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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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개시로부터 1시간 전. 아이틀란 행성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병력은 인베이더들이 자리 잡고 있는 하이브 인근으로 집결하였다.
행성 각지를 수비할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모인 병력들은 바짝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이번 전투야말로 인베이더들을 아이틀란 행성에서 완전히 박멸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행성의 모든 명운이 걸렸는데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아이틀란 행성방위군의 장성 중 하나인 대장 발터 크레뮬러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인베이더와의 전투는 몇 번이나 경험했지만, 이렇듯 행성의 명운을 걸고 총력전을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작전 개시 시간이 되었다. 이미 모든 승무원과 전투병력들은 언제든 명령에 따라 싸움에 뛰어들 수 있도록 1급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간 상태였다.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던 발터 크레뮬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전군 전진! 우선 놈들의 둥지를 함포의 사정권 내에 넣는다. 일단 속도는 하프 임펄스! 놈들의 대응에 따라 속도를 높이고 사정없이 포화를 쏟아 붓는다! 그리고 주포 준비, 화력은 최대치로!”
[전 사일로 개방! 각부의 화기, 방어 시스템 스탠바이 온라인! 색적 기능 최대!]
[제네레이터 정격 출력 유지. 타키온 추진 슬러스터 출력 하프 임펄스(Half Impulse)!]
[디스토션 필드 전개!]
[차지 46%, 출력 상승에 따라 차지 지속상승! 주포 차지 완료까지 1분 20초.]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오퍼레이터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미속 중이던 전함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스크린에 비치는 하이브의 형상도 점점 가까워졌다.
[인베이더의 하이브, 사정권에 들어왔습니다.]
[하이브에서도 다수의 인베이더 반응 포착! 본 함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인베이더 쪽에서도 그제야 행성방위군의 진격을 포착한 건지, 하이브 인근에서 도사리고 있던 놈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전력이 빈약했다. 얼마 전 행정수도를 공격하다가 인피니티 킹덤의 반격에 입은 타격이 꽤나 컸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 수는 적지 않았지만, 예전에 비한다면 침공 급 이상의 상위 인베이더의 수가 눈에 띌 만큼 줄어있는 게 쉽게 파악될 정도다.
이 정도라면 일단 상대해 볼만 했다.
“자, 쏴라!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마음껏 퍼부어주는 거다!”
행성방위군의 최대 모함인 준대형 급 로베트라 호를 중심으로 포진한 수십 대의 함대가 전진하면서 일제히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콰콰콰!
무시무시한 섬광이 작열했다. 얼마나 많은 빔과 레이저가 퍼부어졌는지, 그 빛만으로도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광을 넘어설 지경이었다.
화려하게 번뜩이는 포화가 작열한 순간, 인베이더의 전열에 이곳저곳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 본진은 건재했다. 하이브의 방어는 여전히 굳건했기 때문이었다.
[하이브의 손상 전무! 하이브의 배리어가 본 함대의 포화를 차단했습니다.]
역시 하이브의 견고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 쏟아낸 화력만으로도 어지간한 크기의 소행성 하나쯤은 박살내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그걸 거뜬히 견뎌내었다. 그 대신 하이브의 방어범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인베이더들은 행성방위군의 화력 앞에 무참히 쓸려나갔다.
그렇지만 방심하기엔 일렀다. 하이브는 여전히 건재했고, 그 방어 안에 숨어 있는 인베이더들이야말로 놈들의 핵심 전력이었다.
“신경 쓸 것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놈들의 주의를 끄는 것이 목적이다. 최대한 화려하게 공격해서 놈들의 관심을 끌어라.”
[본 함 주포 차징 완료! 언제든 쏠 수 있습니다.]
[본 함대의 전함들의 주포도 충전 완료입니다.]
“좋아, 그럼 일제히 조사 개시! 놈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예정했던 대로 최대한 시간을 끈다.”
콰아아아!
무시무시한 화력이 하이브를 강타했다. 좀 전에 쏟아내던 포화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하이브의 배리어 대손상! 처음 출력에 비해 45%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역시 더럽게 단단하군.”
발터가 이를 갈듯 내뱉었다. 적어도 이번 주포의 포격으로 배리어의 대부분을 깎아낼 줄 알았는데, 견고함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때, 오퍼레이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이브 중심지에서 고에너지 반응 포착! 포격입니다! ]
“회피! 포격의 사선에서 물러나!”
발터는 듣자마자 황급히 외쳤다. 설마 이런 포화를 받고 있는 중에 반격을 가해올 줄은 예상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하이브에서 치솟은 굵은 빛줄기가 함대의 측면을 쓸고 지나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 위에 빛으로 된 하나의 궤적을 그려내는 것 같았다.
[카운티, 레버럴, 옥타인 다운!]
[본 함의 좌현 디스토션 필드도 일부 손상! 출력이 65%로 저하됩니다.]
역시 피해가 없을 순 없었다. 하이브는 인베이더들이 생산되는 둥지이자, 철벽과 같은 요새. 적의 공격으로부터 대응할 수 있는 방위 시설까지 갖춘 하이브에서 이 정도 공격이 날아올 것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포격을 받는 중에 반격이란 형태로 되돌아올 것을 예상 못한 게 문제였다.
발터는 짓씹는 표정으로 다시 명령했다.
“젠장! 이제부터 랜덤(난수) 회피에 들어간다. 하이브에서 직접 날아오는 포격에 주의하면서 놈들을 괴롭혀라!”
하이브에서 날아오는 고출력 포격은 행성방위군의 함대는 물론 모함인 로베트라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일단 로베트라 호도 준대형 급이긴 하지만 제조된 연식이 아주 오래된 만큼 출력이나 전함에 도입된 기술들이 전부 구닥다리라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구형이기 때문이다.
짧게 한두 방 정도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인 조사라면 한 번도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발터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빌어먹을 놈들!’
그는 아이틀란 행성방위군의 다른 장성들을 향해 내심 욕지기를 터뜨렸다.
자신이 이렇게 직접 나서서 위험을 무릅쓰게 된 것도 다른 장성들이 이 작전을 앞 다퉈 고사했기 때문이었다. 별 핑계를 다 대가면서 후방지원하겠다고 발을 빼는 바람에 함대전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이 이 자리를 떠안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이겨서, 살아서 되돌아간다! 그땐 그놈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겠어!’
그는 머릿속으로 숙청해야 할 군부 인사들에 대한 살생부를 떠올리면서 전황을 주시했다.
점점 상황은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베이더 놈들도 방어적인 태세로 일관했지만, 생각보다 행성방위군이 약하다고 판단하고는 점점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가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초조해진 발터가 오퍼레이터에게 물었다.
“인피니티 킹덤은!? 그들은 아직 멀었나?”
[강하 중입니다! 현재 성층권 도달, 앞으로 도착까지 22초!]
이번 작전은 바로 하이브를 기습적으로 타격하는 강하 작전이었다. 행성방위군이 최대한 인베이더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인피니티 킹덤은 저 위성권까지 올라갔다가 수직 강하하여 단숨에 하이브를 떨어뜨린다는 게 작전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2초가 너무도 길었다. 인피니티 킹덤 덕분에 핵심 전력의 상당수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남아 있는 전력조차 행성방위군이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때 로베트라에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 순간 급속도로 접근해오는 소형의 인베이더 세 기! 진멸 급 인베이더들이었다.
랭크도 무려 A급 수준. 이건 어지간한 대응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일단 접근한다면 이런 구형 연식의 준대형 전함 따윈 순식간이 초토화 될 것이다.
“온다! 화망 구성해서 밀어내! 놈들을 접근시켜선 안 돼!”
[아, 안 됩니다! 너무 작고 빨라서 화기제어 시스템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어요!]
발터가 서둘러 명령을 내렸지만, 오퍼레이터에게서 나온 것은 절망에 찬 대답뿐이었다.
게다가 적은 진멸 급 3기뿐만이 아니다. 놈들은 침공 급 비행 타입을 수백 기나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다.
로베트라의 각 사일로에서 쏟아진 미사일과 무수한 화망들이 적들의 접근을 견제했지만, 놈들의 기동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민하다는 표현마저 부족할 만큼 화망의 빈틈을 뚫고 들온 것이다.
마침 함 바깥으로 뛰쳐나간 메탈 기어 수십 기가 인베이더들과 접촉했지만, 그들은 뭘 해볼 새조차 없이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그들의 힘만으론 잠깐의 시간끌기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로베트라의 지척까지 접근한 인베이더들의 모습에 모두가 절망에 빠졌다. 심지어 진멸 급 중 두 기는 어깨에 달린 포구를 활짝 개방한 상태로 메인 브릿지를 노리고 있었다.
‘이걸로 끝인가?’
자신의 최후임을 깨달은 발터가 두 눈을 부릅뜬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눈부신 궤적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것은 정확하게 메인 브릿지를 노리던 진멸 급 둘을 수직으로 쪼개고 있었다.
“어?”
머리부터 국부까지 잘려나간 진멸 급 인베이더가 함상 위로 추락했다. 그 광경을 보던 발터는 물론, 오퍼레이터들도 영문을 몰라 잠시 넋이 나가 버렸다.
“대체 이게!?”
“진멸 급이 단번에 죽었어?”
그때 전문이 날아왔다. 아주 짧은 전문이었다.
[인피니티 킹덤 인게이지.]
그제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다들 깨달았다. 그리고 로베트라의 스크린에도 진멸 급을 처치한 자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한 자루 검을 빼든 사내. 저 높은 하늘에서 강하해 온 그가 진멸 급 둘을 단숨에 베어낸 것이다.
허나 그것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그의 신형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텅빈 허공을 박찼을 뿐인데도 그 속도는 음속의 수십 배를 초월했다.
남은 마지막 진멸 급이 깜짝 놀라 자신의 어깨에 달린 포구를 겨눴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놈의 반응속도보다 사내의 검이 더 빨랐던 것이다. 마치 한 줄기 빛이 된 것 마냥 궤적을 그린 순간, 남은 진멸 급도 먼저 베어진 놈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검을 든 사내, 이진운은 즉시 통신회선을 열어 아르페인에게 상황을 전했다.
“로베트라 안전 확보. 진멸 급은 처리했다. 나는 계속해서 남아있는 침공급과 잔당들을 처리할 테니, 예정대로 하이브를 떨어뜨리도록.”
[예, 그럼 시작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저 하늘에서 검은 빛이 생성되었다. 마치 저 하늘의 태양빛마저 모조리 집어삼킬 듯한 공허의 어둠.
그것은 바로 그래비티 블래스트의 변형 형태인 그래비티 이레이저였다. 이미 카멜롯은 강하와 함께 주포를 쏠 준비를 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쿠구구구!
주변 대기가 떨리면서 극한까지 압축된 어둠이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종말 때 내려오는 재앙이 현실화 된 것 같은 광경이었다.
물론 하이브에서도 이걸 보고만 있지 않았다. 즉시 출력을 끌어 모아 대응에 나선 것이다.
쿠오오오!
하이브의 중심지에서 검은 빛줄기가 치솟았다. 예전에도 한 번 선보인 바 있었던 중력파 포, 그래비티 블래스트였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그 위세가 턱없이 부족했다. 바로 출력 부족 때문이었다.
침공 급 인베이더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던 이진운이 그 광경을 흘깃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가 괜히 행성방위군을 동원한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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