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95화 (96/448)

4권-20화

확실히 끝장을 냈어야 할 상대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적의 출현에 이진운은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놈도 보통 놈이 아니군. 창을 쓰는 녀석도 그렇지만, 이놈도 만만치 않아. 제아무리 카멜롯의 배리어가 거듭된 포격으로 조금 약화됐다곤 하지만, 가장 약한 부분만을 정확히 찾아내서 힘을 일점에 집중시켜 뚫다니! 그건 보통 실력으론 불가능한 짓인데······.’

그건 거의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먼 거리에서 작은 바늘구멍 하나를 정확히 꿰뚫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의 기교였다.

하긴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이진운도 다 끝장낸 녀석을 포기하면서까지 공격을 방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진운은 위저드 타입을 노려보면서 창을 겨누었다.

‘마법사의 보편적인 약점은 근접전인데······.’

하지만 위저드 타입도 근접전을 허용해 줄 만큼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특히 놈이 타고 있는 검은 상어의 기동성을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놈이 만일 치고 빠지는 식으로 나온다면 이진운으로서도 상대하기가 난감할 수밖에.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은, 정작 싸워야 할 상대인 성멸 급 위저드 타입에게서 이렇다 할 만한 전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설마, 물러날 생각인가?”

이진운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분명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부상을 입은 동료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전투를 지속한다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잠시 이진운을 노려보던 위저드 타입은 곧 검은 상어의 기수를 돌려 저 편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푸념처럼 내뱉었다.

“결국 가버렸나?”

이진운의 입장에선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웠다. 창술을 쓰는 녀석을 확실히 끝장냈었다면 하는 아쉬움과, 위저드 타입이 순순히 물러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놈이 만일 검은 상어의 기동성을 적극 활용해 일격일탈 방식으로 치고 빠졌다면 이진운이라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플로트 윙의 기동성을 최대한 발휘해도 붙잡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놈의 발을 묶어둘만한 방도를 따로 생각해 봐야겠어.’

쾅! 콰콰쾅!

그때였다. 마침 지상에서부터 성대한 포격세례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인베이더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아이틀란 행성방위군의 포격이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이진운은 쓰게 웃고 말았다.

“참 빨리도 쏴 주고 있네. 이제야 거들어주겠다고 나서다니, 괜한 뒷북을 치는 군.”

그들이 조금만 더 빨리 움직여줬다면, 인피니티 킹덤에 집중되었던 인베이더의 포화도 조금은 분산되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번 대기권 강하도 지금보단 조금 수월하게 진행되었겠지.

이진운에게는 그들의 속내가 뻔히 보였다.

“교활한 작자들 같으니···. 우리가 과연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저울에 달아보고 있었단 말이지?”

이번 대기권 강하 작전으로 인피니티 킹덤의 전력을 측정해 보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야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전력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위인들이로군.’

아무튼 그 덕분에 전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베이더 놈들도 줄기차게 쏘아대던 포격과 공세를 멈춘 상태였다. 하긴 놈들도 깨달았을 것이다. 인피니티 킹덤의 대기권 진입은 이제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을.

하긴 성멸 급 인베이더 중 하나가 극심한 데미지를 입고 물러섰으니,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진운은 저 멀리 지상 위로 보이는 거대한 하이브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하이브를 날려 버리고 싶지만, 다음을 노리는 수밖에.”

카멜롯이 보유한 최대 화력이라면 하이브를 배리어 째로 날려 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지는 아예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법을 썼다간 하이브는 물론 아이틀란 행성 전체까지 자칫 심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은 지속적인 고화력을 투사해서 하이브의 배리어를 소모시킨 뒤에 박살을 내거나, 혹은 고위 랭크의 오버러가 하이브 내로 침투해서 기능을 엉망으로 만들어 다운시키는 정도다.

하이브란 것들이 행성에 기생충처럼 뿌리 내려서 성장하는 것들이라, 일단 부작용 없이 제거하려면 그런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때, 카멜롯의 브릿지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아르페인이었다. 전투가 거의 정리되어가는 시점이 되자 조금은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사령관 님. 아이틀란 행성방위군에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를 환영한다는군요. 지금 쏘는 포는 환영의 축포랍니다.]

펑, 펑펑!

그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저 하늘에서부터 다수의 포성이 규칙적으로 울려오고 있었다.

이진운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틀란 행성에 진입하느라 방금 전까지 무슨 생고생을 했는데, 기껏 한다는 게 환영의 축포라고?

그럴 여유가 있었다면 차라리 인베이더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공격해 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치민 화를 억누르느라 잠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이진운이 곧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 그럼 우리도 적당한 답례로 예포를 쏘지. 저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줄 수 있도록 말이야. 대신 답포의 화력은 좀 과한 게 좋겠지?”

[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는지, 의미심장하게 웃는 아르페인. 곧 카멜롯을 비롯한 인피니티 킹덤의 모든 전함들이 주포를 움직였다.

고오오오!

점점 상승하는 출력! 그리고 주포에 막대한 에너지가 맺혔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이진운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쏘기 전에 미리 행성방위군과 행성정부에 전보를 보내라. 내용은 [환영의 축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우리도 답포를 실시한다. 공격의 의도는 없으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가 좋겠군.”

[음, 확실히··· 그게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아르페인은 그 즉시 전보를 보냈다. 이걸로 어떤 답포를 쏜다 하더라도 자신들에게 책임을 묻지는 못할 것이다.

“자, 그럼 우리 방식의 답포가 어떤 것인지, 한번 화려하게 쏴 줘라!”

이진운의 포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카멜롯을 시작으로 함대의 모든 전함들이 포화를 쏟아내었다. 비스듬하게 세워진 포구는 하나같이 다 45도 위쪽의 상공을 향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무시무시한 빛줄기들과 칠흑빛 기둥이 저 상공을 뚫고 치솟는다. 말 그대로 하늘 자체를 관통하는 재앙이었다.

저 편의 구름층들이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졌고, 그 여파로 대기가 크게 떨리면서 사방으로 충격파가 밀어닥쳤다. 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 마치 태풍이라도 불어 닥친 듯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십여 초 간 하늘을 향해 조사된 성대한 포화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 * *

한편, 아이틀란 행성방위군과 행성정부에서는 난리가 벌어졌다. 인피니티 킹덤의 대기권 진입을 돕지 않고 늦장을 부린 일 때문에 기분이라도 달래라고 쏜 축포였는데, 그것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돌아왔다.

이건 아예 전면공격을 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행성방위군 바로 위쪽 상공을 비스듬하게 꿰뚫고 지나가는 강력한 포화에, 지휘부는 말 그대로 패닉을 일으켰다.

“대···대체 뭐냐 이건!?”

“공격인가! 설마 우리를 공격하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리가 관리국을 적대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 아이틀란도 엄연히 연합의 일원이라고.”

심지어 병사들마저도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긴 우군인줄 알았던 관리국의 함대가 난데없이 포격부터 성대히 쏴 댔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관리국 함대잖아? 근데 우리 편 맞아?”

“아무래도 우리 밉보인 것 같은데? 그러기에 윗대가리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대기권 진입 때 진작 도와줬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이거··· 정말로 괜찮은 거겠지?”

병사들의 혼란에 간부들이 수습에 나섰다. 동요하고 있는 건 사관들도 내심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병사들처럼 우왕좌왕 할 수는 없었다.

“자자, 다들 침착해라. 저건 우리가 쏜 축포에 대한 답포다! 우릴 향한 공격이 아니야!”

“조용히 하도록. 괜한 혼란을 주는 녀석은 곧바로 처벌하겠다!”

그렇게 설명과 강압을 통해 혼란을 진정시키는 동안, 인피니티 킹덤은 지휘통제소의 유도 아래 천천히 지상 위에 내려섰다.

그제야 조금씩 진정될 기미를 보이는 병사들이었다. 심지어 행성정부의 수반들이나 행성방위군의 지휘부도 겨우 안도의 기색을 내비쳤다.

소란이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야 겨우 환영행사가 시작되었다.

이진운을 비롯한 인피니티 킹덤의 주요 인사들이 함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아이틀란 행성정부의 수반들이 그들을 맞이하러 직접 나섰다. 행성방위군의 총사령관과 지휘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조금 경색된 얼굴 위로 억지웃음을 띄우며 이진운과 인피니티 킹덤의 일원들을 열렬히 환영해왔다.

“어서 오시죠, 인피니티 킹덤의 여러분. 그리고 이진운 사령관 님. 우리 아이틀란 행성은 여러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아이틀란 행성의 통합대통령인 그룬키 레드벌룬의 인사말에 이진운도 의례적인 답례로 화답해주었다.

생각보다 반응은 괜찮았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더니, 확실히 한 번의 무력시위가 생각보다 잘 먹힌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정중한 환영에, 이진운은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래도 정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작자들이라 그런지, 방금 전의 일을 겉으로 내색하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감출 순 없었는지, 가끔 그들의 눈동자에 떠오르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엿볼 수 있었다.

함대의 전함을 지킬 경계당번들을 제외한 인피니티 킹덤의 승무원과 전투요원들은 아이틀란 행성정부 사람들의 인도에 따라 만찬회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이진운은 아르페인과 함께 따로 VIP내빈석으로 이동해 정부 수반과 고위층들과 따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만찬이 시작되면서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그 서두는 일단 변명부터였다.

“저희가 내부 사정 때문에 조금 움직이는 게 늦었는데도, 이렇게 무사히 도착하시다니 천만 다행입니다.”

“그랬군요. 어쩐지 조금 늦는다 했습니다. 아이틀란에 무슨 일이라도?”

이진운이 그렇게 묻자, 그룬키 통합대통령이 주섬주섬 변명과 사과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이곳에선 늘 상 있는 일이지요. 개척자들과 토착민들의 의견충돌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하필 이 순간에 말썽을 일으켰죠. 그래서 공격 타이밍이 조금 늦게 되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랬군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우리도 무사히 내려왔으니 일단 사과는 받아들이죠. 한데 의사통일이 안 된다니··· 인베이더라는 대적을 앞둔 이 마당에 과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진운이 사과를 받는다는 듯 말하면서 한편으론 비꼬자, 그룬키 통합대통령이 조금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든 그들을 설득해 뜻을 모아볼 생각입니다. 인베이더가 눈앞에 있는데 서로 싸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진운 사령관님께서도 여러모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돕긴 해야겠지요.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또 한 번 문제가 생긴다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보내주신 축포에 너무 기쁜 나머지 화기관제를 담당하는 분이 실수를 다 했더군요. 제가 생각해 봐도 답포의 위력이 조금 지나쳤나 봅니다.”

이진운이 그 부분에 대해 살짝 돌려서 협박하자, 그룬키 통합대통령도 굳어진 안색이 되었다.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아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번에는 단순히 답포가 아니라, 그 포화가 아이틀란 행성을 향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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