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11화
* * *
프라이스 호를 필두로 한 오베른 주둔군의 병력은 현재 인베이더의 맹공에 방어 태세를 굳힌 채 겨우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덧 한계에 이르렀다. 방어 부분을 관제하던 오퍼레이터가 다급히 외쳤다.
“디스토션 필드 출력 54%로 저하.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쾅! 콰아아앙!
인베이더들이 쏟아 붓는 성대한 포화가 필드를 두들기면서 요란한 굉음을 일으켰다. 아직까진 디스토션 필드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로베르타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으로선 버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놈들의 모든 에너지 출력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했어. 방어를 포기하고 공세로 전환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배리어가 조금이라도 약해질 경우 우린 놈들의 화력에 순식간에 녹아버릴 거다.’
그래서 프라이스 호를 비롯한 전함들의 모든 출력을 방어에 집중시킨 상태였지만, 놈들의 비정상적인 출력 상승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었다.
이젠 처음 보였던 출력 상승 수치의 두 배를 웃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라이스호가 특수함으로 제작된 터라 준대형 급 중에서도 출력이 비교적 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격침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보고들은 프라이스 호의 위기를 알려왔다,
“본 함의 제네레이터 출력 위험 상향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올릴 출력이 없어요!”
“디스토션 필드 출력 저하, 현재 43%! 필드 발생기 과부하입니다. 지금이라도 필드 범위를 줄이고, 본 함을 보호하는 형태로 밀도를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더 이상은 무립니다.”
오퍼레이터들이 던진 직언에, 로베르타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게 소리쳤다.
“안 된다! 그럴 순 없어! 이곳에 있는 병력과 시민들의 목숨을 전부 포기하자는 말이냐?”
“······.”
메인 브릿지에 감도는 무거운 침묵. 그들도 인식은 하고 있었다. 필드의 범위를 축소시켜 프라이스 호 하나만 건사한다는 건, 다른 이들을 모두 포기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현재 전개되고 있는 디스토션 필드는 프라이스 호 본체뿐만 아니라, 다수의 전함과 병력, 그리고 기지에 머물고 있던 난민들까지 전부 감싸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만큼 필드의 면적을 확장했기 때문에 무리도 많이 따랐다. 필드의 밀도도 낮아진데다가 출력의 소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것이 그 증거였다.
로베르타인의 시선이 메인 브린지의 오퍼레이터, 화기관제수, 조타수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과 괴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을 본 로베르타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일 그랬다 치자. 우리만 무사히 살아 돌아간다고 해서 오늘 일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아마 두고두고 평생을 후회할 거다.”
“······.”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와 같은 경우는 그들도 숫하게 봐왔으니까. 살기 위해 전장에서 도망친 자들은 많았지만, 그 남은 인생은 결코 좋지 못했다.
주변의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 온갖 불이익을 당했고, 그 당사자도 잊혀지지 않는 죄책감 때문에 매일같이 악몽을 꾸면서 삶 자체가 완전히 파탄 나 버렸다.
“난 그런 삶은 싫다. 그런 비루한 모습으로 남은여생을 살아가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뼈를 묻는 게 낫지.”
“···죄송합니다. 저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고개를 숙인 그들의 모습에, 로베르타인이 물었다.
“자, 말해봐라. 우리 군인의 사명이 뭐냐?”
“시민을 지키고, 나아가 우주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제야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오퍼레이터와 사관들. 로베르타인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며 외쳤다.
“자, 그럼 외쳐라! 내일을 위해서, 우주의 안녕을 위해서!”
연합의 전투 구호와 함께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출력은 점점 저하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응급처치로 보완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견딜 수 있었다.
“아직도 하이브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나?”
“예, 지금도 무응답 상태입니다. 아마도 통신 장애 문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베트론은 지금 인베이더 함대와 접전 중인 걸로 보이지만, 마찬가지로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선별대의 안부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 차 물어본 로베르타인은 무겁게 중얼거렸다. 하이브 위로 높게 치솟아 있는 거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 게 분명했다.
‘그들이 어떻게든 하이브만 다운시켜 준다면, 이 상황을 뒤엎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지금 현 상황을 생각한다면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나무가 하이브에서 치솟았을 정도면, 선별대는 이미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자그마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마저 포기한다면 더 버틸 수 없을지도 몰랐다.
헌데 그때, 그들의 작은 희망마저 짓밟는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프라이스 호보다 더 높은 상공에서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 그 형체가 프라이스 호의 센서에 관측되었다.
오퍼레이터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가··· 가루다 급입니다! 갑자기 센서 영역 바깥 상공에서 출현. 지금 급속 접근 중! 가루다 급이 본 함을 노리고 있습니다.”
모두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가루다 급은, 연합의 기준으로 본다면 프라이스 호와 버금가는 인베이더의 준대형 클래스.
지금까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인베이더의 함 중에 중형 이상이 없어서였는데, 이제 가루다 급이 출현한 이상 방어로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로베르타인이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절망어린 표정으로 읊조렸다.
“이런 미친! 벌써 저런 녀석을 만들어 낸 것이냐?”
하이브의 현재 규모는 아직 가루다 급을 생산하기엔 이른 상황이었다. 헌데도 가루다 급이 출몰하다니. 이번 전쟁에서 보인 인베이더의 움직임과 반응은 여러모로 비정상적이었다.
하이브의 현재 규모는 아직 가루다 급을 생산하기엔 이른 상황이었다. 헌데도 가루다 급이 출몰하다니. 이번 전쟁에서 보인 인베이더의 움직임과 반응은 여러모로 비정상적이었다.
이젠 모두의 얼굴 위로 절망과 체념의 기색이 어렸다. 승산이 없었다. 안 그래도 인베이더들의 출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상황인데, 그 혜택을 보는 것이 가루다 급이라면 어떤 위력이 나올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프라이스 호의 디스토션 필드라 해도 일격에 관통될지도 모른다.
고오오오!
포구로 집중되는 강대한 에너지! 가루다 급이 드디어 프라이스 호를 끝장 내기 위한 화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루다 급에서 에너지 반응! 출력 무시무시하게 상승합니다. 기존 데이터의 가루다 급과 비교하면 거의 2.3배 수준! 본함의 디스토션 필드로는 절대 못 버팁니다.”
“제기랄. 이렇게 끝나는 건가.”
로베르타인이 좌절에 찬 표정으로 이를 악물던 그때였다. 저 너머로 눈부신 빛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기적 같은 광경이었다.
“뭐냐, 이건!?”
“하이브입니다. 지금 하이브에서 거대한 빛이 치솟고 있습니다.”
“하이브에서!? 또 이게 무슨 일이야?”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로베르타인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좀 전에는 나무가 자라나더니, 이번엔 거대한 빛기둥인가? 인베이더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란 말인가.
하지만 그때, 그 빛으로부터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한 자루의 검이었다.
“···빛의 검?”
로베르타인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렇게 말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저것이 한 자루의 검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빛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무시무시한 속도로 궤적을 그리더니, 말 그대로 범위 안에 든 모든 것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쿠오오오오!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빛의 검 앞에서 베어지지 않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하이브에서 자라난 거대한 나무도 베어졌고, 그 경로에 있던 인베이더의 함대들도 같이 베어졌다. 그리고 프라이스 호를 향해 포구를 겨누던 가루다 급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배리어를 전개했지만, 그것은 고작 1초도 견디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오퍼레이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가, 가루다 급··· 격침!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그들에겐 희소식이었지만, 눈앞의 충격적인 광경에 다들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안도하기 보다는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놀랄 따름이었다.
게다가 빛의 검이 휘둘러지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은 더더욱 경이로웠다.
“대지가 갈라졌어?”
“그뿐만이 아니야. 저 하늘을 봐!”
“이런 세상에!”
지상부터 저 까마득한 상공까지 완전히 베어져 있었다. 흘러가던 구름 위로 길게 난 상흔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 위에도 마찬가지로 긴 흉터가 남았다. 어지간한 크레바스 못지않은 균열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뻗어나가 있었다.
그것이 방금 빛의 검이 휘둘러지면서 생긴 결과물인 것이다.
애써 냉정함을 되찾은 오퍼레이터가 자신이 확인한 결과를 보고했다.
“방금 저 빛의 참격에서 믿을 수 없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거의 행성요새가 발휘하는 통상 공격에 준하는 위력입니다!”
아르탈 행성 연합이 가지고 있는 비장의 패 중 하나인 행성요새. 그 위력은 말 그대로 스타 브레이커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강력한 병기였다.
헌데 그런 행성요새의 출력에 맞먹는 위력의 공격이라고!? 대체 그런 위력의 공격을 누가 했단 말인가? 지금 이곳에 온 오버러 중에서, 그런 능력을 보유한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눈으로 직접 본 결과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프라이스 호에 계측된 관측 데이터가 그 사실을 입증했다.
“대체 하이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 * *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2식. 천룡쇄공조(天龍碎空爪)
비의. 단천일섬(斷天一閃)
말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베어졌다.
참격의 궤적은 거대한 세계수를 베는 것은 물론, 저 아득히 먼 상공까지 뻗어나가, 성층권 너머의 우주공간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하늘을 베는 검! 그것이 베지 못할 것은 없었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이진운이 휘두른 빛의 거검에 베어진 코어 룸의 천장 너머로 저 하늘의 구름이 길게 베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궤적의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세계수와 하이브를 벤 궤적은 심지어 저 지상 위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
다들 넋나간 표정으로 그 현상을 바라보는 가운데, 레이즈 워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천일섬에 정통으로 베인 놈의 신체는 붕괴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다시 되살아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나는··· 나는 죽지 않는 몸인데.]
“심검(心劍)으로 너의 본질을 확실히 베었다. 이제 더 이상 살아날 수 없어.”
[그럴 리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넌······. 아니야, 그건 그분들이나 가능한······.]
레이즈 워커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미 소멸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였다.
이진운은 점점 흐려져가는 놈을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그럼 죽어서 저 세상에서 사죄해라. 네놈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
그 말을 끝으로 방금 전까지 휘둘렀던 전능에 가까운 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천룡파마신검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손아귀에서 사라진 건지, 허전한 느낌만 전해져 왔다.
그가 남긴 장대한 검흔이 없었더라면, 방금 전에 경험 했던 모든 것이 그저 꿈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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