에서도 손꼽는다는 아마드 급 대형 전함에 버금갈지도 모른다.

하이브 위에 착탄했던 그래비티 이레이저가 사라진 뒤 남은 것은 거대한 크레이터 뿐. 더 이상 하이브의 흔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브 소멸. 더 이상 에너지 반응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정말 허무하군.”

행성을 멸망 위기까지 좀먹던 인베이더의 둥지가 한순간에 소멸되는 그 광경에 발터는 허탈한 듯 실소를 짓고 말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 그는 다시 냉철한 모습으로 명령을 내렸다.

“자, 지금이 기회다. 하이브가 소멸된 지금, 나머지 인베이더들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다. 모든 함대는 화력을 총 동원하여 놈들을 모조리 지워버려라.”

[예!]

하이브가 소멸되었다고 해서 모든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아직도 남은 인베이더들의 숫자는 넘치도록 많았다. 놈들을 완전히 박멸하고 나서야 아이틀란 행성이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다.

그때, 그래비티 이레이저를 사용했던 카멜롯과 인피니티 킹덤 함대가 강하를 마쳤다. 이미 하이브의 소멸을 확인한 아르페인은 즉시 전투요원들을 내보냈다.

각 함의 해치가 열리고 그 안에서 대기 중이었던 기간트들이 벌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인베이더 격멸 작전에 들어간다. 각 부대는 미리 하달 받은 작전에 따라 인베이더들을 처리한다! 그럼 전투 개시!]

[에픽 스타, 인게이지! D+랭크 인베이더 17기 포착, 바로 격멸에 들어간다!]

[레드 폭스, 인게이지! 인베이더 포착! 즉각 전투 개시하겠다.]

기간트 부대들은 지상을 마음껏 활보하면서 인베이더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메탈 기어와는 차원이 다른 성능이었다.

메탈 기어는 기껏 해봐야 탄환에 영력을 조금 주입하는 수준이었지만, 이들은 기간트에 탑승한 채로 자신들의 영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것도 평소와 달리 무려 수십 수백 배로 증폭된 이능을 발휘하고 있었으니, 이만한 활약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기간트 파일럿 중에는 만년 강화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콕스 베이브도 있었다.

그는 아주 어릴 적에 이능을 각성하면서 인베이더들을 무찌르는 오버러의 꿈을 키웠었지만, 결국 재능의 미천함으로 인해 그 길을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어지간한 오버러들 못지않은 활약으로 인베이더들을 쓸어나가고 있었다.

“이 기간트란 거··· 탈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놀랍단 말이야.”

쾅! 휘오오오! 콰아앙!

그는 새삼 감탄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전에는 하도 미약해서 촛불조차 끄지 못했던 자신의 윈드 밤 능력이 지금은 인베이더들을 사정없이 박살내고 터뜨리고 있었다.

“자, 죽어! 죽으라고!”

볼 때마다 통쾌했다. 어차피 놈들은 인간과 지성체들의 적! 당연히 없어져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전투에 사용해보지 못했던 자신의 이능을 마음껏 발휘해 적들의 전열을 휘저었다. 이제 어지간한 양산형 따윈 자신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콕스의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흥분에 싸인 모습으로 인베이더들을 빠르게 도륙해 나갔다.

이것이 인베이더들을 상대로 한 그들의 첫 실전이었다. 그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긴 했지만, 설마 기간트가 이렇게까지 인베이더에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자신들의 미약한 이능을 이렇게까지 증폭시켜서 인베이더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으음··· 저게 그 소문의 기간트란 거군.”

발터도 기간트의 활약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중앙에서 전해져 온 소문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메탈 기어와 흡사하게 생겼지만, 그 성능과 위력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도 어떻게든 기간트의 도입을 서둘러야겠군.”

현재 관리국에서도 기존의 메탈기어와 기간트를 교체하느라 물량이 크게 달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변두리 성계까지 순번이 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터는 어떻게든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 안된다면 정부의 인사들에게 기간트 도입에 필요한 로비용 추경예산을 요구해서라도 도입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전투가 전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인베이더 중에서는 개중 강력한 개체들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침공 급 수준이 되면 기간트라 하더라도 쉬이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콰아앙!

무지막지한 충격에 기간트 수 기가 볼링핀처럼 튕겨져 나갔다. 재빨리 각 부의 슬러스터를 작동시켜 자세를 제어시켰지만, 파일럿에게까지 전해진 데미지는 상당했다.

[큭! 뭐야, 이놈은!]

[충격량이 장난 아니야.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과는 다른데?]

[침공 급이다! 그것도 무려 C+랭크 급이야!]

C+랭크라면 침공 급 중에서도 가장 최상위에 포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체였다. 기간트들의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젠장! 구원요청부터 해!]

[이미 했다고! 하지만 당장 오는 게 아니잖아. 그때까진 우리가 버텨야 해!]

C+인베이더 그리즐리. 회색곰의 모습과 행동패턴이 흡사하다고 해서 그렇게 붙은 명칭이었다.

놈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달려들더니, 자신의 앞발을 들어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풍압이 일어나면서 전면을 강타했다.

콰아앙!

[컥! 미친!]

가장 가까이에 있던 기간트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날아갔다. 기본적으로 영자 방어력을 갖춘 기간트지만 이렇게까지 정통으로 맞으면 타격이 적을 수가 없었다. 기체의 각부가 손상되면서 기능부진이 일어났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손상된 기체를 후방으로 즉시 빼냈다. 그리고 나머지 동료들은 기간트에 내장된 화기들을 사용해 그리즐리를 견제했다.

[빨라!]

[생긴 것 답지 않게 민첩한 녀석이야! 조심하라고!]

놈의 특징은 간단했다. 생긴 것만큼이나 무지막지한 힘과 파괴력이었다. 게다가 생긴 것에 비해 둔하지도 않아서 공격을 할 때의 순간속도만큼은 거의 음속에 가까웠다.

[자, 간다! 포지션 B-7! 놈에게 공격을 퍼부어서 영자 방어력을 깎아내! 그 다음에 결정타를 먹인다! 어차피 한 놈이야! 쫄 것 없어!]

[오오!]

C+랭크라 하더라도 단 하나라면 아주 감당 못할 건 아니었다. 기간트에서 발해진 온갖 이능이 그리즐리를 향해 퍼부어졌다.

쾅! 콰콰쾅!

처음에는 그리즐리도 그 공격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냈지만, 점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영자 방어력이 깎여나가면서 놈도 조금씩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몇 번 공격을 감행해 왔지만, 미리 거리를 떨어뜨리고 있던 기간트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길 반복하면서 놈과의 접근을 회피했다. 그리고 놈의 목표가 되지 않은 기간트들이 그 사이에 공격을 퍼부어 재차 방어력을 깎아내는 방식의 전술이었다.

이건 일종의 몰이사냥에 가까웠다. 한 10여 분 쯤 그렇게 퍼붓자 슬슬 그리즐리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이제 다 깎아냈다. 이제 결정타만 먹이면 돼!]

오랜 인내의 끝에 찾아온 결실을 수확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갑자기 측면에서 에너지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뭐야? 새로운 개체라고!? 하필 이럴 때?]

[으앗!? 침공 급 이야!]

[그리즐리 타입 13기라고? 우린 죽었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즐리 한 기 만으로도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13기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그리즐리들이 무시무시한 흉성을 토하며 다가왔다. 이제 너희들은 끝났다고 선포하는 듯한 포효였다.

하지만 그 포효가 끝나기가 무섭게 저 하늘에서 궤적이 떨어졌다. 그것은 그리즐리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피잉!

대기를 관통하는 낮은 파공성과 함께 그리즐리 한 기의 목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저 상공으로부터 떨어져 내린 한 소녀가 가볍게 지상 위에 착지했다. 바로 아리엔이었다.

“휴, 제가 늦지 않아 다행이네요.”

[너는?]

기간트 부대원들은 그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구원 요청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당도할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만 물러서세요. 여긴 제가 감당할 테니까요. 여러분들의 상대는 아닌 것 같네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무운을!]

기간트 부대원들은 그녀의 말에 순순히 물러났다.

그들도 그녀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사령관의 셋 밖에 없는 직속 제자들 중 하나.

그녀의 실력은 자신들이 기간트를 탔다 하더라도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려오자마자 그리즐리 한 개체의 목을 딴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기간트 부대가 물러서자마자 아리엔은 자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검 끝 위로 일렁이는 예기가 무서운 기세로 길게 치솟았다. 바로 절정고수의 검기였다.

그것을 본 그리즐리들이 위협을 느낀 듯 일제히 흉포하게 울부짖었다. 아리엔 한 사람을 향해 한꺼번에 덤벼들 기세였다.

“그래? 나도 바빠서 빨리 끝내야겠어.”

인베이더들은 아직도 널려 있었고, 기간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개체들도 더러 존재했다. 놈들을 서둘러 처리하고 다른 기간트 부대원들을 우러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쿠허허!

그리즐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어지간한 B랭크의 오버러들이라 해도 지금의 공격 앞에서는 살기 어려운 수준의 맹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기는커녕 머릿속으로 한 줄기 검로를 떠올렸다.

그 무엇보다 빠르면서 날카로운 궤적. 그것이 그녀의 손길을 따라 현실로 재현되었다.

분광십팔수검 섬뢰일정(閃雷一挺).

분광십팔수검은 본디 쾌검이지만, 그 중에서도 섬뢰일정은 가장 기초이면서 극쾌의 오의를 담아내고 있다.

여기에 검기가 더해지면 말 그대로 빛마저 나눈다는 극쾌의 일검의 재현이 가능해진다.

피이잉!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일까? 눈으로도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한 줄기 빛이 공간을 수평으로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리즐리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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