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66화 (67/448)

3권-16화

응접실에서 보게 된 리스티의 아버지란 작자는 꽤나 냉막하게 보이는 사내였다. 영상을 통해 먼저 보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왔구나.”

“···용건이나 말하시죠.”

얼굴을 보자마자 용건부터 묻는 리스티, 건조하다 못해 딱딱하기까지 한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여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 딸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건지, 가이란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용건은 없다. 단지 회의에서 네 이름이 언급되기에 생각이 나서 찾아온 거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저나 오빠한테 그렇게나 냉정하게 구시던 분이, 새삼 절 위한다는 식으로 찾아오다니요. 대체 무슨 생각이죠?”

“정말로 별 뜻은 없다. 단지 너와 조나단에게 미안할 뿐이지.”

“하? 미안? 지금 미안하다고 했나요?”

미안하다는 말에 오히려 더 큰 자극을 받은 듯, 억지로 감정을 누르던 리스티가 이젠 두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가 외면하신 자식들이에요. 이제 와서 미안하단 말로 넘어갈 수 있나요?”

“······.”

“어머니는 버려져서 얼마 못가 돌아가셨고, 오빠나 저는 어린 시절부터 목숨을 위협받으면서 생존을 걱정해야 했죠. 그런데 그때도 못 본 척 외면하시던 분이 아버지였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미안? 그거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리스티의 가정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이진운이었지만, 거기까지만 들어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군. 하긴 프론사이드 가문이 연합의 5대 가문 중 하나였다고 했지? 그렇다면······.’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이야기가 리스티의 입에서 차갑게 흘러나왔다.

“하긴 프론사이드 가문에서 서자나 서녀는 인간도 아니니 뭐 말할 것도 없겠네요.”

그제야 가이란의 얼굴에도 자책이란 감정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 아비는 할 말이 없다.”

“아, 그러세요?”

입가에 냉소적인 비웃음을 띄운 리스티가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 제가 왜 이렇게 연구에 몰두하는지 아나요?”

“······.”

입을 다문 채 고개를 가로젓는 가이란. 그런 아버지에게 리스티는 선전포고와 같은 말을 쏟아냈다.

“프론사이드 가문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려고요. 가문이 자랑하는 마도공학의 지식을 뛰어넘는 업적으로 프론사이드 가문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위업을 깔아뭉개기 위해서죠.”

“···쉽진 않을 거다.”

“예, 쉽진 않겠죠. 하지만 핏줄은 비천한 주제에 나름대로 천재로 태어난 몸이라서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네요.”

그녀의 말이 결코 헛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리스티가 이뤄온 것들만 해도 보통이 아니었다. 연합의 10대 기업 중 하나를 집어삼키고, 그 외에도 다수의 중견 기업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재력과 영향력만 해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 개발한 기간트까지 포함한다면, 연합 내에서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가이란도 이참에 리스타를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보니, 역시 리스티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이란은 결국 한숨을 깊게 내쉬고 말았다.

“그렇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본가가 쌓은 업보이니······.”

“그나마 다행인 줄 아세요. 조나단 오빠는 이젠 프론사이드 가문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까요.”

‘조나단?’

리스티가 언급한 가족의 이름에 이진운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역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가이란의 표정이 변했다.

그만큼 리스티의 오빠라는 사람이 부담된다는 소리였다.

‘꽤나 대단한 인물인 모양이군. 가문도 대단하고 본인의 실력도 대단한데도, 자기 아들의 이름을 부담스러워 하는 걸 보면 말이야.’

가이란 프론사이드는 이진운이 봤을 때에도 상당한 수준의 실력자였다. 언뜻 느껴지는 기운으로 볼 때, 적어도 S랭크 이상은 되어 보였다.

헌데도 그런 강자를 근심하게 만드는 상대라니. 어떤 인물인지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 돌아가세요.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결국 내려진 축객령에, 가이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섰다. 그래도 발길이 좀체 떨어지지 않았는지,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알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해 두마.”

“뭐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시죠.”

“언제든 상관없다.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으마.”

“하? 뭐에요? 돌아오길 기다린다고요?”

리스티는 일순 기가 막혔다.

이제 와서 자신을 가문에 받아주겠다고? 자신이 이룬 것들이 탐나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새삼 자식에 대한 아비로서의 감정이 되살아난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미 가문과 자신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걸요? 제가 죽지 않는 한 말이죠.”

단호한 그 말 한마디로 가이란을 내보낸 리스티는 곧바로 공방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리곤 이진운에게 맥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저 정말 꼴불견이었죠?”

“아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네가 보인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어.”

그렇게 말해주시니 한결 낫네요.”

이진운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가슴아파 보였던 리스티의 표정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저씨도 방금 들었으니 이젠 대충 알 거에요. 저는 프론사이드 가문의 서녀였어요. 어머니는 그냥 평범한 분이셨고요. 가문의 후계자였던 아버지와 우연히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는데, 그게 쉬울 리가 있나요?”

프론사이드 가문은 우주에서도 거대 세력인 연합 내에서 손꼽는 가문이다. 그런 가문의 후계자가 평범한 여자와 이루어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가문의 반대에 부딪쳤죠. 아버지는 곧 이름난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게 됐고요. 그래서 어머니는 물론, 조나단 오빠와 전 가문에서 내쳐지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파란만장한 일을 겪게 되었다. 가문의 지원도 없이 그녀의 어머니는 홀로 벌어서 자식들을 키웠고, 그마저도 쉽지 않아서 결국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조나단과 리스티는 그때부터 자신의 능력으로 벌어먹고 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두 남매가 다 천재라는 사실이었다. 천재성을 조금 드러낸 것만으로도 먹고 사는 것은 충분히 해결되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그들의 천재성에 대해 위협을 느낀 것인지, 프론사이드 가문의 본부인이 암중에서 그들의 목숨을 위협해온 것이다. 혹시라도 가문의 원로들이 둘의 재능을 탐내 가주로 받아들일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래서 그 둘은 각자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닥치는 대로 연구하고 개발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막대한 재력을 키웠고, 우주를 주름잡는 회사들을 손에 넣어서 본부인의 위협 따윈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였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목적은 바로 증오의 대상인 프론사이드 가문 그 자체였으니까. 어머니를 내치고 자신들을 외면했던 가문을 가만 놔둘 수가 없었다.

“그걸 위해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오라고요? 어림도 없는 소리죠.”

리스티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를 뿌득 갈아 붙였다. 그만큼 원한이 깊다는 뜻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가 가진 회사들도 슬슬 본 궤도에 접어들었고, 기간트가 연합에 납품되기 시작하면 제 영향력은 가문도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질 거예요. 여기에 출력공유 시스템까지 완성한다면··· 잘하면 프론사이드 가문을 몰락시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 이미 다 계획을 세워뒀던 거구나.”

“예. 철들 때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부터 언제나 그리던 일이었어요. 항상 상상해왔죠. 어떻게 해야 우릴 버린 저 가문을 더 비참하게 만들 수 있을지 말이죠. 결론은 하나더라고요. 가문이 자랑하는 마도과학의 기술력으로 압도해서 프론사이드 가문을 유명무실하게 만들면 된다고요.”

이제야 리스티의 본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그가 봐왔던, 연구에 집착하는 모습은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가문에 대한 실망과 분노, 원한이 더해지면서 그것을 원동력으로 움직여온 복수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구 외에는 무관심했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심도 적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자, 이진운은 그런 리스티가 조금은 안쓰럽게 보였다.

“사실 조나단 오빠가 동참했으면 제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어요. 하지만 오빠는 보통 사람과 달랐어요.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천재였는데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 외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죠. 가문에 대한 원한? 오빠는 그냥 쓸데없는 감정싸움이라고 치부하더라고요. ”

또다시 언급되는 조나단의 이름. 그 무게가 정말 가볍지 않은 모양이었다.

리스티가 자신을 낮춰 말할 만큼, 대단한 천재라. 이진운은 그게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러니 저 혼자 할 수밖에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많이 도와주세요.”

이진운에게 도움을 구하는 게 미안했던지, 조금은 작아진 목소리였다. 그런 리스티의 부탁에 이진운은 흔퀘히 답했다.

“그래, 알았다. 나도 돕도록 하마.”

“어차피 나는 너와 한 배를 탄 사이다. 돕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앞으로에 대한 목적도 일치되고.”

이진운의 목적은 한 가지였다. 이곳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서, 인베이더가 지구를 공격할 수 없게 만드는 것.

하지만 혼자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강해진다 해도, 수많은 인베이더의 군단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 중에는 이진운을 능가하는 신적 존재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보다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특히 리스티와 같은 천재의 조력은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은 말 끝을 길게 늘리지 않던데 어째서지? 그때는 요~ 라면서 뭔가 길게 말을 하던데.”

“그냥 컨셉이었어요. 귀여워 보이는 컨셉. 그렇게 하면 꼬드겨서 안 넘어오는 아저씨들이 없더라고요. 지금은 아저씨하고 같은 편이 됐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뿐이고요. 그땐, 아저씨의 능력이 어떤 원리인지 정말 알고 싶었거든요.”

혀를 빼물며 또 귀여운 척을 하는 리스티. 이진운은 일순 기가 막혀 일순 말문이 막혔다.

“······.”

그런 상궤에서 벗어난 이유 때문에 컨셉을 유지한 거라니? 역시 리스티는 정상적인 녀석이 아니었다.

“됐다. 일이나 하자.”

이진운은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면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들은 많고도 많았다.

* * *

리스티와 연구를 하면서도 이진운은 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엘레나의 병실에도 찾아갔다. 엘라나는 그때 이후로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병실에 누워 있는 그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이진운은 죄책감을 느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