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13화
키이잉!
관리국의 함대 정박용 도크에 안착한 뒤, 프라이스 호의 해치가 개방되었다.
교육생들과 승무원들이 프라이스 호에서 하선하자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다. 통신으로 먼저 전해진 승전보를 접한 사람들이 도착 시간에 맞춰 그들을 마중 나온 것이다.
“뭐··· 뭐야?”
“세상에, 이 사람들 다 뭐야?”
“엄청나잖아.”
구름처럼 몰려온 환영 인파로 인해 요란 법석한 소란이 벌어졌다. 인파의 대부분은 일반인들이었지만, 그 중에는 연차 좀 되는 오버러들도 적지 않았다.
“왔다, 왔어!”
“오, 바로 저 신입들인가. 이번 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다는?”
“제법들이네. 나 땐, 그냥 눈물만 질질 짰었는데 말이야.”
“야, 눈물은 무슨! 그때 오줌 지렸던 게 너 아니었어?”
“야, 거기! 지방 방송 좀 끄자. 어떤 애들이 있는지 제대로 볼 수가 없잖아.”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들이 더러 있는 것 같은데, 저 신입들 우리 부대로 와줬으면 좋겠군.”
오버러들이 이런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재능 있는 신입을 영입하기 위해서였다.
향후 교육생들은 수료를 마친 뒤, 다양한 부대로 배속되게 된다. 물론 능력의 종류에 따라서 생산직이나 보조직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군속으로 배정될 것이다.
때문에 그 전에 실력 있는 교육생들을 우선 선점해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선점한다고 해서 배정이 확정되는 건 아니지만, 확률은 조금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베른 행성에서 간소하게 치러진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대하고도 화려한 개선행사가 펼쳐졌다.
그리고 개선행사를 주관한 사람은 놀랍게도 관리국의 국장 베네트 로쉬하우어였다. 참석한 사람들도 그의 등장에 다들 깜짝 놀랐다.
이번 전쟁에서 꽤 큰 변수가 있었다곤 하지만, 연합 내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거물이 직접 참석해 행사를 주관할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네트는 이번 전쟁에서 있었던 교육생들의 활약을 칭송했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면서 치하와 격려의 말을 이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교육생들은 다들 고무된 표정이었다.
때문에 개선식은 크게 화제가 되었다. 연합 내의 수많은 행성의 방송국들이 보도진을 보내 그들의 활약상을 취재해 방송했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그 중에서도 이진운은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의 활약상은 다른 교육생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교육생의 신분이면서도 벌써부터 A랭크 이상의 실력을 선보인 강자. 게다가 소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알데마란까지 격파한 사실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그의 유명세는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런 세간의 유명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합의 군부나 핵심 지휘층에서는 이진운의 존재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당시 교육생들이 갖고 있던 장비나 모듈 밴더에 기록된 전투 데이터를 확인한 그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하이브 코어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를 똑똑히 확인했고, 이진운과 교육생들이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다들 침묵에 휩싸여 있던 그때, 누군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의 연속이로군.”
한 사람의 입이 열리자,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말문을 텄다.
“세계수라니··· 인베이더 놈들이 드디어 뭔가 새로운 개체를 만들었군요.”
“오랜 옛날 엘프 녀석들이 잃어버린 세계수를 저런 식으로 재창조 해내다니, 이건 전국을 뒤흔들만한 일입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투 데이터에 드러난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세계수가 자라난 순간부터, 인베이더들의 출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한 결과를.
계측된 것만 해도 거의 배 이상,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몇 배에 달하는 출력 상승을 일으켰다. 그 정도면 한순간에 전력이 수십 배로 증원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마도 놈들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 세계수란 것을 첫 테스트한 걸 테지요. 앞으로 우리는 양산된 세계수를 상대하게 될 게 분명합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군요.”
다들 고민에 휩싸인 표정이 되었다. 이제 막 등장한 세계수를 상대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해서였다.
그때,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무척이나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이번 회의를 주관하고 있던 베네트가 그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가이란 프론사이드 가주님, 말씀하시지요.”
“일단은 세계수의 잔해를 확보했습니다. 약점이 될 만한 것이나, 아니면 그것을 통해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해볼 테니, 대응을 마련하는 건 그때로 미루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지금은 생각해 봐야 답이 안 나옵니다. 만일 그 전에 세계수를 전장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최우선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러자 다들 동의하는 표정이 되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연합 내에서도 손에 꼽는 역사와 세력을 가진 가문인 프론사이드 가문의 가주였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높은 직위를 갖고 있긴 했지만, 그의 말만큼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음, 하긴.”
“차라리 지금은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찾는 게 우선이겠군.”
“아니면 세계수란 게 등장하면 함대의 화력을 집중시켜서 초반부터 먼저 박살내던가.”
“쉽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먹히긴 하겠군.”
“그 전에 인베이더 함대의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세계수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먼저 제거하는 수밖에.”
그렇게 세계수에 대한 문제가 일단락되자, 다음에는 이진운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
겨졌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실력이군.”
“분명 지금까지 드러난 실력은 A랭크. 물론 힘의 총량은 B랭크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걸 다루는 검술 실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아!”
영상 속에 등장한 이진운의 전투장면을 보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레이즈 워커를 상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세계수가 출현한 뒤에 더 강해진 레이즈 워커의 맹공을 버티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타격을 주고 있었다.
“저 정도면 출력 하나만큼은 거의 S+랭크 수준까지 올라갔을 텐데. 그런 레이즈 워커를 상대로 버텨낸다고?”
“기교의 레벨이 장난 아니야. 저건 나보고 똑같이 하라고 해도 못하겠군.”
“어떻게 저런 교육생이 나온 거지?”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진짜 경악할만한 내용은 더 뒤에 있었다.
교육생 하나를 보호하려다가 치명상을 입은 이진운의 위기 상황이 펼쳐졌고, 그 다음 엘레나라는 교육생과 함께 하나의 검을 구현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구현된 검을 잡는 순간, 이진운이 마치 초월자가 된 듯 마냥 믿기지 않는 신위를 발휘한 것이다.
“허··· 이건!?”
“S랭크?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저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압도하려면 적어도 그랜드 급인 U랭크는 되어야 가능해.”
세계수의 힘을 등에 업은 레이즈 워커는 거의 S+랭크에 준하는 힘을 발휘했었다. 물론 커진 것은 출력뿐이고, 그걸 다루는 능력은 S+랭크에 못 미쳤지만, 같은 S+랭크의 오버러라 해도 그런 레이즈 워커를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장난하듯 가지고 놀았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발을 내딛는 행동만으로 놈의 전신을 짓눌러 으스러뜨리다니······.
믿기지 않는 광경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강자들 중에서도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인물은 극소수뿐이었다.
“···정말로 교육생이 맞나?”
“어디서 모셔온 은거 기인을 교육생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다들 이진운의 교육생 신분에 의심을 보이자, 베네트의 부관인 필리스가 대신 답변했다.
“이진운 씨는 분명 교육생입니다. 지구 출신인 것도 사실이고요. 처음 소환됐을 때만 해도 저렇게까지 강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불과 몇 달 사이에 이렇게 강해졌다고?”
“이거야 원··· 그게 더 믿기 어렵군.”
하지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일 가지고 관리국장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직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느낀 놀라움보다 더 큰 경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 순간, 이진운이 보인 놀라운 일검! 하이브 코어 룸을 뚫고 치솟아 오르는 장대한 빛기둥이 레이즈 워커는 물론, 세계수까지 한 번에 베어내 버린 것이다.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어떤 인물은 사래가 들려 마시던 물을 토해내기까지 했다.
“저게··· 대체 무슨 광경이야?”
“뭐지 저건!?”
하지만 사람들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다음 영상이 펼쳐졌다. 이것은 하이브에서 좀 떨어져 있던 프라이스 호에서 관측한 영상이었다.
거대한 빛줄기가 세상을 둘로 나누는 듯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빛의 검! 그것은 저 성층권을 넘어 우주 저편과, 지상 저 끝까지 갈라버렸다.
그에 휘말린 인베이더 함대와 가루다 급은 한순간에 소멸했고, 지표면에는 거대한 크레바스가 만들어졌다.
이 믿기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영상에 조작은 없겠지?”
“조작 같은 건 없습니다. 전부 사실이지요.”
필리스의 대답에, 그제야 혀를 내둘렀다. 이젠 하도 놀란 나머지 더 놀랄 기운조차 없었다.
그들은 관리국이 제공한 전투 데이터에 적힌 세부 내옹을 직접 확인했다.
“마지막 저 공격은 뭐지? 어떻게 저런 위력을······.”
“데이터를 보니 에너지 산출량이 장난 아니군. 행성요새의 공격과 맞먹는 수준 아닌가.”
“엄청나군.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야.”
이진운의 마지막 한 수로 하이브가 있던 대륙에 거대한 상흔이 새겨졌다 했다. 아마 그 일검이 세계수가 아닌 지상을 향해 펼쳐졌다면, 대륙 자체가 쪼개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레이즈 워커란 녀석에게 그렇게 고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어.”
“아마도 조건부인 것으로 보입니다. 엘레나라는 교육생이 구현한 검을 잡아야 가능하다더군요.”
“놀라운 일이군. 그렇다면 혼자서는 그렇지 못하지만, 둘이 있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건가?”
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에 다들 납득한 표정을 보였다. 우주는 넓고 영능력자의 수도 무수히 많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종류의 능력을 가진 자들도 있었으니, 이런 특이한 능력이 존재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활용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검을 구현한 뒤, 엘레나란 소녀가 의식불명 상태라더군요. 지금도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무리한 영능 사용으로 혼백에 타격을 받은 것이죠.”
“아쉽군. 이걸 아무 리스크 없이 다룰 수만 있다면, 전략적으로 큰 득이 있을 것인데······.”
다들 입맛만 다셨다. 이런 큰 리스크가 있으니, 제아무리 대단한 전력이라 해도 안정적으로 사용하긴 그른 것이다.
그때, 베네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진운 씨가 이번 공훈을 대가로 한 가지를 제안해 왔습니다.”
“제안이요? 흐음, 무슨 제안 말입니까?”
일개 교육생이었다면 웃을 가치도 없었겠지만, 이번 수훈을 세운 이진운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렇지만 뒤에 이어진 베네트의 말은, 그들을 당황케 하기 충분했다.
“자신만의 독립 부대를 창설하겠다고 하더군요. 독립작전권, 즉 라이선스 보유 부대를.”
“허··· 제정신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떻게 그런 제안을 하는 거지?”
회의장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이진운이 세운 공은 컸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이제 막 교육과정을 수료한 신입이 독립부대라니. 이건 연합의 긴 역사 속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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