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11화
이진운의 함대 인피니티 킹덤은 워프 항법으로 우주공간을 넘어 초시공간 영역에 접어든 상태였다.
그들의 목적지는 아이틀란 성계. 현재 인베이더의 침공으로 한창 몸살을 앓고 있는 변방 지역이었다.
이진운은 관리국에서 제공한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아르페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그 향방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흐음, 독특한 곳이군. 한 행성에 두 개의 국가라. 여긴 행성정부가 단일화가 안 된 모양이지?”
아르탈 행성 연합에 소속된 행성들 대부분은 정부가 단일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곳 아이틀란 성계는 달랐다. 무려 두 개의 정부가 행성을 이분한 채 서로 대립 중에 있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이 행성에 자리를 잡은 개척자들과, 어느 정도 개척이 끝난 다음에 이주해온 이주자들간의 다툼이 시작이었죠. 그때 쌓인 앙심이 그대로 이어진 건지, 최근까지도 두 국가 간에 분쟁이 꽤 심했습니다.”
“···뭐 어떻게 된 건지는 대충 알만 하군.”
이진운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도 살지 않던 미개척 행성을 고생고생 해 가며 기껏 쓸 만하게 가꿔놨더니, 그 뒤에 찾아온 엉뚱한 놈들이 떡하니 자릴 차지하고 사는데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아이틀란 행성의 분할된 행성 정부는 개척자들과 이주자들간의 다툼에 의한 역사의 증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인베이더의 기습공격에도 대응이 미흡했습니다. 개척자 영역에 인베이더 놈들이 들이닥쳤는데, 이주자 세력 쪽에서는 자신들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외면했지요. 그래서 결과는 이렇습니다.”
아르페인이 곧장 화상 데이터를 전해주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살던 도시가 완전히 박살나고, 그 중심에 거대한 하이브가 세워진 광경이 비쳐지고 있었다.
이진운은 혀를 차고 말았다.
“초기는 진작 넘었고 대충 중기에 가까운 수준이군.”
“예, 벌써 진멸 급이 튀어나와서 행성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더군요. 행성방위군이 대응은 하고 있지만 피해가 크다고 합니다.”
진멸 급이라면 어지간한 병력으론 감당하기 어렵다. 일개 행성방위군의 전력으론 기껏 해봐야 현상유지도 벅찰 터였다.
그래서 이진운은 그에게 물었다.
“그럼 그 주역에 대기 중인 관리국의 함대는? 그들은 뭘 하고 있는 거지? 본래대로라면 인베이더가 행성에 침투하기 전에 그들이 미리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성계와 성계의 사이에는 관리국에서 파견한 함대가 정기적으로 상주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이 그 주변을 살피면서 인베이더의 기습적인 침투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혹 침투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즉각 움직여서 주역에 침투해온 인베이더들을 제거한다.
그게 지금 현재 연합의 세력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보루인 절대방위선이었다.
그런데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됐다면, 그 주역을 지키는 함대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어째서 인베이더를 사전에 막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아르페인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그 당시 강력한 태양풍이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그 덕분에 그 주역을 감시하고 있던 광역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인베이더가 침투하는 걸 미처 감지 못했다고 합니다.”
“운도 더럽게 없었군.”
역시 세상일은 계획했던 대로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인베이더 놈들이 태양풍이 발생할 시기를 미리 읽고 움직인 건지, 아니면 너무 운이 좋아서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놈들은 제대로 이쪽의 허를 찌른 셈이 되었다.
재수가 없는 일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매뉴얼대로 대응했다면 제아무리 하이브가 만들어졌어도 그것이 이제 막 생성되는 초기였다면 제거하는 건 무척이나 간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게 더 의문이었다. 어떻게 했기에 일이 이지경이 됐는가?
이진운이 아르페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주역을 담당하는 함대는 뭘 하고 있지?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뭘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 근처 주역을 헤집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뭐?”
“아이틀란 성계에 하이브의 코어를 쏘아낸 인베이더의 함대가 치고 빠지는 식으로 움직이면서 이쪽 함대를 계속 붙잡아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그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함대를 둘로 나눠서 대응이라도 했어야지. 놈들이 근처에서 깐죽거려도 일단은 하이브가 자리를 잡기 전에 제거하는 게 우선 아니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이진운은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 함대의 사령관은 대체 뭐가 우선인지도 모른단 말인가!
계속 데이터를 읽어 내려가던 아르페인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문제는 그 쪽 함대 사령관이군요. 바이트 함대의 사령관인 오콜로스는 자기 보신주의로 이름 높은 작자니 말입니다.”
자기 보신주의라는 말에 이진운은 무슨 뜻인지 퍼뜩 알아챘다. 그리곤 곧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 말은 그러니까··· 함대를 나누면 자기 목숨이 조금이라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이건가?”
“예, 그런 셈이죠. 그래서 지금까지 30년 동안 온갖 전선을 다 누비며 사령관 짓을 해왔으면서도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생환해왔던 작자입니다. 그래서 더 유명하죠. 함장들 사이에서는 불사신 오콜로스. 비겁자 오콜로스라고도 불립니다.”
“미친! 진작 잘려야 할 무능한 인선이 어떻게 지금까지 사령관을 해먹고 있는 거지?”
“나름대로 정치질은 잘 하는 작자니까요. 손 비벼야 할 곳을 아주 잘 압니다. 그런 작자들이 보편적인 특성이기도 하지요. 한심하긴 하지만······.”
“연합도 생각보다 그다지 건실하진 않군.”
이진운은 그렇게 푸념하면서 데이터를 확인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절로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한심한 대처라니!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대응을 그 따위로 했다고?
설령 함대를 둘로 나눴다 해도 그렇게 위험해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다. 치고 빠진다는 인베이더 함대는 상당히 소규모였다. 그저 함대를 붙잡아두기 위해 전함 자체가 고속함 위주로 꾸며진 터라 화력도 대단치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놈들 때문에 두려워서 함대를 분할하지 않고 하이브를 그냥 놔뒀다고?
생각해볼수록 어이가 없었다.
이진운은 짓씹듯 말했다.
“이번에 돌아가면 관리국장 양반을 좀 만나야겠어. 그 오콜로스인지 뭔지 하는 놈을 왜 자르지 않고 놔두는지 한번 따져봐야겠군.”
“···관리국장님을 그렇게 부르시는 건 아마 사령관님 외엔 없을 겁니다.”
아르페인은 그의 대담한 말에 혀를 내둘렀다.
관리국장은 일개 함대의 사령관이 아무 때나 만나볼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접견 문제를 쉽게 언급하는 걸 보면, 역시 이진운도 범상치는 않아 보였다.
그때였다. 메인 브릿지에서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피니티 킹덤, 곧 워프 아웃 구역에 돌입합니다.]
[차원 단층 지역까지 앞으로 3분. 약간의 흔들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워프 아웃의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이진운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워프 아웃에 대해선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느낌이 좋지 않은데······?”
“왜 그러십니까?”
“내가 처음 소환되어서 프라이스 호에 탔을 때 기억 때문에 말이야.”
“아, 그때 인베이더의 급습이 있었죠.”
프라이스 호의 부함장이었던 아르페인은 이진운 말을 듣고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정말 크게 놀랐었다. 특공으로 날아온 인베이더의 가란드 급에, 심지어 진멸 급이 함내로 침투해 들어오다니! 만일 이진운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그 피해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진운이 여전히 얼굴을 펴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기분이 영 좋지 않아.”
“아이틀란 행성 문제 때문에 불쾌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아르페인이 그렇게 물었지만, 이진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어. 단순한 기우 같진 않은데······.”
한때 반선지경까지 도달했던 그의 직감은 거의 미래예지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물론 이것이 딱히 어떤 이능화 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직감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정확했다.
먼저 결단을 내린 이진운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
“일단, 함대의 출력 상한을 최대한 높여. 그리고 배리어 출력도 최대치로 잡고!”
“알겠습니다.”
이진운의 판단에 대해 아르페인은 아무런 이견도 내지 않았다. 사실은 그도 이진운과 거의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는 즉시 메인 브릿지에 연락을 보냈다.
“제네레이터 출력 최대, 디스토션 필드 카멜롯을 중심으로 출력을 단기간에 최대치로 상승한다! 어서! 워프 아웃 전에 시점을 맞춰야 하니까 서둘러!”
[아···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명령에 오퍼레이터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의 명령은 곧 이행되었다. 그 뜻을 이해하든 못하든 일단 함장이 내린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카멜롯의 제네레이터 출력 최대! 디스토션 필드의 출력을 최대치로 맞춥니다.]
[인피니티 킹덤의 소속 45척의 전함 출력도 상승! 배리어의 D패턴 공조로 모든 배리어를 하나로 통합합니다!]
카멜롯과 그 외 45척의 전함이 출력을 최대로 높인 채, 배리어를 전개했다. 그리고 그 배리어를 특성 패턴으로 맞춘 뒤, 하나로 통합하자. 거대한 구형 배리어가 함대 전체를 둘러쌌다.
함대의 배리어가 통합된 순간, 드디어 초시공간 너머로 통로의 끝이 보였다. 이제 워프 아웃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위이잉!
일렁이는 초시공간! 인피니티 킹덤의 함대가 그것을 넘어서자, 드디어 통상의 우주공간이 시야에 펼쳐졌다.
하지만 그때였다. 함의 센서로부터 경보음이 울렸다.
위잉! 위잉!
[전방에 열원 포착! 다수의 빔 포격이 본 함대를 타깃으로 날아옵니다!]
“배리어 출력 유지! 그대로 밀고 나간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아르페인은 진격을 명했다. 이미 출력은 최대치로 올려놨고, 배리어는 견고해진 상태였다. 제아무리 기습적인 포격이 날아온다 해도, 오히려 밀어내고 나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수많은 빔 줄기들이 배리어에 굴절되어 우주 공간으로 산란되었다.
위력은 상당했지만, 그래도 함대의 모든 출력을 끌어올려 만든 배리어를 넘어설 순 없었다. 아무런 대비 없이 워프 아웃을 시도했더라면 피해가 상당했을 것이다.
오퍼레이터가 외쳤다.
[적함 포착! 라이브러리 데이터를 통해 정체를 분석합니다.]
[해적입니다. 정체는 로일라 해적단. 적 함 총 72척! 중형 전함 21척에, 소형함 50척, 준대형 함 1척입니다.]
“이런 곳에서 해적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적의 정체에 아르페인이 눈썹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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