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79화 (80/448)

4권-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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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기간트에 대한 기사가 연합 방송국마다 대서특필되었다.

지금까지 전례에 없던 신병기가 어떻게 개발되었고, 그 첫 프로토 타입이 어디서 활약을 했는지도 철저히 분석된 내용이었었다.

그리고 쇼 케이스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도 대대적으로 공개되었다. 그 결과, 상상 이상의 파급력이 일어났다.

기존의 메탈 기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성능. 그것을 보고도 기존의 메탈 기어를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기간트의 탄생에 아주 열띤 반응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방면에 대해 지식이 많은 밀리터리 마니아들은 거의 열광적이었다.

예전이라면 발현 수준이 떨어진다고 자격미달로 취급했던 영능력자들도 이젠 당당히 인베이더와의 전쟁에 나설 수 있는 전력이 된 것이다.

덕분에 메탈 기어를 생산하던 기존의 군수업체들만 난리가 났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아주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기간트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어떻게든 도입 시기를 미루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로비를 벌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어떻게든 정치계와 언론을 돈으로 틀어막아서 대책을 세울 시간을 벌고자 했거늘, 설마 지구인들의 수료식에 집중된 관심을 그런 식으로 이용해 대대적인 쇼 케이스를 벌일 줄이야.

이제 대세는 기간트였다. 대중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기간트의 도입을 지지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돈을 먹었던 관리국의 주요 인사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았다. 기간트가 대외적으로 크게 부각되면서 이젠 기존의 메탈 기어 생산하는 방산기업 쪽을 외면하고 있었다.

결국 군수업체 회장들은 한 자리에 모여 회담을 갖게 되었다.

“젠장! 돈은 먹어놓고 이제 와 딴 소리라니! 지금까지 우리가 그놈들 입에 처바른 돈이 얼마나 되는데!”

“그거야 어쩔 수가 없잖소. 우리가 생산하는 메탈기어에 비해 기간트의 성능이 너무 압도적이오. 솔직히 말해 나도 우리 회사 경비군단의 기체를 전부 기간트로 바꾸고 싶을 정도요.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해 뭣하겠소?”

“···결국 이게 돌이킬 수 없는 대세란 말이군.”

메탈 기어는 이제 몰락이 예정된 사양 기체가 되었다. 물론 영능을 각성 못한 자들에 한해서는 그럭저럭 사용될 테지만, 예전처럼 연합의 주력 병기로 채택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그들도 예정된 몰락을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떤 수단도 먹히지 않았다. 기간트에 결함이 있다거나, 아니면 갖가지 의혹을 퍼뜨리기도 했지만, 연합의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소레디안 컴퍼니에서는 그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즉각적으로 대처했다. 마치 이럴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은 다수의 기간트를 시민들에게 공개했고, 몇 가지 검증만 받으면 누구도 탑승해 볼 수 있게 성대한 시승식을 마련하였다.

그렇게 한번 기간트를 탑승해 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쏟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눈요기나 할 법한 수준의 이능이, 인베이더를 확실히 살상할 수 있는 위력으로 탈바꿈 되었다. 이건 누가 봐도 기간트의 압승이었다.

이젠 오히려 기존의 군수업체 쪽으로 의혹의 시선이 던져졌다. 메탈 기어 납품이 끊어질까봐 뒤에서 여론을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몇 가지 확실한 증거까지 나온 터라, 이젠 빼도 박도 못했다. 졸지에 악의 축으로 몰리게 생긴 것이다.

결국에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시민들은 이런 뛰어난 신병기를 매장하려 했던 군수업체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회의를 주관하는 대표자가 회의장 밖의 상황을 찍고 있는 홀로그램 스크린을 열자, 걷 성난 군중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병기 납품 문제로 여론을 조작한 군수업체들을 압수수색하라!”

“이 더러운 놈들아!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냐! 네놈들에겐 우리 목숨이 전부 돈으로만 보이지?”

시위는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르탈 행성 연합은 문명이 극도로 발전하면서 근처의 성계를 왕래하는 정도는 바로 옆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만큼이나 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가까운 혈육이나 친인들이 몇 광년 떨어진 행성에 떨어져 사는 경우는 매우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베이더의 침략은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날 난데없이 자신의 친구나 가족이 살던 성계가 인베이더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을 정도였다.

설령 자신이 당하지 않았더라도, 친구나 직장 동료의 가족이 그렇게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은 매우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연합의 시민들은 인베이더의 위협을 그 무엇보다 뼛속 깊게 새겼다. 언제든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 수 있는 재앙임을 항상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보다 인베이더를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는 신병기의 도입을 막았다고!? 그건 군수업체들의 탐욕으로 인해 자신들의 목 앞에 칼이 들이밀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우리 목이 달아나게 생겼군.”

“기간트의 도입은 대세요. 더 이상 막다간 회사가 망하기 전에 정말로 우리가 죽을지도 모르겠어.”

회장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계속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연합을 주도하는 관리국이나 여타 주도세력들도 이번 사태에 연루된 군수업체들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의견을 제시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요. 우리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수밖에······.”

“굽히고 들어간다고?”

“그렇소. 소레디안 컴퍼니가 연합 10대 기업 중 하나라지만, 연합 전체에 기간트를 제공하기에는 생산력이 턱없이 부족하지. 그렇다면······.”

그랬다. 설령 10대 기업이라고 해도 설비의 대대적인 추가증설 없이는 연합 전체에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은 없을 것이다. 그 점을 찔러보자는 말이었다.

“그렇군. 소레디안 컴퍼니와 협상해서 생산 라이선스를 획득하자는 것인가?”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그게 안 되면 그 하책으로 위탁생산이라도 맡아야겠지요.”

라이선스가 최선이라면 위탁 생산은 말 그대로 차선책이라 할 것도 못되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현실을 깨달은 회장들이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삼켰다.

“졸지에 우리가 하청업체가 되게 생겼군. 설마 이런 일을 당할 줄이야··· 허허.”

지금까지 메탈 기어를 납품하던 군수업체들은 10대 기업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기업들이었다.

특히 하나의 컨소시엄과 같은 형태가 된 이후로는 10대 기업도 자신들을 아래로 내려다보지 못했다.

헌데 기간트라는 신병기 하나 때문에 위상이 이렇게 뒤바뀌게 될 줄이야. 덕분에 격세지감이란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렇지만 비통한 감정에 깊게 빠지기도 전에, 하청을 제안했던 자가 뒤이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일단은 이렇게라도 시간을 법시다. 어떻게든 훗날을 기약해야지요. 그동안 해온 게 있는데 이대로 망하긴 억울하잖습니까.”

“무슨 의미인가? 시간을 번다고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나?”

“달라질 방법이 있지요.”

“있다고?”

“그게 뭔가! 말해보게! 어서!”

이 상황을 바꿀만한 방도가 있다는 말에, 회장들이 반색하며 물었다. 다들 흥분으로 가득찬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의견을 제안했던 사내는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은 기간트의 개발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흐음, 조사를 해보니 이진운이라는 낮선 작자더군. 지구에서 소환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라지? 그리고 이번 오베른 행성에서도 큰 활약을 했고.”

“더 놀라운 건 그가 이번 개발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공동개발자로, 리스티 프론사이드까지 관여되어 있고요.”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거기까진 우리도 다 아는 이야기들인데.”

“그렇다면 이 방법은 어떻습니까?”

거기까지 말한 사내의 목소리가 점점 더 은근해졌다. 회장들의 시선도 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은 사내의 말은 이 회장을 뒤흔들 결정타가 되었다.

“그 둘을 제거하는 겁니다. 기간트를 개발해고 특허권까지 보유한 그 둘을 말이지요.”

“뭐라고!?”

“무슨 헛소리를!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인지 알기나 하는가!”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우리 전체가 같이 몰락할 수가 있어!”

여기저기서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큼 사내의 제안은 큰 위험성을 동반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내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반발은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으며 그들의 흥분을 다스렸다.

“헛소리가 아닙니다. 소문 들어서 아실 텐데요. 이진운이란 자가 관리국으로부터 독립 함대 라이선스를 획득했다는 것을. 따로 함대를 꾸릴 모양입니다.”

“호오, 그 말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힌 회장들이 솔깃하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이제야 저 사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요. 우주는 넓고 위험합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를 테지요. 그저 지나가는 불행한 참사로 기억될 겁니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발전된 문명의 기술로도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함대도 마찬가지였다. 인베이더와 우연히 마주쳐서 종종 소리 소문조차 없이 전멸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다른 부대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독립함대라면? 관리국에 남겨질 흔적이나 기록도 그만큼 적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 계획에 동의한 건 아니었다. 불안요소는 아직도 남아 있었으니까.

그런 자들을 대변하듯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리스티 프론사이드가 마음에 걸리는군. 프론사이드 가문과 척을 져선 곤란한데······.”

“깊게 조사해 보니 리스티 프론사이드와 프론사이드 가문은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더군요. 아마 무슨 문제가 생겨도 프론사이드 가문에선 크게 나서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흐음,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어.”

물 흐르는 듯한 사내의 대답에, 이젠 남은 반대 세력도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꺼려지던 부분이 해결되었으니, 이젠 일치단결할 때였다.

“그럼 진행은 독립함대가 출범하는 이후로 잡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때까지 생산 라이선스 문제를 두고 협상하는 척 하십시오.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겁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 저기서 시위하는 사람들도 조금은 수그러들겠죠.”

“알겠네. 그렇게 처리하지.”

“우리도 바로 이행하겠네.”

그렇게 결정된 뒤, 회장들은 바쁘게 자리를 떴다. 흥분한 군중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에 소레디안 컴퍼니와 협상을 하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떠난 회장에는 사내 혼자 남았다. 사내는 아무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하여튼 욕심 많은 돼지들 같으니······. 덕분에 일단 밑밥은 확실히 깔아 두었다. 그렇지만 놈이 과연 계획대로 제거가 될지는 모르겠군.”

그는 그렇게 내뱉고는 홀로그램 창을 열었다. 거기에는 이진운의 영상 사진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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