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92화 (93/448)

4권-17화

이진운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들은 바를 정리해봤다.

아르페인의 말처럼 뒤가 쿠린 녀석이라면 조사해보는 것만으로도 지저분한 죄목이 여럿 튀어나올 것이다. 이진운은 그 점을 찔러보기로 했다.

‘사람을 시켜서 조사를 해 봐야겠군. 리스티한테 말해두면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리스티가 가진 힘은 실로 막대했다. 10대 기업인 소레디안 컴퍼니를 비롯한 다수의 회사들을 보유한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 하나 뒷조사 하는 것쯤은 순식간이었다.

“그럼 이놈이 메탈 기어 연합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됐는데?”

“알려진 바로는 대략 6년 쯤 됐군요.”

“그리고 그 전에는?”

이진운이 계속해서 그에 대해 캐묻자, 아르페인은 직접 데이터베이스를 뒤져가면서 대답해 주었다.

“으음, 메세니아 공화국에서 제법 잘 나갔었다고 합니다. 이름난 상회의 주역 임원이었지요.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만······.”

“메세니아 공화국이라.”

메세니아 공화국에 대해서는 그도 많이 들었었다.

아르탈 행성 연합 다음가는 우주의 거대 세력 중 하나. 수많은 아인종들이 세운 곳으로서, 정치적으로 무척이나 혼란한 편이라고 했다. 게다가 너무 시장경제를 자유방임적으로 풀어놓은 탓에, 온갖 불법이 횡행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이름난 상회라면··· 놈이 전에 몸담았던 곳이 어디 있었는데?”

“할파스 상회입니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곳이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압니다. 돈 되는 거라면 안하는 짓이 없다고 하더군요. 메세니아 공화국을 더럽히는 3대 오물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래?”

그렇게 구체적인 이야기까지는 들어 본 적 없었던 이진운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3대 오물이라··· 그런 멸칭이 붙을 만큼 악명 높은 상회의 잘 나가는 임원 출신이라 이거지?

놈의 뒤를 캐보면 별의 별 것이 다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잘 나가는 상회에서 임원까지 해먹던 녀석이 뭐가 아쉬워서, 군수업체의 사무장 일을 하고 있었던 거지?’

할파스 상회는 군수업체연합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곳이었다. 취급 안 하는 게 없었고, 그만큼 규모도 대단했다. 메세니아 공화국을 두고 심지어 할파스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자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건데······.’

이진운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할파스 상회도 여러모로 의심스러워졌다.

군수업체의 사주를 받은 그가 루이트 알베르그 해적들에게 의뢰한 것도 보면 우연이라 할 수 없는데, 할파스 상회의 악명까지 더해지니 그 배후가 서로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거···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겠어.”

이진운은 쓰게 웃고 말았다. 무려 공화국을 좌지우지하는 상회가 배후로 짐작되는 상황이다. 관리국에서 자신을 좋게 봐주고 있긴 하지만, 그런 거대 집단을 건드렸다간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조심스럽게 조사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군수업체연합도 가만 둘 수는 없지. 상황을 보아하니 배후의 어떤 놈들에게 멋대로 이용당한 것 같지만, 그래도 날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겠지.’

그 순간, 이진운의 두 눈이 더없이 섬뜩한 빛을 발했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대강의 정비가 완료되었다. 경미한 손상이었던지라 복구는 금세였다. 다만 해적함들의 수리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제네레이터를 비롯한 중요 기능에 데미지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디체 같은 준대형 전함은 막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만큼, 나중에 따로 개수해서 인피니티 킹덤에 정식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일단 운용만 할 수 있도록 이틀 동안 대강 정비를 마쳐둔 것이다.

이틀의 정비시간이 끝나자, 아르페인이 모두에게 작전을 하달했다.

“그럼 지금부터 아이틀란 행성 진입 작전을 시작하겠다.”

현재 아이틀란 행성은 인베이더의 하이브로 인해 엉망인 상태였다. 제공권도 대부분 놈들에게 장악된 상황인지라, 함대가 행성의 대기권으로 강하하는 것도 되도록 신중을 기해야 했다.

“우선 작전의 시작은 더미 낙하로 시작된다. 이것을 미끼로 해서 우린 안전을 기하고자 한다.”

대기권에 진입하기 시작하면 인베이더들의 막대한 대공 포격이 예상되고 있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미끼로 더미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더미로 낙점된 것이 바로 다름 아닌, 얼마 전 획득한 해적선이었다.

멀쩡한 것들도 제법 있었지만, 상당수가 반파되어 수리하기 난감한 상태였고, 대파된 것들은 재활용조차 어렵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래서 아르페인은 쓸모없는 해적함들을 이번 작전에 적극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는 전함에는 몇 개의 부스터를 붙여서 지상의 목표지점으로 추락시킬 생각이었다. 그것은 곧 미끼 겸 인피니티 킹덤을 지켜주는 물리적인 방패막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해진 작전명은 [스페이스 쉽 더스트]! 전함의 부스러기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작전 하달이 끝나자, 아르페인은 드디어 이진운 쪽을 돌아보았다. 그 의미를 알아챈 이진운이 조용히 웃으며 물었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뭐지?”

“아마도 놈들은 대공 포격만 하지 않을 겁니다. 고위 인베이더를 보내서 대기권 진입 순간부터 확실하게 끝내려 하겠지요.”

“그렇군. 나는 그걸 막으면 되는 건가?”

“예, 굳이 처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놈들이 인피니티 킹덤의 대기권 진입을 막지 못하도록 방해만 하면 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상황에서 인베이더와 접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은 우주공간에서 벌이는 전투보다 더 위험천만했다.

물론 대기권 진입에 의한 열과 충격은 배틀 슈트가 막아준다고 하지만, 중력권에 휘말리는 와중에 벌이는 전투는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았다.

그래도 이진운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정도라면 어렵지 않겠지. 그래도 여력이 되면 처치하는 쪽으로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둬. 내 걱정은 말고.”

“물론이지요.”

이진운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아르페인도 웃으며 화답했다.

헌데 그때, 뭔가 불현듯 생각이 난 건지 이진운이 아르페인에게 물었다.

“참, 아이틀란 행성 정부에도 사전에 연락은 해뒀겠지? 거기서도 함께 대응을 하면 우릴 노려올 놈들도 조금은 신경이 분산될 텐데.”

“이미 연락은 취해 뒀습니다만··· 어떨지는 모르겠군요.”

떨떠름한 얼굴로 불분명한 대답을 내놓는 아르페인. 그것을 눈치챈 이진운이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저희가 행성을 구하러 왔다는데도, 이곳 행성정부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가 봅니다.”

그 말만 들어도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챘다. 아이틀란 행성의 정세 현황에 대해선 이미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진운은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제정신들이 아니군. 행성이 망할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새로 들어온 개척자들과 오래 전에 정착한 토착민들. 그들 두 세력이 행성 정부를 거의 이분하다시피 하고 있다 하더니, 그 다툼이 인베이더의 침공 속에서도 계속 이어진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가히 답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단은 개척자 대표가 긍정적인 대답을 해 줬으니, 거기에 기대할 수밖에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르페인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 안 되면 우리 힘으로 길을 여는 수밖에······.”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힘 따윈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진운이 믿는 것은 자신의 검뿐이었다.

곧 오퍼레이션 [스페이스 쉽 더스트]가 시작되었다.

* * *

쿠구구구!

드디어 인피니티 킹덤이 아이틀란 행성의 중력권에 도달했다. 전함을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에 따라 하강하기 시작하자, 함체가 이리저리 진동을 일으켰다.

일단 함 내에도 중력제어 기술이 더해진 탓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요동치는 것을 완전히 중화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들 긴장된 표정으로 대비 태세에 들어갔다.

대기권 진입 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경계 대상이었다. 왜냐면 중력권으로 강하하는 순간에는 인베이더의 공격에 평소처럼 대응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진운이 대기권 진입 때 고위 인베이더를 견제한다는 것은 남들한테 미친 짓이란 소릴 들어도 마땅했다.

“실시간 필드 제어! 오차범위 상정 내입니다.”

“진입 궤도 오차 범위 클리어! 아직까지 문제없습니다.”

오퍼레이터들의 목소리가 긴장감 넘치는 메인 브릿지 안을 울렸다.

그 상황을 잠자코 주시하던 아르페인이 경고 차 말했다.

“곧 온다. 대비해라.”

“예, 디스토션 필드 출력 상향! 현재 출력 66%.”

아니나 다를까 지상에서부터 다수의 열원이 포착되었다. 놈들도 이미 대기권 강하를 눈치 챈 모양이었다.

“일단 센서에 집중해라. 선행해 진입한 더미 때문에 시야가 안 잡힌다. 혹시라도 놈들이 허를 찌른다면 바로 그 부분이다!”

“예!”

복구 불가능하거나, 복구에 너무 많은 재원이 필요한 중파된 전함들을 때려 모아 만든 더미였다. 크기나 질량이 제법 컸던 만큼 놈들의 신경을 집중시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상에서 퍼부어진 포격이 더미 위로 직격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망가지지 않았다. 해적선의 기능 대부분은 망실되었지만, 그래도 배리어 기능 일부분은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경계해야 할 것은 놈들이 장악한 제공권에서의 공격! 놈들에게는 더미 작전의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때 오퍼레이터가 경고성을 발했다.

“옵니다! 비행 타입! 데드 플라이 1만 2천 개체에, 레드 비틀 221개체가 본 함대를 향해 접근 중입니다.”

데드 플라이 자체는 E랭크로 별 볼일 없었지만, 레드 비틀은 달랐다. 놈들은 무려 C랭크에 준하는 침공 급으로서 전함에게도 제법 위협적인 개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두려워할만한 상대는 아니다.

“전부 떨어뜨려라! 포구를 연다!”

카멜롯의 함체 좌우에서 다수의 포구가 전개되었다. 그것들은 평범함 포구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쏠만한 구멍이 존재하지 않고, 포구 자체가 마치 렌즈와 같은 둥근 유리 같은 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굴절 레이저 포 발사!”

무수한 빛줄기가 대기권을 불태웠다. 그것은 종잡을 수 없는 빛의 궤적이었다. 휘어지고 꺾이면서 모든 타깃을 끝까지 추격해 불살라 버렸다.

이것이 바로 카멜롯의 무장 중 하나인 굴절 레이저 포. 그 화력은 보다시피 압도적이었다.

데드 플라이와 레드 비틀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격추되었다.

그렇지만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놈들의 공격이 드디어 본격화 된 것이다.

“지상에서부터 막대한 에너지 반응 포착! 중력자 반응입니다!”

보고를 받은 아르페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래서는 더미 효과도 오래 못 받겠군.”

아니나 다를까. 지상으로부터 치솟은 시커먼 광채가 모든 것을 압괴시켜 버렸다. 카멜롯도 보유하고 있는 그래비티 블래스트와 비슷한 중력자 병기였다.

더미로 떨어뜨린 해적함들은 그 화력 앞에 잠시 버텼지만,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집중적인 조사를 받은 지 불과 1분 만에 성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 같은 화력 대응이 불가능하다. 필드 제어에 집중해라!”

저만한 고출력 중력자 병기를 막으려면 필드의 출력을 보다 높일 필요가 있었다. 제네레이터의 에너지를 더 돌리는 만큼, 비행 타입에 대한 대응은 취약해질 수밖에.

물론 아르페인은 이런 경우도 상정에 두고 있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군.”

지금까지 잠자코 지켜보던 이진운이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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