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04화
[자, 하찮은 지성체들아. 어디 마음껏 발버둥 쳐봐라. 최후의 순간까지. 아주 즐겁게 관람해주마.]
그것이 전투의 시발탄이 되었다. 레이즈 워커의 선언과 동시에 인베이더 무리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레이즈 워커거 불러들인 인베이더는 모두 50개체. 교육생들의 전체 숫자에 비한다면 얼마 안 되는 머릿수였지만, 질적인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놈들은 침공 급 중에서도 정예라 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식별 명 라이온 헤드. C+랭크에 해당하는 등급에 짐승처럼 뛰어난 기동성까지 갖춘, 아주 까다로운 개체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어력은 높지 않다는 정도였지만, 문제는 공격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익!”
“엄청 빨라!”
실제 움직이는 속도는 그렇게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활용하는 민첩성 자체가 뛰어났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전 방위 공간을 불규칙적인 형태로 종횡무진 하는 움직임은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벌써부터 희생자가 발생했다. 코어 룸의 천장을 딛고 튕겨지듯 움직인 라이온 헤드 하나가 어느새 교육생의 등 뒤로 돌아가 그 등을 날카로운 손으로 관통하고 지나간 것이다.
배틀 슈트의 액티브 배리어도 큰 효과가 없었다.
“커윽!”
“대니!”
친했던 동료의 죽음에 비통한 목소리로 분노를 일으켰지만, 그 교육생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냉정하지 못한 공격을 퍼붓다가, 빈틈을 허용하고 죽임을 당한 것이다.
서걱!
놈이 휘두른 손날에 잘려나간 교육생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 흩뿌려진 피안개는 교육생들에게서 두려움이란 감정으로 전의를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마틴은 욕지기를 터뜨리며 눈앞의 라이온 헤드를 공격했다. 하지만 통하는 것이 없었다.
분명 전자기력의 힘으로 추진하는 자신의 속도는 월등한 우위에 있었지만, 놈은 짐승 같은 움직임으로 번번이 공격을 피해냈다.
콰릉!
결국 참다못한 그가 뇌전을 일으켰다. 그의 손안에 맺힌 전류가 형태를 이루더니, 마치 창처럼 곧게 뻗어나간 것이다.
놈이 제아무리 민첩하다 해도, 번개의 속도보다 더 빠르진 않을 터.
마틴이 직격을 확신하고 있던 그때, 라이온 헤드가 돌연 입을 크게 벌려 포효를 터뜨렸다.
콰우우우!
놈이 포효한 순간, 대기를 뒤흔드는 충격파가 일어났다. 어찌나 컸던지 고막이 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틴은 자신의 귀 상태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결과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였다.
“그걸 가볍게 막아낸다고?”
단지 포효한 것만으로 그렇게 자신하던 일격이 허무하게 박살나 흩어졌다. 자신이 개발한 한수, 라이트닝 스피어라면 제아무리 강력한 인베이더라 해도 직격만 하면 무조건 쓰러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입으로 낸 소리 따위에 무너진다고?
눈앞에 닥친 현실에 그는 두려움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분명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냐?’
잠시 넋 놓고 있는 사이, 라이온 헤드가 다가와 그의 복부에 일격을 찔러 넣었다.
“컥!”
무시무시한 충격과 격통에 마틴은 멀리 날아가 코어 룸의 벽에 세게 처박혀버렸다. 마치 대전차의 철갑탄에 복부가 관통당하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이능인 강체능력 탓에 배가 꿰뚫리는 참사는 겨우 면한 모양이었다.
라이온 헤드도 자신의 일격에 죽지 않은 마틴의 모습이 이상했던지, 잠시 멈칫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으······.”
고통에 찬 침음성을 내뱉으며 비적비적 일어섰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괴물을 상대로 대체 어떻게 싸워야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이 강체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무한정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종국에는 죽음으로 이어지겠지.
마침 옆으로 자신과 같은 교육생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는 자신을 따르던 파벌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지켜낼 수가 없었다.
‘아니, 나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그들을 어떻게 지킨다는 거지?’
그가 파벌을 만든 것은, 남들 위에 서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어려서부터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탓에 그 열등감을 풀고자 했고, 그것이 지금의 파벌이란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키고 싶었다. 좋지 않은 뜻으로 만든 파벌이라 해도 자신이 휘하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죽음은 참고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틴의 눈앞에도 드디어 죽음이 드리워졌다.
마치 사자의 앞발처럼 생긴 라이온 헤드의 손끝 위로 뻗어나온 칼날 같은 손톱이 더욱 길어져 있었다.
지이잉!
영력을 집중시킨 걸까? 놈이 세운 손톱 위로 광선검을 연상케 하는 푸른 광망이 솟구쳤다.
마틴은 보는 순간 직감했다. 저 손톱에 베인다면 강체능력을 가진 자신도 베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시간이 느려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는 순간에는 지나간 과거를 주마등처럼 보게 된다더니, 이런 게 바로 죽음이란 것일까?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베어져 쓰러지고 있는 라이온 해드의 죽음이었다.
마틴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간신히 살아났다는 안도감보다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이진운이 내뻗은 쾌검이었다, 그의 검 끝에서 솟구친 검기가 채찍처럼 휘어져 날아와 라이온 헤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으로 쪼개 버렸던 것이다.
마틴이 혼란스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어째서 날?”
자신은 언제나 이진운을 질시하고 경계했었다. 그를 견제한답시고 시답잖은 짓도 자주 저질렀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죽음 직전에서 구해주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무엇 때문에!?
그런 마틴의 상태를 알아챈 건지, 이진운은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내뱉었다.
“죽고 싶지 않다면 일어서! 어떻게든 발버둥 쳐.”
이진운의 검 끝에 맺힌 검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코어 룸 내부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검기는 교육생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휘둘러지면서 그들을 구해내었다.
하지만 모두를 구하진 못했다. 이진운의 검기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교육생들을 계속 구해내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왜, 너 같은 놈을 구해줘서 놀라웠나? 하지만 너는 곁다리일 뿐이야.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너도 보이기에 덤으로 구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당장 일어서서 싸워. 널 살려준 게 아깝지 않을 만큼 값어치를 하란 말이다.”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상념은 씻겨나가고, 싸워야 한다는 전의가 대신 솟구쳤다.
그랬다. 그에게는 전부 사소한 일이었다. 자신은 그를 견제하기 위해 별의별 수작질을 했지만, 그에게는 웃을 가치조차 없었던 헤프닝에 불과했던 거였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이진운이 보는 시점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마틴이란 존재는 그냥 새끼 고양이나 다름없었다. 새끼 고양이가 가볍게 앙탈을 부린다고 해서, 그걸 갖고 크게 화를 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 나는 본래부터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구나. 정말 보잘 것 없었어.’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를 새삼 깨달았다. 파벌을 만들고 사람들 위에 선다고 해서 그릇의 크기가 커지는 게 아니었다.
진짜 큰 사람은 바로 저처럼 마음이 큰 사람이었던 것이다.
주제파악을 한 탓일까? 이젠 더 이상 열등감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을 자각하고 나니, 각성했던 이능도 한층 더 수월하게 움직여주었다.
그는 힘껏 거머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전보다 더 세찬 전류가 주먹에 집중되었다.
“자, 간다!”
콰앙!
그는 교육생을 덮치고 있는 라이온 헤드를 향해 포탄처럼 날아갔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놈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직!
놈의 두개골 부분이 일그러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내뻗었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동향인들을 살리기 위해 이젠 진짜로 목숨을 걸 때였다. 각오를 다진 그의 주먹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고 빠르게 라이언 헤드를 몰아붙였다.
* * *
반면 이진운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교육생이 한 명도 죽지 않도록 돕고 싶었지만, 지금은 레이즈 워커를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중간 중간 검기를 뻗어내 라이온 헤드들을 공격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두를 구하기 힘들었다.
레이즈 워커가 비웃는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나와 기세 싸움을 하면서 저 하찮은 것들을 지켜보겠다고? 꽤 힘든 싸움을 자처하는군.]
그랬다. 지금 이진운은 레이즈 워커와 무형지기로 기세를 겨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틈틈이 아군을 돕고 있었으니··· 그가 제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망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젠장, 전생 시절의 3할만 됐었어도······.’
내심 욕지기가 튀어나왔지만, 겉으로는 냉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상대에게 감정의 동요를 내보일 순 없었다.
하지만 적은 생각 이상으로 냉철하고 교활했다.
[아무튼 너의 약점은 저것들이로군. 하긴 지금까지 봐온 지성체들의 대다수가 그런 편이었지.]
그 순간, 기세가 일변했다. 지금까지는 놈이 장난처럼 기세를 겨뤄왔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싸울 태세로 변하고 있었다.
장중하게 퍼져나가는 기세가 이진운을 압박해왔다.
‘이놈이!?’
예상했던 것이지만, 놈의 존재감이 심상치 않았다. 분신이 아닌 본체라 그런지, 이전에 느꼈던 기세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최소한도로 잡는다 해도 A랭크는 한참 넘어섰다. 어쩌면 성멸 급이라 불린다는 S랭크에 버금갈지도 몰랐다.
[그럼 우리도 시작해 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기세가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레이즈 워커에게서 풍기는 저주의 기운이 주변을 자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현천진기의 파사현정의 힘조차 견디지 못하겠는지, 피부가 아려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순, 기세가 뭉치기 시작한다. 광포한 형태로 날뛰던 기운이 완벽한 공격 태세로 변한 것이다.
그것을 감지한 순간, 날아오는 벼락같은 일격!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수직으로 내뻗는 일검이었다.
동작과 투로는 단순했지만, 그 안에 담긴 위력조차 단순하진 않았다.
콰우우우우!
코어 룸의 일각이 양단되어 균열을 드러내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일격이었다. 이 정도면 중형 전함조차 배리어 째로 가볍게 양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군. 휘말린 사람은 아직 없나?’
교육생들이 이번 일격에 휘말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던 그때, 레이즈 워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쇄도해오고 있었다.
[어딜 보고 있느냐! 네 상대는 바로 나다!]
쾅!
“큭!”
검과 검이 격돌하면서 엄청난 충격파를 터뜨렸다. 실로 무지막지한 힘과 기운이었다.
놈이 공격해온 순간,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기운과 충격의 대다수를 흩어버렸는데도 남은 것들이 그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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