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67화 (68/448)

3권-17화

“어째서··· 아직도 깨어나질 못하는 거냐?”

그냥 깊게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엘레나의 모습에 낮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영혼에 입은 타격은 이진운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문제였다. 육체의 내상이나 부상이라면 내가치상법이나 일양지로 어떻게 해보겠지만, 영혼에 대한 지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 관련한 지식은 분명 갖고 있었다. 그는 천마를 상대하기 위해 무림맹의 공동전인이 되었고, 그들이 가진 비전을 모조리 섭렵한 바 있었으니까. 그 중에는 도술과 주술 등 다양한 좌도방문의 수법도 존재했다.

하지만 무공 외에는 그리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 중에는 영혼이나 혼백에 관련된 것들도 있었지만, 이건 섣불리 건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진운의 수준에서 다뤘다간 오히려 엘레나의 상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일단 신청은 해 놓긴 했는데, 영 소식이 없군.”

그때 의료 전문가가 한번 이야기 했었다. 대신관 급 이상의 성직자라면 혼백에 입은 타격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관리국에게 부탁을 해놓긴 했는데, 조금 기다리라는 말이 나온 뒤엔 어떻게 된 건지 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군. 빚을 지더라도 관리국장에게 다시 한 번 부탁해 보는 수밖에.”

오베른 행성에서 세운 공훈에 대한 대가는 이미 독립함대를 제안하는 일로 사용했다. 물론 기간트를 연합에 제공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라이선스 획득에 대한 자격의 증명이었다.

그 외에 또 다른 부탁을 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슨 생각인지 관리국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날 적극 지원해주려고 하지만··· 그런 이유 모를 호의는 받는 게 아니지. 차라리 빚을 지는 게 나아.’

다시 이야기를 해볼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때, 이곳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한 명은 엘레나를 보살피던 담당 여의사였다. 병문안 오면서 몇 번이나 대면했었기에 그녀의 기척은 익숙했다. 한데 그 옆에 또 다른 기척이 있었다.

“누구지?”

분명 낯선 기척. 하지만 그 기척이 왠지 모르게 신경 쓰였다. 드러난 기운이나 존재감은 평범했지만, 그 안에 내재된 기이한 힘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 느낄지 모르나, 이진운은 그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별다른 적의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마침 여의사가 먼저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 이진운 씨! 나와 보세요!”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이진운이 침착하게 묻자, 여의사가 다급한 기색으로 그를 잡아끌었다.

“직접 와서 보세요. 누가 찾아오셨는지! 세상에나······.”

이진운은 그녀를 따라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백의를 입은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말끔한 얼굴에, 보기만 해도 선한 기운이 물씬 풍길 것 같은 인상의 사내. 하지만 연합에 온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굽니까?”

“세상에··· 이분이 누군지 정말 몰라요? 여신대리자시잖아요. 여신교단을 대표하는···!”

“여신대리자?”

이진운은 깜짝 놀라 다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그냥 평범한 대신관 정도면 충분했는데, 그보다 몇 급이나 높은, 아니 여신을 제외하고는 최고 직위에 있는 그런 거물이 직접 찾아왔다고?

그동안 배운 상식대로라면 눈앞의 사내는 이능관리국의 국장인 베네트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인물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진운 씨. 여신 루네리아 님을 모시고 있는 종, 베르다인이라고 합니다.”

“아, 예.”

갑작스런 거물의 방문에, 이진운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뭐라 대응해야 할지 난감해서였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챈 베르다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에 환자 분이 계시다고요?”

“설마 제 요청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것도 직접!?”

“예, 무리한 영능 사용으로 혼백에 타격을 입었다는 이야길 듣고 찾아오게 되었지요. 마침 시간이 조금 나더군요.”

이진운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여신대리자 씩이나 되는 거물이 시간이 남는다고 일개 교육생을 치료하기 위해 움직일 리가 없었다.

‘이젠 이런 거물에게까지 관심을 산 건가?’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상대방이 가진 관심이 악의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관심이었다. 이 관심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했다.

“감사합니다. 여신대리자께서 이렇듯 제 요청에 직접 찾아주시다니······. 그럼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예, 그럼 일단 환자부터 뵙지요.”

그렇게 해서 병실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 여의사는 이진운과 베르다인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못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베르다인의 시선이 엘레나를 향했다. 그녀를 한번 잠시 응시하던 그가 곧 진단을 내렸다. 그냥 한번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혼백에 입은 타격이 크군요. 무리한 영능 사용으로 영기가 고갈되었습니다. 잘못되었다면 영능을 영영 잃거나 의식불명이 될 가능성이 컸겠군요.”

“으음······.”

이진운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였다. 건강상태는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어 의식의 회복이 좀 더뎌지는 정도로만 알았지, 그렇게까지 위급한 상태일 줄은 정말 몰랐다.

이진운이 약간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회복은······?”

“일단 치료는 가능합니다. 그걸 위해 제가 온 것이니까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인 베르다인은 조심스럽게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여신이시여!”

낮게 되뇌는 목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고요하게 잠재되어 있던 어떤 힘이 외부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성결하면서도 찬란한 광휘였다. 베르다인의 전신을 둘러싼 채 피어오르는 광휘의 오오라가 부정한 것들을 부정할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그의 머리 뒤쪽에는 이야기 속의 각자들에게서나 봄직한 후광이 떠올라 있었다.

‘···무시무시하군.’

이진운은 베르다인의 신성력에 일순 전율했다. 신성력이란 힘은 고결하면서도 순수한 그런 힘이었다. 다른 것들과 달리 파괴적이지 않고 단아했으며, 생명을 북돋는 성질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운은 실로 막대하고 경이로웠다. 여신대리자 정도 되는 수준이라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엘레나의 얼굴이 금세 안정을 되찾아갔다. 좀 전까지 조금 창백해 보였다면, 지금은 당장이라도 깨어날 듯 화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의 이마로부터 손을 거둔 베르다인이 말했다.

“이제 치료 끝났습니다. 조금 있으면 정신을 차릴 테니, 적당히 식사할 거라도 준비해 두시는 게 좋겠군요. 거기 여의사 분, 이 환자 분은 며칠 동안 식사를 못하셨을 테니, 편히 먹을 수 있는 걸로 좀 부탁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 하겠어요.”

말을 듣자마자 여의사는 황급히 뛰쳐나갔다. 일개 의사인 그녀가 여신대리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녀가 나간 뒤, 이진운은 일단 베르다인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부터 표했다.

“고맙습니다. 제 제자를 회복시켜 주셔서.”

“아닙니다. 여신의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겸양하는 베르다인이었지만, 이진운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대단치도 않은 위치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불러주셨으면 좋겠군요.”

공손한 말이었지만, 그 뜻은 분명했다. 은혜를 입었으니 반드시 갚겠다는 의미였다. 베르다인은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은원이 확실하신 분이군요. 알겠습니다. 언제든 이진운 씨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하겠습니다.”

그걸로 이진운도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여신대리자 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진운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베르다인은 그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환자 치료를 마쳤으니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이진운에게 몇 마디를 남겼다.

“앞으로 많은 일이 따를 겁니다. 힘든 일도 있을 것이고, 괴롭고 아픈 경험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래도 참고 이겨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무슨!?”

의미 모를 소리에 이진운이 조금 당황해 되물었지만, 그는 대답 없이 떠나갔다.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는 방금 몇 마디 외에는 더 말해줄 것 없다는 분위기였으니까.

‘대체 무슨 의미지? 무슨 미래라도 엿본 건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한 말 같지 않았다. 뭔가 의미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하긴 여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자라 했으니, 뭔가를 엿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휴··· 고민해봐야 나올 답도 아니군.”

일단 그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기로 했다. 앞으로 어느 정도 염두는 해 두겠지만, 그것에 집착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마침 의식이 없던 엘레나로부터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제 깨어나려는 모양이었다.

“으응······.”

이진운은 서서히 눈을 뜨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정신이 드냐?”

눈을 끔뻑 뜬 엘레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였다. 자신은 분명 검을 구현하고 정신을 잃었는데,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하지만 낯익은 이진운의 모습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벌써 10일이나 지났다. 네가 정신을 잃은 날부터 오늘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예? 10일이요?”

엘레나가 깜짝 놀라 외쳤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기분이었는데, 그렇게까지 시간이 지났다니!

“너무 무모한 짓을 했어. 지금 네 수준에서는 절대 구현해선 안 되는 검이었는데 말이야.”

“···그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도, 모두가 위험해 보여서···.”

변명하듯 내뱉은 그녀의 작은 읊조림에, 이진운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애당초 이 아이를 걱정하게 한 자신이 잘못한 것이었다. 걱정을 끼치지 않았다면 이 아이가 무리할 이유도 없었다.

“전문가들 말로는 네가 혼백에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게 영능을 사용한 대가라고 하더군.”

이진운은 엘레나의 두 눈을 똑똑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당부했다.

“내 검은 앞으로는 절대 구현하지 마라. 지금 네 수준에서는 그냥 자멸할 뿐이야. 솔직히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정상적인 경우였다면 구현이 제대로 되기도 전에 자멸했을 걸?”

“예, 알고 있어요. 운이 좋았다는 거.”

엘레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자기 자신의 능력이니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냐? 지금도 내 검과 소통이 되고 있는 거냐?”

“예. 지금도 듣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엘레나. 사실을 확인한 이진운이 말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봐라.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뭘 말인가요?”

“내 검이 대단하긴 해도, 그런 능력은 없었다. 사용자의 역량을 일순간에 그 정도까지 끌어올리다니, 그건 인세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진운은 아직도 이해되질 않았다. 자신이 반선지경까지 도달했었긴 하지만, 지금의 역량은 턱없이 못

미치고 있었다.

하지만 천룡파마신검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줬다. 그렇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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