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08화
진수식 예정일을 듣고난 리스티는 그날 이후로 밤을 새다시피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불과 이틀 만에 출력공유 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이틀 동안 검증에 들어갔다.
기술 자체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그리도 새로운 시스템을 실물에 도입하려면 일단 안정성 문제도 검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리스티는 관리국의 중요 핵심 인사들을 초청한 뒤, 곧바로 기술검증에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믿기지 않는 결과물을 보고는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으음··· 놀랍군.”
“이런 게 정말로 가능하다니······.”
“역시 프론사이드 가문의 두 천재인가. 그리도 조나단보다는 못한 줄 알았는데 이 정도 기술을 개발해낼 줄이야.”
물론 그들도 이 기술의 단초가 세계수에 있었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관리국의 기술연구소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상황인데, 그녀 혼자서 이만한 기술을 개발해낼 줄은 정말 몰랐다.
물론 지구에서 온 듀렌 박사가 옆에서 리스티 연구를 도왔다곤 했지만, 연구개발의 대부분은 그녀가 도맡아 진행한 거나 다름없었다.
마침 이곳을 찾아온 관리국장 베네트도 이 성과에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출력공유라··· 에너지 공유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출력을 공유해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단순히 에너지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그걸로 공유된 에너지로 전함의 성능이 허용하는 출력의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신기원이군요.”
부관인 필리스가 맞장구치며 호응하자, 베네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활용법을 모색했다.
“활용하기에 따라 인베이더 놈들에게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 있지.”
“그럼 당장 드러낼 생각은 아니군요.”
“그래, 일단은 최정예 함대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아주 은밀히 말이야.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이 기술을 드러내서 놈들에게 직격타를 먹여주는 거야.”
“그래서 이번 기술검증을 이렇게 비밀리에 진행하기로 한 겁니까?”
“맞아. 그래서였지. 요즘 안 그래도 자꾸 기밀이 유출되는 기미가 보이는데, 최대한 조심은 해야지.”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 기술을 비밀스럽게 다루는 것보다는, 연합의 모든 전함에 전격 도입하는 것이 전황이 이로울 것 같습니다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용하기에 따라 비장의 한 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숨기지 않고 드러내서 연합의 전체 전력을 끌어올리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었다.
베네트도 그런 부관의 의견에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이 기술을 계속 숨겨둘 생각은 아니야. 어떤 계기가 생기면 모든 전함에 도입해야겠지. 너무 아끼다간 똥이 되는 법이니까.”
“그거 참, 비유가 너무 저렴하시군요. 하필 더럽게 배설물을···.”
부관이 살짝 인상을 쓰며 투덜대자, 베네트는 피식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언젠 안 그랬나? 그런데 말이야. 내가 볼 때 이 기술의 장점은 에너지를 공유해서 평소에는 발휘할 수 없는 출력을 낼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야. 더 큰 이점은 어떤 종류의 전함이라 해도 이 시스템을 아주 간단하게 도입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랬다. 리스티가 개발해낸 출력 공유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종류의 전함에도 탑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설치가 매우 간단해서, 전함의 제네레이터에 어른 신장만한 기계와 몇 가지 라인을 연결해주기만 하면 끝난다.
굳이 함의 기본 설계나, 내부구조를 뜯어고치거나 변경할 필요조차 없었다.
설치하는 데 불과 몇 시간만 들어가면 되는 일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출력공유시스템이 도입된 전함으로 개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술의 개발에도 이진운이 어느 정도 관여되어 있었다. 물론 연구는 리스티가 전적으로 도맡긴 했지만, 그가 제공한 중원의 기초적인 기에 관한 지식들은 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참 대단한 인물이야. 기간트도 그렇고, 이번 출력공유 시스템까지··· 아무튼 이런 좋은 기술들을 만들어 줬는데, 편의를 좀 더 봐줘야겠군.
“괜찮겠습니까? 지금도 너무 편애한다는 말들이 많습니다만.”
필리스가 조금 우려의 기색을 나타냈지만, 베나트는 듣자마자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잘라 말했다.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들이나 하는 소리지. 오베른 행성에서 활약한 성과만 해도 그만한 대접을 받아 마땅해. 그러니 부관은 괜한 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죄송합니다.”
“됐어, 됐어. 아무튼 며칠 뒤에 진수식이 있다던데, 내가 직접 참석해야겠군. 그래야 새로운 독립함대의 행보에 힘이 실리겠지.”
베네트는 이진운을 적극 밀어줄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베이더와의 절망적인 전쟁 속에서, 그가 어쩌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그런 느낌을 말이다.
“출정식 다음에 그의 함대가 가게 될 전선이 어디지?”
“알타인 성계 근처입니다. 현재 그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지요.”
알타인 성계가 언급된 순간, 베네트 국장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알타인 성계라. 전쟁이 규모는 좀 작긴 하지만, 여러 모로 얽혀서 골치 아픈 곳이긴 한데··· 그래도 이진운, 그 자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군.”
“다른 도움은 안 주실 겁니까?”
“자네가 그랬잖아. 너무 지나치다고. 이 정도 밀어주면 됐지, 뭘 더 어쩌라고?”
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걸까? 언제나 그랬듯 변덕스러운 상관의 태도에, 필리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짓고 말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를 검증하기 위한 첫 관문. 그가 앞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진가가 이번 전선에서 확인되겠지.”
베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리스티 옆에 있는 이진운을 주시했다. 이진운도 그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마주 봐오고 있었다.
자신과 시선을 마주친 이진운을 응시하면서 베네트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야. 언제 봐도 흥미롭단 말이야.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내 지켜봐주지.’
이진운과의 첫 만남 때를 떠올리면서 베네트는 그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아무래도 그 때가 머지않을 것 같았다.
* * *
검증을 마친 출력공유시스템은 곧바로 함대에 도입되었다. 이진운의 신설 독립 함대의 전함이었다.
그 대부분은 소레디안 컴퍼니의 생산 설비에서 제작된 중형 전함으로, 기존의 동급 전함들보다 출력과 성능이 월등한 커스텀 타입들이었다.
그리고 모함이 될 카멜롯은 무려 준대형 전함. 같은 준대형 전함인 프라이스 호보다도 갑절 이상 더 컸으며, 출력과 성능 또한 더 월등했다.
이건 크기만 작았다 뿐이지 거의 대형 전함에 가까운 성능이었다. 여기에 리스티의 출력 공유 시스템이 더해지자, 그 잠재력은 기존의 준대형 전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신조전함들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리스티의 두 눈 밑에 다크 서클도 날이 갈수록 짙어졌다. 밤잠을 못자고 일을 하느라 몸이 고단해서였다.
그것은 그녀를 따라 일하는 정비공이나 기술자들도 마찬가지. 그들도 그녀의 지시에 따라 신조전함들을 몇 가지 커스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만 힘든 게 아니었다. 앞으로 함을 운영해야 할 승무원들도 고된 일정에 힘들기는 마찬가지.
새로운 전함과, 새로운 전술에 적응하려면 그것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몸에 숙달시켜야 하는데··· 문제는 진수식이 바로 코앞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을 불과 보름 안에 다 해치워야 하니, 결국 익숙해질 때까지 철야로 훈련을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승무원들은 걸어 다니는 좀비 같은 행색으로 훈련을 뛰게 되었다.
“으··· 자고 싶어!”
“이젠 눈꺼풀이 무거워 미치겠다.”
“다른 곳의 세 배나 되는 급여 따윈 다 필요 없어! 당장 내겐 수면이 필요해!”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원망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액수의 계약금에 봉급마저 다른 전함보다 몇 배나 많아서 혹해 지원했더니, 설마 이런 인세의 지옥이 펼쳐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다시 돌이킬 순 없었다. 만일 그만둔다면 자신들이 계약금으로 받은 액수의 몇 배를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카멜롯의 함장인 아르페인도 마찬가지. 그는 까매진 눈두덩을 매만지면서 피로를 풀었다.
“확실히 무리가 오는군. 역시 철야는 몸에 안 좋아.”
하지만 지금의 강행군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진수식과 함께 출정이 이루어질 터. 그전에 훈련도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전선에 나가서 예기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때마침 승무원들이 훈련하던 장소에 방문했던 이진운은 그런 아르페인의 모습을 보고는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많이 무리한 모양이군. 몸이 꽤 피곤해 보여.”
“아직은 괜찮습니다. 일단 출정식만 끝나고 나면 전선에 도착할 때까지 며칠간 편히 쉴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잘 안될 텐데. 피로가 커지면서 실수도 더 잦아질 테니.”
“그래도 확실히 몸과 머리에 박아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 전선에 나가서 실수가 적어질 테니까요.”
아르페인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훈련을 강행시켰다.
이제 앞으로 진수식까지는 이틀 남짓. 그동안 모든 것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 * *
리스티와 아르페인이 진수식 준비에 바쁜 동안, 이진운도 제자들의 훈련에 전념했다. 예전에 비하면 실력들이 많이 늘어났다곤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순 없었다.
인베이더 중에는 터무니없는 괴물들도 많았고, 그런 놈들을 상대로 제자들의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그 때문에 아리엔과 엘레나, 그리고 클레브는 혹독하기까지 한 수련을 해야 했다.
이진운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건 어린 엘레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들 힘들어하면서도, 포기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훈련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걸 확실히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성취감 때문이라도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다.
휘익!
낮은 파공성과 함께 엘레나의 신형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창, 바로 그녀가 구현해낸 무기 중 하나였다.
관일창의 한 수로 뻗어낸 창격! 그것은 말 그대로 섬광처럼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일격은 이진운의 가벼운 손짓 앞에 틀어졌다.
“윽!”
창격이 막히자마자, 그녀의 등 뒤에서 또 다른 무기가 튀어나와 이진운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그녀가 구현해낸 또 다른 창이었다.
무기를 구현하자마자, 그것을 이진운을 향해 날아가도록 제어한 것이다.
이진운 입장에선 이제 막 공격을 빗겨낸 순간이라, 어지간해서는 허를 찔릴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가볍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볍게 한발 내딛는 순간, 투척된 창은 허무하게 허공을 관통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회심의 일격이 고작 한끝 차이로 빗나가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엘레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스승과 대련한 것도 수십 차례,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당해왔다. 그러니 이제 와서 당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