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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56화 (57/448)

3권-06화

오르큐스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어!”

하이브의 코어에서 자라나는 이토록 거대한 나무라니! 여태껏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녀봤지만, 이런 사태에 대해서는 경험해 본 일이 없었다.

레이즈 워커가 세계수라 이름붙인 나무는 한 눈에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혈관처럼 도드라진 부분들은 물론, 뿌리부터 저 가지 끝부분까지 생체 조직을 덕지덕지 붙여 기운 듯한 모습은 절로 혐오감을 자아내게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진운이나 오르큐스들이 당황해 하는 건 단순히 생김새의 혐오감 때문이 아니다.

온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불길하기까지 한 존재감. 그것이 전장에서 다져진 그들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보라. 종말의 가지, 멸망의 기둥···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이 세계수의 모습을.]

그런 세계수를 등진 채 레이즈 워커가 오연히 읊조렸다.

[아직 다 자라려면 멀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네놈들을 처리하기엔 충분하고도 넘치지.]

그렇게 내뱉은 레이즈 워커가 검을 겨누었다. 그 검 끝은 분명 이진운을 향해 있었다.

이진운도 마찬가지로 경계어린 시선으로 자세를 갖췄다.

“고작 나무 하나 자랐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거라 생각하나?”

[하긴 네놈들은 이 세계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군. 아니,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건가?]

“······.”

이진운은 물론, 다른 이들도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놈이 내뱉은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너희들에게 더 이상 살 기회는 없어졌다.]

쿠오오오

검붉은 형상으로 휘몰아치는 영기의 폭풍! 그 중심에 선 레이즈 워커가 단언했다.

[여기서 죽어라!]

검이 휘둘러진 순간, 무시무시한 검붉은 기운이 폭풍이 되어 밀려들었다. 그것은 항거할 수 없는 재액과 다름없었다.

이진운도 그 안에 담긴 힘의 크기를 깨닫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미친! 어떻게 이런 일이!?’

공격 하나에 담긴 기운이 말도 안 되게 급증하였다. 좀 전에 비해 거의 몇 배는 늘어난 느낌이었다.

우우웅!

그 순간 이진운의 검 끝에 어린 검기가 더욱 선명한 형태로 빚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초절정에서나 겨우 흉내나 내볼 수 있다는 고절한 경지, 검강(劍罡)이었다.

이것을 위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한계까지 쥐어짜냈다. 지금까지 이만한 기운을 단숨에 발현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갑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궤적! 그것은 공간을 사선으로 베어나갔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2식. 천룡쇄공조(天龍碎空爪)

비의. 단천일섬(斷天一閃)

끼기기긱!

시공간이 이지러지는 듯한 소성과 함께, 궤적에 걸린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그것은 레이즈 워커가 만들어낸 검붉은 폭풍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 막았어?”

“그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대체 어떻게?”

잘려나가 흩어져가는 검붉은 폭풍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허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지금 이진운은 레이즈 워커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낸 게 아니었다. 단지 힘의 흐름을 읽고, 그것의 구심점이 되는 부분을 정확히 갈라서 흩어버렸을 뿐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벌써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소모된 진기는 만유합원신기로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지만, 육체는 이미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역시 무리가 오는군. 아직 천룡무상검법은 사용할 수준이 아닌데······.’

온몸이 욱신대는 고통에 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천룡무상신검은 그가 가진 최고 절기 중 하나지만, 시전자에게 그만큼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고작 단 한수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죽을 것처럼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역시 대단해. 힘의 크기만이라면 제법 놀라운 놈들이 여럿 있지만, 기교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해내는 녀석은 네놈이 처음이다.]

그의 솜씨에 감탄했다는 듯 과장된 어조로 내뱉는 레이즈 워커.

[그렇기에 더 안타깝구나. 압도적인 힘 앞에선 그 잘난 기교도 무소용이니 말이야.]

“방금 그 결과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이진운이 도발하듯 슬쩍 한 마디 던졌지만 통하지 않았다. 레이즈 워커는 이제부터가 진짜라면서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댔다.

[방금 전 공격을 막아낸 건 칭찬하겠다만··· 지금부터는 좀 달라질 거다.]

콰아앙!

일순간 일어난 파공성! 그리고 대기를 관통하는 충격파!

이진운은 어느새 코어룸 한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힌 상태였다. 오르큐스와 교육생들이 미처 반응할 새조차 없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진운은 비칠비칠 일어서며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냈다.

“컥! 커으······!”

정말로 간발의 차였다. 본능적으로 모든 힘을 쥐어짜 호신강기를 전개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그만큼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가 정작 놀란 건 지금 공격에 실린 위력 때문이 아니었다.

‘보··· 보이지도 않았다고!? 대체 어떻게!’

여태까지 한 번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이진운도 지금만큼은 매우 당혹한 얼굴이 되었다.

전생의 깨달음 덕분에 현재 육체의 경지 이상으로 의식을 가속화 할 수 있는 그는,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한 공격이 없었다.

상대가 제아무리 빠르다 해도··· 거기에 자신의 몸이 따라 주지 못했으면 못했지, 인지 자체를 벗어난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상리를 완전히 벗어난 일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그 원인은 금세 파악되었다.

‘그렇군. 아무리 의식을 가속시켜도, 그건 결국 육체의 감각과 동체시력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건가?’

이건 그가 영적으로 이룬 경지와,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육체에서 오는 괴리 때문이었다. 의식을 가속화시켜도,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육체가 한계 이상의 것을 보고 느끼질 못하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럼 여기서 더 쥐어짜야 하는 건가?’

최절정의 경지로는 어떻게 해 봐도 지금이 한계였다. 리스티의 버프까지 받았는데도 이 정도니, 평소 상태였다면 호신강기조차 끌어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가 일어서서 검을 고쳐 쥐자, 레이즈 워커가 조소를 자아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 힘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이제 잘 알았을 텐데.]

“그래, 뼈저리도록 느꼈지. 네놈의 그 말도 안 되는 힘, 세계수란 것으로부터 공유 받고 있는 거냐?”

[호오, 꽤 정확히 봤다. 네 말처럼 지금 내 힘은 세계수와 연결되어 있다. 세계수 그 자체나 다름없지.]

확신에 찬 그 말에, 레이즈 워커는 부정하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해 보였다. 이미 사실을 눈치 챈 상대에게 숨겨봐야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건 하이브와는 전혀 달라. 너희도 알겠지만 하이브는 행성을 일부 침식해 그 힘으로 병력을 양산하고, 외부와 포탈을 연결하여 침식 레벨에 따라 우릴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전진요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그렇지만 한계는 있다. 우리가 행성을 침공할 땐 언제나 제약을 요구받고 있으니까. 하긴 행성입장에서 보면 우린 해로운 이물질, 즉 외부인이지.]

그것은 이진운도 배워서 알고 있었다. 놈들이 침략하는 병력의 등급을 침식 정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올리는 것도 다 그런 제약 탓이었으니까.

레이즈 워커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이 세계수는 다르다. 단순히 침식하는 게 아니라 행성과 동화되어서 행성의 구성원처럼 뿌리를 내리지. 한때 세계를 지탱했다는 고유의 특성은 이렇게 변모하고도 사라지지 않더군. 그렇기에 우리는 세계수의 영향력 아래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 반대로 너희는 제약을 받지.]

그랬다. 세계수는 행성의 일부분으로 인식되는, 새로운 형태의 동화형침식요새. 행성의 기운을 어떠한 제약도 없이 끌어다 사용할 수 있으니 더 막강할 수밖에.

아주 먼 옛날 엘프들이 세계수의 품에서 살 때는 그 어떤 종족보다 막강했던 것처럼, 인베이더들도 이제 그런 이점을 얻게 된 것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확실히 체감하게 될 거다. 세계수는 끝없이 자라나니까. 이 행성 전체를 뒤덮을 만큼.]

‘그렇게 된다면 정말 최악이군.’

이진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했다. 지금 이 정도 자라난 상태에서도 레이즈 워커의 힘이 몇 배나 불어났는데, 그 정도까지 자라면 거의 파괴신 수준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든 지금 막을 수밖에 없었다.

결단을 내린 이진운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주절주절 잘도 떠드는군. 그런 중요한 정보들을 내게 말해줘도 괜찮은 거냐?”

[상관없다. 어차피 네놈들은 통신조차 안 되는 이곳에서 다 죽을 터. 지금 말한 정보가 외부에 알려지는 알은 절대 없을 거다.]

이곳에 있는 모두의 죽음을 그만큼 확신한다는 태도였다. 세계수와 힘을 공유하고 있는 레이즈 워커의 힘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아무튼 고맙다. 그게 정말이라면, 네놈보다는 저 나무부터 파괴하면 되겠군.”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그의 전신에서 일어난 진기의 운용이 어느새 격렬한 형태로 변화해 나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완 달랐다. 현천진기는 현문정종의 내공. 언제나 안정적이면서도 순수한 형태로 이루어진 내공심법이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마치 폭풍의 격랑처럼, 그 성질이 거칠고 강렬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최대량이 한없이 급증했다. 마치 기운 자체가 한계 없이 폭증하는 느낌이었다.

고오오오오!

무시무시한 기운이 들끓었다. 얼마나 강렬하던지, 주변의 대기가 기운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울부짖을 정도였다.

[네놈, 그 기운은 대체?]

레이즈 워커도 일순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에 비해 한 줌도 안 되는 기운을 가졌던 놈이, 지금은 어떻게 이만한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거지?

그러는 사이에도 기운은 점점 더 급증해나가고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려는 것일까?

그런 엄청난 기운을 발하면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이진운이 드디어 입을 뗐다.

“이번엔 나도 확실히 각오를 했다.”

[각오? 무슨 소리냐?]

“이 싸움에··· 나도 목숨을 걸기로 말이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진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움직임.

그것은 레이즈 워커도 마찬가지였다.

[이놈!]

쾅!

무시무시한 격돌의 여파가 사방으로 밀어닥쳤다. 대지가 흔들리고 코어룸의 벽이 갈라지고 있었다.

[네놈이 어떻게!? 어떻게 이런 힘을!?]

그렇게 몇 번의 격돌이 이루어졌다. 이진운과 레이즈 워커는 거의 대등하게 맞붙고 있었다.

아직도 레이즈 워커의 모든 신체역량이 훨씬 압도적이었지만, 그래도 모든 능력이 상승한 지금의 이진운이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가만 두지 않겠다!]

고오오오!

이젠 여유가 사라진 레이즈 워커가 폭발적인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놈이 쥔 검에서 일어난 기운이 마치 화염기둥처럼 일어나 공간을 휩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운의 대응은 간단했다.

허공에 그어진 단 한 번의 휘두름. 그것이 낳은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제 1식. 섬진쾌(閃震快)

제 2식. 낙인참(落刃斬)

제 3식. 진악세(鎭岳勢)

삼절검을 이루는 모든 것이 이에 하나로 엮였다. 그에서 파생되는 무수한 비의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궤적에 녹아드는 이치들. 그것이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형태로 탄생하였다.

삼절검(三絶劍)

합식 광절단혼섬(光切斷魂閃)

삼절검의 세 검초의 오의를 단 한 번의 궤적에 담아낸 일식의 극의!

그것이 광절단혼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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