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03화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하자는 주의라서 말이야. 물론 도리에 어긋나는 짓까지 하는 건 아니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래, 너 잘 났다.”
그렇게나 불편해하던 수료식 자리조차 일대의 기회로 삼는 이진운의 주도면밀함에, 연정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처음 볼 때부터 여러모로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릴 줄이야.
싸우는 실력보다 이쪽이 더 대단한 것 아닌가 싶었다.
완전히 바뀐 단상 위에는 기간트의 위용 찬 모습과, 그것을 배경으로 떠 있는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한 명의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스러운 정장을 빼입은 사내는 놀라 웅성대는 사람들 앞으로 나서더니, 먼저 정중하게 인사부터 올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바람에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놀라게 해 드린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는 찾기 어려운 만큼, 오늘 이 자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사내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하지요. 혹시 아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전 소레디안 컴퍼니의 CEO인 [맥베닐 아코리드]라고 합니다.”
“아, 소레디안 컴퍼니!”
“연합 10대 기업 중 하나잖아.”
그의 이름과 신분이 알려지자, 군중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심지어 몇몇 기자들은 자기소개하기 전부터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지 여기저기서 홀로그램용 사차원 촬영기로 열심히 그의 모습을 찍어대고 있었다.
연합의 10대 기업의 CEO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어지간한 행성정부의 수반조차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가 궁금해 했다. 그가 왜 이런 자리에 나타난 것인지.
“그런 곳의 CEO씩이나 되는 사람이면 대단한 거물인데··· 대체 무슨 일로 이런 수료식을 찾아온 거지?”
“혹시나 해서 말인데···저 단상 위에 있는 조금 특이한 메탈 기어 때문에 나온 건가?”
“그럼 저 로봇이 바로 소문만 무성했던 소레디안 컴퍼니의 신병기?”
“그럴지도. 일단 좀 더 지켜보자고.”
온갖 추측들이 난무했다. 이미 소레디안 컴퍼니에서 어떤 신병기를 개발한다는 이야기는 진작부터 뜬소문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다만 어떠한 확증도 없었기에 기사화 되지 않고 떠돌아다녔을 뿐이다.
그런데 그 뜬소문의 실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밝혀지려는 건가?
기자들은 특종거리라고 확신하면서 두 눈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맥베닐은 그런 기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나서게 된 것은, 여러분들께 획기적인 병기 하나를 선보일까 해서입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야! 신병기였나?”
“그렇다면 그 신병기란 게 저 옆에 있는 로봇인가 본데··· 내 눈엔 그냥 메탈 기어로 보이는데? 뭐가 달라지긴 한 건가?”
신병기라는 말에 사람들은 기간트의 외형을 이리저리 뜯어보았지만, 기존의 메탈 기어와의 차이점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외형은 기간트와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그건 디자인 설계만 바꾸면 되는 일이니 성능에서 차이가 있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맥베닐이 말을 이어나갔다.
“흐음··· 역시 제 옆에 있는 신병기가 기존의 메탈 기어와 뭔 차이가 있나 의심하시는 분들이 있군요. 하긴 그렇겠지요. 일단 이족보행인 데다, 인베이더와의 전쟁에서 쓰이는 병기라는 것도 똑같으니까요. 아, 이건 그냥 농담입니다. 당연히 차이야 있지요. 성능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성능에 대한 것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과장된 모습으로 단상 뒤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불투명한 홀로그램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장치인 듯했다.
“자, 우선은 제가 초대한 한 분을 반갑게 맞아주십시오. 오늘의 쇼케이스를 도와주실 분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분이지요. 이분만 보면 다들 웃겨서 요절복통을 일으키신다고요? 아주 반가우실 겁니다.”
맥베닐의 말에 이젠 신무기보다는 초대한 사람이 누군인가로 관심이 쏠렸다. 그런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 속에서 맥베닐이 외쳤다.
“자, 나오세요. 오늘의 초대 손님입니다. [겐트 파르고트] 씨!”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상 뒤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불투명했던 홀로그램 커튼이 사라지면서 그의 모습이 명확해졌다.
그는 다름 아닌, 연합의 거대 방송국인 QCS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인 겐트 파르고트였다.
마치 두꺼비가 생각나게 하는 우스꽝스런 생김새에, 걸쭉한 입담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가 나오자마자 과장된 모습으로 말했다.
“어이쿠, 오늘 제가 영광이군요. 이런 자리에 다 초대를 받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신병기 쇼케이스라니! 여기저기 초대는 많이 받았지만 이런 자리는 여태껏 처음이라고요.”
“처음이시라니 잘 됐군요. 오히려 기존의 신병기 쇼케이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좋습니다.”
“흐음, 그래요? 다른 군수회사 분들하고는 달리 꽤 특이하시네. 하긴 이 생김새 보면 병기하고는 인연이 없게 생겼잖습니까? 그래서 한 번도 초대를 받지 못했지. 언제 제가 한번 이유를 물었는데 누가 그러더군요. 당신 얼굴이 문제라고. 전쟁하다 배꼽잡고 웃다가 죽을 일 있냐고 하던데요?”
그렇게 가벼운 입담이 오고간 뒤, 겐트가 옆에 서 있는 이족보행로봇을 향했다. 그리고 물었다.
“근데 이게 신병기라는 겁니까?”
“예, 이게 저희 회사에서 개발한 신병기, 기간트입니다.”
“오, 이거 잘 빠졌네. 아주 쌔끈한데?”
한 차례 휘파람을 분 겐트는 기간트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살폈다. 그러더니 멕베닐에게 대뜸 물어왔다.
“얼마면 됩니까?”
“예?”
“얼마면 되냐고요. 나도 집에 하나 사두게.”
쇼케이스에 내놓은 신병기를 두고 얼마냐니? 맥베닐이 황당해하던 그때, 겐트가 말했다.
“나도 한 기 갖고 싶어서요. 이런 로봇 모형이나 밀리터리 무기 같은 모형 수집하는 게 취미인데, 이젠 나도 이런 실물 하나 갖고 싶네요.”
“안됩니다. 이건 저희 회사 자산이에요. 아직 양산도 하지 않은 물건을 누가 팝니까?”
“에이, 김샜네. 그러지 말고 나중에 양산 되면 한 기만 따로 빼 줘요. 오늘 출연료는 안 받을 테니까.”
맥베닐은 계속 달라며 우기는 켄트의 말을 외면한 채 사회를 진행해 나갔다. 더 이상 그의 주도에 넘어갔다간 쇼케이스가 코미디가 될 것 같아서였다.
“아무튼 오늘 겐트 씨는 저희 신병기에 탑승해 주셔야겠습니다. 메탈 기어는 탈 줄 아시죠?”
“오호, 그래서 날 불렀군요? 뭐, 어느 정도는 하지요. 한때 오버러 견습생이기도 했으니. 그때 자격증도 따 놨었고.”
겐트도 본래는 오버러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대단치 않았던지, 이능에 대한 발현 정도가 낮아서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얼굴을 밑천삼아 코미디언으로 전환하게 된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메탈 기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고, 실습 교육도 꽤 여러 차례 받아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있었다. 겐트가 이해가 안 간다는 시선으로 맥베닐을 바라보았다.
“근데, 신병기라면서? 이거 그냥 타되 되는 겁니까? 신병기면 메탈기어하고 뭔가 다를 것 같은데?”
“타 보면 압니다. 아주 쉬워요. 일단 타시죠. 안타시면 오늘 출연료는 없습니다.”
“에이, 신병기 팔아먹으려고 하는 쇼케이스가 뭐 이래? 뭘 알아야 해먹지. 내 오늘 집에
돌아가면 가전제품부터 시작해서 소레디안 컴퍼니 제품은 죄다 컴플레인 넣는다.”
겐트는 투덜투덜 거리면서 기간트에 올라탔다. 그러자 콕피트가 닫히면서 멈춰서 있던 기간트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작은 건물만한 높이의 이족보행이 걷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메탈 기어라는 병기가 사용되는 시점에서, 그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정작 놀라운 건 조작 시스템이었다.
[오오! 움직인다, 움직여! 이거 엄청 간단하잖아. 조작도 뭐도 거의 필요가 없어!]
“사용자의 생각, 즉 의념을 읽고 작동하는 시스템입니다. 브레인 리딩 시스템이죠. 말 그대로 원하는 움직임을 생각만 해도 기간트는 그대로 따라서 행동합니다.”
[뭐? 그럼 내 기억까지 다 읽는 건 아니겠지? 이거 타고 있으면 야한 생각도 못하잖아.]
“개개인의 사적인 기억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필터링 보호 기능이 있으니 너무 걱정 하지 마시죠. 그런 건 블랙박스에도 따로 저장도 안 됩니다. 그래도 정 야한 생각이 들면 나중에 집에서 자위행위라도 하시든가.”
“푸흐흐······.”
“아이고, 겐트 씨! 오늘은 영 안 되네!”
“사장님이 너무 넘사벽이다. 강적을 만났어.”
맥베닐이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에 대해 그렇게 센스 있게 받아치자, 사람들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와, 나 한방 먹었네. 당신 사장 맞아? 나하고 코미디언이나 같이 합시다.]
“개그는 그쯤 해두시고. 일단 이능을 발휘해 보시죠.”
맥베닐이 겐트에게 이능을 발현해줄 걸 요구하자, 그가 당황해 하며 물었다.
[이걸 타고? 말이 됩니까?]
“충분히 가능하니까 한번 해 보시죠. 영력을 물체에 주입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식으로 기간트에 부여하면서 생각하세요. 이능을 어떤 형태로 발현할 것인지.”
간단한 설명을 듣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건 지켜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메탈 기어는 기본적인 동력 외에도 영자 제네레이터가 탑재된 물건이었다. 그래서 메탈 기어가 활용하는 화기들은 기본적으로 탄환에 일정량의 영력이 주입된다. 그래야 인베이더를 타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밀한 제어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탄환에 영력을 주입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건 이능을 발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정말로 되나? 일단은 속는 셈 치고 해 보지요.]
켄트가 조금 진지해진 목소리로 대답한 뒤, 그 즉시 이능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능은 대기제어. 일종의 바람을 일으키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크게 쓸모 있지는 않았다. 기껏 해봐야 강풍 수준이었고, 그걸로 인베이더는커녕 사람조차 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맥베닐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세상을 뒤흔들만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기간트의 손끝에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겐트가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오, 진짜다! 정말로 이능이 발현되었어!]
“세상에 기간트가 이능을!?”
지켜보던 사람들조차 깜짝 놀라 외쳤다.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이젠 강풍 수준이 아니라 어지간한 회오리에 가까운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보세요, 사장 씨. 이거 이능을 증폭해주는 것 맞죠?]
“예, 정확히 보셨습니다. 제가 겐트 씨를 초대한 이유 중 하나죠.”
그 말을 듣고 난 겐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이거 진짜 말이 안 되네. 나 같이 수준 이하의 영능력자도 기간트만 타면 이젠 전장에서 싸울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때, 저 앞에 거대한 금속판이 세워졌다. 그것은 두터운 장갑이었다. 맥베닐이 말했다.
“자, 준비한 타깃이 있습니다. 전함용으로 만들어진 외장갑이죠. 뭐 소형함 수준의 두께지만 그래도 기간트의 이능이 얼마나 증폭되었는지 위력을 시험해 보기엔 충분할 겁니다. 자, 겐트 씨. 어디 한번 솜씨 좀 부려 보시죠?”
[진짜, 오늘 제대로 놀라는구먼. 그럼 어디 말씀하신 대로 한번 해 볼까?]
이젠 흥미가 생겼는지, 의욕에 찬 목소리로 외친 겐트. 그가 즉시 기간트를 움직였다.
추진력을 발휘한 기간트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대기제어, 그 힘이 기간트의 본래 추진력을 보조해 움직임을 가속화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장갑을 향해 손날을 휘둘렀다. 그러자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날카로운 바람이 외장감을 두 조각으로 쪼갰다.
믿기지 않는 위력이었다. 이능을 발휘한 본인조차 두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허··· 이게 정말 잘리네. 이거 진짜 내 이능 맞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고 뭐고··· 오늘 하도 놀라서 평소 개그도 안 나오네요.]
다가와 말을 건네는 맥베닐의 모습에, 겐트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가 기간트에서 내린 뒤, 맥베닐은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여러 영상을 공개하였다. 기간트가 전장에서 활약한 장면들이었다.
하나같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다. 이 정도면 메탈 기어는 따위로 취급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자, 여러분도 잘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기간트는 기존의 메탈 기어와는 다릅니다. 이같이 탑승자의 이능을 증폭해주지요. 이제 자격미달로 오버러가 되지 못하셨던 영능력자 분들도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겁니다.”
“지···진짜 특종이다!”
“세상에··· 저게 가능하다고?”
“찍어! 지금 바로 기사 낸다!”
덕분에 여기저기서 소란이 벌어졌다. 그 광경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던 연정운이 이진운에게 물었다.
“저거 무슨 대기업 CEO가 아니라 직업이 행사 전문 사회자 같은 거 아니야? 쇼맨십이 대단한데? 그래서 일부러 저 사람을 사회 보게 한 거야?”
“글쎄, 그 부분은 전적으로 리스티가 알아서 처리해서 말이야. 나도 거기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어. 저 사람이 사회 본다는 건 나도 지금 알았고.”
이진운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처음 알았다는 듯 말했다. 설마 쇼케이스가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은 정말로 몰라서였다.
이것도 분명 다 리스티가 생각해낸 것일 터. 헌데 이런 걸 계획하고도 언급조차 없다니.
‘그 아이는 여전히 상식 밖이야.’
딱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효과는 꽤나 컸다.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걸로 대중의 관심도 끌었으니, 이제 다른 방산업체도 기간트의 도입에 대해 어떻게 훼방 놓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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