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15화
“첫 개시부터 꽤 화려하게 시작하게 되었군.”
메인 브릿지에서 전체적인 전황을 통제하고 있던 아르페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해적들의 습격도 모자라 이젠 인베이더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렇지만 위기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두목인 로일라는 정체 모를 가면인이 데리고 사라졌지만, 여기 남아 있는 해적들은 거의 소탕된 거나 다름없었다.
모함인 디체는 제네레이터의 손상으로 기능부진 상태. 이젠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나머지 해적함들도 마찬가지. 인피니티 킹덤의 전력 앞에 거의 무력화 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부터 함대를 전술 B-21안에 따라 둘로 나눈다. B팀은 남아 있는 해적들을 제압하고, A팀은 내 명에 따라 인베이더를 친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전함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완벽한 대열과 움직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르페인은 다양한 경우들을 상정해 전술을 만들었고, 인피니티 킹덤의 함대는 훈련을 통해 그것들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이 정도 대응은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해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 A팀은 일제히 화력을 쏟아 붓는다. 워프 아웃 직후인 지금이야말로 놈들에게 선제 타격을 먹일 좋은 기회다! 자, 쏴라!”
무시무시할 정도의 포화가 인베이더들을 향해 퍼부어졌다. 이 일대의 우주공간이 온통 빛으로 뒤덮일 정도의 화력이었다.
인베이더의 함대도 방어에 들어갔지만, 놈들은 이제 막 워프 아웃을 끝낸 상태. 상당량의 에너지를 워프에 소진한 터라 제네레이터의 출력이 다 돌아오지 않아 방어나 대열이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콰콰콰콰!
가란드 급 두 척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중형 전함들도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심하기엔 일렀다. 이번 선제타격으로 제법 타격을 입은 듯 보였지만, 인베이더 놈들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준대형인 가루다 급을 중심으로 포진을 구축한 상태에서 배리어를 단단히 만든 뒤, 인피니티 킹덤의 일제 포화를 어떻게든 견뎌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기선은 확실히 제압했으니, 차근차근 전술대로 요리해나가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문제는 상위 인베이더인데······.”
전함 타입의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변수가 될 수 있는 인베이더들이 문제였다.
대체적으로 소형이면서 강력한 힘과 기동성을 보유한 개체들로서, 전함의 빈틈을 파고드는 능력을 가진 만큼, 일단 접근을 허용하면 설령 준대형 함이라도 위험해진다.
“그건 사령관님에게 맡기는 수밖에······.”
아르페인은 이진운의 실력을 믿었다. 방금 전 그가 로일라와 가면인을 상대로 보인 무위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의 일검은 차원의 경계마저 갈랐다. 그것은 이미 그가 평범한 S랭크의 범주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현재 우주 공간에 있던 이진운도 새로운 인베이더 개체와 이제 막 맞닥뜨린 상태였다.
인피니티 킹덤의 포화가 인베이더 함대를 타격한 순간, 준대형인 가루다 급에서 다수의 인베이더가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은 우주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는 침공 급 이상의 개체들. 이진운은 그 즉시 대응에 나섰다. 고작 이런 놈들로 어떻게 될 인피니티 킹덤이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요소는 최대한 배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허리 아래로 늘어뜨린 검 끝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미미한 떨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검신에서 타오르는 강기의 빛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그것은 거대한 파동과 같은 형태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우주 공간이 마치 떨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대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는 결코 들릴 리 없는 소리였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마치 귓가에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이진운의 검첨이 허공을 찔렀다. 내딛는 오른발과 소용돌이치는 허리, 그리고 상반신을 비틀면서 그 힘을 고스란히 담아낸 뒤, 전사의 형태로 내지르는 일점 찌르기.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었다. 찌르기의 형태를 빌린 또 다른 무언가였다.
명백히 말하자면 이건 창술을 검으로 전개한 형태였지만, 조금도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이진운은 무의 한계를 엿본 일대종사. 검으로 창술을 다루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관일창(貫日槍) 제 2식. 파열뇌광인(破裂雷光刃)
비의. 일조뢰인(一照雷刃)
고오오오!
검 끝에서 시작된 강기의 빛이 크게 명동하며 퍼져나갔다. 그것은 마치 태양의 햇살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광채가 넓게 번져나간 순간,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스러져나갔다.
[크우우!]
[커어어!]
인베이더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산산이 분쇄되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무언가에 의해 수천수만 번 난자되어 전신이 분해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것이 관일창의 비의 중 하나인 일조뢰인. 그 이름처럼 태양빛이 내리쬐는 것처럼 발산된 무수한 강기의 선들이 일정 범위 내의 적들을 모조리 난자하고 지나간 것이다.
그 후에 남겨진 것은 조금 전까지 인베이더의 모습을 하고 있던 무수한 잔해들뿐이었다. 우주 공간으로 나왔던 침공 급 중에서 살아 있는 인베이더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상황을 관측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던 오퍼레이터들은 자신들의 사령관이 드러낸 본 실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정말 믿기지 않는군.”
“검 한 자루로 저런 게 가능하다니······.”
“그냥 검으로 빛을 만들어 뿌렸을 뿐인데 인베이더가 싹 쓸려나갔어. 그게 무슨 인베이더 잡는 살충제도 아니고.”
그렇지만 이진운은 침공급을 쓸어버린 뒤에도 경계심을 줄이지 않았다. 무려 준대형인 가란드 급이 출몰한 상황이었다. 놈들이 보유한 전력이 고작 침공급이 전부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적어도 진멸 급, 어쩌면 성멸 급 정도의 녀석이 있겠지.”
하지만 진멸 급이든 성멸 급이든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설령 성멸 급이라 해도 자신이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상대 못할 것도 없었다.
마침 그때, 기척이 느껴졌다. 방금 상대했던 침공 급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었다.
구우우우우!
우주 공간을 흔드는 큰 장소성! 그것은 과연 놈의 울부짖음인지, 아니면 어떤 특수한 현상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울림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이진운은 놈이 느껴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무려 5미터 크기의 거대한 금속질 거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오는 은빛 거인의 모습에 이진운은 가볍게 혀를 찼다.
“정말이지 인베이더 놈들도 생긴 거 하나는 천차만별이로군.”
쿠오오!
거대한 은빛 거인이 주먹을 휘둘러왔다. 얼마나 빠르고 강렬한지, 순식간에 이진운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당황할 것도 없었다. 이진운은 차분하게 검으로 원을 그려 그 일격을 흘려냈다. 절정에 이른 이화접목의 한수였다. 덕분에 뒤로 크게 밀려났지만, 그는 후방에 있던 소행성을 밟고 도약해 날아갔다.
그리고 시작된 폭우와 같은 섬광! 그의 검 끝에서 쏟아진 극쾌의 검강은 은빛 거인의 전신을 사정권에 두고 있었다.
순식간에 놈의 전신이 무참할 정도로 베이고 관통되었다. 이건 거의 넝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약한데?”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이토록 엉망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놈의 기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신체가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 복원되었다. 놈은 레이즈 워커하고는 또 다른 종류의 불사의 성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 이놈이 바로 그 무생의 군단에서 나온 녀석인가.”
관리국에서 인베이더의 종류에 대해 교육받았을 때 들어본 적이 있었다.
무생의 군단. 그것은 무생의 좌 카룬다임이 거느린 생명이 없는 존재들의 무리였다.
놈들에게는 생명과 영혼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무생물. 단지 놈들을 거느린 주인인 카룬다임만이 온전한 영혼과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굳이 표현한다면 일종의 고렘에 가까웠다. 하지만 놈들은 고렘과는 차원이 다른 힘과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부서져도 다시 복원되는 신체를 앞세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 그리고 인간과 달리 지치거나 쇠하지도 않는 그런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은빛 거인은 그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이진운이 볼때 적어도 성멸 급은 되어 보였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는 민첩함. 그리고 큰 몸체에서 나오는 막강한 파괴력! 그리고 베고 찔러도 다시 완벽히 복원되는 재생력!
어느 하나 얕볼 수 없는 녀석이었다.
방금 전 놈이 가해온 공격을 이진운이 너무 쉽게 막아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만일 대상이 중형 전함이었다면 일격에 배리어 째로 대파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확실히 치워 두는 게 좋겠지.”
이진운의 검 끝에 서린 기세가 좀 전보다 더 섬뜩하게 변했다. 놈은 존재가 멸해지기 전까지 끝없이 복원되는 괴물이었다.
그렇다면 존재 자체를 완벽히 말살할 수밖에.
구우우!
은빛 거인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붉은 기운으로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막대한 영력이 본격적으로 운용되면서 영기가 유형화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이제 슬슬 정리도 다 되어가는 것 같으니··· 일격으로 끝낸다.”
이미 카멜롯과 인피니티 킹덤은 해적들을 제압하고, 인베이더 함대를 거의 대부분 정리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은빛 거인 뿐.
이제 마지막 위험요소를 제거할 차례다.
크어어!
이진운의 위험성을 더욱 절감한 것인지, 놈의 주먹으로 좀 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운이 응집되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규모의 소행성 정도는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만한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점에 이른 순간, 놈의 주먹이 크게 내뻗어졌다. 무지막지한 질량과, 강대한 에너지, 그리고 믿기지 않는 속도가 더해진 파괴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이진운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진하며 맞섰다.
그의 검 끝은 어느새 창끝이 되었고, 그것은 오로지 일점을 관통하기 위해 뻗어나갔다.
관일창(貫日槍) 제 6식. 역상회류도(逆商回流道)
비의. 역상회류멸진도(逆商回流滅盡道)
휘오오오!
나선으로 소용돌이치는 전사의 창격!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었다. 맹렬하게 휘도는 검 끝은 닿는 모든 흐름을 거스르고 파하는 쐐기 그 자체였다.
붉은 광채로 타오르는 주먹과 이진운의 검끝이 어느덧 서로 맞닿았다. 마치 이 일대를 집어삼켜 불태울 것 같은 은빛 거인의 주먹과 비교하면 너무도 초라하고 미약해 보이는 한 수였다.
하지만 그것은 곧 역전되었다.
그우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진운의 검 끝이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붉은 기운을 파하며 전진해나가고 있었다.
분명 기운의 총량이나 위력 자체는 은빛 거인의 붉은 영기가 더 압도적이었는데, 이진운의 검 끝은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는 듯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전진해나가던 검끝은 어느덧 은빛 거인의 주먹을 꿰뚫었고, 그 뒤에는 그 주먹마저 분쇄하고 나아가 끝내 은빛 거인의 가슴까지 관통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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