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94화 (95/448)

4권-19화

이진운은 검 대신 등 뒤에 메고 있던 창을 꺼내들었다. 그는 언제나 검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종류의 무기를 상시 소지하고 있었다.

이것들도 전부 리스티의 작품으로서 상당히 쓸 만 했다.

“너나 나나 시간에 쫓기는 건 피차 마찬가지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눈앞의 인베이더를 향해 창끝을 겨누었다. 그러자 인베이더도 자극을 받은 듯, 놈이 쥐고 있던 창끝에 어린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제 지상에 닿기까지 남은 시간은 몇 십 초 남짓. 그 짧은 시간과, 그들이 서 있는 카멜롯의 갑판 위가 그 둘만의 스테이지인 셈이다.

“어디 한번 겨뤄보자고!”

주변으로 팽배하게 퍼져나가는 투기! 그들 둘이 내뿜는 기세로 인해 이 일대의 대기가 들끓어 오르는 듯했다.

단순히 기운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자연현상을 뒤흔드는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역시 평범한 인베이더가 아니야.’

피부를 찌르는 듯 전해져오는 강렬한 무형지기의 해일! 이것은 단순히 막대한 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토록 정련된 기세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무의 이치를 깨우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쿠쿵!

굉음과 함께 카멜롯의 함체가 살짝 흔들렸다. 지상에서 퍼부어진 포격 중 하나가 배리어를 두들기면서 생겨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흔들림은 대치 상태에 있던 둘을 반응하게 만들었다.

선공은 인베이더 쪽이었다. 갑판에 발을 딛고 선 상태에서 충격이 울리자마자, 놈은 이 때라는 듯 손으로 창신을 튕기듯 쏘아냈다.

그것은 너무나도 평범하면서도 정석적인 직선 찌르기! 하지만 평범하다고 해서 그것을 가볍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파아앙!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눈부신 궤적 하나가 일직선으로 파고들어온다. 그것은 창이 아니라 무슨 탄환을 쏘아내는 것 같았다.

이진운은 그것을 포착하자마자 즉각 대응에 나섰다. 그의 창이 비스듬하게 휘둘러지면서 찔러오는 상대방의 창을 옆으로 빗겨 쳐낸 것이다.

쿠오오오!

빗나간 창격이 허공을 관통했다. 하지만 허공을 찌른 그 여파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저 먼 상공까지 뻗어나간 충격파는 유유히 흘러가던 구름층을 꿰뚫어 흩어지게 하고 있었다.

피피피핑!

허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첫 실패 따윈 상관없다는 듯, 잇따라 쏟아내는 찌르기의 향연!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궤적이란 형태로 퍼부어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의 대응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창의 궤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수천으로 불어난 것이다.

관일창(貫日槍) 제 1식. 일광탄하섬(日光彈遐閃)

연식. 맹렬광화섬(猛烈狂化閃)

콰콰콰콰!

단순히 빠르다는 정도를 넘어서 시간이란 개념 자체를 초월한 듯한 이진운과 인베이더의 찌르기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것은 창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마치 서로를 향해 빛다발을 내쏘고 받아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카멜롯의 메인브릿지에서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오퍼레이터들은 경악스러워 했다.

[세상에··· 이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군.]

[이건 단순히 극초음속을 넘어선 정도가 아니야. 방금 봤어? 계측된 속도만 해도 무려 시속 4만5천km였다고!]

[진짜 미쳤군. 창 한 자루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이 가능하다고?]

인베이더의 터무니없는 강함도 놀라웠지만, 그것을 유유히 받아치면서 반격까지 하는 이진운도 과히 사람 같지 않았다.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란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진운도 남들이 보는 것처럼 쉽게 상대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인베이더의 속도도 속도지만 창끝에 실린 힘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지막지했다.

확실히 육체적 스펙만큼은 이진운의 몇 배를 웃돌고 있었다.

‘아니, 지금 이 녀석만 그런 게 아니야. 여태까지 상대해 봤던 인베이더 놈들은 항상 그랬었어. 신체 스펙은 훨씬 압도적이었지.’

그 점이 바로 아르탈 행성 연합이 인베이더와 맞붙을 때마다 열세에 처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진멸 급부터는 어지간한 강자가 아니고선 오버러 개인이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본래 인베이더를 잡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오버러 여럿이 제각기 정해진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체계적인 팀을 짜서 공략하는 게 상식이었다.

보통 인베이더도 아니고 무려 성멸 급이나 되는 개체를 혼자서 상대하고 있는 그가 비정상적인 것이다.

콰앙!

마지막 순간 부딪친 창격에 무시무시한 굉음이 터졌다. 그 둘은 그 반발에 밀려 서로 몇 발자국씩 물러났다.

이것으로 완벽한 동수! 어느 누구 하나 밀린 기색이 없었다.

이진운은 간만에 제대로 된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어 투지가 끓어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이 튀어나온 거지?’

진멸 급 정도 되는 고위 인베이더부터는 일반 양산형들과 달리 막 찍어내는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우주로 나온 이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상당한 창술과, 그것을 높은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는 인베이더. 결코 평범한 조합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인베이더에게도 체계화시킨 전승무예가 따로 존재하거나, 아니면 언데드처럼 생전에 소체가 되는 인간들의 무예가 인베이더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베이더란 것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된 체계도 없이 마구잡이로 힘만 휘두를 줄밖에 모르나 했는데··· 이놈을 보니 다 그런 것도 아니었군.’

인베이더들에 대한 생각을 수정한 이진운은 마음가짐부터 달리 하기로 했다. 그가 볼 땐 부족해 보이긴 해도, 이 녀석은 분명 제대로 된 무(武)를 갖췄다.

그렇다면 좀 더 진심으로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쿠웃!

이진운의 기세가 갑자기 일변하자, 인베이더의 반응도 달라졌다. 놈도 느낀 것이다. 상대의 커진 존재감이 자신의 기세를 서서히 짓누르고 있음을.

단순히 힘의 크기만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분명 힘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격의 차이였다.

견디다 못한 인베이더 쪽이 먼저 창끝을 쏘아낸다. 그것은 쏘아진 벼락처럼 공간을 꿰뚫고, 이진운도 그 즉시 그에 맞서 대응했다.

피피피핑!

둘이 내뻗은 창이 다시 서로 어지럽게 뒤엉킨다.

하지만 그 형국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좀 전까진 거의 직선일변도의 공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진운의 창은 마치 뱀이 수풀을 기어가는 것처럼 기괴하고도 변화무쌍하게 휘어지면서 상대의 허를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관일창(貫日槍) 제 1식. 일광탄하섬(日光彈遐閃)

비의. 요지사환섬(橈指蛇幻閃)

낭창낭창 휘어지고 꺾이면서 창의 궤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머리를 노리는 것 같다 싶으면 휘어지면서 복부를 노리고 있었고, 혹은 가슴팍을 찔러오다가 창대가 휘어지면서 어깨를 찔러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인베이더의 대응도 어지러워졌다. 변화무쌍한 요지사환섬의 수법에, 놈도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그랬군. 창술 자체는 제법이다만··· 그것을 제대로 응용할 줄은 거의 몰라. 즉 변식에 약하다는 말이지.’

그것이 이진운이 발견한 인베이더의 약점이었다. 창술 자체는 우직하게 연마한 흔적이 보였지만, 오로지 기본정석만 갈고 닦는다고 해서 무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예측 불허의 변수에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공방을 주고받을수록 놈의 허점은 갈수록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진운은 이제야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바로 지금의 순간을 위해 놈을 요지사환섬으로 혼란시켜온 것이다.

어지럽게 휘어지던 창끝이 일순간, 기세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존재감이 희박해지더니 이제는 눈으로 보고서도 창이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마치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창끝이 순식간에 소리조차 죽인 채 허공을 갈랐다.

관일창(貫日槍) 제 1식. 일광탄하섬(日光彈遐閃)

비의. 맹습도하섬(猛襲渡河閃)

헌데 어느 순간, 뻗어나가던 창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것은 단순히 창속이 빨라서 생기는 착시가 아니었다. 정말로 창의 궤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쿠웃!?

갑자기 사라진 창의 모습에 인베이더도 당혹성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상대의 창을 눈으로 직접 보고 대응해왔던 놈에게 있어, 이런 상황은 대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론가 사라졌던 창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 인베이더의 가슴팍 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베이더는 다가오는 창끝을 피하지 못했다. 제아무리 초월적인 반사신경을 가진 놈이라 해도 이건 무리였다.

콰드득!

놈의 신체를 둘러싼 외갑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이진운의 창이 그대로 가슴을 꿰뚫었다.

투우웅!

공간이 흔들렸다. 이진운의 이번 창격에 실린 경력의 여파가 사방에 미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공격에 실린 위력은 은밀하면서도 강력했다.

그렇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놈은 인간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가슴 정 중앙을 창에 꿰뚫린 상황에서도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이진운은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았다. 얼마 전 상대했던 실버 타이탄의 경우를 상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참에 확실히 끝내주지.”

놈을 완전히 마무리할 작정으로 손을 쓰려 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좌측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열파가 들이닥쳤다.

그것은 놀랍게도 카멜롯의 배리어까지 뚫고 이진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칫!”

이진운은 즉시 창을 회수해서 창막(槍膜)을 전개했다. 창끝에서 시작된 작은 점이 넓게 확산되었고, 그것은 순식간에 그를 둘러싼 두터운 강기벽(罡氣壁)이 되었다.

콰우우우!

뜨거운 열기에 갑판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진운이라 해도 무방비 상태로 맞았더라면 절대 무사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전개한 강기벽은 그것을 완벽하게 방어해냈다.

‘이능? 아니, 이건 마법에 가까워!’

이진운은 자신에게 날아든 열파의 성질을 읽고는 그 정체를 정확히 판별해냈다. 리스티와 이것저것 함께 연구하면서 그도 마법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는 한 이렇듯 조밀하고 체계화 된 영자패턴 구조는 마법밖에 없었다.

이진운이 공격이 날아온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던 녀석이 존재했다.

그것은 마치 소형 전함을 축소시킨 듯한 비행체였다.

인베이더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가는 A랭크의 비행강습형 타입, 검은 상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진운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존재를 발견하고는 곧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위저드 타입, 그것도 성멸 급인가?”

검은 상어 위에 올라타 있는 녀석은 위저드 타입의 인베이더였다. 방금 전 날아온 마법도 녀석의 소행일 것이다.

이진운은 좀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성계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성멸 급 인베이더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씩이나 된다. 이 정도면 아이틀란 뿐만 아니라 주변 성계까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방금 전까지 맞붙었던 창술을 사용하던 인베이더는 이진운이 공격당하는 사이 빼돌려진 건지, 어느새 위저드 타입 옆에 안착했다. 아마도 놈을 구출하기 위해 위저드 타입이 검은 상어와 함께 급히 날아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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