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65화 (66/448)

3권-15화

한편 그 시간, 이진운은 리스티와 함께 기간트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었다. 오베른 행성에서 실전 투입된 결과, 전투능력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무장이나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이다.

리스티야 마법사였으니 별 지장 없었지만, 나름대로 근접전을 즐겨 하는 오버러들에게는 부가적인 무장이나, 추가적인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할 것 같았다.

“나중에 추가적으로 테스트를 하기로 하지. 아리엔이나 클레브보고 하라고 하면 되겠군. 아니면 관리국장에게 부탁해서 다양한 무기를 취급하는 자들을 섭외해도 되겠지.”

“좋아요. 그럼 되겠네요.”

리스티가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하자, 옆에 있던 듀렌 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발을 뺐다.

“흠, 그런 쪽은 내가 전문이 아니니 둘이 알아서들 하게. 그냥 화기라면 모를까, 이런 고도화 된 문명에서 무슨 중세시대마냥 검이나 냉병기를 휘두르는 건 영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간트에 추가될 무장들이 평범한 것들은 아니었다. 소울 웨폰처럼 영능에 감응, 증폭할 수 있는 무장들이 대부분이며, 경우에 따라 휴대성을 고려해서 광선검 같은 무장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진운은 듀렌 박사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그냥 공돌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피식 웃으며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는 듀렌 박사.

이번 기간트 개발에서 듀렌 박사의 공도 빠질 순 없었다. 그는 지구 출신이긴 하지만, 아르탈 행성 연합의 과학지식에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이미 그의 지식은 연합 내에서도 어지간한 석학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봐야 연합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리스티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만한 고급 인력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일단은 테스트는 뒤로 미뤄둬요. 이건 테스터가 없으면 안 되는 거니까.”

리스티의 그 말에 이진운도 동의했다. 기간트는 이미 완성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추가적인 무장에 대한 문제는 그 완성도를 조금 더 다듬어주는 정도니, 시간을 두고 처리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기간트를 내세워서 독립함대를 요구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완성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정 급하면 제 회사에다가 떠맡겨도 상관없고요. 제가 지시해 두면 알아서들 잘 하겠죠.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제가 할 필욘 없죠.”

“뭐, 그렇긴 하군.”

이진운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스티는 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천재였다. 이런 일을 그녀가 직접 하기보다는 남들에게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다.

리스티는 이진운과 함께 공방의 한 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오베른 행성에서 채취해온 세계수의 일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각종 관측장치로 세계수의 특성과 성분을 분석한 그녀는 아주 흥미진진하다는 듯 말했다.

“이 세계수 말이에요. 연구 할수록 아주 재밌는 녀석이더라고요.”

“재미있다고? 어째서?”

여기서 재미있다는 표현이 왜 나온 거지? 이진운이 묻자, 리스티가 느긋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도 직접 경험해 보셨으니 알 거에요. 인베이더들이 세계수로부터 막대한 에너지를 공급받는 걸요.”

“그렇지.”

“하지만 단순히 힘을 공급해주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단순히 힘이나 에너지를 원격으로 제공하는 건 지금 연합의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죠. 아니, 생각보다 오래된 기술이라고나 할까요?”

그 말을 듣고선 이진운도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 공유 기술이 그렇게 쉬운 것인가? 그렇다면 연합에서는 어째서 그런 기술을 갖고도 사용 안했던 거지?

그런 이진운의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리스티가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연합의 에너지 공유 기술에는 세계수 같은 효용은 절대 없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전함이 왜 등급이 나뉘어져 있는지.”

“그거야 당연히 출력 때문이지.”

“그럼 중급 전함이 갑자기 준대형 전함 정도의 출력을 갖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요?”

“글쎄, 여러 면에서 좀 더 강한 성능을 발휘하지 않을까?”

이진운이 확신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지만, 리스티는 오른손 검지를 좌우로 흔들면서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게 아니죠. 아마 얼마 못 가서 함체가 그대로 붕괴할걸요? 지나친 출력에 함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거든요.”

“···그렇군. 소화할 역량이 없는 힘은 오히려 자멸을 하게 만든다··· 이건가?”

그건 기계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은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세계수가 보여준 출력 공유는 그 이상의 영역에 있었다.

이어지는 리스티의 설명도 바로 그 부분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수의 출력 공유는 전혀 궤가 달라요. 아저씨도 경험해 보셨잖아요. 레이즈 워커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힘을 휘둘렀는지. 그만한 역량이 안 되는데도 생각보다 별 탈 없이 그 힘을 사용했었죠.”

“뭐, 여러 모로 운용이 어설프긴 했지만, 힘을 폭주시키지 않고 다룬 건 좀 신기하긴 했다.”

“간단해요. 그 방법은 영적 공명이죠.”

“영적 공명?”

저도 모르게 되묻는 그 말에, 리스티가 홀로그램 창을 열어 지금까지 분석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세계수의 영적 파장과, 그것이 어떻게 다른 인베이더의 영혼과 감응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세계수 안에는 인베이더들에 대한 특수 코드나 패턴이 등록되어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 등록된 사용자들에게 영적인 공명을 일으켜서 영격을 보다 높은 수준까지 고양시켜 주지요.”

“그건······!”

“예, 강제로 격을 높여준다고 보면 되요. 마치 부스트 팩을 맞은 사람처럼요. 그런 다음에 막대한 힘을 주입하면 충분히 다룰 수 있어요.”

이진운은 비로소 전말을 이해했다. 출력을 공유받을 대상의 영격을 일시적이나마 강제로 상승시켜서 힘을 다룰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다면 리스티도 여기까지 알아냈으니, 이걸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이거 우리도 써먹을 수 있나?”

이진운이 눈을 빛내며 묻자, 리스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건 좀 어려울 걸요? 그놈들은 하수인들을 막 부려먹는 놈들이잖아요. 아마 이런 식으로 하면 수명이 대폭 줄어들 거예요. 인베이더 놈들은 그런 것 신경 쓰지 않겠지만요. 지성체의 생명과 존엄성을 중시하는 연합에서 이런 수단을 쓰는 건 곤란하죠.”

“으음··· 그렇겠지.”

이진운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기술인 것 같은데, 그런 문제가 있다면 실질적인 도입은 어려울 듯싶었다.

“그리고 오베른 행성에 있던 인베이더들은 대부분 살아 있지 않은 언데드였어요. 죽은 시체들이니 이 정도 데미지는 받아도 큰 의미가 없죠.”

역시 철저한 놈들이었다. 언데드 병력만 가득한 오베른 행성에 세계수를 첫 투입한 것도 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벌인 짓이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을 것 같진 않아요. 조금 우회적으로 발상을 해보면, 부분적인 도입은 가능할 것 같네요.”

“어떻게?”

“인공적으로 영혼을 만드는 거죠. 뭐, 진짜 영혼하고는 달라서 조금 불완전하겠지만, 출력 공유는 어느 수준까진 가능할 거예요.”

인공 영혼이라니··· 연합의 기술은 거기까지 가능한 건가? 아니, 이건 연합이 아니라 리스티 개인이 가진 능력인 걸까?

이진운은 일단 인공영혼의 제작이 가능하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대충 답이 나왔다.

“인공영혼이라··· 만들 수만 있다면 확실히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그걸 생명체한테 직접 넣진 않을 테고··· 전함 같은 병기에 도입할 생각이지?”

“맞아요. 전함 같은 대형 병기에는 가능할 것 같아요. 어차피 인공지능이 전함을 제어하고 있는데, 인공 영혼으로 대처하도록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그 영적 패턴을 등록시켜서, 출력을 공유 받게 하고요.”

이진운은 새삼스런 눈으로 리스티를 쳐다보았다.

세계수를 분석한 것은 불과 며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벌써 이 정도까지 알아내서 응용법까지 찾아냈단 말인가?

거의 악마적인 천재성이었다. 이진운조차 그녀의 발상과 재능에는 혀가 절로 내둘러졌다.

그렇지만 그런 이진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시선을 느낀 리스티가 괜히 귀여운척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 아저씨이~ 그런 눈으로 절 계속 쳐다보면 부끄러운데요.”

“······”

이진운은 말없이 주먹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이런 패턴이 그와 리스티와의 일상적인 관계였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벨소리가 울렸다. 그건 누군가가 리스티의 공방을 찾아왔다는 신호였다.

리스티가 의아한 표정으로 홀로그램 창을 열었다. 그러자, 찾아온 방문객의 모습이 화면에 비쳐졌다.

화면 안에는 중년의 사내 하나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리스티를 향해 말했다.

[나다, 리스티.]

“······.”

리스티가 대답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나 느긋하고 태연스럽던 그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진운은 거기에서 이질감을 느꼈지만, 뭐라 말을 걸지 못했다. 쉽게 끼어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

리스티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왜 찾아오셨나요?”

[아버지가 딸을 찾는 데 이유가 필요하더냐?]

당연하다는 듯 나오는 그 말에, 리스티가 원망과 분노가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제 와서 아버지 노릇을 하시겠단 건가요? 포기했던 딸한테······?”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너도 알지 않느냐?]

깊게 한숨을 내쉰 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자세한 건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자.]

“보고 싶지 않은데요, 전.”

단호하게 거절의 말을 내뱉는 그녀에게, 사내가 갑자기 다른 화제를 꺼내놓았따.

[기간트란 걸 만들었다지?]

“예. 역시 들으셨네요. 하긴 당연하겠군요. 그 대단하신 프론사이드 가문의 가주님이시니.”

그랬다. 상대는 가이란 프론사이드였다. 리스티의 아버지이자, 연합의 5대 가문인 프론사이드 가문의 가주.

그 영향력은 대단해서, 기간트에 대한 소식을 먼저 접하는 것쯤은 쉬웠을 것이다.

[좀 이야기를 나누자. 그리고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좋아요. 아주 잠깐만 뵙죠.”

결국 리스티는 만나보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어쩔 수가 없었다. 프론사이드 가문의 영향력은 연합 내에서 지대했다. 그가 훼방을 놓는다고 한다면, 기간트를 연합 내에 도입하는 데에도 여러모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진운이 물었다.

“아버지였냐?”

“예.”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끄덕이는 리스티. 이진운도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말 못할 개인 사정이 있을 테니까.

대신 옆에서 도움이 되기로 했다.

“그럼 내가 옆에 있어주마. 나하고 같이 뵙자.”

“예. 고마워요, 아저씨.”

그제야 리스티는 겨우 기운을 낸 것처럼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억지로 웃는 그 표정이 너무나도 기운 없어 보였다.

‘그렇게 활기차던 아이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대체 어떤 작자인 거지, 리스티의 아버지란 녀석은···.’

이진운은 속으로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리스티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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