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18화
그렇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엘레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잘 모른다고 했어요.”
“모른다고? 어째서?”
이진운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엘레나가 물음을 던져왔다.
“그럼 아저씨는 그 검의 유래에 대해 알고 계세요?”
“아니, 나도 잘은 모른다. 우리 문파에서 초대조사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신물이었지. 문파의 최고수에게만 계승되어 왔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어떻게 얻었는지조차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 이진운은 아는 바대로 솔직히 답해주었다. 그러자 엘레나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역시 그랬네요. 검이 직접 말해줬어요. 자신은 아주 까마득한 세월을 살아왔다고. 그리고 그건 지구의 역사와 비슷하다고 했어요.”
“지구의 역사라니··· 그 무슨.”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보통 검이 아닌 줄 알았지만 설마 지구의 역사와 동등한 세월동안 존재해 왔을 줄이야.
그렇기에 천룡파마신검에 대한 정체가 더더욱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없대요. 오래전의 기억을 전부 잃어버렸다고 했어요. 자신의 진짜 이름까지도요.”
“기억을 잃었다? 천룡파마신검이? 게다가 그 이름도 진짜가 아니라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주 있을 수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애당초 천룡파마신검은 정확한 유래나 출처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상쩍은 내력의 물건이었다.
천룡파마신검이란 검명조차도 검이 가진 마를 멸하는 성질을 보고 붙여준 이름일 뿐, 그것이 만들어질 때부터 붙여진 진명은 아닐 것이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검이라니······. 영성을 가진 신검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본문조차 몰랐던 밝혀지지 않은 내력이 있었나?’
그렇다면 지금은 뭐가 달라진 것일까? 기억을 잃었던 천룡파마신검은 분명 자신에게 전생 마지막 순간 때의 힘을 발휘하게 해줬었다.
“그러면 왜 달라진 거지? 예전에 천룡파마신검은 그런 힘이 없었다. 지금은 무슨 이유로 그런 힘을 발휘했는데?”
이진운이 다시 묻자, 곧바로 엘레나의 대답이 이어졌다.
“아저씨 때문에 힘을 일부 되찾았다고 했어요. 기억과 함께 잃어버렸던 오랜 힘을.”
“나 때문이라고?”
“아저씨는 전생 마지막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었죠. 그때의 영향으로 천룡파마신검도 자신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영성이 다시 깨어났다고 했어요.”
“···그랬군.”
비로소 대략적인 전말을 알게 된 이진운은 그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직도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검이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그냥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성을 다시 일깨웠다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자신이 죽기 전에 깨달으면서 전신에 충만했던 힘과 영기가 천룡파마신검에 흘러들어갔다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저씨, 더 묻고 싶은 건 없으세요?”
“그래. 이젠 알고 싶은 만큼 다 알았으니 됐다. 충분히 들었어.”
이진운은 엘레나의 물음에 괜찮다며 그렇게 말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검을 상대로 더 캐물어봐야 더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이진운은 엘레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작은 소녀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긴장된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을 구하고 싶어서 목숨을 걸고 천룡파마신검을 구현해준 아이인데, 의식을 차리자마자 너무 캐묻기만 한 것 같아서였다.
그는 조금 어색해진 표정으로 감사 말부터 전했다.
“그건 그렇고··· 일단 너한테 고맙다는 말부터 먼저 해야겠구나. 네가 검을 구현해준 덕분에 겨우 살 수 있었다. 나도 그렇고, 내 제자들도 그렇고, 교육생들도 대부분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저 때문에 아저씨가 죽을 뻔했는걸요. 그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검도 제 뜻에 호응해줬고요. 저도 아저씨 덕분에 살 수 있었어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오히려 이진운에게 고맙다는 시선을 보내오는 엘레나.
그럴 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다칠까봐 몸을 던졌던 건 자신도 반쯤은 본능적이었으니까. 그건 저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히 경고해두고 싶었다.
“그래, 네 마음 나도 안다. 그래도 그때 그 결정은 너무 무모했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진운은 단호한 눈빛으로 엘레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분명하게 말했다.
“엘레나, 너한테 한 가지만 당부해 두마. 앞으로는 절대 함부로 구현하지 마라. 아니, 내 허락 없이는 그 검을 구현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엘레나는 일순 경직된 모습이 되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 그녀는 곧 납득했다는 듯 체념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아요. 이렇게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이번 한 번 뿐이라는 거. 아직 제 역량이 그 검을 구현하기엔 못 미쳐서겠죠. 좋아요. 아저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어요.”
“그래, 잘 생각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검이라 해도 그렇지. 네 목숨을 던져가며 사용할 것은 아니야. 나도 그런 걸 바라지 않고.”
“그때처럼 또 위험한 일이 닥치면요.”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 보마. 제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궁리하다보면 다 방법이 있겠지.”
이진운은 그렇게 말하면서, 엘레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경지의 회복은 순조로웠다. 조만간 초절정을 뛰어넘어 절대지경까지 도달하기만 하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선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좀 쉬어두도록 해. 그동안 몸도 안 좋았는데, 좀 편히 쉬는 게 좋겠지.”
“예,”
“곧 있으면 의사선생님이 먹기 편한 식사를 가지고 올 거니까, 잘 먹고 좀 푹 쉬어두렴.”
“예. 그럴게요, 아저씨.”
여전히 아저씨라 호칭하는 엘레나였다. 이진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 부분을 정정해줬다.
“그리고 앞으로는 스승님이라고 해라. 호칭이 입에 잘 안 붙어도 그렇지, 계속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구나.”
“아! 그랬었죠, 스승님.”
그제야 깜빡 했다는 듯 혀를 살짝 내밀며 쑥스러워하는 엘레나. 그제야 좀 그 나이에 맞는 아이다워 보였다.
* * *
며칠 뒤. 엘레나는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완전히 회복했다. 하긴 그녀의 상세는 육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혼백에 타격을 입은 게 육체에 영향을 미친 거였던 만큼, 혼백이 회복되면서 육체도 빠르게 제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엘레나가 회복되자마자, 이진운은 바로 교육에 들어갔다. 자신의 제자가 된 이상 무공을 배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진운은 그녀에게 기본무공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혈도와 운기토납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주고, 그것을 하나하나 습득하게 해 주었다.
“헤에, 이게 그 동방의 신비라는 거군요.”
“그래? 난 잘 모르겠군. 21세기에 그 동방의 신비라는 게 제대로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서양에서는 그런 말들이 나도는 모양이었다. 중국의 쿵푸나 무술영화, 그리고 일본의 서브컬쳐 같은 게 영향을 끼친 걸지도 모른다.
기본을 습득한 뒤, 이진운은 현음공과 삼절검을 가르쳤다. 현음공은 여제자들에게 어울리는 심공이었다.
엘레나는 이것들을 배우자마자 아주 간단하게 습득해 버렸다. 이진운조차 놀랄 정도였다.
이진운의 제자가 된 아리엔도 아주 빠르게 배운 천재였지만, 엘레나는 그 이상으로 더 대단했다.
이진운이 혹시나 싶어 물었다.
“너 어디서 비슷한 걸 배운 적 있냐?”
“그럴 리가요. 이런 걸 어디서 배워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잘 배우는 거냐? 처음 배우는 속도가 아닌데.”
“아주 쉬운데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히려 되묻는 엘레나.
이진운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된 거지? 천재는 더러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익숙하게 배우는 건 아니야. 이건 마치 이미 한번 학습한 걸 다시 재 복습하는 것 같은데······.’
이진운도 천재였기에 그 차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배우는 속도가 빠른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걸 다시 체화하는 형태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허나 의문은 곧 풀렸다.
‘그렇군. 이 아이, 천룡파마신검을 통해 내 기억을 엿봤다고 했었지? 그게 연관이 있겠군.’
엘레나에게 몇 마디 물어본 결과, 무공에 대한 기억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엘레나의 무의식에는 그에 대한 지식이 본능에 가깝게 남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본능에 각인된 무(武)에 대한 지식이 이진운에게 정식으로 배우면서 점점 체화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긴 제자가 뛰어나서 나쁠 건 없지.”
게다가 엘레나가 가진 장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수한 무기들을 다루고, 그것을 응용하는 데에도 천재적이었다.
아마도 많은 무기들의 연을 읽고, 그것을 통해 지식을 쌓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검과 창 같은 냉병기는 물론, 아르탈 행성 연합에서 사용되는 첨단 병기까지 다루지 못하는 게 없었다.
물론 냉병기 방면으로만 본다면, 이진운의 관점에선 그냥 어중간한 무술가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단은 무기에 익숙하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만큼 배움도 빨라지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의 영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다양한 무기술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점창에는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무공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검을 시작으로, 창과 도, 암기나 사복검 등, 대부분의 냉병기들을 다루는 무공들이 존재했다.
물론 한 사람이 그렇게 폭넓게 배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무기의 연을 읽고 그 힘을 다루는 엘레나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엘레나를 가르치는 동안, 관리국 상부에서도 드디어 결정이 내려졌다. 이진운이 요구했던 독립함대에 대한 라이선스가 내려온 것이다.
리스티도 그 소식을 듣고는 크게 반겼다.
“이야, 잘 됐네요. 라이선스가 생겼으니 이제야 겨우 맘대로 할 수 있게 됐어요.”
“맘대로 하다니? 그건 무슨 뜻이지?”
맘대로 한다는 대목에서 뭔가 미심쩍었던 이진운이 물었다. 그러자 리스티가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함대 말이에요. 원래 군부의 함대는 다 정해진 규격에 맞춰진 것들이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게 왜?”
“가끔 커스텀 된 전함도 있긴 하지만, 그래봐야 크게 변한 건 없죠. 하지만 아저씨 함대는 달라요. 독립함대인 만큼 아저씨 마음대로 꾸미고 구성할 수 있죠.”
그쯤에서 이지운도 감이 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그 함대의 전함을 제가 만들 거고요! 그동안 연구한 최신 기술들을 전부 때려 박아서요! 어때요, 좋죠?”
“······.”
과연 이 아이에게 함대의 전함을 맡겨도 되는 걸까? 이진운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자신의 함대가 졸지에 리스티의 실험대상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다.
“내 이렇게 부탁하겠는데··· 적당히 좀 해. 제발······.”
“에이, 아저씨! 그것 때문에 괜히 불안하신가 본데, 안전은 걱정 말아요. 철저히 검증한 다음에 도입할 거니까요. 이 리스티가 확실히 보장하죠.”
그 호언장담이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진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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