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05화
성공적으로 쇼 케이스를 마친 이후, 기간트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쇼케이스의 내용이 대서특필되자마자 메탈 기어를 생산하던 군수업체들이 의도적으로 퍼트린 온갖 유언비어와 음해가 판을 치기 시작해서였다.
허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리스티가 시작부터 바로 강수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시승식을 열어, 온갖 유언비어와 오명을 불식시키는 걸로 대처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기간트에 아무 하자도 없었고, 오히려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막대한 돈이 들었다. 우주적인 규모로 여는 시승식이니만큼, 이걸 유치하는 것만 해도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모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리스티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연합 전체에 기간트를 팔아먹으려면 이 정도 선행투자는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그 결과, 기간트는 시민들로부터 기대했던 것 이상의 신뢰를 얻었고, 그와 반대로 여론으로 뒷공작을 벌이던 군수업체들은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뭇매를 맞게 되었다. 이젠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그들의 거주지에서 대규모 시위마저 벌일 지경이었다. 거주지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던 몇몇 군수업체 회장들은 폭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거의 반쯤은 은둔해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기간트에 대한 오명을 씻어낸 결과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기간트의 공동개발자이자 특허권자인 이진운과 리스티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숨 쉴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기자들이 찾아와 부리는 극성은 말로 다 표현하지도 못했다. 대체 어떻게 알아냈는지, 소레디안 컴퍼니의 실질적인 주인이 리스티라는 사실까지 알고 온 자들도 있었다.
“바깥에 나갈 때마다 이래야 한다니··· 정말 귀찮군.”
오늘도 이진운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동했다. 점창 무공 중에는 은신술이 없었지만, 그가 아는 다양한 무공 중에는 유령환신보라는 은신보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진운은 소리조차 없이 거리를 이동했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존재를 눈치 채는 이가 없었다.
반면 이진운은 유령환신보 덕분에 자신이 머무는 거처 일대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날 감시하는 이가 여럿 있군. 꽤 수상한 놈들도 보이고. 몇몇은 관리국 사람들인 것 같은데··· 저 놈들은 뭐지? 암만 봐도 수상쩍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관리국에서는 이진운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올려놓고 있었다.
특히 지난번 일이 터진 이후로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앞으로 천외오천 급이 될 가능성을 가진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크잔트와 랜들 코우버가 거리 한복판에서 그를 공격한 사건처럼, 누군가가 그를 의도적으로 해칠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날 지켜주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이건 날 지킨다는 건지 감시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저런 실력으로 날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자신을 암중에서 보호하기 위해 파견한 자들을 살핀 이진운은 한숨만 내쉬었다.
기껏 해봐야 B랭크 수준. 그런 자들 몇이서 지킨다고 해 봐야 별 의미도 없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할 마음을 먹는다면 크잔트가 형편없이 당한 사실도 알고 있을 테니, 적어도 S랭크 수준 이상의 강자를 보내올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진운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움직이는 길을 택했다. 아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면 문제생길 것이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진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티의 공방에 도착했다. 그는 그제야 유령환신보의 전개를 멈출 수 있었다.
“그나마 여긴 조용하군. 내가 사는 거처 근처는 그놈의 파파라치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설 지경인데······.”
리스티의 공방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어 있었다. 각종 첨단 기술들이 개발되는 곳인 만큼 보안도 엄청났다.
외부에는 각종 병기로 무장한 보안병력들이 상시 대기 중이었고, 내부에도 각종 마법적인 트랩들이 가득했다. 허가받지 않은 자라면 침입하자마자 바로 사살할 태세였다.
그래서 기자들도 이곳만큼은 함부로 침범하지 못했다. 준 군사시설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침범했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들어왔다가 병신이 된 기자만 열 명이었고, 둘은 사망했다. 그 소문은 금세 퍼져나가 공방 근처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들이 몸담고 있던 언론사에서 이 문제로 소송을 하겠다고 압박을 해왔지만, 그런 게 먹힐 리가 있겠는가.
리스티가 코웃음 치며 사내 로펌을 움직이기도 전에 관리국에서 먼저 손을 써주었다. 기자들이 중대한 군사기밀과, 기술을 대거 유출하려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 리스티의 공방은 완벽한 청정지대가 되었다. 어떤 기자나 산업스파이도 이곳을 침범할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관리국의 이름값은 무서웠던 것이다.
이진운이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백의를 입고 뭔가를 계측하고 있던 리스티가 돌아보지도 않고 인사를 건네 왔다.
“왔어요, 아저씨?”
“오늘도 또 그 연구냐?”
“예, 이제 막바지에요. 조금만 더 하면 실제 탑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리스티는 세계수의 잔해에서 얻은 것들을 실험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이번에 출범시킬 독립함대의 전함에 탑재할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정말로 완성 직전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안정성은?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 해도 난 괜히 위험한 걸 전함에 싣고 싶지 않다.”
이진운이 우려의 뜻을 비치자, 리스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무 문제 없다는 태도였다.
“걱정 말아요. 안정성은 나쁘지 않으니까. 다만 공유하고 있는 출력을 미세단위까지 조절하기 위해 따로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운영해야 할 것 같아요. 귀찮게 됐죠. 인공영혼에 그런 프로그래밍까지 추가해야 한다니 일이 2중으로 늘었네요.”
“흐음.”
이진운은 그녀가 내민 데이터 자료를 꼼꼼히 살폈다. 그녀가 장담한 대로 위험성은 없어 보였다. 단지 출력 공유의 위력이 세계수의 것보다는 좀 못하다는 정도가 다를 뿐, 성능 면에서는 어떤 불안 요소도 보이지 않았다.
“뭐, 나쁘진 않군. 그런데 요즘 기간트 생산은 어떻지?”
“지금 공장에서 열심히 찍어내고 있죠. 올해 안에 모든 메탈 기어들을 기간트로 대체할 생각이에요.”
“올해 안으로? 소레디안 컴퍼니만으로는 생산설비가 부족한 걸로 아는데?”
이진운의 물음에 성실히 대답해준 리스티. 하지만 이진운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전선에서 사용되고 있는 메탈기어의 수가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을 전부 올해 내로 바꾸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리스티가 이렇게 장담을 한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어서였다.
“안 그래도 군수업체 회장들이 절 찾아왔더라고요.”
“그 작자들이 왜?”
이진운은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간트에 대한 음해공작에 대해 들었던 그로서는, 그 작자들이 언급된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어떻게든 기간트를 생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게 와서 빌었죠. 그동안의 잘못은 사죄드린다고요. 그리곤 라이선스 허가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웬수 같은 작자들이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가진 기업만으론 당장 전 우주에 기간트를 위탁 생산이라도 해서 팔아야죠.”
“라이선스는?”
“그런 작자들에게 라이선스는 사치에요. 어디서 수작을 부려? 그냥 하청이나 받으라고 했어요.”
역시 이런 부분에 있어선 철저한 리스티였다.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는 건가? 아마도 군수업체에게는 마진이 거의 남지 않게 납품가를 책정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라이선스가 아니라 위탁 생산을 제안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돈은 엄청 벌리네요. 지금 현재 들어온 계약금만 해도 어지간한 자원행성을 통째로 사들이고도 남을 정도라고요.”
“행성이라니······.”
이건 뭐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냥 평범하게 부동산 같은 토지나 건물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아예 행성 자체를 사들인다고?
물론 사람이 살지 않는 행성이라곤 하지만, 자원의 종류 여부에 따라 오히려 그 가치는 유인행성보다 더 클 수도 있었다.
놀랍고도 기가 막혀 혀를 내두르는 그에게 리스티가 얄미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느 정도 괘씸죄를 적용했죠. 계약금을 좀 두둑하게 받았거든요. 아마 2년간은 열심히 기간트를 찍어내야 그 손실을 메울 수 있을 걸요?”
그 말은 군수업체들이 큰 손해를 떠안아가면서 계약을 했다는 말이었다. 2년 동안이나 기간트를 찍어내야 그 손해를 보전할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되었다.
하지만 군수업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메탈 기어는 퇴출 분위기였다. 사업의 기반 대부분이 메탈 기어에 집중된 그들로서는 생산 설비를 멈추는 즉시 주가가 폭락하고, 회사는 부도 처리될 테니까.
어떻게든 생산설비를 계속 돌리기 위해서는 이 불공정한 계약에 서명을 해야 했다. 그걸로 시간을 벌어서, 메탈 기어 대신 다른 병기나 업종으로 사업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계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얼마나 유쾌한지, 리스티는 콧노래를 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진운은 그 사실을 두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각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음해 공작까지 했던 놈들이다. 뭔가 안 좋은 수작을 부릴 가능성은 없는 거냐?”
“충분히 있죠. 하도 많아서 가짓수를 다 세기도 어려운 정도인데요?”
“그럼 대응책은? 그래도 너라면 뭔가 생각해둔 게 있을 텐데.”
이진운이 캐묻자, 잠시 고민하던 리스티가 입을 열었다.
“일단 돈이나 권력은 제가 무조건 이겨요. 여론도 마찬가지고요. 관리국까지 등에 업은 상황인데요. 뭐가 무섭겠어요? 아마 그들도 생각이 있다면 그런 짓은 시작도 안할 걸요?”
“그러면 넌 어떻게 예상하고 있지?”
“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아무래도 해적이나 인베이더네요. 쉽게 말하면 인베이더나 해적을 가장해서 저희를 전멸시키는 거죠. 마침 저희가 독립 함대 라이선스까지 획득했으니, 기회를 노리기 좋을 거라고 여기고 있을 걸요?”
“그래, 청부살인이라 이거지?”
청부살인이란 단어를 작게 되뇌는 이진운. 그에게도 그 단어는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전생 시절에도 마교의 청부를 받은 암살자들에게 제법 기습을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청부살인이라. 그 말도 틀리진 않네요. 저희 함대 전체를 없애려는 음모니 청부살인이라는 단어로는 규모가 맞지 않지만요.”
“대비는 해 둬야겠지.”
“대비랄 것도 없어요. 아마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함대의 성능도 모를 텐데요. 아마 덤비자마자 그 즉시 녹아버릴 걸요.”
리스티는 전혀 걱정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건조하고 있는 전함들의 성능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믿고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저씨나 저도 있잖아요. 그 정도 수작질 정도야 가볍게 짓밟고 가줘야죠. 그 작자들에게 뜯어낸 돈값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요.”
“녀석······.”
이진운은 태연스런 리스티의 태도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무슨 수작을 꾸미든 그대로 짓밟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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