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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03화 (104/448)

5권-03화

하지만 그것을 보고도 이진운은 위기감은커녕 작게 코웃음 쳤다.

“별 같잖은 수작을!”

쿠르르릉!

포화점에 달한 플라즈마 에너지가 어느새 일직선 형태로 대기를 관통하며 뻗어왔다. 이진운은 물론 이 도시까지 함께 밀어버리겠다는 의도였다.

그 순간, 이진운의 검 끝에서 일어난 기운이 돌연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푸른 기운으로, 또 하나는 타오르는 듯한 붉은 기운으로 변하더니 서로 어지럽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여의주를 다투듯 현란하면서도 맹렬하게 얽히고설키는 두 기운. 그 변화가 정점에 이른 순간, 이진운은 검으로 허공에 큰 원을 그려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삼라만상의 조화가 여기에 있나니··· 보라! 음은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요, 양은 우러러보고 있는 하늘이라. 그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룸으로서 결코 무너지지 않는 자연의 순환과 상생의 이치가 완성되었음이라.]

머릿속으로 떠오른 구결을 따라 그려낸 크고 둥근 형상.

검 끝에 실려 있던 음과 양의 기운은 궤적 안으로 고르게 퍼져나가 서로 상생합덕의 조화를 이루고, 그것은 곧 원융(圓融)의 완전성을 증거하는 태극(太極) 그 자체가 되었다.

그 순간에도 아광속의 속도로 무섭도록 날아오고 있는 플라즈마 캐논. 그것이 이제 이진운의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그가 완성한 태극의 형상이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냈다.

양의검(兩儀劍)

음양번천경(陰陽翻天勁)

쿠오오오!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대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진운의 태극이 본 모습을 드러낸 순간, 이 일대에 존재하던 모든 삼라만상의 순환이 틀어져 버렸다.

양은 음이 되었고, 음은 양이 되었으며, 정은 마가 되고 마가 정이 되었다. 관성과 중력의 흐름조차 반대로 뒤틀려 모든 것이 어긋나버린 느낌이었다.

그것은 위저드 타입이 내쏜 플라즈마 캐논도 예외는 아니다.

피시식!

도시를 불태울 정도의 강렬함을 자랑하던 플라즈마 캐논도 마치 꺼져가는 형광등처럼 점멸하다가 자연스럽게 흩어져 소멸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든 속성과 흐름이 뒤틀리고 역류하는데, 정해진 법칙 안에서 영력을 정교하게 재배열해 구현하는 마법이라고 해서 계속 유지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것이 바로 공간에 음양의 기운을 고르게 방사하여 태극의 조화를 완성해내는 절초 음양번천경.

기본적인 원리는 간단했다. 형성된 태극의 흐름에 반력, 척력, 인력을 형성하여 모든 공격을 반(反) 탄(彈) 흡(吸)의 구결에 따라 튕기고 되돌리며 흡수한다.

그렇기에 극성으로 익힐 경우 심지어 천지를 뒤집고 속성을 바꾸며, 흐름마저 역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위저드 타입도 전혀 예상 못했는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곧장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이진운이 그대로 놔줄 리가 없었다.

그가 앞으로 일보 내딛는 순간, 무려 수백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단축했다. 경신보법의 경지가 극에 이르러야 흉내가 가능하다고 하는 축지성촌(縮地成寸)의 수법이었다.

마치 시공을 압축한 듯한 그 움직임에는 위저드 타입조차 반응하지 못했다. 놈이 타고 있던 검은 상어도 이진운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었는지 지금까지 보여준 기동성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촤악!

이진운의 검이 번뜩인 순간, 검은 상어의 날개가 베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려낸 궤적은 위저드 타입의 목을 정확히 베어버렸다.

-커··· 커으······!

역시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목을 베인 상태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는 위저드 타입. 이진운은 놈을 재차 베어내면서 말했다.

“내 앞에서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한번이라면 몰라도 두 번 씩이나 놔줄 수는 없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위저드 타입은 가슴 정 중앙을 꿰뚫는 이진운의 검 앞에 완전히 정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 날개를 잃고 버둥대는 검은 상어도 마찬가지. 다시 살아날 여지도 있는 만큼 완전히 끝장을 내주었다.

“휴······.”

스피어에 이어 위저드 타입까지 완전히 끝장낸 이진운은 그제야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겉보기엔 그가 쉽게 제압한 것 같아도, 그렇게 쉬웠던 건 아니었다.

역기충혈대법으로 잠력까지 끌어올리고, 거기에 각종 주술과 도술로 신체능력까지 증폭시켰다. 그런 뒤에야 놈들의 허를 찔러서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멸 급이라··· 역시 만만치가 않아.’

몸 이곳저곳이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역기충혈대법과 만유합원신기를 병행해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그나마 태을단목신공을 체득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며칠 간 드러누워서 몸조리에 집중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아르페인과의 통신이 이어졌다.

[다 끝내셨군요. 다치신 데는요?]

“다친 데는 없고, 조금 지치는군.”

[다행입니다. 마침 이쪽도 거의 다 끝내갑니다.]

그 말에 이진운도 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르페인의 말처럼 전투는 압도적이었다. 처음 그래비티 이레이저로 선방을 때린 덕분인지, 인베이더 함대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그 뒤로는 제대로 힘조차 쓰지 못한 채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기껏 해봐야 인피니티 킹덤의 상대도 안 되는 잔챙이들 정도였다. 게다가 성멸 급 둘마저 이진운의 손에 죽었으니, 놈들에게 더 이상 승산은 없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군. 왜지?’

이진운은 자신의 손에 죽어 넘어진 스피어와 위저드 타입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여러 인베이더들을 상대해 봤지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찝찝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둔 이진운은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이제 더 이상 싸울 일도 남지 않아서였다.

인베이더들과 전투를 벌인 탓에, 행성수도가 거의 박살이 난 상태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싸게 먹힌 셈이다. 이번 싸움으로 무려 성멸 급 둘과 인베이더 함대를 전멸시켰으니, 오히려 큰 공을 세웠다 할 수 있었다.

게다 인명 피해도 크지 않았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현재 땅 속 깊은 곳에 만들어진 방공시설로 모두 대피한 상황이니, 실제로 입은 피해는 물적 피해가 전부라 해야 할 것이다.

‘뭐 번창했던 수도를 다시 재건하려면 등골 꽤나 휘겠지만, 그것까진 내 알바 아니지.’

다시 카멜롯으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그의 감지영역 안에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신경을 가볍게 건드리는 정도로 약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급속도로 폭증하더니 이제는 이진운도 감히 무시 못 할 수준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적어도 성멸 급,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한 고위 인베이더가 아직 더 남아 있었다고?”

이진운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곳은 글랙스를 포박해 가둬두었던 방공호 시설 중 하나였다.

콰아앙!

성대한 폭발과 함께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방공 시설 하나가 붕괴되었다. 외부의 충격에는 강하지만, 내부의 충격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방공호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너진 방공시설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이놈이 그놈인가?’

이진운은 그 인영이 나타난 순간 깨달았다. 이놈이 바로 방금 전 느꼈던 기운의 주인이라는 것을. 방공시설을 무너뜨린 것도 바로 이놈일 것이다.

하지만 놈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시한 순간, 이진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놀랍게도 방공호를 무너뜨리고 튀어나온, 이진운마저 경계하게 만든 기운의 주인은 바로 다름 아닌 글랙스였다.

좀 전에 무기력하게 제압당한 뒤 끌려갔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어떻게?”

이진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뇌었다.

* * *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글랙스는 크게 낙담한 채 중얼거렸다.

무려 37년 동안 준비해온 계획이었다. 헌데 이진운이라는 변수 하나만으로 모든 게 뒤집혀 버렸다.

관리국의 개입 때문에 계획을 조금 서두르긴 했지만, 이렇게 들킬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이 모든 게 억울하고 분했다. 이대로 끌려가면 조만간 자신의 죄목만 털어놓다가 비참한 모습으로 처형당할 터.

어떻게든 구속에서 벗어나 다음 계획을 도모해야 했다.

물론 목숨이 아까웠던 건 아니었다. 이미 이 계획을 시도할 때부터 그는 자신의 목숨 따윈 없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단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는 게 두려웠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복수. 가족과 친인들의 원한을 이 행성의 인간들에게 되갚아주지 못하고 자신만 죽게 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고 저열하다. 살아 존재할 이유가 없어.’

그는 37년 전에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서야 이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글랙스는 아주 온건하고 착실한 이주민 출신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사업 수완도 있어서 건실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가족처럼 대해주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임금도 다른 공장들에 비해 더 많이 지급해 주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압박이 들어왔다. 왜 토착민 놈들에게 많은 임금을 줘가면서 업계 생태계를 파괴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 이주민들이 토착민들과 감정싸움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도 인간답게 살 자격이 있다고. 그리고 적어도 일한 대가는 일한 값어치만큼 지급해야 그들도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지 않냐고 말이다.

그러자 공장을 운영하는 이주민들이 말했다.

‘언젠가 넌 크게 후회할 날이 올 거다.’

‘토착민 녀석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하지만 그들의 말을 글랙스는 일절 무시했다. 아이틀란 행성에 존재하는 하층민의 과반수는 토착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주민들의 대부분은 이전의 행성에도 상당한 재력을 가진 자들이었고, 아이틀란 행성으로 이주해 오면서도 보유하고 있던 부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덕분에 기득권층으로 급부상한 이주민들과 토착민들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것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글랙스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들의 임금을 높여주고 가족처럼 대해줌으로서 그 갈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오래지 않아 배신당했다.

“어째서? 어째서냐?”

글랙스는 눈앞에 닥친 현실에 절규를 토했다.

그렇게나 착해 보였던 직공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젠 악의에 찬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공장의 핵심 기술을 유출해 타 기업에게 팔아 넘겼다. 그리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일삼았다.

도저히 공장을 운영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공장은 도산했고, 그와 가족은 거리 바닥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 지경이 되어서도 그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관계가 뒤틀려 버릴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뭔가 그들에게 실수라도 했었던 걸까?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대체 왜?’

그는 나중에야 진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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