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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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그에 대한 조사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짜고 치는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의 거처를 뒤지자 온갖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다양한 증인들이 쏟아져 나와 올레그의 혐의를 증명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 결과, 그를 둘러싼 모든 게 종국적으로 올레그가 폭탄 테러범들을 사주한 핵심 인물이라 지목하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진운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도 기가 막혀서였다.
“어이가 없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사와 재판이 어디 있어?”
이번 현생에서 한국 출신으로 태어난 이진운은 문득 인민재판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수사와 재판이 법적 절차와 형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진행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오로지 올레그 하나를 매장하기 위해 진행된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이 문제를 따져야 하는 시민들조차, 이번만큼은 위법성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만큼 올레그와 토착민들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다는 증거였다.
옆에서 같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아르페인조차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미 시민들은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증오에 사로잡혀 눈에 보이는 게 없어졌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이래선 안 됩니다. 정부에서 무엇을 하든 시민들은 항상 의심하고 생각해야 돼요.”
“그건 깨어있는 시민일 때나 가능한 말이고, 지금은 다들 증오에 눈이 멀어버렸지. 아마 그 사람들에겐 올레그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찢어 죽이지 못하는 게 한일 거다.”
폭탄 테러로 가까운 친인이나 가족을 잃은 사람은 셀 수조차 없었다. 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지금 상황에선, 설혹 어떤 진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놈들도,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진행시켰을 터.
하지만 그 전에 의문이 있었다. 놈들이 이런 사태를 만들어서 얻는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주민들이 토착민들을 증오하도록 만들어서 큰 분쟁을 일으킨다라···. 행성의 세력을 둘로 나눠서 전쟁이라도 벌이게 만들 셈인가?’
이건 악질적이 군수업체들이나 생각해볼 법한 발상이었다. 전쟁상인들이 창고에 쌓인 재고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때 잘 써먹는 수법이니까.
하지만 이진운이 생각할 때 이마저도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전쟁이 없는 경우라면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지금 아르탈 행성 연합은 인베이더와 상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군수물품이 턱없이 부족한 이 상황에서 굳이 전쟁을 일으켜가며 군수물품을 팔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대체 이런 혼란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그가 해답을 찾느라 고민하던 그때, 누군가가 찾아왔다. 다름 아닌 리스티였다.
그녀는 오자마자 대뜸 이진운의 모듈밴더에 데이터부터 전송해줬다.
“자요, 아저씨가 부탁한 영상이요.”
“이게?”
자신의 밴더로 전송된 영상 파일을 확인한 이진운이 두 눈을 크게 뜨자, 리스티가 피곤하다는 듯 말했다.
“예, 누군지 몰라도 꽤 철저히 데이터를 망가뜨렸더라고요. 복원하는 데에 조금 성가셨어요. 어려운 건 아닌데, 복구하는 방식이 완전 노가다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고작 2시간 만에 영상을 복구해 온 리스티. 다른 사람이었다면 1달 이상 걸렸을지도 모를 작업이었다.
이진운이 먼저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덕분에 중요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겠어.”
“아저씨와 전 협력 관계잖아요. 이 정도는 별 거 아닌 서비스죠.”
피식 웃으며 그의 감사 인사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 리스티. 그녀는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요? 아저씨, 너무 고정관념을 갖고 생각하지 말아요.”
“고정관념이라니?”
“이번 사태로 이득을 얻을 곳이 어딘지 짐작이 안 가시죠?”
정곡을 찔러오는 그 말에, 이진운은 잠시 멈칫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점을 아주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래서 이진운은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래.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답이 안 나오더군. 이민자들이 이번 일을 통해 행성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건가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사태가 커졌다. 인베이더까지 행성을 침공해온 상황에서 저지르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커.”
“맞아요. 리스크가 너무 크죠. 게다가 이주민들이 주도권을 쥔다고 해서 이 행성에 사는 토착민들을 다 쓸어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요. 옛날 같으면 대량민족학살이라도 저질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시대도 시대인데다 인베이더들 때문에 내분을 일으키기도 곤란한 상황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분열되어서 이득을 얻는 곳은 어디일까요?”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쥔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제대로 된 이득이 될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이득을 볼 수 있는 곳은 한 곳 뿐이다.
“설마 인베이더?”
“예,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커요.”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리스티. 이진운이 믿을 수 없다며 내뱉었다.
“말도 안 돼! 인베이더는 지성체들의 멸망을 바라는 놈들인데, 그런 놈들하고 손을 잡는다고? 이 행성이 이미 인베이더에게 침략당해서 멸망의 기로에 놓였는데도?”
“하긴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안 가겠지만, 그런 사례가 이미 우리한테도 있잖아요. 관리국 안에 말이에요. 계속해서 아저씨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가는 것도 그렇지 않아요? 내가 볼 때는 인베이더하고 내통하는 자들이 관리국이나 연합 안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요?”
“······.”
그건 이진운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일이었다. 단지 그럴 가능성은 크게 없다고 생각해서 굳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리스티는 그것을 단순한 심증단계를 넘어 아예 확정짓고 있었다.
“그렇게 단정 짓는 이유가 뭐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도 어렵네요. 처음에 프라이스 호를 노릴 때는 굳이 아저씨를 노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부에 첩자가 있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워프 아웃 포인트가 유출 됐었고요. 오베른 행성 때도 그랬죠. 유독 아저씨가 뭘 할 때마다 위험한 일이 찾아왔어요. 그리고 귀환해서는 크잔트인가 하는 사람이 아저씨를 공격했었죠. 한두 번은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그게 세 번 이상이 되면 절대 우연이라 할 수 없어요.”
어깨를 으쓱 하며 이유를 늘어놓는 리스티. 이진운도 그 말을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해적들까지 아저씨를 노렸죠. 물론 기간트 때문에 밀려난 군수업체가 관련되어 있다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 거예요.”
“넌 왜 날 노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아니라 다른 것을 노렸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노릴만한 사람이 아저씨밖에 없어요. 저나 아리엔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면 진작 그랬겠죠. 이제 와서 괜히 노릴 이유가 있나요? 제가 만든 특허나 발명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은 아저씨와 만나기 전에도 많았었는데요, 뭘.”
확실히 그 말처럼 리스티를 노렸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진운이 이곳에 소환되기 전에도 리스티는 유명 인사였다. 아리엔은 노릴 가치도 없는 몰락한 무가 출신이었고.
만일 그 둘 중 누군가를 노렸다면 그가 소환되기 전에도 노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아저씨는 모두가 경계할 만한 이레귤러에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런 변수적인 존재죠. 아저씨가 알데마란을 상대해 이겼을 때도 설마 했지만, 세계수를 베었던 그때 비로소 확신했죠.”
“······이레귤러라. 그럴지도 모르겠군.”
이진운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리스티의 말대로 자신은 이레귤러였다. 기억을 가진 채 환생한 덕분에, 남들이 보기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실력을 끌어올렸으니까.
그 누군가가 자신을 견제하고 위험시 한다 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리스티, 네가 예상하는 이번 사태에 대한 결과는 어떻지?”
이젠 아예 리스티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만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그녀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글쎄요. 만일 인베이더가 관련되어 있다면 좀 더 결정적인 순간 때 행동하겠죠. 행성의 주민들이나 모든 군정계관계자 모두의 관심이 쏠려서 외부에 대한 경계를 등한시 할 수밖에 없을 때. 아마 그때 허를 찔러올 거라 생각해요. 그래야 치명적일 테니까요.”
“그렇군.”
“지금의 혼란은 바로 그 순간을 만들기 위한 밑바탕이라고 생각해요.”
천재라더니 확실히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놀라웠다. 단순히 마도공학 쪽에만 밝은 줄 알았더니, 이런 정치나 계략 쪽에도 일가견이 있었던가?
내심 감탄하고 있던 그때, 리스티가 재차 덧붙여 말해왔다.
“아저씨,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지금 사태를 억지로 막으려 하지 말아요. 이성을 잃고 증오와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어요. 괜히 나섰다가 아저씨만 역풍을 맞을 뿐이죠. 차라리 지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중을 대비하시는 게 더 현명할 걸요?”
“확실히··· 지금 나서긴 입장이 안 좋겠지. 관리국의 이름도 먹히지 않을 테고 말이야.”
만일 이진운이 관리국의 이름으로 나섰다간 자칫 내정간섭이 된다. 이 사태를 막아보겠다고 끼어들었다가 놈들에게 괜한 빌미를 줄 수가 있었다.
“알았다. 네 말대로 일단 대비만 하고 있지.”
“잘 생각했어요.”
이진운이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조금은 밝게 변했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리스티도 그가 잘못된 선택이라도 할까봐 내심 걱정했던 것이다.
“참, 그리고 제가 준 영상을 한번 보세요. 아마 이번 사태에 개입한 자들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이진운은 그 즉시 영상을 틀어보았다. 그것은 함대가 정박하고 있던 지역을 촬영하고 있던 영상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으로 망가진 데이터를 리스티가 이렇게 멀쩡하게 복원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부터니까 잘 보세요.”
리스티가 영상의 어떤 지점을 언급하자, 이진운도 같이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곧 테러범들이 함대가 정박해 있던 군사지역 내부에 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을 통해 확실해졌다. 놈들은 분명 두 발로 걷거나 뛰어서 내부로 침입해 온 게 아니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출현한 테러범들의 모습을 두 눈동자 안에 똑똑히 각인한 이진운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분명 공간이동이군. 광학미채든 기척차단이든 간에 내 감각을 속이는 건 쉽지 않으니 말이야. 공간이동이 아니라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어.”
“예, 맞아요. 공간이동이죠. 그것도 상당히 고위의 것으로 짐작되네요.”
그 영상 속의 공간이동을 보는 순간, 이진운은 누군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얼마 전 우주에서 한바탕 싸웠던, 해적두목인 로일라를 구해서 사라졌던 정체를 알 수 없던 가면인이었다.
그 자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자신의 기감을 속이고 테러범들을 공간이동 시키는 것쯤은 숨쉬는 만큼이나 아주 간단할 것이다. 물론 영상 속에는 가면인의 모습이 없었지만, 그는 그 작자가 이번 사태에 개입했음을 확신했다.
이진운의 입가에 차가운 살기가 맺혔다.
“그렇군. 그 놈도 결국 이 일에 얽혀 있었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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