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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102화 (103/448)

5권-02화

기다렸다는 듯 즉시 준비했던 것을 이행하는 아르페인.

카멜롯을 비롯한 인피니티 킹덤의 전함들이 지금까지 끌어올렸던 제네레이터의 출력을 해방시켰다. 그러자 거대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이 일대가 파동에 휩쓸려 흔들렸다. 건물이 부서지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순히 출력을 해방한 것만으로도 이만한 여파를 만들어낼 정도라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막대한 에너지는 저 멀리서 날아오는 인베이더의 함대를 정확히 타깃팅한 주포를 향해 흘러들었다.

[조준점 오차 수정! 타깃팅 완료!]

[그래비티 블래스트 차징 완료!]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오퍼레이터들. 아르페인이 외쳤다.

[그럼 간다. 수속 작열형 그래비티 이레이저, 발사!]

쿠아아앙!

포구 앞에 극도로 응축된 둥근 형태의 중력자 덩어리가 그 순간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통상적인 그래비티 블래스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르페인이 가진 여러 능력 중 하나. 전함과 자기 자신을 서로 동조, 공명시켜서 전함의 출력을 상한선 이상으로 증폭시키고 제어하는 것이었다.

지난번 해적선들을 상대로 사용했던 그래피티 블래스트를 조사 형태가 아니라 압축된 구(球) 형태로 응축시켜서 유사 블랙홀을 재현했던 것도 바로 그의 특별한 능력에 기인한 수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저 멀리서 이 상황을 관측한 인베이더 함대가 어떻게든 이를 피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이미 때늦은 상태. 한참 전부터 준비를 마친 인피니티 킹덤 포화를 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쿠우우우우!

가장 먼저 카멜롯의 그래비티 이레이저가 작열하였다. 인베이더 함대의 중심에서 터져나간 중력자 반응이 급격히 증대되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칠흑과 같은 거대한 공허가 탄생한 것이다.

그 앞에서는 인베이더들도 견디지 못했다. 단순한 중력파 포도 아니고, 그것을 말도 안 되는 형태로 응축시켜서 구현해낸 유사블랙홀 현상이었다.

놈들의 전함을 보호해주던 배리어는 순식간에 붕괴되었고, 그 뒤에 감쳐줘 있던 함체도 순식간에 구겨지면서 공허의 중심부로 빨려 들어갔다.

콰득! 콰드드득!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진운이 차갑게 웃어보였다.

“인간들의 혼란을 부추겨서 빈틈을 찌를 생각이었겠지만, 이번엔 놈들이 오히려 허를 찔린 셈이 되었군.”

하지만 불안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인베이더와 내통하고 있을 거라 생각되는 배후 세력과, 이번 테러를 부추기고 도운 가면인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특히 말도 안 되는 규모로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가면인이라면, 어떤 변수를 일으킬 수 있을 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저놈들부터 상대해야겠지.”

이진운은 머릿속의 상념을 지우며 점점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들을 향해 정신을 집중하였다.

아이틀란 행성을 침공한 인베이더 놈들의 가장 큰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성멸 급 개체들.

자신들의 함대가 위기에 처하자 놈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행강습형 타입 인베이더인 검은 상어를 타고 있던 놈들은 순식간에 날아와 이진운의 앞에 당도했다.

-크우우!

어지간한 자라면 가만히 있어도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강렬한 살의! 놈들의 지독하기까지 한 적의가 오로지 이진운 한 명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어지간히도 미운가 보지?”

이진운은 그 살기를 가볍게 흘려보냈다. 살기가 제법 강하긴 해도, 그것을 제대로 날카롭게 벼려서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에겐 터럭 한 올만큼의 해도 끼칠 수가 없었다.

“기세는 제법이다만, 나한테는 쓸데없는 짓이다. 무형지기 형태도 아니고 그냥 살기를 무분별하게 뿌리는 정도로 내가 어떻게 될 거라 생각했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진운의 전신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강력한 무형지기. 그것은 실제 존재하고 있는 칼보다 더 흉험한 형태로 공간을 장악했다.

-크우!

전신을 저미는 듯한 느낌에 놈들이 움찔 놀라 뒤로 물러났다. 특히 놈들보다 격이 낮은 검은 상어는 반쯤 혼비백산한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뿐. 놈들은 인간에 대한 적의를 견딜 수 없었는지, 이진운을 향해 그 즉시 공격을 개시해 왔다.

화아악!

위저드 타입에게서 일어난 화염이 성대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어지간한 마을 하나는 전소시켜도 부족함이 없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갖잖다는 표정을 짓더니,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말했다.

“그냥 화염을 내쏠 뿐인 그 따위 마법으로 날 상대하려 하다니. 잘 봐라!”

그의 손앞에서 작은 돌개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점점 더 맹렬하게 회전하더니 닿는 모든 것을 찢어발길 수 있는 거대한 바람의 륜으로 변했다.

기이이잉!

마치 절단기가 돌아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곧 그의 손을 떠나 일직선으로 날아가더니 위저드 타입이 일으킨 화염을 말 그대로 산산이 찢어 발겨 분쇄하였다.

그러고도 여력이 다하지 않은 풍륜은 계속해서 뻗어나가 위저드 타입을 덮쳤다.

-카큿!

놈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역장을 전개했다. 하지만 대응이 너무 늦었다. 설마 이진운에게서 마법 같은 게 구현될 거라고는 예상 못했던 게 문제였다.

아직 제대로 전개되지 못한 역장을 가르고 들어간 풍륜이 위저드 타입의 팔을 단숨에 절단하고 지나갔다.

-카아악!

“이게 바로 풍륜강습(風輪强襲)이란 거다. 내가 가진 게 검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이진운이 전생에 익혔던 것은 무공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마교에게 대적하기 위한 중원무림의 공동전승자였고, 중원의 문파들이 보유하고 있던 온갖 비전들을 섭렵하고 익혔다.

그 중에는 도술이나 주술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다루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태을단목신공을 습득하면서 열린 중단전 덕분에 그가 배워두었던 주술과 도술은 물론 그 최정상에 존재하는 금술이라 불리는 천단금서의 주법까지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저드 타입의 한 팔이 잘려나가자, 창을 든 인베이더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이진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재 스피어란 코드네임이 붙여진 녀석은 지난번 싸움으로 이진운에게 꽤 큰 부상을 입었었는데도 이젠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날아드는 창격! 곧게 일직선으로 뻗어오는 찌르기는 극초음속을 넘어선 속도로 이진운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을 검으로 받아치며 이진운은 한 발 앞으로 전진 했다. 창과 검의 싸움은 말 그대로 간격의 다툼이었다. 창은 창대의 길이만큼 간격이 길고, 검의 간격은 그보다 훨씬 짧다.

그렇기에 검으로 창을 상대하기 위해선 적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가, 적을 검의 간격 안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진운과 스피어의 공방은 꽤나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위저드 타입은 방심하다 당한 거였지만, 스피어는 자신에게 큰 부상을 입혔던 이진운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피피피핑!

연속으로 전개된 찌르기가 공간에 구멍을 낼 듯 퍼부어졌다. 내딛는 진각과 회전,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팔에 실어 쏘아내는 창격은 말 그대로 파천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창에서 일어난 여파만으로도 주변의 건물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지형이 변화되었다.

콰릉! 콰콰콰콰!

헌데 그 순간, 이진운의 신형이 잘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냥 떨린 게 아니라 무수한 잔상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것들은 빠르게 분열하더니 이 주변을 이진운의 형상으로 가득 채웠다.

분광착영(分光捉影) 광영(光影)

평범한 이형환위의 단계를 넘어, 잔상에 진기를 담아 더 실체화 된 형태로 다중 구사하는 보법절초 광영!

그것은 인간을 훨씬 초월한 감각을 가진 스피어조차 분간할 수 없는 현실감을 갖고 있었다.

창을 뻗어 그 잔상들을 하나하나 꿰뚫었지만, 그 중에서 이진운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잔상은 더욱 늘어나 이젠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광영은 이것보다 이전 단계인 산화영(散化影)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광영의 진정한 장점은 바로 이 잔상들이 언제든 실체화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창을 투과해 지나가던 잔상들이 어느 순간 스피어를 향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야를 어지럽히는 게 전부가 아닌, 놈들의 공격 자체가 실제로 스피어에게 타격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기지공(御氣之功)의 극치.

굳이 비유한다면 기운으로 검을 다스려 조종한다고 하는 이기어검의 이치와 흡사했다. 단지 이진운은 잔상에 진기를 불어넣어 이것을 실체와 같이 구현화한 뒤 조종할 따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광영의 진의는 잔상의 실체화라기보다는 인간의 형상을 한 강기 덩어리를 조종하는 것이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쾅! 쿠쿠쿵!

쉴 새 없이 퍼부어지는 공세에 스피어가 정신없이 몰리며 물러났다. 제아무리 스피어가 성멸 급 인베이더라 하더라도 이렇듯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진운의 공세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버틴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만 끝내지.”

최후를 고하는 이진운의 한 마디와 함께, 그가 구현한 무수한 잔상들이 스피어를 둘러쌌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은 건 아니었다. 잔상들은 진형을 갖추듯 어떤 규칙에 따라 각 방위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모두 갖춰진 순간, 막대한 기운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잔상들이 점유한 방위와 배열, 그리고 서로 교류하고 있는 기운들이 만들어낸 조화였다.

분광착영(分光捉影) 멸운광(滅運光)

금단비기(禁斷秘技) 멸천(滅天)

상상할 수 없는 힘들이 폭주하면서 스피어를 중심으로 한 일대의 공간을 환하게 불사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한 수였다.

보법과 진법, 그리고 어기지공이 더해진 금단의 비기 멸천.

그 안에 갇힌 이상, 대라신선이라 해도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필살의 보법절학이었다.

빛이 사라진 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히 녹아서 초토화 된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흔적으로부터 시선을 뗀 이진운은 다른 한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부상을 겨우 수습한 위저드 타입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너 하나뿐이군.”

-크우!

위저드 타입에게서 신음 같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놈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것을.

스피어와 함께 공격을 했다면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었겠지만, 설마 상대가 마법 같은 수법을 사용할거라고는 예상 못했던 게 문제였다.

시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위저드 타입이 이진운을 견제하면서 조금씩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놈은 예전처럼 검은 상어에 올라탄 상태였다. 검은 상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날아간다면 충분히 이진운을 떼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우웅!

남아 있는 한 손에서 일어난 격렬한 전류! 그것은 성대한 기세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고위 마법 중 하나인 플라즈마 캐논이었다.

어지간한 전함의 주포에 비견되는 그 위력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불사르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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