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64화 (65/448)

3권-14화

곧 여기저기서 반발의 목소리가 피어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가 세운 공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립 라이선스 부대라니요. 이제 겨우 정식 오버러가 된 신입에게 그런 권한을 줬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게다가 그런 선례를 만들면 앞으로 이런 요구를 해올 신입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날 지도 모릅니다. 그건 안 될 일이지요.”

딱히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이진운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물론 엘레나란 소녀의 도움 없이도 A랭크에 준하는 강자라는 건 놀라운 일이지만, 병력과 함대를 운용하는 지휘능력은 또 다른 법이다.

전함이나 함대를 운용하기 위해선 적어도 몇 년 이상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했고, 그 후에는 전선에 나아가 현역으로 활약하는 함장 밑에서 실전 경험을 쌓으며 자질을 검증받아야 했다. 그래야 비로소 함대를 지휘할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함대 운용의 기초교육조차 받지 않은 풋내기에게 무턱대고 권한만 내주기엔 너무 위험했다.

결국 과반수의 사람들의 거부의 뜻을 표명해왔다. 그리고 가이란 프론사이드는 그런 사람들을 대변하듯 말했다.

“다른 조건을 제시한다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만, 함대 운용은 논외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런 권한을 줄 순 없습니다.”

“그럴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실력 있는 함장을 붙여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베네트가 그렇게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라이선스는 너무도 위험합니다. 이제 겨우 생존 전쟁에 뛰어든 햇병아리한테 다수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과 직책은 무리한 생각이지요. 그건 단지 강하다고 될 일이 아니죠. 검증이 필요합니다.”

“검증이라······.”

베네트는 작게 내뱉었다. 검증 절차를 거치고자 한다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건 이진운도 바라지 않을 터.

하지만 이런 반응이 나올 것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아니라, 이 제안을 해온 이진운이었지만······.

베네트는 그 즉시 부관인 필리스에게 눈짓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서 또 다른 데이터가 공개되었다. 그들 앞에 펼쳐진 홀로그램 영상 속에는 이족보행 로봇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었다.

“메탈 기어? 이게 뭐 어쨌다는 거지?”

“아니, 우리가 알던 메탈 기어가 아니야. 조금 달라.”

여러 사람들이 기존의 메탈 기어와 조금 다른 생김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상당수는 군사분야에 관련된 자들이라 보는 안목이 있었다.

“기간트라고 하는 새로운 타입의 메탈 기어입니다. 아니 메탈 기어라고 하기도 그렇군요. 완전 다른 개념의 신병기니까요.”

필리스는 그렇게 간단히 소개하면서, 기간트가 실전 투입된 영상과 제원을 공개했다. 이 모든 게 이진운과 리스티가 제공한 자료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메탈 기어가 이능을 사용해? 아니 사용자의 이능을 증폭시켜 발현하잖아.”

“믿기지가 않는군.”

지금까지 메탈 기어는 그냥 보병의 운용 병기에 불과했었다. 탑승자의 영력을 증폭하거나, 능력을 발현하는 기능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영자 제네레이터가 탑재되어 있긴 하지만, 기껏 해봐야 보유 화기의 탄환에 영력을 실어 일반적인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인베이더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게 해주는 정도였다.

헌데 기간트는 달랐다. 탑승자의 이능을 온전하게 증폭 발현할 수 있는 이족보행병기라니. 이것만 있다면 전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다들 숨을 삼키며 제원을 확인하던 그들은 기간트의 한계 또한 알게 되었다.

“증폭력은 대단하지만, 한계가 있군. 아니 이건 한계라기보다는 제어의 한계라고 해야 하나?”

“상위 급 오버러처럼 영력의 섬세한 제어나 구성이 필요한 이능은 증폭이 불가능하다는 건 좀 아쉬운데.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쓸 만해.”

“흐음··· 지금까지 등급이 낮아 전쟁에서 활용하기 어려웠던 영능력자들을 기간트에 태우면 꽤 쓸 만해 지겠어.”

영능력자들 중에서는 재능이 부족해서 하위 등급에서 계속 전전하는 자들이 있었다. 영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인베이더와의 전투에서 활약하기에는 위력이나 효율이 턱없이 부족해서였는데, 기간트에 탑승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의 부족한 능력을 바로 눈앞에 있는 홀로그램 안의 신병기인 기간트가 증폭해 줄 테니까.

기대감에 차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문뜩 다른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런데 이 기간트란 병기를 왜 지금 보여주는 거요?”

베네트는 그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지금 보신 기간트가 바로 독립함대를 요구한 이진운 씨의 연구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불신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직 우주진출조차 제대로 못한 제 4문명의 지구 출신이, 이런 병기를 불과 1년도 안 되는 새에 만들어 냈다고?”

“그 자는 분명 무예의 달인 아니었소? 연구자는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설마 우리를 설득하기 위해 거짓말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추궁하는 듯한 말들을 태연스럽게 받아내던 베네트가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공개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이진운 씨는 과학적인 지식을 가진 연구 개발자는 아닙니다. 다만 기간트의 개념을 제공해 줬지요. 그가 무예를 펼칠 때 운용하는 비법이 기간트 개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그래, 가능성이 있어. 확실히 그게 더 말이 되는군.”

그제야 다들 납득한 표정이 되었다. 어떤 연구든 간에 그것을 시도하게 된 발상이나 개념이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발상이란 건 굳이 전문 지식을 가진 연구원이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을 연구를 통해 실현 가능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지만, 발상과 개념만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간트 개발은 공동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개발에는 리스티 프론사이드 양도 함께 했지요.”

기간트의 공동개발자에 리스티의 이름이 언급되자, 가이란 프론사이드의 두 눈썹이 꿈틀거렸다.

“··· 그 아이가?”

“따님이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

가이란 프론사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더 이상 거기에 대해 말을 섞지 않고 싶다는 듯, 입술만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에 반해 사람들은 리스티의 이름을 듣고는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다들 그럴만하다는 표정이었다.

“호오, 소문 자자하던 천재 소녀 말인가?”

“한동안 뜸하다 싶었더니 이런 걸 만들고 있었군.”

“조나단이 훌쩍 사라진 뒤에는 뒤를 이을만한 인재가 안 보였는데, 역시 프론사이드 가문의 핏줄이 남다르긴 하구먼.”

리스티에 대한 칭찬이 이어질수록, 가이란 프론사이드의 얼굴은 더더욱 굳어졌다. 설마 자신의 딸자식에 대한 소식을 이런 자리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조나단의 이름까지 튀어나오다니··· 그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심기 불편해졌다.

오죽했으면 주변의 사람들도 이젠 가이란의 불편한 낌새를 알아채고는 그에 대한 말을 삼가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는 가이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 중 하나인 바이우드 가문의 가주인 바이첸 바이우드가 그런 자들 중 하나였다.

“흐음, 아무튼 기간트란 게 도움이 되긴 할 것 같군.”

그의 시선이 곧장 베네트를 향했다.

“그러니까 이 기간트란 신병기를 연합에 제공할 테니, 그 대신 라이선스 권을 달라 이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전례가 없던 일이지만, 못할 것도 없지. 기간트도 그렇지만, 오베른 행성에서 세운 그 정도 공훈이면 인정 못할 것도 없고.”

바이첸 바이우드가 그렇게 말하자, 사람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는 라이선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면, 이젠 일부 사람들이 긍정으로 돌아선 것이다.

“저도 찬성합니다. 그만한 힘을 가졌다면 굳이 라이선스를 못 줄 이유도 없죠. 게다가 기간트 정도의 병기를 연합에 제공한다면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하이엑트라 가문의 가주 엑사인 하이엑트라가 나섰다. 그도 바이첸 바이우드의 의견에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우주를 주름잡는 5대 가문 중 무려 두 곳이 찬성세로 나오자, 다들 그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건 아니었다.

바이첸 바이우드가 슬며시 물었다.

“하지만 한 부대를 창설하는 건 많은 재원이 필요하지. 함대를 구성할 전함도 여럿 필요하고. 그건 어떻게 해결할 건가? 설마 그 모든 걸 관리국에서 지원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그걸 다 저희가 제공할 순 없지요. 함대를 자체적으로 운용한다는 독립 라이선스만 해도 무리한 것인데, 함대까지 제공할 리 있겠습니까?”

“설마 기간트를 팔아서 마련하겠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저희가 알던 것보다 리스티 양이 가진 재원이 상당하더군요.”

베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몇 개의 기업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전부 리스티가 보유한 기업들 중 일부였다.

“흐음, 소레디안 컴퍼니의 실질적 주인이 그 아이였나? 하긴 그 아이라면 가능한 일이지. 그동안 뭘 하나 했더니 연구에 필요한 자금원을 만들고 있었던 모양이군.”

소레디안 컴퍼니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놀란 기색이 되었다. 불과 열대여섯 쯤 되는 소녀가 보유하기에는 너무도 큰 우주적인 규모의 회사였다.

그 정도 재력이라면 함대 하나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하긴 믿는 게 있었으니 이런 걸 제안했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바이첸 바이우드는 슬며시 웃어보였다.

“앞으로 재미가 있겠어.”

그것으로 이진운이 원했던 독립함대의 설립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가이란 프론사이드는 그 과정 내내 굳어진 표정이었지만, 다른 가문들이 동조한 의견에 대해 혼자만 반대를 표명할 순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고, 회의 내내 불편한 기색만 보였던 가이란도 사라지자, 회의장에 남아 있던 바이첸 바이우드가 베네트에게 다가왔다.

그가 슬며시 말을 던졌다.

“뭔가 재미있는 걸 준비하는 모양이군. 국장 나리.”

“무슨 말씀이신지.”

“그 신입이 보여준 능력이나 수단이 대단하지만, 이렇게까지 돕는 걸 보면 편애가 너무 심하단 말이야.”

“그냥 합리적인 판단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연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떠보는 말에도 태연스럽게 대답하는 베네트. 그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었다. 이 정도 말에 속내를 드러낼 리가 없었다.

더 이상 뭔가 캐낼 수 없다는 사실만 재차 확인한 바이첸 바이우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아무튼 좋아. 인베이더 놈들을 엿 먹일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상관없지. 하지만 말이야. 그때, 이진운이 쥐었던 그 검 말이야. 그 구현 방식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나?”

“자세한 건 아직 모릅니다. 그냥 무기를 구현하는 능력으로 알고 있지요.”

“아, 그래? 당신도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군.”

“···무슨 뜻입니까, 그건?”

“내가 바이우드 가문이라서 알아 볼 수 있었지. 저건 우리 가문의 고유 이능과 너무도 흡사해.”

“바이우드 가문의?”

그제야 베네트도 반응을 보였다. 그 말은 그가 짐작하고 있던 것과 소녀의 능력의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의미였다.

바이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건 일종의 강신이나 다름없었어. 그 검, 분명 그 소녀의 이능력만으로 구현한 게 아니야. 분명 어디선가 실제 존재하고 있는 무언가를 불러낸 거지.”

“강신이라면······?”

그제야 뭔가 들어맞는 듯했다. 애당초 검 한 자루 만들어 냈다고 그만한 힘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뭐, 좀 특이한 신적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지. 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신격이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고. 우주는 넓고 신비로우니까.”

“······.”

그 말을 끝으로 바이첸 바이우드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검의 형상을 한 신이라. 베네트는 조금은 복잡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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