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50화 (51/448)

2권-25화

오베른 주둔 사령부에서 드디어 작전 개시 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망한 바튼 준장을 대신해 사령관 직위에 오른 고르드 대령은 휘하의 주둔군에게 총 공세를 명령했다.

“자아, 총 공격이다. 놈들이 다른 생각을 못할 정도로 최대한 화려하게 퍼부어 주어라!”

준대형 전함인 프라이스 호를 주축으로 한 전함 편대의 화력이 인베이더들에게 집중되었다.

놈들은 제법 당황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세로만 일관하던 지성체들이 갑자기 둥지를 벗어나 총공세를 감행해 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놈들을 더 당황케 한 것은, 예상보다 더 강한 지성체들의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연신 후퇴를 거듭해 나갔다.

프라이스 호의 함장인 [로베르타인 크로울리]는 사납게 웃으면서 명령했다.

“지난번에는 지킬 게 많아서 공격 한번 제대로 못해봤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지! 이 기회에 놈들에게 본 함의 화력을 아낌없이 퍼부어 줘라!”

“예!”

프라이스 호의 진정한 힘은 중형 전함의 화력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이전에는 민간인들과 교육생들 때문에 주둔군 기지를 보호하기 위해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함의 모든 기능을 오로지 공격에만 쏟을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프라이스 호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차지 완료! 그래비티 블래스트 셋 업!”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로베르타인이 즉각 명령했다.

“사선상의 아군들에게 알려라. 그리고 준비되는 대로 발포한다!”

“예!”

통신이 전해지자, 인베이더와 뒤엉켜 싸우던 아군의 함대와 병력이 일제히 양 옆으로 물러섰다.

“자, 쏴라!”

“그래비티 블래스트, 파이어!”

고오오오오!

포신에 집중되어 있던 막대한 중력자가 검은 광채가 되어 뻗어나갔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칠흑빛 에너지는 사선상에 존재하고 있던 인베이더 모두를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양산형도, 그보다 상위의 인베이더라는 침공급도 그 앞에서는 공평했다. 심지어 인베이더 놈들의 중형 급 전함인 가란드 일곱 척도 중력파 포의 압도적인 포화 속에서 그대로 압괴(壓壞)되어 침몰하고 있었다. 프라이스 호의 중력파 포 앞에서는 어느 하나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화력을 뽐냈다 해서, 인베이더 병력 전체를 압도한다는 건 아니었다. 놈들의 수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아직도 가란드 급은 수십 척 이상이 남아 있었고, 눈앞에 깔린 병력들만 해도 수만을 아득히 헤아린다.

게다가 여기 있는 전력이 놈들의 전부일 거라 장담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퍼레이터에게서 긴장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보입니다. 센서에 포착된 인베이더 무리 확인! 지금까지 전장에 없었던 개체들입니다.”

“추가 병력이로군. 역시 여기 있던 놈들이 전부가 아니었나? 그럼 숫자는 어느 정도지?”

“총 1만 2천입니다. 양산형이 대부분이지만 침공 급도 321마리나 됩니다. 전함은 가란드 급 다섯 척, 소리엔 급은 45척입니다.”

“젠장, 우리가 쓸어버린 만큼 바로 보충해버렸군.”

로베르타인은 작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프라이스 호의 강력한 화력에 손실된 수 만큼의 인베이더들이 후방에서 추가로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난관은 이미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놈들과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인 것이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자, 그들을 믿어라! 인베이더 놈들의 뒤통수를 으깨기 위해 출발한 선별대를! 그들의 손에 하이브가 떨어질 때까지 우린 최대한 버티면 되는 거다!”

“예!”

* * *

하이브를 타격하기 위해 출발한 베트론은 현재 인베이더가 점령한 지역을 크게 우회해 움직이고 있었다. 지면에 가까운 저공비행과 스텔스 기능으로 놈들의 감지 센서에 포착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광학미채를 전개해서 가시적인 탐지까지 방지했다.

이런 은밀 기동이 가능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베트론이 특수전 사양으로 제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별대에게 주둔군이 보유한 중형 급 전함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베트론이 주어진 것이다.

하이브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던 그때, 본진과 연결된 회선을 통해 연락이 날아왔다. 예정대로 놈들을 붙잡아두기 위한 총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메시지였다.

하이브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베트론의 존재가 발각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상정해둔 범위 안에 있었다.

오르큐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지금부터 본 함은 하이브 타격 작전에 돌입한다. 은밀함을 위한 저속 비행 대신 고속 비행으로 전환,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접근해서 놈들의 하이브를 기습 타격할 것이다.”

교육생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오르큐스를 주목했다. 작전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목숨을 건 작전인 만큼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선제 타격은 베트론 함의 주포로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주포의 포격으로 인베이더 놈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하이브를 목표로 곧장 강하를 시작하도록 한다. 그 다음은 알겠지?”

그의 물음에 교육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인베이더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 하이브를 떨어뜨리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였으니까.

“그럼 슬슬 준비들 하고 있어라. 우리가 강하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5분 남짓! 그때까지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도록.”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들 결연한 모습으로 곧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준비랄 것도 없었다. 준비는 전함에 탑승하기 전부터 이미 다 마친 상황이었으니까.

지금 교육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준비가 아니라, 곧 다가올 전투에 대한 마음가짐이었던 것이다.

첫 하이브 공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교육생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과 두려움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결의를 다지면서 긴장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지구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이름을 되뇌며 각오를 다지는 이들도 있었고, 혹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 따라 기도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직된 분위기는 이진운의 일행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긴장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진운이 입을 열었다.

“아리엔, 클레브.”

“예.”

“너희도 알다시피 이번 전투는 무척이나 위험할 거다. 어쩌면 나도 너희 둘을 지켜볼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무모한 짓 하지 말고 최대한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해라.”

“예, 되도록 조심하도록 할게요.”

“항상 주의하겠습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엔과 클레브.

그 두 사람을 지그시 쳐다보던 그의 시선은 그들 옆에 앉아 있던 엘레나에게 닿았다.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쉰 뒤 두 제자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싸우다가 여유가 있으면 엘레나의 안전도 살펴줬으면 좋겠다.”

“저희가요?”

“그래, 너희 둘 외에 따로 맡길만한 사람이 없구나. 나도 저 아이를 나름대로 신경 쓰긴 하겠지만, 혹시라도 레이즈 워커 같은 강적이 여럿 튀어나오면 주변을 돌본다는 건 사실상 힘든 일이지.”

이진운은 이번 작전에서 인베이더의 방어진을 뚫는 쐐기 역할 뿐만 아니라, 적들 중에서 진멸 급 이상의 강적들을 상대하는 역할까지 도맡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서 그의 역할이 지대한 만큼, 누군가를 지키는 일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아리엔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 저 아이도 스승님의 제자가 됐는데, 당연히 지켜줘야죠.”

“스승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제 능력 닿는 대로 최대한 보호해 주겠습니다.”

두 사람이 흔쾌히 받아들이자, 이진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그의 시선이 다시 엘레나를 향했다. 자폐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치고는 대화도 조금씩 할 수 있었고, 감정도 어느 정도 드러내 보이고 있었지만, 혼자 있을 땐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웠다.

이진운은 그 아이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엘레나가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던, 좀 전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라서였다.

“뭐? 제자로···!?”

이진운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설마 제자가 되겠다는 요구를 해올 줄은 미처 생각 못해서였다.

“검이 말해줬어요. 아저씨는 강하다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누구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고요.”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이진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천룡파마신검이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던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앞으로 언니의 복수를 하려면 아저씨의 제자가 되어서 강해져야 한다고··· 그 검이 말해줬어요.”

거기까지 말한 엘레나는 이진운 앞에 깊게 고개를 숙이며 간절히 말했다.

“그러니까 부탁드릴게요.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

이진운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정신적 충격으로 자폐 상태에 빠진 소녀인 줄 알았는데, 역시 이 아이도 그냥 평범한 건 아니었다는 건가?

이젠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먼저 내뱉은 말이 있는데,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뭐든 들어주겠다고 했으니 안 들어줄 수도 없는 일이군.”

단순히 그녀의 부탁 때문에 제자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능력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자신과 이어진 천룡파마신검의 연을 보고, 그 정보를 읽어내어 이 자리에 구현해내기까지 한 아이였다.

어쩌면 이 소녀와 자신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인연의 실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엘레나를 볼 때마다 조금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특히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제자로 받아들이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어지러웠던 상념을 털어냈다.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전투에 집중하도록 하자.’

* * *

그로부터 몇 분 뒤, 베트론은 예정했던 대로 하이브 인근에 도달했다.

생각보다 하이브를 지키는 인베이더의 수는 많지 않은 편이었다. 예정대로 오베른 주둔군 본진이 진격하면서 놈들의 시선을 확실히 붙잡아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베트론의 오퍼레이터는 하이브와의 거리를 측정하면서 말했다.

“본 함과 하이브 사이의 거리 앞으로 약 92km. 이제부터는 하이브의 정밀탐지거리입니다. 본 함의 고스트 모드도 들킬 위험이 있으니 더 이상의 접근은 위험합니다.”

베트론의 함장은 끄덕이고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흐음, 그렇군. 그렇다면 지금부터 고스트 모드를 해제한다. 그와 동시에 속력 최대! 단숨에 놈들의 하이브 안쪽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제네레이터 출력도 최대치까지 상승! 인베이더 놈들이 대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주포부터 갈겨주는 거다!”

“알겠습니다. 제네레이터 출력 상승, 속력 최대! 그와 동시에 고스트 모드 해제합니다! 플라즈마 캐논 차징 시작!”

인베이더들에게 감지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은밀히 기동하던 베트론의 출력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은신하던 고스트 모드가 해제되었고, 지상에 가까웠던 고도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고오오오!

하이브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는 베트론! 그와 동시에 플라즈마 캐논의 차징이 시작되었다. 최대 수준까지 올라간 제네레이터의 에너지가 화기에 집중되고 있었다.

인베이더들도 이제야 베트론의 존재를 눈치 챘다. 하긴 광학미채와 스텔스를 해제한 것도 모자라 대기에 파공성까지 일 정도로 속도까지 높였으니 알아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퓨퓨퓨퓽! 콰앙!

하이브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곧 대공 포격이 시작되었다. 베트론을 격추하기 위한 대공공격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쏜 포격의 대부분은 헛되이 빗나가 버렸다. 속도를 최대치까지 올린 베트론을 타깃팅 해 맞추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중에는 간혹 명중되는 것도 있었지만, 황급히 쏘아내느라 출력이 불안정한 대공 포화 따위에 격침될 정도로 베트론은 약하지 않았다. 이미 최대 출력으로 전개된 초고밀도에너지 장벽인 루미너스 배리어가 베트론의 선체를 빈틈없이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미너스 배리어의 방어를 앞세운 베트론은 순식간에 대공화망지역을 관통했다. 이제 겨우 떠오르기 시작한 인베이더의 전함 몇 척이 보였지만, 아직 예열조차 제대로 못한 전함 따위로는 베트론의 돌진을 막을 수 없었다.

“거리 가까워집니다. 4.3km··· 3.5··· 2.2km!”

전함의 기준에서 봤을 때 2.2km의 거리는 바로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함장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자, 쏴라! 놈들의 추악한 둥지를 날려 버려!”

“알겠습니다. 플라즈마 캐논, 파이어!”

키이이잉!

이미 개방된 주포의 포구가 하이브를 가리키고 있었다. 포구 안에 응집된 막대한 에너지의 광류! 포화상태에 이른 그것은 곧 빛기둥이 되어 뻗어나가 일직선상에 놓인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플라즈마 캐논의 사선상에 아직 제대로 기능조차 활성화 되지 못한 인베이더의 전함 몇 척이 떠 있었지만, 그것들은 베트론의 주포를 고작 몇 초 쯤 견디다가 성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하고 말았다.

그러고도 여력이 다하지 않은 플라즈마 캐논의 섬광은 하이브 상단을 직격했다. 하이브는 항시 배리어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접근 상태에서 쏜 주포라면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이브의 배리어, 70% 다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전 출력을 쏟아서 배리어를 뚫어라! 주포 차징! 준비되는 대로 발사!”

쿠오오오!

제네레이터 출력을 최대로 상승시켜놓은 만큼, 차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물론 첫 포격에 비한다면 위력이 많이 급감한 상태였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하이브의 약해진 배리어를 뚫기엔 충분하고도 넘친다.

다시 한 번 섬광 기둥이 하이브의 배리어 위에 내리꽂혔다. 무시무시한 빛과 굉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앙!

“하이브 배리어 관통! 플라즈마 캐논, 하이브 본체를 직격했습니다.”

하지만 하이브가 입은 데미지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하이브는 행성을 침략하기 위한 인베이더의 전진기지. 어지간한 위력으로는 무너뜨리는 것조차 쉽지 않을 만큼 견고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형 전함 한 척의 화력으로 하이브를 무너뜨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조금 손상은 시킬수 있을지 몰라도, 무너뜨리려면 최소한 준대형 전함이 와야 했다.

베트론의 함장도 이번 포격으로 하이브의 붕괴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애당초 그들의 목표는 하이브의 배리어를 뚫고 오버러들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하이브를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그들의 몫이었다.

“좋아, 그럼 이쯤에서 우리 임무를 수행한다. 자, 오버러들을 떨어뜨려! 강하 작전을 시작한다. 격납고에 연락해서 강하작전 개시를 알려라!”

“예, 강하 작전 개시!”

오퍼레이터는 함내 방송으로 즉시 격납고에 대기 중인 오버러들에게 강하 작전의 시작을 알렸다. 그로부터 30여초 뒤, 오퍼레이터는 격납고의 해치를 개방하였다.

“해치 오픈!”

기이잉!

격납고의 입구가 개방되면서 외부의 격렬한 바람이 안으로 불어 닥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당황해 하지 않았다. 이미 이런 상황에 대비해 철저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해치 앞에 선 오르큐스가 교육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강하작전을 시작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뭐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교육시간에 배운 대로만 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강하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예!”

“그리고 강하 순서는 정해진 순번대로! 떨어지지 않고 여기서 머뭇거리는 녀석이 있으면 뒤따라올 교관들이 그 자리에서 발로 차서 저 아래로 밀어버릴 테니까 그 전에 알아서들 잘 해라.”

그렇게 엄포를 놓은 오르큐스는 교육생들을 해치 앞으로 이끌었다.

교육생들은 해치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아찔함을 느꼈다. 이곳은 무려 수십 킬로미터 위의 상공이었다.

지구에 있을 적부터 이런 부류의 스포츠를 즐기던 사람이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이 이런 고도에서 지상을 향해 뛰어내리라고 하면 당연히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이미 여러 차례 훈련을 통해 경험해 봤지만, 이런 공중낙하는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럼 순서대로 강하를 시작한다. 강하의 시작과 함께 배틀 슈트를 가동해서 플로트 윙을 전개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설마 그걸 하지 못해서 어이없게 추락사 하는 녀석은 없으리라 믿는다.”

마지막 충고와 함께 강하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떨어져 내린 것은 오르큐스였다.

그렇게 먼저 교관이 뛰어내리자, 교육생들도 두 눈을 질끈 감고는 그대로 해치 밖으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떨어져 내려간 그들은 하얗게 깔린 구름들을 뚫고 저 아래로 사라졌다.

그렇게 앞 순번의 교육생들이 해치 아래로 사라졌고, 어느새 이진운 일행이 차례가 되었다.

이진운은 낙하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먼저 말했다.

“떨어질 때 흩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정 안되면 손을 잡아서 서로 붙들어 주고.”

“예.”

하지만 배틀 슈트 하나만 걸치고 뛰어 내리는 교육생들에 비해,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리스티였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기간트에 탑승한 채로 강하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처럼 그냥 뛰어 내려서 강하하는 건 아니다.

기이잉!

격납고에 수납되어 있던 기간트가 자동화기기에 의해 이동되었다. 메탈 기어들이 출력할 때 사용되는 캐터펄트 시스템이었다.

중형 이상 규모의 전함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메탈 기어와 같은 기체들을 운용할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기간트의 통신 장치로부터 오퍼레이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NT-001 기간트. 캐터펄트 덱에 도착. 해치 오픈, 캐터펄트 온라인! 진로 클리어!]

기체 사출용 덱에 들어선 순간, 외부로 이어지는 긴 레일과 통로가 보였다.

[캐터펄트 볼테이지 상승. 임계점 도달!]

추진 레일에 전압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기간트도 리니어 캐터펄트 위에 고정된 형태로 세워졌다.

[기간트를 리니어 캐터펄트에 고정. 사출 준비 완료. 타이밍은 기간트에게 인계.]

“I have control.”

메인 브릿지의 오퍼레이터로부터 기체의 제어권을 양도받은 리스티는 곧바로 외쳤다.

“자, 그럼 NT-001 기간트. 나갈게요!”

리니어 캐터펄트가 작동하자, 무시무시한 힘으로 기체를 전면으로 밀어냈다. 무지막지한 압력이 들이닥쳤지만, 기간트에 내장된 관성중화장치는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콰아아앙!

레일건의 탄환처럼 쏘아진 기간트는 어느새 해치를 벗어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녀는 지상을 향해 큰 곡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기체를 제어했다.

“플로트 윙(Float Wing.영자익靈子翼) 전개!”

기간트의 등 뒤에서 두 쌍의 광익(光翼)이 펼쳐졌다. 영자력으로 구현된 플로트 윙은 오버러들이 착용하는 배틀 슈트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관성제어와 추진 슬러스터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때부터 강하 속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른 오버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배틀 슈트의 기본 기능 중 하나인 플로트 윙을 전개해 강하 속도를 조절해 나갔다.

슬슬 짙게 깔린 구름 너머로 하이브의 정경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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