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10화
그에 대해 조금 경계심이 들 찰나, 그자가 먼저 이진운을 보고 인사를 건네 왔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군요. 이진운씨에 대해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바이첸 바이우드라고 합니다. 바이우드 라는 작은 가문의 가주를 맡고 있지요.”
“바이첸··· 바이우드?”
이진운보다 먼저 주변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거물이 이진운을 찾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진운은 담담했다. 상대가 거대 세력의 주인이라고 해서 굽실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예절을 갖춰서 답했다.
“그러시군요. 이미 아시겠지만 전 이진운이라고 합니다. 그건 그렇고 저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이군요.”
“예, 무용에 대해선 아주 자세히 들었습니다. 다들 평가하기를 역대급이라고 하더군요. 지구에서 소환되신 지 얼마 안됐는데도, 그 정도로 활약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습니다.”
“칭찬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겁니까?”
이진운은 분명히 느꼈다. 아무런 용건도 없이 찾아올 자가 아니었다. 상대의 눈동자나 목소리에서부터 어떤 목적이 느껴졌다.
“그때, 그 아이는 안 보이는군요.”
“그 아이라면···?”
이진운이 조금 의아하단 표정으로 되물었다. 갑자기 아이라니, 누굴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엘레나가 떠올랐지만, 아리엔도 아직은 소녀라 할만한 나이라서 둘 중 누구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자 바이첸이 웃으며 말했다.
“영상에서 봤습니다. 이진운씨가 세계수를 베어낼 때 사용한 그 검, 엘레나란 소녀가 구현하더군요.”
“예, 그랬었죠.”
엘레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바이첸의 모습에, 이진운은 경각심을 느꼈다. 설마 그 힘을 노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별 뜻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물어보고 싶어서요.”
“뭘 말입니가?”
“제 생각이지만 그때 검을 구현한 방식··· 그건 구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일종의 강신에 가까웠지요.”
“강신···!? 그렇군, 그래서였어.”
그 말을 듣고서야 이진운은 확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엘레나의 구현 방식과, 천룡파마신검을 구현할 때의 방식과 결과가 왜 차이가 있었는지를!
그건 단순 구현이 아닌 강신에 가까운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부담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 엘레나의 혼이 타격을 입어 의식불명에 빠졌던 것이다.
그것은 강대한 격을 가진 존재를 강신했었던, 그 옛날 무녀나 도사들의 증세와 흡사했다.
‘난 왜 그걸 미리 깨닫지 못했던 거지?’
지금은 옛적의 기억을 잃었다는 천룡파마신검. 그렇다면 그건 검이 아니라 신적 존재였다는 건가?
수많은 의문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을 그때, 바이첸 바이우드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에게 당부하는 말이었다.
“그 아이에게 되도록 사용하지 말라고 해두십시오. 그런 힘은 자신을 좀먹는 것이니까.”
“그게 어떤 힘인지 아시는 겁니까?”
뭔가 아는 듯한 어투에 이진운이 묻자, 바이첸 바이우드는 쓰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예, 저희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도 없겠지요. 저희 가문은 바로 그 업을 타고난 존재들이니까요. 그 고통이 어떤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잘 압니다.”
이진운도 바이우드 가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다른 가문에 비해 외부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비밀스런 가문.
웰라우드 가가 무가로 흥했었고, 프론사이드 가문은 마법과 마도공학으로 이름을 날린 가문이었다. 그에 반해 바이우드 가문에 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의 가진 내력은 은밀했고, 대중에게도 신비로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말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이우드 가문은 엘레나와 마찬가지로, 강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런 오랜 비밀을 언급하고도 바이첸 바이우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알려져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물론 제가 봤을 때, 그 강신해온 대상은 그다지 악의는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강신 자체가 엄청난 부담을 주지요. 아마 그 소녀의 격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걸 자제시킬 생각입니다.”
이진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충고를 받아들였지만, 바이첸 바이우드는 그 정도론 부족하다는 투로 다시 말했다.
“이진운 씨는 아직 잘 모르고 계십니다.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말입니다. 그러니 자제라는 안일한 말이 나오는 거겠죠. 자제가 아니라 절대 금물입니다. 그 소녀가 죽을 정도로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그 정도입니까?”
“앞으로 두 번입니다. 베르다인 사도에게 치료를 받았다지만, 그 후유증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대로 지낸다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아무 탈 없겠지만, 앞으로 또다시 그 검을 구현하려 한다면 아마도 그 소녀는 혼백이 박살나 죽고 말 겁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게 되는 거지요.”
“으음, 알겠습니다.”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엘레나를 찾아왔던 베르다인의 치료로 완치되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고?
언젠가 필요할 때면 천룡파마신검을 구현시킬 생각이었는데, 그럴 마음이 싹 달아나 버렸다. 이건 단순히 구현 능력이 발전한다고 해서 부담이 경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이첸 바이우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덧붙여 말했다.
“적어도 마이스터 급에 오르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마이스터가 된다 해도 강신 정도로 부담이 큰 능력은 1년에 한번 정도나 가능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런 사실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진운은 바이첸 바이우드에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그가 충고해주지 않았더라면, 엘레나는 언젠가 무리하게 검을 구현하다가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궁금한 점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묻고 싶군요. 바이첸 가주께서는 왜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겁니까?”
이진운이 그렇게 묻자, 바이첸 가주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 아이의 자질이 아까워섭니다. 앞으로 능력을 잘만 가다듬으면 충분히 대성할 수 있는데, 그걸 너무 조급하게 다루다가 자멸하기라도 한다면 너무도 아까운 일이지요. 한 사람의 인재라도 더 필요한 지금, 그 소녀 정도의 능력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도 귀중합니다.”
“그렇군요.”
충분히 일리 있는 대답이었다. 그가 인재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엘레나를 걱정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니까.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이첸 가주는 좀 전보다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것은 그와 같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본 적 있는 사람만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만큼은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강신은 결코 편리하거나 좋은 능력이 아닙니다. 멋모르고 사용했다간 본인에게 재앙이 되지요.”
“······.”
이진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느낀 고통이, 아니 그와 그의 가문이 어떤 대가를 감당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결코 가벼운 게 아님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연합 내에서 주름잡는 기득권층인줄 알았는데, 그들 나름대로 우주의 평화를 위해 큰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진운도 조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표정을 읽은 건지, 바이첸 가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뻐야 할 자리인데 괜히 분위기만 무거워졌군요. 이만 전 돌아가겠습니다. 제 조언이 부디 그 소녀의 앞날에 좋은 선택이 되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이진운의 앞에서 물러갔다. 뭐라 더 묻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을 순 없었다. 그의 등 뒤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만 봐도 그러했다.
‘아마도 더 이상 이야기해줄 수 없다는 거겠지.’
거기에는 뭔가 더 사정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당사자가 말해줄 수 없어 보이니 포기할 수밖에.
‘바이우드 가문에 대해 좀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그리고 강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도······.’
이진운이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리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아무튼 축하한다. 이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함대가 생겼으니 말이야. 너처럼 빨리 출세한 지구인도 없을 걸? 신기록이다, 신기록이야. 적어도 수십 년은 우리가 제일 잘 나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와서 축하인사 겸 너스레를 떠는 연정운. 분위기조차 읽을 줄 모르는 이 친구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진수식은 예정대로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베네트 국장의 축하연설과, 그에 뒤이은 가벼운 만찬 행사까지 치른 뒤에야 진수식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이진운은 조금 지친 모습이 되었다. 관리국과 연합의 높으신 분들을 일일이 상대하느라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피곤해져서였다.
그런 그에게 아르페인이 다가왔다. 이제 예정했던 대로 저 우주를 향해 출정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가 이진운에게 말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승무원들이나 전투인원들은?”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만전 태세를 갖추고 있죠.”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그동안 아르페인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준비해왔는지 아는 이진운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독립함대, 이터니티 킹덤은 이 시간부로 출정을 시작한다.”
이진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전함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진운이 탑승한 모함 카멜롯의 메인 브릿지도 다를 바 없었다. 오퍼레이터들과 조타수, 화기관제 등을 담당한 승무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발진 시퀸스, 스타트.]
[주동력 온라인. 정격 전압까지 앞으로 250초.]
[CIC온라인, 화기 시스템 온라인! SCS접속!]
[자장 신버 및 페레트 이스펜서, 아이들링 정상.]
[외장충격 단파, 최대 중력으로 홀드 합니다.]
[전 시스템 온라인. 타키온 제네레이터 정격 임계점 도달.]
[발진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그렇게 승무원들의 보고 끝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모두의 시선이 아르페인 함장을 향해 집중되었다. 그는 이진운에게 부여받은 권한으로 명령했다.
“지금부터 본 함대는 대기권을 이탈하도록 한다. 관리국에 예정했던 출정 통지를 해 놓도록.”
그 즉시 카멜롯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터니티 킹덤 함대 소속의 전함도 마찬가지였다. 대열을 유지한 채 상공 높은 곳까지 부양하기 시작한 함대는 어느 순간, 우주의 검은 하늘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전진 미속(微速))! 목적지는 아이틀란 성계. 지금 즉시 목적지를 향해 발진한다.”
함대가 서서히 가속하기 시작했다. 우주 공간을 향해 나아가던 함대의 전함들은 점점 가속해 나가면서 어느덧 광속에 가까운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점에 이른 순간, 함대는 워프 항법으로 순식간에 우주 공간 저 너머로 사라졌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베네트가 중얼거렸다.
“과연 그가 이번에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 아이틀란 성계는 말 그대로 난장판인 상황입니다. 실력 여부를 떠나서 정리하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정치적인 문제도 꽤 복잡하니까요.”
부관이 내놓은 의견에, 베네트는 피식 웃었다. 그도 그걸 알기에 이진운을 그곳으로 보낸 것이다.
“이번에도 무사히 해결한다면, 그에게 그만한 대가를 줘야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출정식까지 치르느라 오늘 업무를 다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부관이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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