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52화 (53/448)

3권-02화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는 교육생들에게 오르큐스가 목적을 상기시켰다.

“놈들을 일일이 다 상대할 시간이 없다. 우린 하이브 중심까지 이대로 돌파해 들어간다! 그러니 괜히 겁먹지 말고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만 상대해라. 자, 가자!”

그제야 교육생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랬다.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눈앞의 적들을 전멸시키는 게 아니었다. 바로 행성을 좀먹어 들어가는 이 하이브를 완전히 다운시키는 것이었다.

오르큐스가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 달리기 시작하자, 교육생들도 자연스럽게 뒤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이브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는 인베이더 무리가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콰아앙!

앞을 가로막던 인베이더 다수를 단숨에 쓸어버린 오르큐스 거침없는 진격! 그가 손을 펼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역장의 힘이 공간을 강타하면서 적들을 뭉개버렸다.

“놈들이 몰려온다! 서둘러! 둘러싸이기 전에 하이브 안으로 진입한다!”

그의 외침에, 교육생들도 즉시 가세했다. 그들 개개인의 실력은 오르큐스에 한참 못 미쳤지만, 그들의 고유능력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만만찮은 전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기에 이진운 일행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말 그대로 파죽지세처럼 파고들었다.

삼절검(三絶劍) 제 1식. 섬진쾌(閃震快)

연식(連式). 섬영우(閃影雨)

아리엔의 검첨에서 시작된 빗살 같은 쾌검의 연격! 양산형 인베이더 수십 기가 순식간에 베어져 쓰러졌다.

그렇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쓰러뜨려야 할 적은 아직도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등 뒤를 클레브가 보조했다. 그의 실력은 이진운의 가르침 속에서 일취월장했지만, 아직까진 아리엔보다 몇 수 아래에 있었다.

특히 그의 성향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맞는 편인지라, 이런 식으로 아리엔을 보조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더 컸다.

그런 두 제자를 살피면서 이진운은 엘레나를 지켜보았다. 자폐에 가깝다는 소문과 달리 싸우는 것은 생각보다 제법이었다. 각종 무기를 구현해 인베이더의 머리 위로 투척하는가 하면, 무기를 직접 쥐고 쏘거나 휘두르기도 했다.

게다가 구현하는 무기의 종류도 다채로웠다. 전형적인 냉병기들은 물론, 간혹 연합 내에서 봤던 첨단 병기들까지 문명의 수준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론 구현할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는 만큼, 전황을 뒤바꿀만한 무기를 구현하진 못했지만 앞으로 저 능력이 더 발전한다면 그런 말도 안되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 탈이 없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로군.’

이진운은 하이브에 가까워질수록 풍겨오는 묵직한 기운을 느꼈다. 지금까지 상대한 인베이더들은 대부분 양산형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제대로 된 적들이 쏟아져 나올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하이브 안쪽에서 거대한 체구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연합의 데이터에서 본 적이 있는, 침공 급 인베이더 중 하나인 아울 베어였다.

구어어어!

가슴을 두들기며 포효하는 거대한 괴수! 마치 곰처럼 생긴 이것은 본 자이언트보다 더 큰 체구를 가진 거점 방어용 개체로서, 랭크는 C-였지만 방어력과 근력만큼은 무려 B랭크를 상회했다.

그런 아울 베어가 하나도 아니고 여섯 기나 튀어나왔다. 어지간해서는 단기간에 돌파한다는 게 쉽지 않을 듯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놈들은 덩치만큼이나 민첩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서, 어지간해서는 놈들의 공격에 맞는 일은 드물다는 점이었다.

“성가시게 됐군.”

오르큐스는 입구를 틀어막아버린 아울 베어의 모습에 혀를 차고 말았다.

작정한다면 놈들을 쓰러뜨리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 대신 어느 정도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주변의 인베이더들이 몰려와 자신들을 둘러싸게 되면 큰일이었다.

이 상황을 어찌할지 고민하던 그때였다. 모듈 밴더로 통신이 들어왔다.

[들리나? 나 베트론의 함장이다. 선임교관과 선별대는 잠시 뒤로 물러서라! 아직 하이브 입구를 뚫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쪽에서 큰 거 한방 간다! 잘 피하라고!]

“뭐?”

갑작스럽다 못해 일방적이기까지 한 통신내용에 오르큐스가 잠시 당혹스러워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곧 어떤 사태가 벌어지게 될지 깨달은 그는 교육생들을 향해 즉각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러서라! 포격이 온다! 휘말리지 않게 물러서!”

인베이더와 싸우던 교육생들은 포격이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어느정도 거리를 벌린 순간, 상공으로부터 대기를 관통하는 굉음과 함께 환한 광원이 지상을 밝게 물들였다.

콰우우우!

저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히는 한 줄기의 섬광! 그것은 하이브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아울 베어와 인베이더가 있는 자리를 그대로 직격하였다.

이미 두 차례나 사용한 바 있는 베트론의 주포인 플라즈마 캐논이었다. 전보다 범위는 격감했지만, 위력을 집중시킨 만큼 확실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쿠쿠쿠쿵!

플라즈마 캐논의 빛이 쓸고 지나간 뒤 살아남은 인베이더는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아울베어조차도 그 위력 앞에선 어쩔 수 없었는지, 새까만 숯덩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상태다.

[자, 지금부터 본 함이 지원공격을 해주겠다. 그러니 선별대는 서둘러 하이브 안으로 진입하도록.]

“미친 놈! 그렇다고 무작정 포격부터 해? 게다가 이런 식으로 설치면 놈들의 집중 표적이 될게 뻔한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베트론이 격침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오르큐스는 먼저 욕지기부터 터뜨렸다.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베트론이 중형 전함 치고는 성능이 괜찮은 편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눈에 띄는 짓을 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하이브에서는 벌써부터 베트론을 가만두지 않을 생각인지, 다수의 인베이더 전함들이 포위하듯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선별대를 내려주자마자 다시 고스트 모드를 가동시켜 후퇴라도 했다면 무사히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인데, 베트론의 함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하하! 이 작전에 참가할 때부터 목숨 따윈 이미 내놓고 있었다. 이제 와서 죽는 걸 두려워 할 것 같은가?]

[함장님 말이 맞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만 도망갈 순 없죠.]

[죽는 한이 있어도 놈들의 엉덩이는 제대로 걷어차 주고 갈 겁니다.]

[우린 우리의 고향을 포기할 수 없어요!]

메인 브릿지의 오퍼레이터와 조타수들도 함장과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대로 싸우겠다며 찬동하는 목소리들이 밴더의 통신에 한가득 울려 퍼졌다.

[여긴 우리의 새로운 고향이다. 더 이상 잃어버릴 순 없어!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

한 맺힌 듯한 음성.

지금까지 빼앗기기만 했던 사람들의 분노와 한을 담은 그런 목소리였다.

그 울분을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쏟아 부을 생각인지, 베트론이 보유한 화기가 전부 가동되면서 지상을 향해 포화를 퍼부었다.

콰아아아! 쾅! 콰콰쾅!

인베이더들이 마치 하루살이마냥 쓸려나갔다. 불에 타죽는 부나방도 이보다 나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풍경을 잠시 바라보던 오르큐스가 체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다. 그럼 행운을 빌지.”

[그래, 승리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오르큐스는 그 즉시 하이브의 입구로 향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와 승무원들은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고, 그들의 결의는 존중받아 마땅했다.

어차피 자신들이나 그들이나 마찬가지로 이 작전에 목숨을 건 상황. 어느 누구를 동정하거나 위로할 이유도 없었다.

분위기가 숙연해진 가운데, 교육생들은 드디어 하이브 안으로 진입했다.

하이브는 무척 넓은 회랑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부는 마치 생체 조직과 식물이 서로 융합한 듯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워낙 기괴하게 뒤섞여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혐오감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이브 내부로 들어갈수록 출몰하는 인베이더의 질도 점점 높아졌다. 숫자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등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게다가 선별대를 위협하는 요소는 그뿐만이 아니다.

쿠쿠쿵!

멀쩡해 보이던 지표면이 뒤집히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낫과 같은 앞다리를 가진 침공 급 인베이더인 언데드 멘티스였다. 놈의 낫이 휘둘러진 순간, 미처 대응하지 못한 교육생들 중 하나가 길게 베어져 쓰러졌다.

써걱!

“끄악!”

배틀 슈트의 액티브 배리어가 견고하다고는 하지만 모든 공격을 막아줄 순 없는 법이다. 특히 언데드 멘티스의 두 다리에 달린 낫은 배리어 관통 효과를 가지고 있어 치명적이었다.

“칫!”

섬광처럼 검집을 빠져나온 이진운의 검이 그 즉시 허공을 갈랐다. 검 끝에서 뿜어진 세찬 검기가 반원형 궤적을 그리는 가 싶더니, 언데드 맨티스의 허리를 그대로 갈라버렸다.

키에엑!

“정말 끈질긴 목숨이군. 하긴 시체로 만들어졌다는 언데드 타입이라서 그런가?”

몸이 두 동강 나고도 바로 소멸되지 않는 언데드 맨티스의 모습에 이진운은 투덜거리면서 놈을 짓밟아 처리했다.

잠시 버둥대긴 했지만, 전투력을 잃어버린 이상 별 문제없었다.

그렇게 마무리를 지은 그는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느끼지 못했다. 언데드 맨티스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건 일종의 트랩이었겠지. 이런 방식이면 좀 위험하겠는데?’

하이브 곳곳에 이런 트랩이 존재한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위험했다.

그가 주변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놀라운 감각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어떤 기운이나 기척을 풍기지 않는 무기물적인 트랩까지 파악하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상처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다가가 부상당한 교육생의 상세부터 물었다.

“당장 죽을 것 같이 아파!”

“말하는 걸 보니 죽지는 않겠군.”

“배틀 슈트의 구명 기능이 작동하고 있어. 당장 죽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더 이상 전투는 무리야.”

이로서 처음으로 사상자가 생겼다.

교육생들은 지금까지 함께 해 왔던 동향인의 부상에 더욱더 무거운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자신도 얼마든지 저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자각하게 된 것이다.

부상당한 동료는 짐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거나 보살펴야 했으니 선별대의 전력은 그 이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부상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진운과 그 일행의 분전으로 아직까지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특히 리스티의 기간트는 맹활약을 펼쳤다.

중위계 정령마법. 바운즈 프레임<폭렬지광爆裂地廣>

중위계 정령마법. 릴렉사이브<진동탄振動彈>

무지막지한 마법의 향연에 주변의 인베이더들이 말 그대로 몰살을 당했다. 기간트에 탑승한 그녀의 마법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숫자를 줄여주지 않았더라면 사상자는 지금의 배 이상 늘어났을 것이다.

보고 있던 교육생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 엄청나다.”

“진짜 메탈 기어 따위하고는 상대가 안 되네.”

그 성능에는 이진운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는 기간트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성능은 어떻지?”

[일단 그럭저럭 쓸 만한 정도네요.]

“마법의 위력이 증폭되는 걸 보면 쓸 만할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역시 한계가 있어요. C랭크에 해당하는 중위계 마법까지는 그럭저럭 사용할 만한데요? 그 이상은 무리에요.]

“한계가 있다? 무슨 의미지?”

[마법은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 정밀하고 복잡한 술식에 따라 영력을 가공하고 제어해야 해요. 하지만 증폭될수록 통제가 쉽지 않더라고요. 고위 급 마법은 워낙 정밀한 제어가 필요해서 증폭 기능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어요.]

“그런가?”

대충 무슨 말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검술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검풍과 검기는 경지가 다른 만큼 진기를 제어하는 수준 또한 차원이 달랐다. 진기가 제아무리 증폭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럼 고위 급 영능력자에게는 별 쓸모가 없겠군.”

[아마도 그렇겠죠. 증폭기능이 오히려 방해가 되니까요.]

“그렇다면 하위 등급 오버러들에겐 큰 힘이 되겠군.”

[그렇게 되겠죠. 제 귀염둥이가 대량으로 양산만 된다면, 지금까지 별 활약 못했던 저 등급 오버러들도 상당한 전력이 될 거에요.]

고위 오버러들에게는 기간트의 증폭 기능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해야 했다.

만일 그 이상을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성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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